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이번에는 3차 세미나였다. 교재인 ‘당과 계급’ 등에 대해 간략한 발제를 했다. 발제를 바탕으로 문제제기와 토론이 진행됐다. 이번 세미나에서 제기된 쟁점과 토론 내용을 아래에 정리했다.(정리의 편의를 위해서 질의 응답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실제로는 많은 부분 다양한 참가자들의 주장과 토론 속에서 나온 내용들이다. 물론 정리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돼서 정리된 내용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논쟁됐던 내용에서도 양 쪽의 입장을 동등하게 정리했다기 보다 정리자의 입장으로 써있다는 점을 주의하라. 토론 때 충분히 정리되거나 답변되지 못한 점도 정리자의 의견으로 보충했다.)
* 로자와 레닌의 당 개념의 차이가 무엇이고 왜 로자보다는 레닌의 당 개념이 더 의미있는 것인가?:
먼저 당시 독일은 강력한 사민당이 존재하는 반면, 기층 노동자들의 파업 등 자발적 행동은 부족했다. 반대로 러시아는 정치파업 등 자발적 노동자 행동은 활발한 반면, 혁명조직은 아마추어적이고 파편적으로 존재했다. 특정 상황에서 부족한 점을 강조하는 것은 이해할만 하다. 따라서 로자가 자발적 투쟁을 강조한 것은 의미있다.
나아가 로자가 자발성만 강조하고 조직과 지도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도 아니다. 로자는 분명 의식적 지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로자는 자발성, 레닌은 의식성이라는 식으로 나누는 것은 일면적이다. 다만 로자는 조직과 지도의 특정 형태가 아니라 모든 조직과 지도가 관료화될 수 있다고 비관했다. 또 자발적 투쟁이 그것을 극복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것이 로자의 숙명론이다. 반면 레닌은 조직과 지도의 특정 형태가 문제라고 봤고, 따라서 계급을 대변, 대표하는 당이 아니라 계급의 일부로서 당을 건설하려 했다. 즉, 레닌도 노동계급의 자발적 의식 성장을 봤지만, 그것이 불균등하다는 점을 봤고, 따라서 그 중 일부를 독립적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봤다. 불균등한 계급의식 속에서 계급의 일부로서 당이라는 점을 본 것이 레닌의 장점이다.
* 계급이 당보다 왼쪽인 상황이 계속되고, 러시아 혁명 때 레닌과 같이 고참 당원들의 보수성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때문에 당은 일방적으로 지도를 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민주집중제가 필요한 것이다. 민주집중제가 중요한 것은 당이 계급의 경험에서 배우기 위해서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분위기 속에서만 당은 계급의 경험을 듣고 배울 수 있다. 또 당내에서 과연 지금의 당의 노선이 옳은지 돌아보기 위해서도 민주적 토론, 비판과 이견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계급의 경험에서 배우고, 토론 속에서 기존 노선을 수정하고, 실천 속에서 그것을 검증하며 계속 혁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잘한 것을 단지 레닌의 개인적 개성에서 찾는 것은 일면적이다. 반면 고참 볼세비키들은 다 자질이 부족했다고 보는 것도. 바로 그러한 구조와 전통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한편, 혁명적 상황에서 계속 당이 배우지 못하고 뒤처지며 투쟁의 걸림돌이 된다면 새로운 당을 건설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것이 레닌이 2인터내셔널을 부정하고 3인터내셔널을 건설한 이유고, 트로츠키가 3인터내셔널을 부정하고 4인터내셔널을 건설한 맥락이다. 특정 당은 어떤 순간에도 지키고 고수해야할 목적이 아니니까.
