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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낡은 옷을 벗어던져라, SWP의 재건을 위하여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4. 8. 17.

닐 데이비슨(Neil Davidson)

번역 : <변혁의 재장전>그룹 강독모임


[이 글에 원래 달려 있었으나 생략되었던 각주들을 현재 되살리는 중이다. 아직 되살리지 못한 각주들이 필요하면 오프라인 글을 참고하라.]


 [번역자 주] 이 글은 201311월 닐 데이비슨이 SWP 당 대회 사전 내부회보(Internal Bulletin) 3호에 기고한 글, “Casting off the soiled shirt for a refoundation of the SWP”을 완역한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SWP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이 사태의 원인과 배경이 무엇인지 꼼꼼히 살피면서 당시 지도부의 입장을 비판하고 있다. 이 글이 한창 SWP 내에서 성추문과 관련한 구체적인 논쟁이 벌어질 때 작성된 것이다 보니, 어떤 점에서는 특정 논점에 대한 서술이 지나치게 세부적이기도 하고 어떤 점에서는 막대기가 상당히 구부러져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의 전체 논지와 분석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줄만하고, 실제 우리 자신의 정치적 경험과도 상당부분 공통점이 있다고 여겨져 이렇게 소개한다.

글에서 언급되는 성추문 논란과 관련한 여러 사실관계는 사실 한국의 독자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향후 우리 모임 차원에서 출판될 “2013SWP의 분열과 국제사회주의 정치의 미래”(가제)에는 이 글을 포함해 당시 논란과 관련한 더 많은 글들이 실릴 것이므로, 추후 그 글들을 함께 참고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리는 정작 우리 자신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는 오래도록 정든’, 더러워진 옷을 벗어던지기를 꺼림칙해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나 때 묻은 옷을 버리고 새로운 옷을 입을 때가 왔다.” 레닌[각주:1]

 

들어가며

 

과연 이 모든 것을 감수해야 했을까? 450명의 동지가 탈당했다. 탈당한 이들 다수는 젊은 동지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우리 학생 당원들 중 80%에 해당한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발언 창구인 <맑시즘(Marxism)> 행사,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는 공동전선인 저항이여 단결하라(Unite the Resistance)”의 협의회 규모는 예년의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는 성차별주의자라는 오명을 얻었다. 예전에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선전할 수 있었던 토론회들은 우리에게 문을 닫아버렸다. 예전에 우리와 함께 일했던 좌파 인사들은 더 이상 같이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조직 내 많은 지부(支部)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 몇몇 대도시 지회의 모임 참석률은 한 자리 수로 떨어져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억울한 희생양으로 몰려 심각하게 고통 받았다던 M[각주:2]은 결국 분쟁해결위원회(Disputes Committee)의 소환 조사를 피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칠 수 있었다. 그를 옹호하던 이들이 전부터 우리에게 그토록 호언장담했던, 우리 당 분쟁해결위원회의 사건 처리 절차는 실로 완전무결했던 것이다!

우리는 성추문에 대해 문제제기한 동지들에 대한 온갖 비방이 이뤄진 뒤에야, 혐의에 대한 부인과 온갖 시간끌기와 방해공작이 벌어진 뒤에야 비로소 일련의 사태를 조사한 두 개의 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

분쟁해결위원회를 감사한 조사위원회는 그 중 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결론 내렸다. 분쟁해결위원회는 첫 번째 성폭력 사건 기소에 대해 M의 유무죄를 판결할 수 없다고 했는데, 분쟁해결위원회는 그 자신의 존재 의의에 부합하게그 자신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 이 얘기가 의미하는 바는, 곧 지난 번 분쟁해결위원회의 성폭력 사건 처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중앙위원회(Central Committee)는 이런 주장을 채택하기를 거부했지만, 대의원 협의회 결의안은 우리의 분쟁 해결 절차가 충분하지 않았징계 절차에서 결점을 드러냈다고 언급했다.

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분쟁해결위원회는 M에게 두 번째 성폭력 사건 기소 건과 관련해 [피고인 자신이] ‘변론해야 할 사건이 있다고만 결론 내렸다. 중앙위원회가 유일하게 동의를 보낸 이 평결 내용은, 따지고 보면 사실상 M 사건에 대한 분쟁위원회의 기소 중지[각주:3]나 다름없었다. 이런 식으로 사건을 처리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다른 여러 비슷한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도, 예컨대 노조 내의 징계 절차부터 전쟁 범죄에 대한 사법 재판에 이르기까지, 피의자들이 유죄 선고를 피하려 진술을 하지 않을 때 이를 막을 방도가 없을 것이다. 피의자들이 종적을 감추거나 수사망에서 벗어났을 때, 일반적으로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증거들을 바탕으로 사건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보자면, 우리에게는 상당히 많은 양의 증거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증거들조차 억지스럽게 반려되곤 했고, 그 결과로 분쟁해결위원회는 피의자가 답변해야할 모종의 사건이 있다는 식으로만 말할 수 있었다. 명확한 증거가 이 사건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보고서의 결론들에 비춰 보자면, 우리가 대체 왜 지난 9개월 동안의 난리를 겪어야만 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이 보고서의 결론들이 반대파들[각주:4]이 문제를 제기했던 올 해 초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그 후 이어진 당에 대한 심대한 타격들을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논란을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기 때문에, 중앙위원회는 계속해서 은근슬쩍 입장을 바꾸거나 마지못해 부분적인 양보를 하는 식으로 내몰려야 했다. [중앙위원회 입장에서] 특별 대의원 협의회는 열리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열렸다. 분쟁해결위원회 활동 감사위원회는 생겨서는 안 됐지만, 결국 만들어졌다. 분쟁해결위원회 활동 감사위원회는 성폭력 사건 관련 정보가 당 밖으로 유출된 것과 비밀유지가 안 된 것에 대한 문제만을 다뤄야 했다. 그러나 이 기구는 모든 분쟁위원회 활동을 감사했다. 두 번째 성폭력 사건이란 존재해서는 안 됐다. 그러나 결국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네 명의 동지는 집행유예가 될 것이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각주:5] 당이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사과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일종의 유감 표시 정도는 해야하게 되었다. 중앙위원회가 정말 마지못해, 부분적으로, 그리고 정말 싫은 기색을 하며 양보를 반복할 때마다 당 내에서 그들의 신용은 떨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한 편으로는 취약해보였고, 다른 한 편으로는 우유부단해보였다. 그리고 당 전체는 더 넓은 외부 세계의 사람들에게 신용을 잃게 되었다. 이 거대한 재앙적 사태에 대해 우리 지도부가 책임 있는 해명을 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그들의 임기 하에 벌어졌고, 그들에게 거의 모든 책임이 있는 바로 그 재앙에 대해서 말이다.

이 재앙적 사건이 가져온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부 동지들은 떠나간 당원들에 대해 신경 쓸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따지고보면 SWP를 나간 당원들은 단 한 번도 진실로 우리의 일부인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에드워드 톰슨(Edward Thompson)이 예전 세대의 교조주의자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듯이 말이다. “문 앞에 서 있는 대부분의 안내원들은 건물 밖으로 나간 사람들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나간 사람들이 진지하게 안에 들어오려 한 적이 없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다.”[각주:6]

우리의 경우로 대입해보자면, 탈당은 곧 당신이 사실상 개혁주의자, 자율주의자, 여성주의자, 혹은 가장 끔찍한 용어로는 운동주의자의 시각을 갖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운동주의자’, 즉 반대파의 존재를 설명해내기 위해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찰리 킴버가 만들어낸 허구의 범주 말이다.

