리뷰58 영화 ‘위플래쉬’ - 잠재력을 해방시킨 무자비한 채찍질? 전지윤 며칠 전 영화 ‘위플래쉬’(채찍질)를 보며 시간을 버리고 기분이 나빠졌다. 물론 영화 해석은 각자가 다양하고 서로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바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영화에 쓰인 멋진 음악들도 이런 불쾌함을 없애주지 못했다. 이 영화는 몇 가지를 보여 주는 데, 첫째 타고난 재능을 가진 소수의 뛰어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둘째, 강압과 경쟁심 자극 등 ‘무자비하고 가차없는 훈련’을 통해서 이런 재능을 더욱 효과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인간적 감정과 상처 등은 이런 과정에서 팽개쳐야할 낭비적 요소, ‘부수적 피해’라는 것이다. 영화는 이런 생각을 가진 예술학교 음악선생인 ‘플래쳐’의 매정하고 비인간적이고 인격모독적인 교육 방식을 보여 준다. 그는 욕설과 폭.. 2015. 4. 12. 내일을 위한 시간, 투쟁을 위한 단결 전지윤 얼마 전 에 “‘현장’엔 답이 없다 … ‘자발성’으론 안 된다”는 글이 실렸다. 나도 뒤늦게 이 글을 봤는데, 언뜻 꽤나 일리있어 보였다. 필자가 말하듯이 “자발성에 기대고 안주하려는 편향”은 문제고, “자발성과 의식성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같이 가야 한다.” 레닌도 에서 ‘자발성에 굴종하지 않는 사회주의자의 의식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 글은 맥락이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이 글에서 ‘자발성’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직선제와 거기서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상대적 다수가 ‘쌍용차 77일 파업’의 상징인 한상균 후보와 그의 ‘강력한 총파업’ 주장에 손을 들어 준 것을 문제삼는 것이다. 이런 직선제가 “노조민주주의 강화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 2015. 1. 27. 마녀사냥의 기억과 상처, '5일의 마중' 전지윤 지난 연말 ‘내란음모 조작 사건’의 피해자 조양원 씨의 부인 엄경희 씨가 이런 말을 한 것을 보았다. “얼마 전 '5일의 마중'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 [그리고] 바로 남편의 사진을 찾아 제 수첩에 붙였습니다. 남편의 모습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섭니다.” 나도 몇 달 전 그 영화를 본 적이 있기에 엄경희 씨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됐고, 그 심경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의 광풍 속에 노동교화소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남편이 부인과 딸이 사는 집으로 찾아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부인은 당국의 감시와 압박 속에 문을 두드리는 남편을 외면해 버린다. 심지어 어린 딸은 아버지가 혁명의 배신자라 믿고 당국에 그를 고발한다. 남편이 보낸 쪽지를 보고 뒤늦게 기차역으로 나가는 부인.. 2015. 1. 6. 영화 <카트>와 함께 돌아보는 이랜드 투쟁과 오늘 전지윤 ‘2014년판 파업전야’라는 영화 를 봤다. 의도적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 장면은 ‘파업전야’를 떠올리게 했다.(실제 이 영화의 제작자의 남편이 ‘파업전야’의 감독이었다.) 계속되는 악랄한 탄압, 힘겹게 버텨 나가는 노동자들, 결국 다시 손을 맞잡는 동료들...나에게는 ‘파업전야’의 라스트신 만큼이나 의 라스트신도 울림이 컸다. 특히 이랜드 파업에 함께했던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눈물을 참기 힘들 것이다. 세월과 세상의 변화를 반영해서 ‘파업전야’의 주인공이 주로 제조업 남성 노동자들이었다면, 의 주인공은 서비스업의 여성 노동자들이다. 무엇보다 가 다루고 있는 것은 오늘날 노동운동의 핵심 문제인 비정규직이다. 87년에 노동자 대투쟁에 직면한 지배계급은 점차 비정규직을 늘리고 외주하청을 확대하는 식으.. 2014. 11. 23. 영화) <제보자> ㅡ 진실을 위한 용기 전지윤 는 정말 강력 추천할만한 좋은 영화다. ‘역시 임순례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은 다르지만 나에게는 에 버금가는 영화였다. 너무 재미있고 감동도 컸다. 영화 내내 많은 생각이 들었다. 황우석 사건 당시가 떠오르고, 내가 겪었던 일들도 떠올랐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진실’에 대한 영화다. 초반부터 “진실과 국익 중에 무엇이 중요하냐”고 묻는다. 이 물음에서 ‘국익’말고 다른 가치들을 넣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 리영희 선생님은 “내가 종교처럼 숭앙하고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진실이다”고 말했었다. 진실을 위해 용기를 내는 제보자, 그 진실을 함께 파헤치려는 PD, 그를 돕는 선배와 동료들. 물론 중간에 PD는 흔들리고 주변 사람들도 ‘그만하라’고 한다. 진실을 밝히려는.. 2014. 10. 15. 