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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1차 정치혁신 세미나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4. 9. 4.

전지윤

 

 * 이번에는 1차 세미나였고 822했다. 교재인 마르셀 리브만의 레닌과 당에 대해 간략한 발제를 했다. 이 발제는 매우 유익하고 내용이 좋아서 그대로 정리해서 뉴스레터에 기고하자는 의견이 제안됐다.

이 발제를 바탕으로 문제제기와 토론이 진행됐다. 이번 세미나에서 제기된 쟁점과 토론 내용을 아래에 정리했다.(정리의 편의를 위해서 질의 응답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실제로는 많은 부분 다양한 참가자들의 주장과 토론 속에서 나온 내용들이다. 물론 정리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돼서 정리된 내용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논쟁됐던 내용에서도 양 쪽의 입장을 동등하게 정리했다기 보다 정리자의 입장으로 써있다는 점을 주의하라. 토론 때 충분히 정리되거나 답변되지 못한 점도 정리자의 의견으로 보충했다.)

 

 

* 1905년 혁명 패배 이후 레닌의 종파주의에 대한 마르셀 리브만의 평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패배기 속에 나타난 레닌의 부적절한 행동 - 이견있는 사람을 축출하기, 이견자를 매도하고 비방하기 - 을 레닌주의라고 절대화하고 배우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실제로 그동안 레닌도 보그다노프를 과감하게 축출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마르크스도 바쿠닌 등을 술수까지 쓰면서 축출했다등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다. 레닌과 마르크스도 절대시하는 게 아니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잘못은 계승하지 말아야 한다. 레닌이 정치적 이견을 인정하고 발전적으로 토론하려던 시기와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게 옳다.

빅토르 세르주의 자선전을 보면 트로츠키와 제4인터가 이견을 인정하지 않고 반대자를 축출하는 모습을 묘사하며 안타까워하는 데, 이런 것도 비판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을 토론하고 수용하기보다 축출한 제4인터의 대응도 문제였다고 봐야 한다. 그동안 혁명조직의 전통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성찰과 이론적 정립이 부족했던 것 같다.

 

* 레닌의 전위 정당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봐야 하는가?:

레닌의 전위정당론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드러나는 직업혁명가들로만 구성된 매우 집중적이고 훈련된 일사불란한 전위들의 조직. 그런데 이것은 일반화될 수 있기보다는, 당시 러시아의 짜르 전체정부 하에서 불법으로 활동하는 혁명조직의 불가피한 필요라는 측면을 봐야 한다. 또 이것을 설명하는 레닌의 방식은 엘리트주의적인 오류가 많았다. 레닌은 독일 사민당의 칼 카우츠키를 인용하면서, 노동계급은 스스로 사회주의 의식이 아니라 조합주의 의식밖에 갖지 못하고, 사회주의 의식은 오로지 외부에서 지식인들에 의해서 주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엘리트주의는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둘째, 레닌은 기존의 마르크스와 로자로 이어지던 노동계급을 포괄하고 대표하는 당이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와 구분되며 가장 선진적인 일부이며 독립적인 조직이라는 혁명조직 개념도 발전시켰다.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에 기여한 중요한 통찰이다. 노동계급의 의식은 불균등하기에, 혁명적 원칙을 중심으로 그중에 일부를 독립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일부는 나머지 계급 전체와 일방적인 지도와 피지도 관계를 맺는 게 아니며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해야 하며, 선진 부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투쟁 속에서 각성한 혁명적 원칙으로 조직된 계급의 선진 부위라는 점에서만 전위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 멘셰비키와 볼셰비키가 분리한 것은 옳았는가?:

멘키와 볼키가 분리한 것을 토니 클리프는 분열의 광기라고 평가하면서도 그 분열에는 개혁주의와 혁명가들의 분열이라는 정치적 측면이 있었다고 정당화하고 있다. 따라서 모호하게 들리는 면이 있다. 구체적 상황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정치적 차이가 분명치 않았을 때는 함께 토론하면서 실천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혁명조직으로 단결시키는 것이 옳은 것이고, 이미 정치적 차이가 분명한 상황에서는 독립적 조직화로 나타내는 게 필요하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1903년의 분열은 과도한 면이 있었고, 1912년 이후의 분열은 정당했다고 본다.

 

* 민주주의와 집중주의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민주주의와 집중주의는 어떤 조직에서나 어떤 단계에서나 기본적으로 같이가야하고 둘 다 필요하다. 우리같이 조그만 조직에서도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토론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행동의 통일 - 회비를 낸다거나, 정기모임에 참가한다거나 - 도 필요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조직의 규모나 과제를 구분해서 어떤 단계에서는 민주주의가 필요하고, 어떤 단계에서는 집중주의가 필요하고 식으로 둘을 분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주로 선전과 탐구를 하는 조직 건설의 초기에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토론이 더 중요하고, 어느 정도 규모가 돼서 개입이 이뤄질 때는 집중주의가 좀 더 필요해지는 식의 정도 차이는 있을 수 있다.

 

* 민주집중제에서 토론의 자유는 행동 통일의 순간에는 유보돼야 하는가?:

기본적으로 토론의 자유는 충분히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사 다수결로해서 결정이 났다고 해서 아직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과도 계속해서 토론하고 설득하려고 해야 한다. 그것이 행동의 통일을 가장 강력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물론 민주적 토론의 결과로 나온 결정에 따라서 일단 행동통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점에서 그 행동통일을 직접적으로 부정하고 거부하는 선동은 어느 정도 제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동통일 속에서 이견을 제시하는 것조차 가로막을 수는 없다고 본다. 또 이런 행동통일을 어겼을 경우에도 징계를 우선하기 보다는 정치적 비판과 설득을 우선하는 게 기본이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민주적 토론만이 독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동적인 혁명가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볼셰비키의 역사를 돌아보면, ‘고참 볼셰비키는 대부분 독자적으로 사고할 능력이 부족해서 레닌이 혁신적 입장을 제시하면 보수적으로 저항하다가 따라오는 패턴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단순히 레닌이 위대한 혁명가였다고 평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기존의 당의 입장에 이견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부족하고 일단 당의 지침에 따라야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 혁명조직은 조직의 최고 지도자가 방향을 바꾸는 경우에만 혁신이 이뤄지기 쉽다. 그리고 그 최고 지도자만이 독자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항상 뛰어난 카리스마적 지도자라고 평가되기 쉽다.

사실 토니 클리프의 <레닌> 전기에서도 아쉬운 것이 이 부분이다. 여기서 클리프는 레닌에 대한 성인전은 필요없다고 하면서도, 막상 레닌은 대부분 옳았다는 식으로 평가하고 있다. 오로지 레닌이 틀린 경우는 트로츠키와 생각이 달랐을 때인 데, 결국 트로츠키와 입장이 같아지면서 레닌도 옳게 된다. 이런 식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돌아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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