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이 글은 크리스 하먼의 ‘신자유주의의 진정한 성격’과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위상’을 읽고 토론한 세미나 내용에 대한 발제와 토론을 정리한 것이다. 토론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을 반영하였지만 주되게는 발제자(이상수)의 생각 위주로 정리되었다는 점을 유의하라. 2차 세미나는 원래 9월 중순에 있었지만, 필자가 여러사정상 뒤늦게 정리해서 제출하게 됐다. 양해를 부탁드린다. 3차 세미나 결과는 이미 보고한 바 있다.]
IST의 대표적인 활동가인 크리스 하먼과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신자유주의하에서 이루어진 변화를 인정하는데 인색한 편이다. 또한 이 글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독립적인 분석을 시도했다기보다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여러 분석들에 대한 반박을 엮어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미나에서는 이와 관련된 몇 가지 논점들이 주로 논의되었다.
신자유주의를 축적체제로 볼 수 있는가?
여러 맑스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가 성장과 이윤율 회복을 낳은 축적체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하비는 착취와 결합된 ‘강탈에 의한 축적’이 과잉축적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금융화’를 강조하는 세네 등은 금융의 헤게모니 강화가 이끌어낸 변화로 특유의 축적체제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축적체제’라는 개념 자체에 문제제기를 하는 캘리니코스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이윤율 위기가 지속되었음을 주요 근거로 ‘축적체제’가 허상임을 주장한다. 이윤율이 회복될 때에도 전후 호황 때에 미치지 못함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전후 호황과 비교하여 60년대 말 이래로 ‘개선의 조짐이 전혀 없는 이윤율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의 이윤율 회복에 대해 모른 체하는 것이다. 60년대 말 이래로 이윤율의 회복과 하락이 거듭되었고 이미 여러 맑스주의적 분석들이 시도되었다면 이에 대한 좀 더 면밀한 평가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지 않았다?
하먼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한 축인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론이 현실에서 무력했음을 강조하며 오히려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어 왔다고까지 주장한다. 노동의 유연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나 자본이 생존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는 점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실천에 괴리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가의 역할 축소라는 개념에는 복지를 담당하는 국가의 역할의 축소, 공공재에 대한 국가 소유와 운영을 민영화로 대체하는 과정에 대한 평가, 국가가 수행해왔던 노동/환경 규제가 약화된 것 등을 포함한 개념이라는 점에서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또한 일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 감축은 허상인가?
하먼은 선진국에서 사회보장 지출이 7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했다는 점, 국민총생산 대비 순 사회적 임금 비중이 더 높아졌다는 점을 근거로 복지 감축의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함께 실업율이 증가하면서 복지수요 - 필요한 사회적 임금은 급증하게 마련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기존의 약속을 뒤집고 복지를 축소하는 노력을 계속해왔고 현실에서 꽤 진척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거의 완전고용 시절의 사회적 임금과 비교하여 국민총생산 대비 사회적 임금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점을 근거로 복지가 늘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복지 비용이 늘었고 복지를 담당하는 국가의 역할이 증가했다고 말하는 것은 복지 감축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의 비춰서도 부적절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강탈에 의한 축적’은 유효한 개념인가?
하비는 현 단계 자본주의의 약탈적 속성 때문에 ‘원시적 축적’이 오늘날에도 체제의 핵심 특성이라고 여긴다. 크리스 하먼은 하비가 제시한 ‘강탈에 의한 축적’은 특별할 것이 없는 자본주의 일반의 특징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약탈은 자본주의 이전에도 계속 일어난 일이고, 오히려 ‘원시적 축적’의 핵심은 노동력(농민)을 생산수단(토지)로부터 분리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합리적 핵심이 있는 주장이긴 하지만, ‘원시적 축적’에서 약탈적 특성을 굳이 분리해내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이런 논리는 마치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도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전쟁의 원인을 제국주의가 아닌 인간의 폭력성 따위와 연결시키는 논리와 비슷해 보인다. ‘원시적 축적’에서의 약탈의 동기가 자본의 축적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 이전시기와 다르다고 보는 것이 더 유용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자본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착취 뿐만 아니라 약탈을 강화하려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기 내내 ‘착취’로 환원되지 않는 약탈행위들이 실제로 강화된 측면이 있다는 점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이윤율 회복에 착취율 증가와 함께 약탈의 강화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유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비는 '강탈에 의한 축적'의 핵심으로 사유화를 지적한다. 물론 이 과정이 착취와 긴밀하게 결합된 과정임을 함께 강조한다.
하먼은 주로 하비가 룩셈부르크의 '과소소비론'의 영향을 받아 국가 소유 경제를 비자본주의 영역으로 본다는 점을 비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어서, 사유화의 진정한 이유를 정부의 재정 위기, 착취율 강화에 대한 기대, 자본의 계급권력 강화, 특정 자본가들의 이해관계, 이데올로기적 효과 등의 결합으로 설명한다.
사유화는 대체로 저렴한 비용으로 민간이 공공부문을 사들이는 것으로 자본파괴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이 과정이 자본간의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의도적인 정책에 의한 것임이 중요하다. 게다가 사유화된 기업이 독과점적인 지위를 활용하여 가격을 높여서 이윤을 늘리는 것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사유화 과정에서 단지 착취율을 높일 뿐만 아니라 '강탈'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자본의 해외 이전 효과는 과장되었는가?
자본의 해외 이전 능력의 강화로 노동의 저항력이 훼손되고 있다는 주장은 좌파에서도 유력한 상식이다. 하비는 '자본의 지리적 유동성이 높아지고 노동력의 지리적 이동이 제약'된 조건이 자본의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며 ‘언제든지 폐기처분될 수 있는 가처분 노동자가 세계적 표준으로 떠오른다’고 말한다.
하먼은 이를 반박하며 자본이 어느 정도의 노동의 안정성을 선호한다는 점과 건물/기계/인프라의 유동성이 적다는 점과 함께 고용의 감소가 개도국에 대한 해외직접투자보다는 내수와 수출의 부진과 관련이 있다는 실증적 근거도 제시한다.
그러나 영국/프랑스/이탈리아 같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운동의 가장 강력한 부문이었던 제조업 노동자가 6분의 1에서 3분의 1까지 줄어든 과정에서 자본의 해외 이전이 진행된 것을 함께 봐야하지 않을까? 자본 폐쇄와 축소 협박이 현실화된 비율이 3%에 지나지 않는다는 하먼의 평가는 사실 3%나 되었다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일 것이다. 쌍용차 투쟁의 패배는 단지 쌍용차 노동자들의 자신감만 갉아먹은 게 아니다. 신자유주의 공세에 위축된 노동운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자본의 해외 이전 효과가 노동계급의 자신감에 끼친 해악을 면밀하게 돌아보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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