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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58

혹독한 환절기와 외로움 뒤에 남는 변화와 성장 박철균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 집중호우에 낮엔 덥고 밤엔 쌀쌀해 목감기가 살짝 올까 말까 불안한 환절기의 시기에 이 영화를 보았다. 계절이 바뀌는 이 시기에 혹독한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영화에 나오는 주요 세 사람도 혹독한 변화와 외로움에 맞서야 했다. 집에서 먹고 자던 아들 수현의 절친 용준이 사실은 아들의 연인이었음을 알게 된 엄마는 처음에는 이 사실을 부정하며 병원을 옮기고 집을 뺀다. 마치 자식이 성소수자임을 알았을 때 처음엔 부정하고 거부하던 그 마음을 식물인간이 된 수현 대신 옆에 있던 용준을 향해 쏟아 낸다. 그러면서도 끝내 병원을 찾아낸 용준에 대해 서서히 연민을 느끼게 된다. “갈 곳이 없다”는 용준의 말에 “나도 그렇다”라고 말하는 엄마는 이 모든 복잡.. 2018. 5. 22.
이제 저 강에 가지 못한다 - 황금색 동상을 보는 슬픔 채효정(정치학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해직강사)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처음 실렸던 글을 옮긴 것이다. 옮겨 싣는 것을 허락해 주신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우리 동네 이야기다. 페북을 통해 회자되기 시작하더니 이렇게 기사화(http://v.media.daum.net/v/20180102154719554?f=m)까지 되었다. 화가 나고 속이 상하는 이야기다. 마릴린 먼로를 깊은 산과 높은 물의 땅인 인제의 상징으로 삼겠다는 발상이 어이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 일을 두고 설왕설래 하는 말하기의 방식에서도 모욕감과 불편함을 느낀다. 요즘 시골 강둑길은 비슷비슷한 모양의 도시 강변 산책길처럼 재개발되고 있다. 내가 사는 인제도 46번 국도변 옆으로 내린천 둔치가 그렇게 되었다. 작년 한.. 2018. 1. 4.
인간도 돼지도 괴물이 되는 세상 - 옥자 최태규 1. 영화가 시작되고 10분이 채 안돼 찔찔 울기 시작했다. 내가 기르는 개도 덜 익은 감을 던져주면 신나게 먹었고 심지어 제가 스스로 감을 따먹기도 했다. 물가를 지날 때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호두는 깊은 물을 겁 없이 뛰어드는 래브라도인데, 이제 나이가 많아 가만히 서있기도 힘에 부친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공을 던지라고 물어오겠노라고 보챘던 녀석이다. 대문 앞에서 차에서 내리지 않는 나를 멀뚱히 기다리고 선 표정이 미자의 어리둥절한 눈빛에 정확히 겹친다. 벼랑 끝에서 발휘하는 옥자의 기지를 기대할 수 있는 동물은 영화에서나 존재하지만, 심지어 그렇게 어이없는 장면에서도 나는 또 한 방울 쥐어짰다. 동물영화만 보면 맨날 운다. 2. 옥자는 괴물이다. 감독은 ‘돼지영화’라고 했는데, 옥.. 2017. 7. 4.
판도라 - 촛불혁명의 기소장같은 영화 전지윤 는 강추하지 않을 수 없는, 지금 시국에 보면 딱 좋을 영화였다. 나에겐 충격과 눈물의 2시간이었다. 한 혁명가의 말을 패러디한다면 이 영화는 ‘한국 사회에 대한 촛불혁명의 기소장’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흘러내린, 훔쳐내야만 했던 수많은 눈물들’이 이 사회를 당장 뒤엎어야 한다는 가장 강력한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이 영화가 묘사하는 것과 한국 사회의 현실은 정말 싱크로율 100%라고 할만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사회를 빨리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엄청난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 숨이 막힐 듯 했다. 세월호 진상규명에 힘을 보태 온 김인성 전 한양대 교수는, 한국 사회가 이대로 간다면 “세월호의 수백 배가 넘는 부모들 속에서 함께 통곡하게 될까 두.. 2016. 12. 30.
