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1차 정치혁신 세미나에서 마르셀 리브만(Marcel Liebman)의 <레닌의 혁명적 사회주의> 책의 앞부분을 읽고 발제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정리한 것이다. 당시 발제 내용을 유익하게 들은 사람들이 글로 정리해 볼 것을 권했던 바 있다.
김승한
레닌주의 당 이론의 일반성(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시대를 초월한 레닌주의 당 이론 일반의 원칙)과 특수성(당시의 시대상황을 반영한 레닌주의 당 이론의 현실 적용 방법)은 다음과 같다고 본다.
일반성. 1) 혁명을 성공하려면 당이 필요하다. 2) 당은 전체 노동계급의 대표가 아닌 선진화된 노동계급을 대표한다. 3) 그럼에도 당은 끊임없이 노동계급과 상호작용한다. 4) 당의 운영방법은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하긴 하나 일반적으로 위의 원칙을 가진다.
반면에 특수성은 좀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나 여기서는 발제 범위에 맞추어서 몇 가지만 논의를 해보겠다.
일단 <무엇을 할 것인가?>(이하 ‘무엇을’)는 특수성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1905년 혁명 이전의 제정 러시아의 특수성에서 나온 궁여지책이라고 본다. <무엇을>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당은 적정 규모로 수를 제한하며, 대단히 비밀스러워야 하며, 직업적 혁명가들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트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당 개념이다. 다만, 이는 볼셰비즘의 역사에서 오히려 특수한 상황이었다.
당시 러시아의 상황은 지역적으로 여러 개의 써클이 존재하고, 그러한 써클들이 수시로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부재했다. 따라서 중앙집중적인 당 활동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무엇을>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배타적 강조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당시 현실은 강조와 무관하게 이렇게 운영될 수도 없었다. 이를 일반화시키는 건 레닌주의 당 이론과 현실 모두와 괴리된다.
이 때는 러시아에서 자생적 서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상황이었고, 이들이 하나의 당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계속해서 노동계급과 연관을 맺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국가탄압, 러시아 노동운동의 수준, 이론의 미정립 등으로 인해 연관이 잘 되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에서 노동 서클들이 노동계급과 충분한 관계를 맺지 못했던 것은 앞의 이유들 때문이지 <무엇을>이 미친 레닌주의 이론의 정식화 때문은 아닌 것이다. 못한 것이지 안 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무엇을>은 당시의 상황에서 중앙집중적 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는 의의를 제외하고는, 현실에서 활동가들의 행동에서 엘리트주의적인 의식을 심어 주어 계급과의 접촉을 단절시키는 구실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일반성과 특수성
다만, 그럼에도 초창기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DLP)에서 중앙집중주의를 둘러싼 이견은 존재했다. 대표적인 게 분트 논쟁이었다. 다만,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이론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차이가 분명하지 않았고, 당 운영의 현실은 더 차이가 없었다.
지도부 선출은 호선이 원칙이었고 선거는 예외적 상황이었다. 따라서 사소한 문제로 조직(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이 분리된 것이 이후 정치적 차이를 더 확장시켰다고 본다. 그럼에도 몇 가지 논점은 있다.
초창기 RSDLP에서 레닌은 매우 강력한 중앙위원회를 구성하려고 했다. 당의 모든 지방위원회를 임명할 특권 등. 이는 당시의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할지라도, 일반화시키기에는 지역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이었다. 통신의 미발달, 국가 탄압, 안정적 중앙지도부의 부재 등으로 중앙이 지역의 정치를 지도하고 책임지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실제 볼셰비키 당 건설의 역사는 러시아의 현실을 고려해서 지방과 직종(군대, 노동자 등)의 자율성이 보장된 다채로운 정치운동의 결합이었다는 것이다. 1905년 혁명 이후에는 당의 문호를 적극적으로 개방하면서 당을 개방적으로 운영하려고 했다.
앞에서도 논했듯이 당시 볼셰비키 대의원들 중 노동자들이 별로 없었던 것은 초창기 레닌주의 이론의 영향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었다.
