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로자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 중인 이 글의 필자는, 노동당과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에서도 활동해왔다. 과학이 가지는 실천적 책무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중문화와 계급의식 사이의 동학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최근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국의 록 밴드 퀸과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본 작은 개봉 직후부터 커다란 신드롬을 일으키며 500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이는 남한 사회의 새로운 세대에게 퀸의 음악과 신화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여러모로 문제적이고 구멍이 많은 영화다. 본 작은 영화예술이 갖추어야 할 서사적 · 미학적 정합성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했다. 또한 이를 전기 영화로 보기에는 기본도 갖추지 못했으며, 퀴어 영화로 보기에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도 반동적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스타덤에 오른 프레디 머큐리가 방탕하게 지내다가, 가족을 되찾고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뻔한 서사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 영화가 저지른 실수는 모두 여기에서 기인하고, 그 덕분에 많은 것을 잃었다. 그렇게 흐름을 누덕누덕 기워 맞추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숨 가쁜 러닝 타임 내내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해 설득력 있는 서사를 구성하지 못하고 중구난방 헤매는 것 같다.
아마도 퀸 팬들은 영화가 초기 퀸의 지난한 무명 시절, 그리고 그 시기의 치열한 음악적 고민과 성과가 깡그리 사라져버린 데에서 뜨악했을 것 같다. 그러고 남은 것은 히트 싱글 “Killer Queen”으로 단박에 록 스타가 된 퀸이다. 하지만 퀸은 “Killer Queen”과 이 싱글이 수록된 3집 『Sheer Heart Attack』이 히트하기 전까지 두 장의 정규 앨범에서 상업적 실패를 맛보고, 레이블과의 갈등도 겪으며 긴 무명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풋내기였던 이 시기의 퀸은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거듭하며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오페라틱 사운드를 정립하는데, 프로그레시브와 하드 록의 경계를 넘나들던 이들의 치열한 고민은 『Queen II』라는 전위적 걸작 속에서 충격적인 실험들로 구체화되어 드러나게 된다.
결국, 『A Night at the Opera』에서 전형으로 드러난 퀸의 음악적 스타일은 대기만성의 노력을 통해 완성된 셈인데, 영화 속에서 지난했던 무명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퀸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2집에 대한 얘기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영화 속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오페라 좋지!”라는 이야기를 꺼내더니, 불후의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를 짠! 하고 녹음하는 괴물들만이 등장하니 황당할 수밖에.
더구나, 『보헤미안 랩소디』는 서사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가 기본적인 사실 관계마저 모조리 틀려버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가령 4집을 녹음하기도 전에 무대에서 “Fat Bottomed Girls” (1978년에 발매된 7집 『Jazz』에 수록된 싱글)를 부르지 않나, 프레디가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1980년도에 갑자기 “We Will Rock You”를 녹음하지 않나(“We Will Rock You”는 앞서 언급되었던 7집 『Jazz』보다도 먼저 발매되었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1980년도에 퀸은 『The Game』을 통해 록에서 벗어나 팝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었다.), 퀸의 디스코그래피는 영화 속에서 이런 식으로 어딘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가서는 1980년에 벌리는 홈 파티에 디스코가 아니라 MC 해머의 랩을 배경음악으로 깔아, 80년도라는 시대적 배경이 구현하는 아우라를 완전히 무너트리는 황당한 장면들까지 볼 수 있다.
위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사실 관계 오류는 프레디 머큐리의 에이즈에 대한 묘사들에 있었다. 영화 속 프레디 머큐리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 무대에 서기 직전 에이즈 검사를 받는다. 하지만 비록 프레디가 일찍이 에이즈에 감염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에이즈를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프레디 머큐리는 1987년에 애인 짐 허튼과 함께 검사를 받고 나서야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퀸의 전기 다큐멘터리 『Days of Our Lives』에 따르면, 프레디 머큐리의 에이즈 감염 사실이 멤버들에게 알려진 것은 이 검사로부터도 한참 뒤다. (그는 매니저에게만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리며, 다른 멤버들에게는 말하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들이 라이브 에이드로부터도 훨씬 나중에 벌어진 것인 셈이다. 하지만 영화는 서사를 끌고 가며 프레디의 신화적 아우라를 구축하기 위해, 사실 관계까지 어그러뜨려가며 에이즈를 소재로서 소비한다.