웹툰) <모두에게 완자가> ㅡ 우리 안의, 우리 옆의 성소수자 조경은 (이하 모완)은 네이버에서 2년째 연재되고 있는 성소수자 완자의 생활툰이다. 첫 화를 봤을 때 나는 ‘드디어 사람들이 세상 밖으로 하나 둘 나오는구나’싶어 설렜다.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웹툰이야 이전에도 여러편 있었지만 그런 웹툰들과 은 성격부터 다르다. 기존의 웹툰이 허구의 성소수자를 다루어왔다면 은 양성애자 완자의 실제 생활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엮은 생활툰이다. 생활툰이란 ‘생활을 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자신’을 그리는 이야기다. 한 명의 성소수자는 단지 성소수자로서만 존재할 수 없으나, 지금껏 우리는 성소수자이기만 한 뒤틀린 인간형들의 이야기를 접해왔다. 성소수자인 완자는 연애를 하고 버스를 기다리고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불쾌해하며 새로 나온 화장품을 사고 비를 맞다가 엄마를 만나 깔깔거린.. 2014. 7. 3. 서평) <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 ㅡ 세계를 해석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시우 이 글은 국제사회주의경향 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토니 클리프(1917 – 2000)의 『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서평이다. 이 책은 클리프가 죽기 1년 전에 쓰여 졌다. 그는 정설 트로츠키주의자들의 현실을 대하는 왜곡된 프리즘에 도전했고, 그 결과로 국제사회주의 경향이 건설될 수 있었다. 이 책은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이론적 유산이 탄생하게 된 배경, 문제의식, 의의 등을 다루고 있다. 마르크스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또한 세계를 제대로 해석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릇된 실천과 좌충우돌을 낳을 것도 분명하다. 그런 운동은 필연적으로 역사에서 도태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2014. 6. 24. 영화) <한공주> ㅡ 피해자와 생존자 사이 이서영 영화의 초반부, 한공주는 곧 나가야만 할 집에 선생님과 둘이 서 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딱딱 소리를 내는 선풍기가 한 대 매달려 있다. 영화는 ‘밀양 성폭력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은 그 ‘실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를테면 영화 《변호인》이 픽션이라고 초반에 밝혀놓고, 그 재판의 결과가 어땠다는 식의 자막을 깔아버리는 식의 문제들)에 빠지지 않는 데에 성공했다. 영화는 관객의 눈앞에 고통을 전시하지도 않으며, 심리적인 강요를 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가 가장 뛰어나게 포착한 장면은 바로 한공주라는 개인이다. 모두가 그녀의 영혼이 산산조각 났을 것이라고 예상할 만큼, 우리 모두의 .. 2014. 5. 15. 서평) <좌파 메시아주의라는 이름의 욕망>(진태원)에 대한 비평 핫(hot)한 철학자들에 대한 뛰어난 요약, 빗나간 비판 곽태진 이 글은 국내의 대표적인 알튀세주의자 가운데 한 명인 진태원 선생(이하 존칭 생략)이 쓴 「좌파 메시아주의라는 이름의 욕망: 알랭 바디우, 슬라보이 지제크, 조르조 아감벤의 국내 수용에 대하여」(이하 「욕망」)에 대한 약평이다. 물론 진태원의 논문에 대한 이해나 그 논문이 다루고 있는 사상가들에 대한 이해가 사회주의자로 활동하기 위한 전제조건까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현 시점에서 ‘핫(hot)한’ 급진적 철학자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분명 오늘날 급진화하는 대중과 대화하는 데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진태원은 「욕망」에서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조르조 아감벤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개괄하고, 이 사상들이 미국화를 거쳐 국내에 수용.. 2014. 5. 4. 영화) <노예 12년> ㅡ 지배와 복종의 매커니즘 서범진 은 억압과 지배에 대한 영화다. 이 영화의 가치는 노예제의 끔찍한 참상을 단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왜 노예들은 쉽사리 집단적으로 저항하지 못했을까? 착한 백인 "주인"들은 노예제의 굴레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비인간적인 노예제가 "문명" 사회, 기독교 사회에서 지속될 수 있었을까? 영화 곳곳에 놓여진 단서들은 하나의 진실로 향해있다. 그것은 바로 노예는 단...지 노예로서 태어나거나 선언 되는 것이 아니라, 노예로서 길러진다는 것이다. 공포와 학대는 그들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스스로 무너져 내리게 만든다. 그들은 희망 대신 한맺힌 영가의 노랫소리를 위안으로 삼는다. 체념과 적응에 대한 강요는 자유민이었던 주인공의 용기마저 좀먹어간다. "생.. 2014. 4. 2.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