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이번에는 8회차 세미나였고 8월 8일(금)에 했다. 이번에는 이 세미나의 마지막이었기에, 그동안 진행된 세미나에서 토론한 내용과 발전된 고민을 바탕으로 내가 가설적인 ‘노동운동 위기와 대안’에 대한 발제를 했다.
발제의 내용을 최대한 간략히 소개하면 ‘87년 이후 20여년간의 변화와 노동운동 위기의 배경을 분석하면서, 기존의 대안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가설적 대안으로서 계급연대적 노동운동론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계급연대적 노동운동론은 ‘현실을 직시하며 어떻게 노동운동의 급진성, 정치성, 민주성, 전투성, 연대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내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번 세미나를 총마무리하면서 기존의 문제의식과 탐구 결과를 종합해서 쓸 논문에 담을 예정이다.
이 발제를 바탕으로 문제제기와 토론이 진행됐다. 이번 세미나에서 제기된 쟁점과 토론 내용을 아래에 정리했다.(정리의 편의를 위해서 질의 응답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실제로는 많은 부분 다양한 참가자들의 주장과 토론 속에서 나온 내용들이다. 물론 정리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돼서 정리된 내용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논쟁됐던 내용에서도 양 쪽의 입장을 동등하게 정리했다기 보다 정리자의 입장으로 써있다는 점을 주의하라. 토론 때 충분히 정리되거나 답변되지 못한 점도 정리자의 의견으로 보충했다.)
* 노동운동의 정당성의 위기는 여전하지만 대표성의 위기는 비정규직 투쟁의 활발한 전개 속에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물론 2000년대 중반에 노동운동의 대표성 위기가 거론되기 시작한 이후에, 수많은 비정규직 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그런 투쟁에서 민주노총이 연대를 한 것이 사실이다. 또 투쟁하는 비정규직들은 대부분 민주노총 소속이거나 민주노총으로 조직되곤 했다.
그러나 이처럼 노조로 조직돼서 투쟁하는 비정규직의 비율은 여전히 매우 낮다.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은 지난 10년간 늘어나기 보다는 줄어들었다.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이랜드 파업 등에서 정규직 노조나 민주노총 차원의 연대가 부족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특히 문제를 드러낸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포괄하거나 제대로 연대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조건에 큰 변화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 가설적인 대안으로 제기한 방향의 내용을 보면 굳이 ‘계급연대 노동운동론’이라는 차별화된 명칭을 쓰기보다는 기존의 ‘사회연대 노동운동론’을 같이 쓰면 되지 않을까?:
경제적 쟁점만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의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정규직 비정규직의 연대와 사회적 연대 건설을 강조하는 내용 등은 분명히 ‘사회연대 노동운동론’과 비슷하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먼저 사회연대 노동운동론은 정규직의 투쟁 자제와 양보를 뜻하는 ‘사회연대전략’의 흔적을 담고 있는 용어라는 점이다.
또 ‘사회연대 노동운동론’은 레닌주의 조직의 필요성과 구실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이론적 배경으로 담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용어에서도 차별을 둔 것이다.
한편 영국에서 SWP는 기존에 ‘정치적 노조운동론’을 주장해 왔고, 카운터파이어는 ‘사회적 노조운동론’을 주장하고 있고, RS21은 ‘지역공동체적 노조주의’를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 87년과 직접 비교하면서 그때의 상태로 돌아가자는 식으로 대안을 내놓은 게 옳은가?:
87년 당시의 노동운동의 고양이 특정한 조건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는 ‘87년과 직접 비교해서 노동운동의 상태를 평가하거나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태도를 취해 왔다. 또 ‘87년 전노협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일부 좌파들의 주장에 대해서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87년 당시 민주노조 운동이 보인 건강함과 가능성을 그리워하고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들을 충분히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변화된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최대한 민주노조 운동이 87년 때와 같은 진정성과 가능성을 회복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향과 노선들을 제시하자는 문제의식인 것이다.
*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성과가 결국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인 데 그것을 부정하는 입장인 것인가?:
객관적 사실로서 그런 효과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의 입장은 그런 경제적 효과만을 강조하면서 지금의 구체적 맥락과 정치적 효과를 간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투쟁이 정당하다는 것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 좌파는 ‘노동귀족론’에 타협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비판해 왔다.
