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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카트>와 함께 돌아보는 이랜드 투쟁과 오늘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4. 11. 23.

전지윤


‘2014년판 파업전야라는 영화 <카트>를 봤다. 의도적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 장면은 파업전야를 떠올리게 했다.(실제 이 영화의 제작자의 남편이 파업전야의 감독이었다.) 계속되는 악랄한 탄압, 힘겹게 버텨 나가는 노동자들, 결국 다시 손을 맞잡는 동료들...

나에게는 파업전야의 라스트신 만큼이나 <카트>의 라스트신도 울림이 컸다. 특히 이랜드 파업에 함께했던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눈물을 참기 힘들 것이다.

세월과 세상의 변화를 반영해서 파업전야의 주인공이 주로 제조업 남성 노동자들이었다면, <카트>의 주인공은 서비스업의 여성 노동자들이다. 무엇보다 <카트>가 다루고 있는 것은 오늘날 노동운동의 핵심 문제인 비정규직이다.

87년에 노동자 대투쟁에 직면한 지배계급은 점차 비정규직을 늘리고 외주하청을 확대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강력한 민주노조가 등장하자 그것을 옆으로 피하면서 동시에 이간질과 분열지배를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97IMF 위기 이후 이런 방향은 극대화됐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곳곳에서 비정규직과 그 모순을 보고 있다. 세월호 참극에서도 선원들의 다수가 비정규직이었다는 문제가 제기됐었다. 참극의 희생자인 유민 아빠는 비정규직이었기에 마이너스 통장을 쓰면서 아이들 양육비를 근근히 챙겨줬다.

흑인이면서 여성이고 레즈비언인 가난한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말이 있다. , 가장 편견에 시달리고 차별받으며 열악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제일 올바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또 그럴 때 가장 민감하게 불의와 부조리를 알아채고 공감할 수 있다는 말이다.(상처입고 고통받는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중요한가!)



그 점에서 <카트>3중의 굴레 아래 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세운 것은 커다란 장점이다. 실제로 영화는 노동을 하고, 나아가 파업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집안일을 챙기고 돌봄 노동에 신경쓰는 주인공을 보여 준다.

노조 일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면서도 장바구니를 끼고있는 주인공, 맡길 데가 없어서 아이를 데리고 농성에 참여하는 동료, 결국 아이가 눈에 밟혀 농성에서 빠지는 동료... 만약 엄마노동자가 아니라 아빠노동자가 주인공이었다면 얘기와 느낌은 좀 달랐을 것같다.

그럼에도, 솔직히 개인적으로 영화 자체는 부족함이 있었다. 사실 그 어떤 영화도 이랜드 파업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느꼈던 감동을 온전히 되살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2007년은 71일 비정규직 악법의 시행과 이랜드 파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수많은 사람과 단체들이 그 투쟁에 마법처럼 빨려 들어갔다.

노동자들의 맞은 편에는 노동조합은 성경에 없다는 박성수 이랜드 그룹 회장이 있었다. 한국의 유통대기업들은 다국적 유통업체들이 혀를 내두르며 철수할 정도로 놀라운 노동착취 능력을 선보여 왔는데 이랜드는 그 선두였다.

 

기적을 만든 투쟁

 

영화에서처럼 이랜드 사측은 노동자들이 매장을 점거하자 나중에는 전기를 끊었는데, 식품과 상품 진열장의 전기만은 끊지 않았다. 노동자의 몸이 상하는 것보다, 상품이 상해서 팔지 못할 것만 보였던 것이다.

나아가 모든 출입구를 용접해 버렸다. 그래서 당시 농성장은 다섯살 짜리 아이도 엄마를 만나러 들어갈 수 없고/ 칠순 노모도 딸을 만나러 들어갈 수 없고/ 기자도 의사도 인권단체도 들어갈 수 없는”(송경동 시인) 곳이 됐다.

이랜드 경영진은 점포를 점거하는 자들이 체포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비는 기도문을 직원들에게 내려보냈다. 그 기도에 답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였다. 애초 노무현 정부에 큰 기대가 없던 나도 경찰특공대까지 투입해서 무려 3차례나 절규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끌어내는 그 정부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농성장 침탈에는 1만여 명의 경찰력과 물대포, 전기 드릴, 대형 해머, 절삭기까지 동원됐다. 그것은 이미 빛이 바래있던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그 정부의 약속을 산산조각냈다. 2007년 말 대선에서 많은 사람이 투표하지 않았고, 그 틈에 이명박이 당선했는지의 답은 여기 있다. 물론 이라크 파병, 한미FTA 추진 등 몇 가지가 따라 붙는다.

하지만 이랜드 파업은 무엇보다 모든 게 기적이었다는 김경욱 이랜드 노조 위원장의 말과 함께 기억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아름다운 연대, 3차례나 이뤄진 전격적인 매장 점거,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지와 연대, 민주노총 긴급대의원대회 소집과 10억 모금 결정, 전국노동자대회 개최...