떠나간 이들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는 동지들은, 우리 당의 손상된 평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취한다. 우리 당 바깥의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만일 그들이 정치적으로 활동적이라면, 그리고 만일 앞 문단에 열거한 각종 범주들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은 당연히도 우리가 간단히 무시해도 될 만한 종파주의자(분파주의자)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한 손으로는 우리의 한껏 부풀린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내리치면서(아마 그 주먹은 우리가 체급 이상의 펀치를 날릴 수 있다고 자랑해 온 그 주먹일 것이다) 세계에 우리 존재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올리고는 세계가 어떻게 우리의 행동에 이렇게까지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느냐고 공포에 떨고 있다. 세상이 우리의 여성해방 투쟁에 대한 입장과 우리의 실천이 모순되어 보인다고 말할 때, 우리는 특히 그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SWP는 좌파 진영 내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될 만큼 중요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사실 그다지 중요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인가? 이런 진술은 말이 안 된다. 둘 중에 어느 쪽이 맞는 말인지 선택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우리가 중요한 위상을 가진 좌파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그 위상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여러 동지들이 작업장과 지역 사회, 캠페인에서 수행한 중요한 일상 업무들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생각해보더라도, SWP는 최소한 두 번의 중요한 역사적 성취를 남겼다. 그것은 반 나치 동맹(Anti-Nazi League)과 반전 연합(Stop the War Coalition)이다. 이들은 단지 어떤 캠페인이나 공동전선 조직이 아니었다. 바로 영국 사회의 일부 측면들을 진보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한 사회운동-그렇다, 운동이다-이었으며, 특히 인종주의 문제에서 크나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 활동들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여전히 어떤 일들을 해나갈 수 있는지의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성과들이 당재건파(the Rebuilding the Party faction) 동지들이 아직 당원들로 남아있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이 그런 기억들만으로 지탱되지는 못할 것이다.

중앙위원회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실수가 초래한 결과들 중 가장 힘 빠지게 만드는 것은 바로 당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수적으로 큰, 우리 당 주변에 미친 영향이다. (다수가 우리 옛 당원들인) 주변 사람들은 우리 정치나 조직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우리 당을 전위 혹은 세계적 사건들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틀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당이 지난해[2012]에 당 내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자, 주변 사람들 다수는 이제까지 그들이 당에 보내온 신뢰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 사건에 대한] 재평가를 넘어서 우리 당의 과거 실천의 여러 측면들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들 속에서라면, 우리는 점점 더 당원이라서가 아니라, 당원임에도 불구하고 활동가들이 개인적 존경심을 얻어냄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는 처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완충 효과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당의 간부들(cadres) 중에서 점점 더 405060대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산업 부문 조직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공공부문 화이트칼라 노동조합들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1015년 동안 현재의 지도적 활동가 층은 은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사실 내 입장에서는 우리라고 표현해야 한다. 나도 그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을 대체할 사람들이 지금의 조직력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비율로 노동운동 속에서 재생산되고 있지가 않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과거 대학생들에게 제공되어온 NHS나 지역정부, 공공 부문, 교육부문의 안정된 전일제 일자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일자리 숫자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이제 훨씬 미치지 못한다.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다른 이유도 있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대졸자들의 구직처가 되고 있는 사적 부문의 단순 서비스직을 조직하는 일에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물론 이것만이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각주:7] 당의 학생 회원들은 변덕스럽기로 악명 높다. 탈당한 젊은이들은 새로운 그룹이나 레브삭스(RevSocs)를 만들었고, 현실에서 벌어진 여러 캠페인들에 연루하면서, SWP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끌기 위한 구심을 형성하거나, 적어도 우리 당 근처에는 가지도 말라는 메시지를 퍼트리고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어려움들 중 다수가 깊고 오랜 뿌리들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한 번 혹은 심지어 여러 번의 협의회를 연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이라도 하려면, 먼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분쟁해결위원회 사건의 상처부터 치유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잘못되어왔는지 진실이 공개되어야 한다. ‘실수라는 말로 얼버무리면서 애매한 꼼수를 부릴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났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세세하게 밝혀야 한다.

우리 당의 영향력이 큰 종파 수준으로 약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의 이전 수준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나아가 그 이상의 영향력을 얻어나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일은 바로 당 완전히 새출발하는 것이다. 근본적 수준에서 SWP를 재건해야 한다. 동지들, 이 일은 정말 그럴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비밀 영구 분파들


중앙위원회는 예상대로 애초 분쟁해결위원회 보고서의 의미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그들이 분파주의라고 부르는 것이야말로 이번 위기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렇게 고립된 상태에서라면 중앙위원회는 계급을 주변에 두지 못함은 물론이고 정치 분파들조차 거느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협의회 자료집 1>에서 지나가는 말로 분파들이라는 복수형 표현이 언급된 것조차 중앙위원회가 반가워해야할 일이다. 비록 이런 상황 인식이 분파들의 성격을 두고 어리둥절해하던 동지들에게 공유되지는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협의회 자료집 2>에서 분파에 대한 표현은 단수로 돌아온다. 이에 대한 언급을 인용하자면, ‘지난 1년 동안 연달아 열린 협의회, 당 위원회, 전국 위원회 기간 동안 당규를 위반하며 한 분파가 형성되고 운영되었다. 그들은 독자적인 내부 조직 체계, 웹사이트, 이메일 목록, 은행 계좌를 갖추고 있었다.’

그들에 따르면, 당을 현재 위협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당 재건파의 존재와 그들이 제기하는 두 성폭력 피해호소 여성에 대한 사과 요구다. 그 두 사람에게 진작 사과했어야 할 일을 벌인 당사자가 아니라 말이다.

정확히 사실을 살펴보자면, 이제까지 총 4개의 반대파와 한 번의 의견 발표 기회가 있었다. 분파는 201010월 열린 협의회 준비기간에 형성되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 회원 수, 그리고 목표들을 완벽하게 공개해왔다.

현재 거의 500명의 회원이 탈퇴했고, 반대파의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탈당을 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들 분파의 숫자는 변화해왔다. , 만약 분파의 요구들 중 일부가 유사했던 것은 지난 12개월 동안 내내 해결되지 않은 사건의 근본적인 쟁점들이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든, 아무도 당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지들은 그것이 우리 당의 역사상 가장 엄청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6개월 동안 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면 안 되었다. 어떤 사건들이 계속해서 밝혀지고, 당원들이 대거 탈당하는데, 우리는 공인된 토론 기간이 시작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이러한 관료적 형식주의에 굴복하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당에 대한 책임감을 완전히 져버리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사실, 분파의 존재가 없었다면, 그리고 중앙위원회의 입장에 대한 우리의 비판이 없었다면 당의 출혈은 현재 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당 재건파는 이제까지 공개적으로 활동해왔다. 분파의 목표에 대한 성명을 냈고 회원 명부를 제공했다. 우리의 행동을 M을 방어하기 위해 신고도 하지 않고 결성된 분파의 행동과 비교해 보라. 우리가 그 비신고분파의 인원을 <협의회 자료집 1>에 실린 혁명 정당을 위한 성명에 서명한 사람들로 대강 추정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들은 진정으로 비밀스러운 존재들이다.