하지만 객관적 효과만을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예컨대 로자 룩셈부르크는 ‘러시아 자본가와 폴란드 자본가가 공동의 이해관계’라는 객관적 사실만을 중시한 나머지, 폴란드 민족해방 운동과 요구의 정치적 중요성을 보지 않았다. 이것을 레닌은 ‘경제주의’라고 비판했다.
우리도 객관적 효과만을 볼 것이 아니라, 정규직 노조가 정치적 쟁점이나 비정규직의 투쟁과 요구를 외면한 채, 자신들의 경제적 요구만 앞세울 때 나타날 정치적 효과를 봐야 한다. 그리고 설사 단기적 부문적으로 조금 손해라고 하더라도 장기적 전체적인 계급이익을 위해 연대와 투쟁에 나서는 것의 중요성을 주장해야 한다.
* 정규직의 연대 투쟁으로 현대차비정규직이 승리한다고 해서 과연 전체 운동에 큰 고무적 효과를 남길까? 재능교육과 한진중공업 등에서의 승리도 별로 파장을 낳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가계부채나 주거 문제 등에서 정부의 정책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그런 점 때문에 ‘계급연대적 노동운동론’에서 진보정치의 재건과 정치적 투쟁과 요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2010년 현대차 점거파업 때 만약 정규직의 연대로 비정규직의 투쟁이 승리했다면 그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차 비정규직의 요구와 투쟁은 당시 정세의 핵심 고리였고, 무엇보다 산업전체에 번져있는 전체 불법파견 문제의 진로가 걸린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배계급도 이 문제에 집중했었다.
반면 재능교육은 아직도 그 내부분열과 갈등의 파장이 심각할 정도로 승리보다는 분열의 상징이 돼 있다. 한진중공업은 희망버스를 통해서 복직하기는 했지만, 1년 넘게 무급휴직을 강요받으며 자살이 이어질 정도로 고무적 사례라고 보기 힘들었다.
* 공무원연금 문제에서 기초연금, 국민연금 등과 결합해서 사회적 연대를 하자고 강조하는 국민파를 어떻게 볼 것인가?:
현장에서의 투쟁만을 다소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것보다, 정치적 쟁점에 민감하며 그것을 결합시키려고 하는 국민파의 장점을 봐야 한다. 작업장의 울타리에 갇히는 것보다 분명히 더 나은 입장이다. 반면, 정치적 쟁점을 ‘민족주의, 민중주의 정치’로 대처하는 게 문제이다. 즉 ‘국민과 함께하기 위해서’ 공무원연금 문제에서 어느 정도 양보하고 정부와 사회적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공무원연금 문제에서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도 국민연금, 기초연금 문제를 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악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개악의 일부라는 점을 폭로하며 투쟁과 연대를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 비정규직 투쟁 때마다 정규직 연대를 반복적, 자동적인 대안으로 제시하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봐야지 않는가?:
맞는 말이다. 일용 비정규직으로만 이뤄진 건설노조나, 정규직이 극히 소수인 작업장에서도 기계적으로 정규직 연대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자체로서 상당한 힘을 가진 화물연대 파업 때도 무조건 정규직 연대를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노조들이 세월호 문제 등에 무관심하고 자기 작업장 문제에만 갇혀있다면 그것을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에 대해서 더 나은 처지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이 외에도 몇가지 문제제기가 나왔지만 시간 관계상 더 토론하지 못하고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다.
- 대기업,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임금이 노동생산성을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은 경험적 사실들과 부합하지 않는 것 아닌가?
- 보통 비정규직과 연대가 잘 되지 않는 것의 책임이 대기업 노조관료들에게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너무 일면적인 주장아니었나?
- 민주노총 이갑용 지도부 대 파업을 철회한 것을 보통 좌파 지도부의 한계로서 많이 예를 들어왔는데, 실제 파업 동력이 존재했는지와 산별노조 지도부들의 태도는 어땠는지 등 더 구체적인 분석과 비판이 필요하지 않은가?
-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안정된 숙련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는 주장은 경험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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