부산행 - ‘헬조선’과 ‘혐오의 시대’를 그린 지옥도 전지윤 은 전체적으로 ‘헬조선’의 현실과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보여주는 종말론적 분위기로 가득했다. 좀비영화를 크게 좀비와 인간의 투쟁을 다룬 영화와, 좀비보다 더 무서운 인간들과의 투쟁을 다룬 영화로 나눈다면 이 영화는 후자에 더 가까웠다. 영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우리 사회와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주인공의 직업은 펀드매니저인데 초반에 ‘개미 투자자’를 걱정하는 부하 직원에게 “너는 그런 거까지 신경쓰면서 일하냐”고 나무란다.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어린 딸에게도 ‘그럴 필요 없다’고 꾸짖는다. 사람들에게 그는 “개미핥기”라고 불린다. 악역으로 나오는 또 다른 주요인물은 버스회사 상무로, 마찬가지로 옆의 사람들은 나몰라라 짓밟고서라도 자신을 지키겠다는 행태의 전형을 보여 준다. 이들이.. 2016. 8. 18.
영화 ‘스포트라이트’ - 누군가 불을 켤 것이란 희망 전지윤 최근에 본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가벼운 마음으로 편히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는 2001년에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준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범죄와 그것을 파헤치는 기자들을 다룬다. 영화는 별 극적 장치와 효과도 없이 정면으로 충실하게 사실들을 쫓아간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결국 진실에 다가가게 한다. 그걸 따라가기 위해 집중해서 보느라 약간 힘이 들 정도다. 영화가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결코 선정적이지 않다. 흔한 성범죄 묘사, 회상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경험인지, 영혼까지 학대당하는 일인지 잘 느끼고 공감하게 해 준다. 자신이 깊이 신뢰하던 사람에게 당한 학대와 폭력이 얼마나 큰 충격을 낳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다만 감독은 이것이.. 2016. 3. 31.
서평 <마르크스와 세계경제> - 성역없는 비판과 혁신 전지윤 , 정성진 지음, 책갈피, 16,000원 새해가 밝자마자 중국 증시가 폭락하면서 세계 증시가 같이 출렁거리는 모습이 목격됐다. 그토록 뜸들이다가 금리 인상에 나섰던 미국은, 추가 금리 인상을 쉽게 못할 처지가 됐다. 스페인 총선에서 급진좌파인 포데모스의 약진, 베네수엘라에서 마두로 정부의 선거 패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충돌,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 추진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많은 정치적 충돌들의 배경에는 유가 하락, 금융 불안, 경기 침체가 깔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아주 시의적절하게도 정성진 교수의 새 책 (책갈피)가 출판됐다. 한국 사회에서 많지 않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의 최신 연구 성과와 주장을 접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반갑고 유익한 경험이다. 정성진 교수의 이 책은 그.. 2016. 1. 21.
영화 '초콜렛도넛' - 미친 세상에서 맛본 짧은 행복 전지윤 이렇게 멋지고 감동적인 영화를 당분간 또 보게 될 수 있을까. 작년 연말에 개봉했다가 금방 내려간 영화 을 최근에야 보고 나서 든 생각이다. 보는 내내 뭉클함과 따뜻함과 서글픔이 소용돌이쳤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하던 1970년대말(‘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던 레이건이 대통령이 된 것이 1981년이다.) 미국을 배경으로 동성애자와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다. 그리고 최근에 이슈가 된 동성결혼과 가족구성권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 영화를 빛내는 것은 누구보다 주인공 ‘루디’이다. 앞 부분에서 루디가 노래로 자기소개를 하는 장면에서 그 매력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누구일까 싶다. 바로 그 매력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또 다른 주인공 ‘폴’이 루디를 칭찬하는 말이 정확하다. “넌 정말 놀라.. 2015. 9. 29.