1월 협의회 동안에 일어난 한 사건은 이 분파가 움직이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전국위원회 선거에서 투표할 사람들의 명단이 공개될 즈음, M 지지자들이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의 소집 이유를 분파적 동기 외에 다른 것으로 해석하기란 거의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반대파의 구성원들이 이 모임에 참석하려 했을 때, 조직자들은 반대파 회원들이 들어가도록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왜냐면 그것은 분파의 회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눈 가리고 아웅을 계속하다가는, 조셉이라는 이름을 가진 위대한 풍자 문학가의 성이 헬러인지 카프카인지조차도 헷갈릴 지경이다. 비신고분파 내부에 존재하는 최대 이점은 그것을 해산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비신고분파는 그들이 분파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정말 믿는지도 모르겠다. 이 점은 그들은 우리는 다수파다또는 심지어 우리는 당이다라는 식의 선언을 하는 경향이 있음을 떠올려보면 꽤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그들의 성명들에서 보이는 이런 심각한 오만방자한 태도는 그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데 더 나은 틀을 제공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분파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를 않는다. 왜냐면 그들은 스스로를 당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여기며, 당의 지도를 자임했고, 따라서 규칙들을 냉소적으로 무시하도 된다고 (아마도, 역사에 의해) 허가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그들은 다른 누군가 당의 규칙을 어기는 것처럼 보일 때는 이를 맹렬히 비난한다. 사실상, 비신고분파에 속한 당원들은 그들 자신이 당과 당의 조직, 지도적 간부들, 정치적 전통을 모두 소유하고 있고 여긴다. 점점 더 협소한 방식으로 그것들을 정의하면서 말이다.

이 분파는 단지 비밀스럽게 움직일 뿐 아니라, 2012년 열린 협의회 준비기간 전 이후 영구분파처럼 작동되고 있다. 그들은 같은 구성원들에 같은 지도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유지되어 왔다. 그들은 M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모든 반대파들로부터 당을 정화하고자 한다. 그들은 우리가 분파로서 하는 활동과 같은 일들을 계속 해오고 있다. 그들의 이런 움직임은 우리가 원하는 계급 세력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은 고사하고, 명백히 당 건설이 실패로 돌아가게끔 만들고 있다.

수백 명이 넘는 당원들을 잃고 나서도 조직에 남을, 선택받은 사람들로만 이뤄진 당은 당연히 그들의 환상 속 작고 예리한 도끼같은 조직이 될 수 없다. 무딘 주머니칼이나 압정 정도 될 수 있을까. 트로츠키가 왕권신수설에 대해 쓴 표현을 빌자면, ‘그들은 …… 익사할 때, 무지개 꿈을 꾼다.’ 물론 절대주의 시대 지배자들의 존재가 비신고분파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큰 중요성을 갖지만, 그럼에도 눈 감은 채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파괴적 결과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다.

비밀분파, 영구분파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변함없는 강조점이었다. 왜 중앙위원회는 12달의 기간 중 아무 때라도 이런 규약에 대한 노골적 위반 행위를 제지하려 하지 않았나?

중앙위원회가 움직이지 않은 한 가지 이유는 현재 중앙위원회 중 최소 5명의 회원들이 비신고분파 지도부의 일부라는 점일 것이다. 새 중앙위원회 후보자 명부는 그들을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신고분파 구성원을 최소 한명 더 추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앙위원회 다수파는 그들과 함께, 분파 구성에서 정직성과 성실성을 갖춘 우리 분파에게 맞서 위선적이고 모욕적인 엄호사격을 해온 것이다. 분파를 만드는데 있어 어떤 정직성도 성실성도 갖추지 않은 그들에게 오히려 이런 태도를 취해야 했던 것 아닌가? 심지어 이제 그들은 당 밖에도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 강화하려 하고 있다.

중앙위원회 다수파의 입장을 가장 분명하게 대변하는 성명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International Socialism)>의 최근호에 실린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찰리 킴버의 글, ‘SWP 위기의 정치학(The Politics of the SWP Crisis)’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컨대, 그 동지들은 그들 자신의 행동이 어떤 점에서 분파적인지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위기에 대한 어떤 책임도 인정하지 않으며, 910세기 사실주의 소설의 전지적 서술자와 비슷한 태도로 이 사건을 설명한다. 어떤 장면과 등장인물들을 한창 설명하고 난 다음에는 다시 마치 자신들이 객관적 위치에 서서 사건을 보는 것인 양 하는 태도로 돌아간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서술은 믿을 수가 없다. 그들의 설명은 회피, 생략, 왜곡이 가득하며 상당히 편향적이기 때문이다.

중앙위원회 다수파를 지지하고자 하는 동지들은 이것이 당이 다시 단결하는 데 뭐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되겠느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다. 중앙위원회 추천 명단에 6명의 비밀분파 사람들이 포함되고,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만일 이대로 중앙위원회가 선출된다면, 그 비밀 분파 6명은 중앙위원회 내에서 수적으로는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중앙위원회 내 비밀분파의 원조는 바로 존 리즈-린지 저먼-크리스 뱀버리-크리스 나인햄 그룹이었다. 그들은 지도부 안에서 소수파였지만 그러나 20078년 우리를 재앙으로 몰고 갔다.

그들의 활동들은 공개적 이견 없이 다양하게 지속되고 용인되었다. 어떤 경우,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찰리 킴버가 포함된 현 중앙위원회의 일부는 그들에게 공개적인 반대 의견을 표명하지 않은 채 그들과 공모하기도 했다. 하지만 리스펙트(RESPECT)의 실패가 마침내 중앙위원회의 그 피상적인 정치적 단일 통일성을 산산조각 냈다.

중앙위원회 다수파는 비밀분파의 구성원들이 지도력을 계속 갖는 것 외의 다른 경우의 수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이와 달리 비밀분파의 구성원들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주 정확히 알고 있고, 그것이 당에 자멸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라도, 이를 위해 다른 이들을 누르고 올라설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그리고 두 분파가 당의 현재 문제에 대해 동등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M 자신을 제외하면, 3월 이래로 당을 떠난 450명 이상의 동지들 중 대체 몇 명이나 그들의 분파에 속해있는가?

그들 중에 맨체스터처럼 지회위원회에서 떠난 사례가 있는가? 그들의 분파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로, 지회에서 하찮은 존재 취급 받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다른 한편, 반대파에 해당하는 당원들 중 중앙위원회 후보자 명부에 오르거나 중앙위원회에 의해 전국위원회 후보자로 추천된 경우는 얼마나 되는가? 이 질문들을 떠올리다보면 답은 명확해진다.

 

열병 속에서 꾸는 꿈

 

그렇다면, 201210월 이래로 지속적으로 반대파들이 등장한 원인은 무엇인가? 최근의 위기는 우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 섬광과도 같았다. 이 위기의 충격으로 인해 우리는 얼마나 우리 당이 억압에 맞선 분노를 잘 대변하는 데 실패해왔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분노야말로 모든 사회주의 정치의 기초인데도 말이다.

1월 협의회 대의원들에게 제출된 분쟁해결위원회 보고서가 가져다준 충격은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구도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내용이 지회로 전달되었을 때, 그에 대한 당의 반응과 중앙위원회의 사실 부인은-그들은 자신들이 그 문제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았다-협의회 이후의 지난한 분파 투쟁을 낳았다. 그리고 그 후 이어진 후속조치는 바로 분쟁해결위원회 세션에 대한 회의 속기록의 유출을 막는 것이었다.

회의록 누설이 가져올 파장을 상상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엉뚱하게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 중앙위원회 일부의 전술적 오류와 공감능력의 부재라는 실질적인 문제들이 어쩌다 당 외부로 우리의 실수들이 폭로되었는지를 밝혀야 한다는 따위의 문제로 뒤바뀌었다. 이런 행동은 문제의 진정한 책임자 대신 엉뚱한 사람들에게 화풀이 하는 짓에 불과하다.