그런데 서사를 충족하기 위한 소재로서 황당하게 소비된 것은 프레디 머큐리의 에이즈 뿐 만이 아니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가장 문제적인 지점은, 소외된 인격으로서의 프레디 머큐리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섹슈얼리티를 부정적 상징으로 차용한 데에 있을 테다. 프레디가 술과 담배에 파묻혀 무너져가는 작업실에, 가죽 옷을 입고 몰려드는 폴과 남자들의 모습은 하나의 비극으로 그려진다. 영화 속의 프레디가 남성들의 육체를 탐닉해갈수록, 그는 기존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 그리고 가족적 관계들과 유리되어 간다. 여기에서 프레디의 섹슈얼리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인간적’ 가치들의 물화를 묘사하기 위한 메타포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흔히 퇴폐적 생활양식의 상징으로 활용되는 빈 위스키 병, 커다란 저택, 그리고 프레디의 방탕적 기질 등과 등치되어 드러나기에 더욱 명확해진다.) 이후, 프레디 머큐리의 이러한 ‘타락’은 퀸을 해체 위기로 몰아넣고 ‘라이브 에이드’ 공연 무대에 서는 것조차 어렵게 만드는 계기로까지 묘사된다. 물론,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사실 퀸이 라이브 에이드 자선 공연에 서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은, 인종분리 정책을 실시하던 남아공에서 공연한 전력 때문이었다. 영화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담지 않으며, 퀸과 영화에 대한 정치적 비난을 이리저리 우회하려 들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섹슈얼리티는 퀸의 정치적 실책을 은폐하려는 수단으로까지 활용된 셈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프레디가 겪었던 디스포리아에 대한 고민은 정작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프레디 머큐리가 스스로의 성적 지향을 자각했을 때, 영국 사회는 이성애를 제외한 여러 섹슈얼리티적 실천을 (언제나 그랬듯이) 터부시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정상성으로의 회귀를 통해 남성-이성애 중심적 사회에서의 안정적 지위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스스로 인정하고 ‘나’로서 살아갈 것인지를 두고 심각한 디스포리아를 겪게 된다. 머큐리가 쓴 불후의 명곡 “Bohemian Rhapsody”는, 그가 기존의 자아를 ‘쏴 죽이고’ 새로운 자아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 즉 내적 갈등과 디스포리아를 극복해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 곡의 작곡 과정을 다루면서도, 그가 “Bohemian Rhapsody”를 쓰면서 겪었던 것들은 하나도 묘사하지 않는다. 여자친구였던 메리 오스틴과의 관계가 프레디의 커밍아웃 이후 어떻게 동지적 관계로 ‘전화’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 역시 부재하다. 영화 상영 중 프레디와 남성 애인의 키스신을 보며 불쾌감을 표시하고 나간 호모포비아 관객들도 있었다는데,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정작 불쾌해야 할 지점은 다자 관계와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실천이 인간 소외를 묘사하는 상징으로 남용되는 데에 있다.
이런 만행들을 저질러가며 강박적으로 구성한 서사는 훌륭하게 흘러가는가?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영화는 방대한 퀸의 일대기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뱉어내는 것조차 벅찬 나머지 무엇 하나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이들이 머릿속에서 서사를 재구성하는 데 쓸 단서들이 너무나 부족하다. 퀸을 모르는 이들이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 흘러가는 대로 “어~” 하다가 혼이 쏙 빠질 것 같다. 결국 영화로서는 도대체 뭐가 남은 건지 모르겠을 정도다. 나는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이 정치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못된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여기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한 번씩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기사 등록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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