이 모든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반찬값이나 벌고 있다고 무시당하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처음에 팔뚝질도 어색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금새 변해갔다. 나중에 이랜드 사측은 파란색 노조복을 입은 여성 노동자들이 매장 근처에 나타나기만 해도 셔터를 내리고 영업을 일시 중단할 지경이었다. 이 여성 노동자들의 눈빛 속에서 노동운동의 희망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 기적의 출발점 된 홈에버 상암점 점거는 미리 계획되거나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 12일을 예상했던 것이 무기한 점거로 확대된 것은 조합원들의 분임 토론 속에서였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토론 속에서 노동자들의 잠재력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열기 속에서 노동자들은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서도 빨리 나가서 다시 점거해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이것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김경욱 위원장은 가장 멋지고 돋보이는 활동가였다. <카트>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이 과정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영계 대표가 된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던 이랜드는 정부의 뒷받침 속에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이 투쟁은 모두가 인정하듯이 갈수록 이랜드의 간판을 내리느냐,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깃발을 내리느냐의 문제가 됐다.

처음에 상암점 점거 때는 몇 주 뒤에 경찰력이 투입됐지만, 강남점 점거 때는 이틀만에 경찰력이 투입됐다. 그 상황에서 금속노조가 박성수를 혼내주고 화물연대가 매장을 막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이랜드 노동자들의 그 기대섞인 눈빛이 기억난다.

 

희망과 가능성

 

하지만 우리 편의 힘과 노력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직도 2007916일 그 아침의 먹먹한 기분이 남아있다. 면목점에서 3차 점거에 성공한 노동자들에게 이번에는 3시간만에 경찰력이 투입됐고 모두 끌려나왔다.

그 아침에 달려온 노동자들의 숫자는 경찰력에 비교가 되지 않았고, 막을 수도 없었다. 이 비슷한 기대와 좌절감을 그 후에도 많은 투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것이다. 특히 쌍용차 평택 공장 안의 노동자들에게, 사측의 선무방송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민주노총도 당신들을 버렸다는 소리는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카트>에는 이랜드 투쟁과 파업 과정의 곳곳에서 많은 역할을 했던 민주노총이나 연대단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아쉽고 부당하게 느껴지지만, 장기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이 느낀 고립감의 반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법원은 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화라는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바뀐 것은 없었고 그 한달 후 현대차 한 노동자는 자살을 시도했다. 그 소식을 취재하러 현대차 울산공장에 간 <뉴스타파> 기자를 현대차 사측뿐 아니라 정규직노조도 외면한다. 이 소식을 다루는 <뉴스타파>의 마지막 장면 화면 위로 도움 주신 분들에 이어서 도움 안 주신 분들자막이 떴고, 거기에는 현대차 사측과 함께 정규직노조가 들어가 있다.

정규직노조는 그 판결 전에 이미 사측과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는 합의를 한 상태였다. 물론 정규직노조의 지도부, 특히 우파적 지도부가 문제였다. 하지만 좌파인 금속노조 지도부도 나중에 결국 그 합의를 승인했다. 긴 시간 끝에 어렵사리 민주노조가 들어선 현대중공업에서도 하청노조는 정규직 노조의 도움이 없어 담을 넘어 공장에 들어간다고 한다.

더 열악하고 힘든 곳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더 긴 눈으로 더 넓은 우리 모두의 이익을 보지 못하는. 당장의 내 눈 앞의 문제만을 보고 지키려 하는. 이런 지도부와 그런 지도부를 용인하는 많은 조합원들과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활동가들. 이것이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그러지 못할 때 냉소적으로, 어긋난 길로 가자고하는 이런 목소리는 더 많아질 것이다.

냉정하게 판단해 보자. 안타깝지만 현실은 정규직과 사용자의 정서적 거리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그것보다 가깝다.”(박세길 역사연구가)

노동자 계급이라는 프리즘으로 우러러보는 어리석은 짓은 집어치워야지 노동자 계급이여, 안녕!”(이종태 시사인 기자)

영화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의 주인공들이다. 전국학교비정규직 노동자 2만여 명의 파업, 뜨거운 파업의 겨울을 만들고 있는 씨앤앰,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

학교비정규직 파업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전교조 노동자들, ‘해고 동지를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지옥이라며 광고탑에 올라간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 ‘두 분이 광고탑 위를 지키고 아래는 우리가 맡겠다며 연대 파업에 들어간 씨앤앰 정규직 노조.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함께 손잡고 거센 물줄기를 헤쳐나가는 이들을 보면 가슴이 벅차다. 부당한 현실에 무릎꿇지 않고 동지애와 단결 투쟁 속에서 거듭나는 이들이 이랜드 투쟁이 보여 준 희망과 가능성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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