첫 번째 사건에 대한 분쟁해결위원회 감사보고서를 채택하는 것은 분명 제리 힉스를 지지할지 혹은 렌 맥클러스키를 지지할지 같은 사안과는 다른 문제였다. 다른 문제와 다르게, 이 안건은 어떻게 우리가 전술을 결정하고 실행할지를 다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분쟁해결위원회가(사실상 중앙위원회가) 이 사건에 대해 내린 평결이 적절했는지를 심의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매우 근소한 차이의 표결 결과는 대의원들 내부의 이 문제에 대한 우려가 얼마나 큰지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고, 따라서 이런 목소리에 부응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그저 과반 이상의 원칙을 앞세웠을 뿐이다. 그는 다수결에 따라 [M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이번 분쟁해결위원회 보고서가 통과되었고 그 내용도 승인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제 결과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일이라곤 기껏해야 이 결정이 계급투쟁에 미칠 영향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만약, 광부 파업 중에 표결이 이루어졌고 다수가 파업하지 않기로 결심한다면, 우린 이 표결을 수용해야할까? 아니면 소수라도 투쟁을 조직하면서 다수를 선동할 방법을 모색하자고 논쟁을 벌여야 할까? 만약 그레인지마우스(Grangemouth)에서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을 소수만이 지지한다면, 우린 다수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야만 할까? 10월 혁명의 여파 속에서, 노동계급의 표를 전 인구의 90%에 달하는 소작농의 표보다 더 가치 있게 대우한 볼셰비키의 정책이 오류였던 것일까? 물론 일부 사람들은 이런 사례들이 일관성이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린 지금 계급투쟁의 수행이나 혁명 이후 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 조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렉스는 이런 사례들과의 비교를 통해 그 보고서를 다수결로 통과시키는 것이 적절한지 논증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수결을 그저 정교한 일반적 원칙으로 격상시켜 주장했는데, 이런 방식의 논의는 사실 우리가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가 많지만, 이어서 논의할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지금 중앙위원회는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에서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협의회 자료집> 2권에 실린 글 일부를 보면 중앙위원회는 오히려 이 순간들을 자축하고 있다. 


당 내엔 민주적 결함따위는 없다. 우린 저열한 수준의 논쟁과 토론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굉장한 타협으로 나아갔다. 12월 까지 2013년엔 세 차례의 협의회를 거쳤고, SWP가 내부의 반대자들을 용인하지 않는다거나 논쟁을 막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우리는 이런 정신으로 사전 협의회 토론 기간에 임하면서, 모임을 운영해 나가야 하겠다.

 

사실 진정 민주적인 토론이 급증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반대파들이 다양한 문제들을 제기해온 결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토론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최소한 중앙위원회가 민주적 토론에 자부심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부정직한 일이다. 당 내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중앙위원회의 가식적 태도는 3월의 특별협의회에서 큰 의구심을 낳았다.

당의 민주적 구조에 대한 비판을 애딘버러, 맨체스터, 런던 북부 지회의 한 줌도 안 되는 문제덩어리 당원들이 제기하는 한, 당은 이를 마지못해 용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어쨌든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차피 당 전체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 지지를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수(예컨대 수적으로나 중앙위원회의 포함 여부에서나)의 사람들이 지지를 모으기 시작하자 당은 모든 민주적 절차를 의도적으로 훼손하기 시작했다.

중앙위원회는 3월 특별 협의회에서 자신을 위해 투표해 줄 대의원을 얻기 위해 명백히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이는 어떻게 봐도 옳지 못한 짓이었다. 매년 <협의회 자료집 1> 서문에서 봐왔듯이, 대의원들은 협의회에 누군가의 입장을 대리하기 위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슨 지회나 지역에 속해 있든 사전 협의회 기간 동안 이뤄지는 토론들을 경청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입장을 정해야 한다. 그러나 중앙위원회는 분명히 이번에 그런 원칙에서 벗어나 움직이려 했다. [그들이 조직한] 대의원 다수가 협의회에서 어떤 논쟁이 오가든, 중앙위원회를 위해 투표하는 것으로 자신의 입장을 이미 정해버린 상태였다.

요컨대, 최고 결정기구인 협의회는 완전히 무용하고 일관성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모임에서 대의원을 선출하는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비민주적인 일인지 이해하기 위해 가상의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다.

영국에 먹스버로우라는 마을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훌륭한 사회주의 문학 작품 중 하나에 나오는 마을이다. SWP 먹스버로우 지회엔 명목상 80명의 당원이 있는데, 이들 중 20명만이 모임에 참석했고, 8명의 대의원을 선출했다. 이 지회는 중앙위원회를 지지하는 쪽(11)당 사수’(IDOOP) 분파를 지지하는 쪽(9)으로 나뉘었다. 거의 균등하게 분리된 지회에서, 가장 명확한 해결책은 대의원을 적절히 섞어서 선출하는 것이다. 예컨대 중앙위원회 지지파 5명과 IDOOP 3명으로 하는 것이다. 근소한 차이기는 하지만, 중앙위원회 지지파가 다수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중앙위원회 다수파는 그들 편에 있는 후보만 지지했고, 그 결과 먹스버로우 대의원은 주장을 위임한 중앙위원회 지지파로만 구성되었고 지회의 의견 중 중요한 부분은 아예 묻혀버렸다.

전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퍼즐 조각을 더 더해보면 된다. 협의회 이후 5명의 IDOOP 동지들이 탈당했다. 그동안 모임에 잘 나가지 않던 10명의 동지들 또한 지난 몇 십년동안 당과의 유대감이 해를 거듭하면서 점점 약해져 오던 판국에, 이런 일이 벌어지자 아예 당을 완전히 떠나기로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 가상의 예는 전적으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의 모습이다.

중앙위원회는 일련의 사태가 까다로운 문제긴 하지만, 당 위기의 궁극적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썼다. 그 말에 적어도 우리는 이 점에서 동의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위기는 단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 문제는 이대로 가다가는 당을 일개 종파로 전락시킬 것이 분명한 우리 당 고유의 구조와 문화에서 출현한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당 내부 구조에 대해 오래 전부터 비판을 해왔던 사람들조차, 이전에는 분파를 결성하기를 꺼려했다.

현재 중앙위원회에 반대하는 흐름이 존재하는 것, 또 수백 명의 반대파들이 등장해 사태가 여기까지 흘러온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분쟁해결위원회 사건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 현상이 우리 조직의 깊고 오랜 병폐를 드러낸다고 여긴다.

세 가지 누적된 장기적 문제가 발전하면서, 당 쇠퇴의 악순환이 언젠가는 끝날 수 있으리라 믿음이 점점 더 무망한 것이 되고 있다. 내부회보에 글을 기고하는 일이나 대의원 대회에 결의문을 제출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 문제들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째, 당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정치를 발전시키는데 실패했다. 이런 이해를 발전시켜야만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변화, 무엇보다도 구조, 조직, 노동계급의 의식상에서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 둘째, 정치를 발전시키는 과제를 실패한 결과 우리는 오랫동안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당은 지속적으로 상대적 부진에 빠져있었고 결국 대중 속에서 영향력이 쇠퇴하는 결과로 나아가고 있다. 셋째, 이런 문제를 둘러싸고 중앙위원회 내부에서 정기적으로 분파들이 끊이지 않고 출현한다. 이 분파들은 현재 공개되거나 감춰져 있는데, 대체로 감춰져 있다. 이런 현상은 끝날 조짐이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이 문제들을 역순으로 논해보려고 한다.