* 당, 소비에트의 차이를 어떻게 봐야 하며 소비에트는 언제나 계급 전체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가?:
당은 계급 일부의 조직이지만, 소비에트는 계급 전체를 포괄하는 대중조직이다. 체제 내의 일상적 대중조직인 노동조합과 다른 점은 소비에트가 혁명적 상황에서 등장하며 따라서 혁명 속에서 변화한 계급의 의식과 요구를 대변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소비에트는 항상 옳다거나, 언제나 진정한 계급의식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 러시아 혁명 초기에도 소비에트의 다수는 개혁주의 정당을 지지했고, 독일 혁명 때도 소비에트는 사민당이 좌지우지했다. 따라서 소비에트 내에서 계급의 다양한 의식과 요구를 대변하는 당과 조직들이 활동하면서 계급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토론, 실천, 검증, 변화가 부단히 이뤄져야 한다. 볼셰비키도 원래는 소비에트 내에서 다수당이 경쟁하고 지지를 획득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추구했었다.
* 러시아 혁명 때와 달리 오늘날 계급내 격차와 불균등성은 더욱 심해졌고, 수많은 조직들이 분별정립하고 있지만 어느 조직도 계급에 뿌리내리고 당으로 성장하지는 못하고 있다. 과연 오늘 날 변혁정당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까?:
노동계급 내부의 객관적 격차와 의식적 불균등성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20세기 초에도 숙련금속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이라 불렸지만, 막상 혁명과정에서는 그들도 중요한 주체가 됐다. 물론 이런 격차와 불균등성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할지는 중요한 문제다.
한편, 20세기 초와 다른 객관적 조건을 보자. 그 때는 1,2차 세계대전과 30년대 대공황이 이어지는 시기였다. 오늘날 상황은 아직 그 정도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다. 주관적인 측면을 보면 오늘날 자본주의는 그때보다 시민사회와 정당, 언론 등 여러 가지 완충장치들이 훨씬 더 잘 발달돼 있다.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소련, 동유럽 몰락 이후 사회주의 사상과 조직이 어려움을 겪어 왔다.
또 20세기 초 러시아나 독일에서도 사민당은 엄청난 규모와 기반을 갖고 있었지만 진정한 혁명조직이 아니었고 오히려 혁명의 걸림돌이었다. 혁명가들은 혁명 과정에서 큰 규모로 성장하고 기반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이지 처음부터 영향력이 큰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혁명조직들이 의미있는 규모로 계급에 뿌리내리고 영향력을 넓히는 데 실패해 온 것은 사실이며, 이것은 우리가 고민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 하먼의 이번 논문 등을 다시 보면서 많은 공감이 갔지만 몇 가지 문제의식도 생겼다. 먼저 로자의 약점을 지적한 것은 옳다. 따라서 로자의 당 이론이 레닌의 당 이론보다 더 낫고 오늘날 더 유효하다는 식의 주장은 틀렸다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로자가 지적한 당의 관료화와 보수적 관성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과 투쟁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측면이 아쉽다. 하먼은 특정한 정치와 형태의 조직(스탈린주의나 사민주의)이 이런 문제를 낳는다고 평가하는데, 아무리 혁명적 정치를 가진 조직도 이런 문제를 자동으로 피할 수는 없다는 점을 봐야 한다. 로자의 비관적 숙명론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만, 그렇다고 진정한 혁명조직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낙관론도 경계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이 부족하다보니, 당의 규율을 수용하는 인자들의 응집력있는 조직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데, 진정한 규율과 응집력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토론 속에서 가능한 정치적 동의과 확신 속에서 나온다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혁명가들과 변혁조직은 우리가 계급의 ‘일부’라는 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당이 계급의 가장 선진적 일부라는 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다. 계급의 최상의 경험에서 제대로 배우고 토론 속에서 잘 일반화할 때 ‘선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선진과 후진은 결코 고정돼 있지 않고 계속 변화하는 것이다. 아무리 변혁조직이라도 특정 국면과 쟁점에서는 완전히 후진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다.(자신들의 이론과도 어긋나게) 이런 점에서 ‘선진’, ‘위로부터 당 건설’같은 용어도 그 합리적 핵심은 유지하면서도 더 적절한 개념과 용어로 대체할 수 없는지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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