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영화 ‘스포트라이트’ - 누군가 불을 켤 것이란 희망

전지윤



최근에 본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가벼운 마음으로 편히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는 2001년에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준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범죄와 그것을 파헤치는 기자들을 다룬다. 영화는 별 극적 장치와 효과도 없이 정면으로 충실하게 사실들을 쫓아간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결국 진실에 다가가게 한다. 그걸 따라가기 위해 집중해서 보느라 약간 힘이 들 정도다.


 

영화가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결코 선정적이지 않다. 흔한 성범죄 묘사, 회상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경험인지, 영혼까지 학대당하는 일인지 잘 느끼고 공감하게 해 준다. 자신이 깊이 신뢰하던 사람에게 당한 학대와 폭력이 얼마나 큰 충격을 낳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다만 감독은 이것이 결코 몇몇 사제들이 괴물이어서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가해자 개인을 악마화하고, 비난하고 도려내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가해자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나서, 나나 우리 공동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를 기만하며 넘어가면 되는 게 아니란 것을 말이다.

 

영화 중간에 사제들의 명단을 빨리 폭로하려는 기자를 말리며 신문사 편집자는 사제가 아니라 시스템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시스템은 조직의 명예와 위신을 위해 사건을 덮은 교회이고, 그것을 모른 채 한 언론이고, 사건을 무마시키며 돈을 번 법조계였다.

 

교회에 충성하며 진실을 외면한 가족이었고, 알면서 침묵한 이웃이었고 결국 사회 공동체 전체였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변호사의 말처럼 아이를 키우는 것에 한 마을이 필요하다면, 아이를 학대한 것도 한 마을이었다.”

 

사건을 무마하려고 찾아온 교회 관계자에게, 부모님이 차와 음료를 내주었다고 말하는 피해자의 냉소를 보면서 그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그 부모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삶을 의존해 온 교회와 등을 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 기간 맺어 온 인간적 관계망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 볼 생각도 없는 부모, 형제, 자매에게 가장 큰 배신감과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신뢰와 애정이 깊었을수록 더욱 더 말이다.

 

공동체가 덮어둔 이 문제를, 그 지역에선 비주류인 아르마니아인 변호사와 다른 도시에서 새로 온 보스턴글로브신문사 편집장(더구나 유대인)이 파헤친다. 그래서 신문사의 스포트라이트팀이 취재에 뛰어들게 된다.


두 가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 데, 하나는 사건을 추적하는 한 기자가 피해자들의 불신에 응하는 태도다. 그토록 오랫동안 진실을 외면해 온 언론에게 피해자들이 불신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기자는 그런 사람들에게 빨리 나에게 사실을 털어놔. 나를 왜 안 믿어하는 식으로 닦달하지 않는다.

 

조심스레 접근해서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여주며 신뢰를 회복해 나간다. 마침내 피해자들은 조금씩 마음을 연다. 처음에는 기사에 절대 내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했던 피해자가 나중에는 그것을 허락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피해자는 진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자신만 고통받을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또 하나는 ‘9.11테러가 미친 파장에 대해서 다루는 장면들이다. 영화 후반에 사람들이 9.11 테러가 터지는 방송을 보며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아 맞아. 저때 9.11이 터졌지. 이제 저 문제로 모두 쓸려가는 거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엄청난 사건에도, 자신들이 파헤치던 문제에서 손을 떼지 않는 기자들을 보여 준다. 9.11 속으로 나머지 덜 중요한비극들이 묻히지 않았다. 뭐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게 아니라 모두가 당사자들에겐 중요했던 것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와 싸우고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느라 정신없는 데 그런 일로 우리가 신경을 분산시켜야 해.’ 이런 식의 태도가 왜 문제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솔직히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공동체에서 다 같이 알면서도 못 본 척하고 덮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과정은 아픈 기억을 건드렸다. ‘이건 아닌데하면서도 못 본 척하고 입을 닫던 기억들. ‘다들 가만있는 데 내가 굳이 나서야 돼?’하던 기억들. 그런 비겁함을 스스로에게 정당화하던 기억들. 고통의 목소리에 귀를 막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뭔가 온당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고통의 목소리를 들어 보려하지 않고, 침묵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종교적 신앙심을 지킨다면서 침묵과 외면을 하는 영화 속 사람들과, 사회주의자로서 신념을 지킨다면서 그렇게 행동하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뒤늦게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들에게, 사건을 덮고 돈을 벌어 온 변호사는 되묻는다. 내가 예전에 이 사실을 알렸을 때는 왜 못 본 척했냐고.

 

그런 불편함이 계속 쌓여가다가 막바지에선 뭔가 마음 속에서 둑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열심히 사건을 파헤치던 스포트라이트팀장이 오래전에 사건을 덮었던 사람중 하나가 바로 자신임을 실토한 것이다.

 

모여있던 동료 기자들 속에서 어색한 침묵이 흐르던 그 순간, 팀장을 다독이며 던진 편집장의 말은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됐다.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불을 켜면 탓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이 보이게 되죠.”

 

우리는 모두 어둠 속을 헤매며 알게 모르게 서로 고통과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힘든 순간은 바로 자신이 신뢰하고 좋아하던 사람들에게서 고통과 상처를 받게 될 때이다. 하지만 지치고 원망스러울 때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불을 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희망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희망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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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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