 

(1) 지도부의 분열 : 지도부 내에서 뭔가 위험한 조짐이 있다는 사실은 2008년 리스펙트 분열 때 처음으로 감지되었다. 그 사실을 모르던 대부분의 당원들에게 이 사실이 분명해졌을 때, 이미 중앙위원회는 상당한 시간 동안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이 분열의 결과, 리즈(Rees)와 저먼(German), 나인햄(Neinham)이 중앙위원회 선거에서 2009년 탈락했고 이 세 사람은 2010년에 그들의 지지자들을 데리고 카운터파이어(Counterfire)를 결성하면서 분열해 나갔다. 이 사건의 한중간 시점인 2009년에 민주주의 위원회(The Democracy Commission) 보고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민주주의 위원회는 SWP 내에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문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한다. 이런 태도는 정치적 차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논쟁을 더 고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민주적 문화의 발전이 특별히 더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중앙위원회 내의 견해의 불일치를 해결해나가기 위함이다. 최근 얼마동안 중앙위원회 내의 모든 정치적 차이점들에 대해 보다 넓은 범위의 당원들에게 숨기려하는 성향과 실제 노력들이 있어왔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소수의 지인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 결과, 결국 분열의 순간이 오기 직전까지 중앙위원회는 마치 대개 큰 틀에서 단결되어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비춰져왔다.

 

그러나 그 이후로 사실상 바뀐 것이 있는가? 확실히 1년 동안은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러나 얼마안가 M 사건에 대한 첫 번째 문제제기가 2011년 협의회에서 드러나기 시작했고, 다른 더 큰 분열도 발생했다. 중앙위원회의 또 다른 멤버인 뱀버리(Bambery)가 글래스고의 학생들 다수를 이끌고 ISG( International Socialist Group)를 형성하면서 당을 떠났다. 뒤이어, 2012<맑시즘> 쯤에는 또다른 중앙위원인 메이어(Mayer)가 사임했고 1월 협의회가 끝난 뒤에는 카운터파이어로 당적을 옮겼음을 알려왔다.

이번 협의회 직전에도 중앙위원회 내부에 여전히 분열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4명의 중앙위원들이 분쟁해결위원회의 M 사건 관련 보고서에 대해 이견을 가지고 있었다. (마크 버그펠드, 조셉 추나라, 한나 디, 레이몬드 모렐 등) 그럼에도 사전 협의회 토론 기간 동안 이들 동지들이 당의 지도부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결국 협의회가 시작하기 전날, 두 중앙위원으로 구성된 이견 그룹(한나와 레이몬드)은 운영위원회에 포함되지 않을 의사를 밝혔고 새로운 두 명의 동지가 이 들을 대체했다. 그리고 이어진 협의회 기간 동안 위 4명의 동지 중 한 명(마크 버그펠드)가 추가로 사임했다.

위에서 언급한 일련의 사건들은 그 속사정이 어떤 것도 평당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이 그들 사이의 이견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중앙위원회 내부에서 그 이견들이 완전히 드러나고 한참이 지날 때까지도 이 사실들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양상이 이번 중앙위원회 내부의 분열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로 또 반복된 것이다. 내가 썼듯이, 현 중앙위원회의 분열 사실은 전체 당원 모임에서는 부인됐었다. 그리고 이런 잡아떼기는 여러 핑계들을 더 이상 내세울 수 없게 만들 새로운 위기가 찾아올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상황은 그런 식으로 쭉 흘러가고 있다.

나는 중앙위원회를 집단명부 작성을 통해 선출하는 현재의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뒤에서 다시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는 우리식 민주집중제의 작동에 필요한 어떤 장치-그 자체로 어떤 개선이나 정비도 필요치 않을 정도로 완벽하다고들 얘기하는-가 그동안의 사태 전개를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중앙위원회 내에서 최소한 3번의 큰 분열이 있었고, 그 중 두 번은 실제의 조직적 분열 사태로까지 상황이 발전했었다. 만일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지도부 선출 방식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면, 대체 중앙위원회에게 실패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실패를 모른다는 그런 주장은 기껏해야 농담에 불과할 텐데, 사실 우리가 지금 그런 농담에서 재미를 느낄 처지는 아니지 않은가.

 

(2) 당원 규모의 감소 : 중앙위원회 내부 분열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현실 세계속의 전략적 방향성을 제대로 도출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린 너무 늦어서야 그 실패를 눈치 챌 수 있었다. 5년 전, 나는 이런 징후의 가장 명백한 신호가 있음을 알렸다. , SWP는 당원의 규모 측면에서 어느 수준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징후에 대한 중앙위원회의 반응은 그때나 지금이나 두 입장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이었다.

그 입장 가운데 하나는 성장의 위기 따위는 없다고 간단히 주장하는 것이다. 1월 협의회 이전에 발표된 등록인원이 명확하게 보여주듯이, 지난 해 11월 추산에 따르면 우리는 7,597명의 당원이 있고, 그 중 32%가 정기적으로 당비를 납부하고 있다.

지난 4년간 발표된 당원의 수는 상당한 규모였지만, 이 발표들은 마치 판타지 작가 차이나 미에빌의 소설에 나오는 환상적인 일들처럼 상당히 부풀려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레닌주의에 대해서 떠벌리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가 정의하는 당원이란진짜 당원! 당원증에 이름만 새겨진 당원이 아니라 말이다1902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DLP) 분열 당시의 볼셰비키가 채용한 개념과 아무 관련이 없다. 진실을 말하자면, 이 논쟁 당시 멘셰비키가 채용한 개념과도 별 연관이 없다.

실제로 SWP의 당원이란 최소한의 활동에 관여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정의된다. 당원이란 그저 명부에 올라와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물론 인생의 한 순간에는 우리 당 당원이었던 사람들, 그리고 노동조합이나 다른 정치 포럼에서 여전히 우리의 정치를 일부 간직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을 묘사하는 다른 이름이 우리에게는 있다. 누구는 지지자들이고, 다른 누구는완전히 유용한 개념이지만 스탈린주의에 의해 부당하게 더렵혀진 용어인동조자들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당원은 아니다. 공식적 규모와 현실 사이의 불일치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3월 협의회에 앞서 500명가량의 동지들이 중앙위원회의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에 서명했고(서명자가 늘어났는지 줄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서명 명부가 단 한번만 공개된 것으로 봐서 아마 줄었을 것이다.) 다른 540명이 IDOOP 분파 성명에 서명했다.

당은 협의회 직전 통계에 따라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협의회 사전 모임에 참여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상당한 수치였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우리 역사상 당이 부딪친 가장 심각한 위기 앞에서, 전 지역을 통틀어 1,0001,100명 정도만이 누구의 편을 들지 스스로 입장을 정하거나, 이 쟁점에 대해서 논하거나, 대표단에 투표하기 위해 모임에 나타난 것이다.

물론 이런 셈법은 전혀 정확하지 않으며 전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참석자들 중에도 두 집단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입장이 꽤 분명한 사람들 또 단지 모임에 얼굴을 비추기만 했을 뿐인 사람들이다. 이 두 집단은 정확히 구분되기 보다는 어느 정도 겹쳐져 있을 것이다. 일부 동지들은 중간 입장이거나 명확하지 않은 입장이고 중앙위원회 지지나 반대파 지지 양쪽 모두에 다 서명하지 않았다.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최근 국면의 모임 참가자들 전체 숫자보다는 당원 규모가 더 많을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 숫자가 6천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접근법을 택해보자. 지역에서의 경험에서 추론해보는 것이다. 에딘버러 지회의 공인된 회원은 3월에 170명이었다.

내가 세어보니 1월과 3월 협의회 사이 지회 모임과 3월 협의회 사전 모임에 아마 40명의 당원들이 참석했던 듯하다. 모두 지회에서 어떤 역할이든 간에 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는 명부에 있는 당원 수의 25%도 되지 않는 것이다.