서평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읽고 오명근 장하준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하는 작업 - 그래프와 각종 도식과 숫자들의 조합을 통한 경제학에 무언가 과학적 권위를 부여하려는 여러 번잡한 작업들 - 에 대해서 일침을 가해 왔다. 장하준은 “경제학의 95퍼센트는 상식에 불과한데, 단지 전문용어와 수학을 동원해서 어렵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이는 나같은 어줍잖은 경영학부 전공생들이 듣기에도 참 시원한 발언이다. 그동안 경제학자들은 한마디로 너무도 쓸데없는 그래프와 방정식을 만들고 소위 “폼을 잡는” 짓을 너무 많이 했다. 그러나 장하준은 경제학은 결코 한 가지 정답만이 존재하지 않는 열린 토론의 장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양한 경제학적 논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특정 경제상황과 특정 도덕적 가치 및 정치적 목표 .. 2015. 8. 19.
영화 <마돈나> - 발버둥치며 가라앉는 전지윤 입시문제를 저돌적으로 다뤘던 신수원 감독의 새 영화 는 지켜보기 쉽지 않은 영화다. 몇 군데 좀 성기게 묘사된 장면들이 아쉽긴 하지만,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들쳐보는 것 같은 불편함 속에서도 빠져들게 만드는 영화다. 몇 년 째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재벌 회장 배역은,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떠오르게 한다. 너무 돈이 많아서 죽어도 죽은 게 아니어야 하는 그는, 돈과 힘이 없어서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주인공들과 대비된다. 양쪽 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명백해 보이는 데, 내가 공감하면서 지켜보게 된 것은 어쩔 수 없이 여주인공 ‘미나’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울림있게 다가오는 장면과 대사가 드물지 않다. 체육시간에 뜀틀넘기를 하다가 뜀틀 위에 주저앉아 아이들의 비웃음을 듣는 장.. 2015. 8. 11.
'연평해전'과 동족살상의 악순환 전지윤 영화 ‘연평해전’을 보지는 않았지만 배급사, 멀티플렉스, 보수언론의 몰아주기, 띄워주기는 아주 잘 보인다. 덕분에 영화를 보지않고서도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다. 새누리당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유승민 사태로 바쁘던 김무성보다 먼저 이 영화를 보고서는 “연평해전은 우리가 승리한 전투”라며 ‘안보정당’ 마케팅에 이용하는 문재인을 보면서 참 기가찼다. 물론 ‘김대중 정부가 더 강력대응을 못하게 막았다’는 우파가 더 섬뜩하긴 했지만 말이다. 2013년에 연평해전 전적비를 참배한 민주당 지도부 저들 모두의 주된 관심은 ‘NLL을 지켰냐 아니냐, 우리가 이겼냐 졌냐’에 있다. 보이지도 않는 바다 위에 선을 그어놓고 말이다. 그러면 2002년 2차 서해교전은 우리 쪽에서 6명이 죽었으니 망친 것이고, 1999년 .. 2015. 7. 23.
매드 맥스 - 희망없는 세상에 대한 분노 전지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정말 볼만한 영화였다. 아바타 이후 이처럼 재미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도 의미있는 블록버스터는 오랜만이다. 제목대로 ‘분노의 도로’다.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와 광기 속에 질주하며 때려 부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것도 컴퓨터그래픽을 최소화했다고하니, 롤러코스트를 탄 것 같은 기분이란 말이 실감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용 액션활극에 그치지 않는다. 여주인공 퓨리오사를 연기한 샤를리즈 테론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진실된 영화”이며 “여성주의 영화”라고 말했다. 감독인 조지 밀러는 핵전쟁의 폐허 속에 물과 기름을 지배하는 미래사회 독재자 임모탄과 그가 통치하는 시타델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생존에만 관심이 있다. 명예도 없고 공감, 연민 .. 2015.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