레닌의 장점은 1905년 혁명 이후 벌어진 상황을 인식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한 점이다. 레닌은 “새로운 중핵은 아마 덜 엄격하고 더 자유로우며 더 느슨하게 조직되어야 한다. 중요한 정치문제는 당내에서 일반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레닌은 “명확한 행동의 통일을 방해하지 않는 한, 보편적이고 충분한 비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모순적이게도 “노동자계급의 군대가 전력을 쏟고 있는 싸움이 한참일 때, 대오 내의 비판은 그 어떤 것도 허용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특히나 일반화시킬 수 없다.
토론과 논쟁은 투쟁 가운데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점을 무시한 것이다. 투쟁을 통해서 사람들이 변화하고, 변화한 사람들은 더 창의적인 의견을 낼 수 있다. 러시아 혁명의 역사가 이를 입증한다.
다만, 레닌은 ‘비판의 권리를 정지시킬 권한은 오직 당대회만이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소수파의 권리와 “다양한 경향들 사이의 공개적인 투쟁이 없다면 계급의 당이 아니면, 대중정당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은 소수파가 제시하는 주장의 내용으로 이를 제약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소수파의 권리 보호를 명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당내 민주주의 질서를 깬 것은 전체 혁명운동을 전진시키기 위한 레닌의 창의적인 전술이었다’는 식의 해석은 특히나 현실의 당 운영에서 더욱 위험하게 들린다.
레닌주의와 종파주의
1905년 혁명 이후 운동의 침체기동안 레닌은 종파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이 당시의 레닌은 적절한 후퇴와 당내 좌우파를 상대로 한 영웅적 투쟁을 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리석을 정도의 편협함과 종파주의에 이끌렸다고 마르셀 리브만은 평가하고 있다.
전략에 이어 전술에까지 당의 완전무결한 동질성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당의 순종 기풍이 강화됐다. “당원은 실제 당의 전술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당성’을 강조하면서 “당엔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으로 선을 그었고, 분열된 당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도 정당하다고 여겨지게 했다.
대체로 이런 식의 논쟁은 부당한 딱지 붙이기로 이어지기 쉽다. 그래서, 보그다노프 지지자의 글이 기관지에 실리자 편지를 보내 편집부를 비판하는 등 논쟁에서 과도하고 불필요하게 공격적인 언어를 구사했다. 심지어 보그다노프와의 논쟁에서는 논쟁과 다소 무관한 철학과 관련된 주제로 논쟁을 하여 보그다노프와 그 지지자들을 출당시켰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레닌주의는 끝났는가?’(노동자연대 추천기사 목록에 1년째 가장 윗 순위에 올라와있는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의 민주집중주의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충분히 토론한 후에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일단 다수결로 결정을 하면 모든 당원이 이를 따라야 한다. 이는 우리 생각을 실천에서 검증하고자 한다면 꼭 필요한 것이다.
둘째, 이런 [조직적] 결정을 이행해서 SWP가 투쟁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강력한 정치적 지도부가 당의 실천에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려고 당을 조직한다. 그 지도부는 정기 협의회에서 평가를 받는다.
바로 이런 민주집중주의 모델 덕분에 우리는 힘을 핵심 목표에 집중시킬 수 있었고, 우리가 지원한 여러 공동전선은 그리도 효과적으로 건설될 수 있었다.
그러나 토론과 그 뒤를 이은 결정 ─ 필요하다면 다수결에 의해서라도 ─ 은 사실 정당, 노동조합은 물론이고 심지어 조기축구회나 친구 4명이 모여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토론하고 결정되면 따른다는 형식만 강조하는 것은 마치 1905년 혁명 이후 침체기의 볼세비키에서 벌어진 종파주의를 보는 것 같다.
진정한 민주집중제는 지도부가 끊임없이 토론하고 설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적어도 당내 구성원의 과반 정도가 설득이 안 된다면 더욱 그렇다. ‘과반이 넘었으니 이제는 따르라‘는 방식의 민주집중제는 1917년 민주주의와 토론이 가장 활발했던 그리고 그 힘으로 혁명을 성공시켰던 전성기의 볼셰비키가 아닌 1905년 이후 일시적으로 보여주었던 레닌주의의 종파주의적 일탈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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