에딘버러 지회는 언제나 당원들의 출석이나 참가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기에, 에딘버러 지회의 활동가 기반을 토대로 영국 전국 차원의 당원 규모를 측정하는 것은 사실 실제 당의 규모보다 높게 추정치를 잡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비율을 적용하여 공인된 전국 단위의 당원 규모를 계산해보면 1,850이라는 수가 도출된다. 또한 나는 다른 지회의 동지들을 불러서 명부 상 회원 수와 실제 모임 출석자 수를 간단하게 비교해보는 작업을 했다. 현실에서의 불일치를 감안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자동이체로 들어오는 당비에 기반을 두고 계산해보았다. 201211월 수치에 따르면 이체를 하는 당원 수는 2,532명이었다. 물론, 가난해서 자동이체로 납부할 수 없거나 전혀 내지 못하는 진짜당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불행하게도 당비 납부자들 중 당비 납부 이외에 아무 것도 안 하는 사례도 있을 것이다. 두 경우의 규모는 어느 정도 서로 상쇄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다양한 계산방식에 따라서, 3월 협의회 당시 우리의 진짜회원은 대략 1,5002,500명 정도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핵심은 후자의 수치를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7,597명의 공인된 회원과는 거리가 먼 수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상기하지만 지난 3월 이후 우리는 450명의 당원을 잃었는데, 이 중에는 학생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계급에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왔다. 이 말의 실천을 우리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면, 이는 과한 요구일까? 나는 우리가 1902년에 레닌이 옹호한 당원 기준이나 오늘날 비신고분파가 지지하는 엄격한 당원 기준을 채택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다면 우리의 규모는 백 수십으로 감소할 것이다.

내가 제안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만들어낸 머릿속의 볼셰비키적 기준에 맞춰 행동하지 말자. 대신, 실제 운용 가능한 당원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 이런 규정은 당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동의 수준, 생업의 패턴, 돌봄 노동 책임 여부, 전문 분야, 소득 수준, 지리적 위치 등을 고려하는 것에 기초해야 한다.

중앙위원회가 당원 숫자를 부풀리면서 당의 성장에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 외에, 성장 위기에 대해 보이는 또 다른 반응 유형은 이런 것이다. , 중앙위원회는 성장에 문제가 생긴 이유의 핵심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서, 당원 수가 증가하지 못한 이유는 대처할 수 없는 객관적 조건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2009년의 민주주의위원회 협의회와 20131월 협의회 모두에서 그렇게 설명했다.

이런 설명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있기도 하다. 특히 우리가 하강기라고 규정해 돌아보는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하강기는 1975년 즈음해서 시작되었는데, 특히 혁명적 좌파에게 이 시기는 성장하기 힘든 시기였다. 우리는 당시 그 시기의 특성에 대해 정말로 많은 논쟁을 했고, 지금도 그런 정도의 논쟁을 했던 것은 그 때가 마지막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서 현재의 위기가 시작된 2008년 사이에, 중앙위원회는 당의 성장 가능성을 방해하는 어떤 객관적 조건들이 있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일을 용납하지 않아왔다.

사실 당 건설의 실패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요인들이 실제로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 동지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동지들은 그동안 맹렬히 비난받아왔다. 그들은 비관주의적이고 비개입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며, 새로운 분위기를 이해하는 것을 실패했거나, 먹구름 속에서도 푸른 새싹이나 구름의 흰 가장자리를 보는 능력이 없거나, 등등의 말로 비판받아왔다.

<소셜리스트 워커>가 편집자들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시종일관 과장된 낙관주의적 신문 표제를 채택했던 점을 돌아보면, 이제와서 객관적 요인을 탓하는 것은 참으로 뻔뻔한 것이다. 중앙위원회는 이제까지 항상 성장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해왔는데, 그렇다면 그동안 그들이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인가? 혹은 그들이 계속 잘못 생각해왔던 것인가? 무어라 답을 하든 이는 그들의 취약한 지도력 수준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유물론자로서 누군가는 성장하기에 지속적으로 좋지 않은 조건이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약 40년간의 객관적 상황들이 우리에게 장애물로 계속 작용해온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일상적인 자본주의적 조건 속에서 혁명적 정당이 세워질 수 없다는 전제를 암시하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근본적인 교의들 중 하나는 혁명적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혁명적 당이 건설되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주장은 혁명적 당은 절대로 세워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데니스 고다드(Denis Godard)가 프랑스의 반자본주의신당(NPA, New Anti-capitalist Party)의 위기에 대해서 이렇게 썼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 위기의 시작과 다름없는 것으로 보인다. 1968년 이래 프랑스에서 일어난 양적으로 가장 거대한 사회적 반란(연금문제를 둘러싼 운동), 아랍 혁명들, 스페인과 그리스의 인디그나도스 운동, 미국의 점거하라(the Occupy) 운동들을 보라. 어떻게 반자본주의 정당 건설 실패에 시기 탓을 할 수가 있는가?

 

(3) 전략의 부재 : 우리의 명부 상 회원 수와 실제 회원 수 사이의 격차는 우리의 정치를 크게 무기력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

설령 우리가 체급을 넘어서 주먹을 날릴 수 있다고 해도, 여러 사건들에 우리가 바라는 만큼 영향을 미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러 가지 무기력한 모습이 이런 현실에서 비롯했다. 우리의 실제 회원 수가 알려진 숫자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을 중앙위원회가 알아차린 뒤로, 현실은 불가피하게 우리의 전술을 제약했다.

여러 실천 문제에 대한 제안들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의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를 실행할 역량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수용 내지는 거부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기준으로 전술을 판단하는 것을 옳다고 인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럴싸한 이론적 정당화가 이뤄진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우리가 진지하게 방향전환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게끔 만들어준다.

이런 현상의 한 결과는, 운동이나 행동을 제안하려할 때 노동조합 관료들에게 크게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예상가능하게도,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을 때에는 곧바로 그 관료들에 대한 맹렬한 비난이 이어진다. 결국 여기서 관료와 함께 하면서도 동시에 맞서기는 변증법적 통일 속에서 이뤄지는 동시적 과정이 아니라, 그저 시간상 앞뒤로 이어질 뿐인 서로 분리된 과정들일 뿐이다.

다른 한편에서 당원 부족 문제는, 머릿수 부족에서 오는 물리적 한계를 보충하기 위해 전일제 상근 활동가에 의존하는 대리주의를 낳는다. 노동조합 관료들와 상근자들에 대한 의존은, 결국 점점 더 지도적 당원들에 대한 무비판적인 태도를 불러온다. 노동조합 관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바로 지도적 당원들이며, 한정된 인적 자원을 이끌고 유의미한 성과물을 남기는 것도 지도적인 당원들이다. 이들이 없다면 우리 당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찌 감히 우리가 이들의 완전무결함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내 생각에는 중앙위원회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M을 보호하기로 한 것은 바로 이런 생각들 때문이었다. M은 중앙위원들에게 다른 반대파를 지지하는 수 백 명의 동지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그리고 평소 [지도부가] 한 명 한 명이 모두 황금처럼 소중하다고 말하던, 그 평당원 동지들은 M에 대한 이런 감싸기를 목도하고는 넌더리를 치면서 당을 떠나갔다.

그렇다. 문제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떠난 동지들 일부가 SWP 내에 강간 문화가 존재한다는 식으로 경솔하게 묘사했던 것은 본질을 빗겨간 판단이었다.

우리가 점점 더 큰 실패를 겪게 된 이유는 우리가 직면했던 객관적 조건들 때문이 아니었다. 진정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그런 객관적 조건들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 있었다. 잘못된 분석은 장기적인 전망을 잘못 잡는 것으로 이어졌고, 이는 곧 1975년에 형성된 조직 구조에서 가장 관료주의적인 면들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나라의 노동계급은 1976년 노동당 하에서 신자유주의적 맹공을 겪은 이래로 조직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약화됐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약화가 불균등하게 일어났음은 분명하다. 공공부문의 사무직 노동조합들은 오히려 그들의 지위를 강화했고, 어떤 노동조합들은 정치적으로 왼쪽으로 이동했다.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의 권리와 같은 이슈들에 대한 노동조합 내의 정치적 입장은 전반적으로 1970년대와 비교하여 몰라 볼 정도로 좋아졌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우리가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든 그렇지 않든-1970년대 이래로 우리 계급은 일련의 패배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직 (거의 25년 전에 일어난) 인두세의 폐지만이 균형추를 이쪽으로 가져왔을 뿐이다. 만일 이런 패배들이 반전되지 않는다면-실제로 뒤집힌 적은 없다-그것들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패배는 단지 우리의 자신감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이 노동시장을 구조조정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면, 무노조 사업장을 세울 수도 있고, 심지어 노조 없는 산업 부문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필요한 의구심을 줄이기 위해 덧붙이자면, 이런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곧 노동계급이 a)더는 존재하지 않거나 b)완전히 원자화 된다거나 c)더 이상 혁명적인 사회적 세력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하는 바는, 만일 혁명가들이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영향력을 끼칠 기회를 갖고자 한다면 환상이 아닌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다르는 우리가 시대를 정확하게 분석하는데 실패하게 만드는 주관적 요소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전략적 관점이 없으면, 구체적 현실을 분석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구체적 현실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장기간에 걸친 자본주의적 생산 구조의 진화(또는 재구성)를 이해할 수도 없다. 전통적 노동계급이 해체되고 새로운 계급이 재구성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 우리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직업, 부문, 지역에 따라 조직해야할까? 이민의 증가와 노동의 여성화가 차별에 맞선 투쟁과 작업장에서의 투쟁 사이의 관계를 바꿔놓지는 않았나? 생산단위와 계약이 개별화된 것, 불안정노동이 발전하고 서비스업이 성장한 것 등은 도심 지역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역할과 방법이 변화하도록 만들지 않았나?

이런 논쟁들-우리는 다른 문제들을 언급할 수도 있다-은 반자본주의신당(NPA)의 건설하는 중에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나 제국주의의 표면을 바꾸는 문제에 대해서는 물론, 언론과 SNS의 역할에 대한 논쟁도 진행되지 않았다.

 

이 글은 프랑스의 상황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당신,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974년으로 돌아가보자. 초기 분파투쟁 와중에 토니 클리프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전략이라는 단어가 얘기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는 그저 헛웃음이 난다.” 그의 웃음이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메아리쳐 우리에게 들리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어느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전략의 부재 상태를 용인할 수 있다. 조그마한 조직의 경우, 현실의 사태 전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가 무척 작다고 현실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고, 그런 상황에서 전략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무망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 조직이 작다면, ‘강령이나 인터내셔널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는 일에서도 또한 겸손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태도는 지도부에게는 일종의 빠져나갈 구멍이 될 수도 있다. 전략의 수립과 평가를 명확히 하지 않는 것은 중앙위원회의 행동 결정에 절대적 재량권을 주는 것과 다름없고, 실천을 되돌아보거나 빗나간 예측의 책임을 추궁하기도 어렵게 한다. , 엄정한 평가의 부재는 우리를 일종의 영구적인 조건부 미래시제 속에서 살아가게 만든다. 지도부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한 사건은 아직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 년만 기다려 보라. 아니, 별들이 일직선이 될 때까지 기다려보라. 그러면 예언은 이루어질 것이다. 최후의 심판이라는 고독한 순간은 결코 도래하지 않고, 그 시점은 미래의 언젠가로 계속해서 유예된다.

전략 대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사건이 일어날거야라고 생각하는 미코버(Mr. Micawber)의 낙관주의인데, 이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일정 시점에서 분노가 폭발할텐데, 아마 이것은 관료적 대중파업의 결과일 것이다. 이제까지 노동자들의 발목을 잡아온 자신감 부족은 끝내 극복되고 전투성은 되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이 반란을 통해 우리 조직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들도 극복될 것이다. 지금까지 조직되지 않았던 사적 부문에 있는 노동자들은 피트 제이(Pete J)투쟁의 물결이라고 부른 흐름을 타고 노조로 몰려들 것이다. 그리고 일단 그 물결이 밀려들어오면(글쎄, 사실 나는 피트의 은유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투쟁을 지도할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현재의 전략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자율주의나 노동자주의에 굴복하는 것도, 프레카리아트(precariat)의 혁명적 역할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1970년대 이래로 중요한 것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애써 믿으면서 우리 자신을 안심시키는 일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이론적 차원에서 클리프가 했던 일들을 우리도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클리프의 유산을 해석하고 적용하고 발전시키는 일이 중앙위원회만의 역할이 아닐 수 있다는 이런 주장은 분명 중앙위원회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

나의 세 번째 주장은 토니 클리프, 마이크 키드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사상, 즉 국가 자본주의와 영구군비경제의 이론을 발전시켰을 때, 이들이 더 폭넓은 좌파들 사이에서는 이단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역시, 이단아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런 [반대파의] 주장들이 훨씬 더 심각한 이단적 주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광범한 운동과 좌파 학계가 공유하고 있는 상식들에 순응하고 있다. …… 운동에 만연한 생각들을 수용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용감한 것인가? 이것을 어떻게 클리프와 키드런의 노력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중앙위원회의 옹호자들이 논점을 비틀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다. 클리프와 키드런은 광범한 좌파들 속에서 이단적이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바로 트로츠키주의 운동(4인터내셔널)과 클리프가 속했던 영국 조직(혁명적 공산주의자 당)이 고수했던 견해에 비추어서 이단적이었던 것이다.

클리프는 당시 트로츠키주의가 구소련(USSR)의 본질, 세계 경제 침체와 연속혁명의 필연성에 대해 단순히 트로츠키의 주장들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고 비판했다. 첫째 문제는 제한된 설명력만을 가지고 있었고, 둘째와 셋째 문제는 경험적인 증거와 충돌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 레닌주의 조직의 필요성,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인 이윤율 저하 경향의 중요성 등에 대해 여전히 내가 기존의 우리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기쁜 마음으로 분명히 밝힐 수 있다. 부르주아 페미니즘의 치명적인 해악(부차적인 문제지만, 나는 헤스터 아인슈타인(Hester Einstein)과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의 최근 저서들이 사회적 신자유주의와 상통한다고 평가한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취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현재 노동계급의 의식 상태와 조직 수준이 1970년대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레닌주의의 어떤 측면이 오늘날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여전히 유효한지, 어떤 측면이 봉건 절대주의 차르 체제 하에서 제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었는지 판단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이윤율 저하 상쇄 경향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도 위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표현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부르주아 페미니즘은 계급 착취보다 여성억압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강간과 성폭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이들의 여러 요구들 중 정확히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일반화할 수 있을지의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실, 국가자본주의 개념은 이런 점에서 보면 적절하고 흥미로운 사례이다. 이 개념은 적어도 제1차 세계대전 이래로 많은 아나키스트, 초좌파, 적어도 사회민주주의자들에 의해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그리고 심지어 이 개념은 그보다 더 이전 시기에 쓰여진 엥겔스의 <반뒤링론>이나 룩셈부르크의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 이 개념은 10월 혁명이 일어난 이후의 소련을 묘사하는 데에서도 적용되어왔다.

클리프는 최초로 이 개념을 적절한 과학적 내용으로 채워 넣었다. 그런 노력이 정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클리프에게 멘셰비즘, 아나키즘, 초좌파주의라고 비난을 퍼붓는 것으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운동주의는 이 시점에 없었던 개념이지만, 만일 이 별명이 존재했다면 클리프에게는 운동주의자라는 비난도 쏟아졌을 것이다).

과거에 비과학적인 여러 국가자본주의 이론들이 있었듯이, 지금도 비과학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묘사하는 여러 이론들이 있다. 여기에 걸린 판돈은 단지 우리가 신자유주의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의 문제 정도가 아니다. 물론 더 좋은 명칭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써야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처한 지금의 상황에 대한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앙위원회는 지난 수 십 년 동안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데 실패했다.

물론 정확한 분석이 그 자체로 계급투쟁의 승리를 언제나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런 분석이 우리가 어떤 범위의 청중을 자동으로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존 에릭 메롯(John Eric Marot)이 썼듯이, 당과 계급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노동자운동에 대한 개입 가능성을 풍부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언가를 적절하게 이해한다고 해서 곧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런 정식이 성립할 수 있었다면, 사회주의 혁명은 진작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미 수차례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20세기의 경험이 보여준 것, 그리고 앞으로 21세기의 경험이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입증할 사실은 바로 당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올바른 레닌주의적 이해가 사회주의 혁명을 현실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해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가끔은 혁명적 조직이 성장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는 시기가 있다. (전후 경제 붐이 치솟았던 시기처럼 말이다.) 또 때로는 패배가 너무 심각해서 일시적으로 어떤 종류의 운동도 벌어지기 어려워지는 시기도 찾아온다. (광부파업 직후의 상황처럼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올바른 이론은 상황이 변화했을 때 우리가 그 변화를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그 변화 속에서 전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당 민주주의의 문제들

 

우리가 지금 살펴보아야할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이론과 전략 문제가 있고, 이에 더해서 이 두 가지보다 더 당장 중요하게 살펴야 봐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 문제다. 왜 그럴까?

국제사회주의자”(IS) 조직은 1968년과 1975년 사이에 민주적 중앙집중제를 채용했다. 이언 버철과 함께 프랑스의 5월에 대해 쓴 책에서, 클리프는 민주적 중앙집중제를 수용할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새로운 위기의 시기가 도래했으며 혁명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얘기인즉슨,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연합체적인 성격이 강하던 기존 IS의 조직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연방적 구조는 운동의 파고가 낮았던 전후 경제 붐 시기에는 적합했지만, 노동계급의 혁명적 대중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시기에 와서는 더 이상 적절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등장한 지도부를 비판하던 나를 포함한 내부 구성원들은 모든 형태의 민주집중제를 반대한다는 부당한 비판을 받았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이 지면을 통해 내가 이 시기의 조직 구조 변화가 필요했다고 판단했음을 밝히는 것이 어느 정도 유의미할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1974년 이전 국제사회주의자들조직의 이론적 개방성과 창의성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시기의 조직 구조를 68혁명 시기에도 적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우리가 민주집중제 조직 구조로 재편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국의 솔리다리티(Solidarity)”나 프랑스의 사회주의냐 야만주의냐(Socialism or Barbarism)” 그룹과 같은 운명에 처했을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운동 속에서 주도력을 발휘하며 활약했지만, 그들 내부의 반()레닌주의 경향으로 인해 결국 운동에 지속적으로 관계 맺지 못하고 점차 내부적으로 스스로 붕괴하게 되었다.

하지만 민주적 중앙집중제의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시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조직 방식을 취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까지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SWP의 대부분의 당원들은 민주적 중앙집중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교과서적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집단적 토론을 통해서 하나의 정책을 결정하고(민주주의), 이 결정에 반대하는 멤버들이 있더라도 당은 집단으로서 함께 그 결정을 실행한다(집중주의).

그런데, 어떤 면에서 이것은 전혀 특별히 레닌주의적이라고 할 것이 없다. 어떤 성실한 민주적 조직이라도 이렇게 할 것이다. ()주거수당축소(bedroom tax) 그룹이나 볼링 클럽도 이렇게 할 것이다. 다른 사회주의 조직이나 노동운동 조직의 경우를 보아도, 어떤 결정에 그들의 조직원들, 더 중요하게는 그들의 리더들을 구속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는 사실 그들이 얼마나 실제로 민주적인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 당에서 실행되고 있는 민주적 중앙집중제는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는 대가로 집중주의(소위 결단력 있는 지도부)에 지나친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 이론에 따르면, 협의회는 토론하고 결정한다(민주주의). 그리고 나서 당원들은 자신들이 반대했던 정책들일지라도 일단 통과가 되었다면 함께 그 결정을 실행한다(집중주의). 좋다. 그러나 실제로 협의회에서 우리가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일련의 일반적인 관점을 담은 문서들을 통과시킨다. 그런데 그 문서들은 대체로 매우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고 일반적인 이야기들이어서 사실상 그 내용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경제위기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마주할 시기는 힘들겠지만 기회 또한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극우 조직인 수호 동맹(Defence Leagues) 무리들의 움직임을 저지해왔다, 그러나 파시즘의 위협을 막아냈다고 자기만족에 빠져서는 안 된다 등등.

이런 진술들에 동의하는 것은 어떤 전략과 전술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또 이런 진술들은 구체적으로 중앙위원회[의 정책을] 평가하는 것과도 동일시 될 수 없다. 물론 어떤 정책적 결정들은 연례 협의회에서 내려지기도 한다. 예컨대, 최근 제리 힉스(Jerry Hicks)저항이여 단결하라의 서기장(General Secretary)로 지지하자는 결정이 그런 경우였다. 그러나 실천에 관한 대부분의 실질적 결정은-공동전선을 설립한다거나, 선거연합에 참여한다거나-대체로 중앙위원회 자신에 의해 협의회와 협의회 사이 기간 동안 이루어져왔다. 협의회에서는 오로지 이미 어떤 결정이 실행된 뒤에 그들을 평가할 수 있을 뿐이었다. 1월에 열렸던 협의회는 학생 부문에 대한 전략을 통과시켰는데, 이 전략은 그 이후에 곧 중앙위원회에 의해 뒤집혔다. 그런 결정을 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협의회가 열리고 있는 중에 추진되었어야 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공동전선인 저항이여 단결하라를 발족시키자는 결정 역시 협의회를 거치지 않았다.

요컨대, 여러 결정들을 내리는 데 당원들이 참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들은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우리의 민집제에서] 민주주의적 요소란, 당이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집중주의자들, 즉 중앙위원회를 선출하는 순간에 한해서 존재한다.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이런 시스템이 민주집중을 모두 동등하게 중시하는 민주집중제와 양립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행동에 앞서 집단적 토론과 동의를 거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사실, 지금의 체계는 중앙위원회를 최상의 기관이자 전체 당의 가장 우월한 것으로 그 지위를 상승시키는 것이다. 이런 전통은 알고보면 민주접 중앙집중제의 이론과는 본질적으로 아무 연관성도 없는 것이다. ‘결단력 있는 지도부날카롭고 논쟁적인 개입에 대한 강박관념이, 물론 이런 덕목들은 레닌주의의 핵심이자 변혁 조직이 추구해야할 절대적 가치이지만, 마치 우리가 성취해야할 중요한 혁신 과제인양 제시되고 있다. 우리 자신은 이런 가치들이 덜 강조되어 어떤 실패를 겪은 적도 없는데 말이다.

현재 중앙위원회의 모델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그룹이며, 명부 작성을 통해 집단으로 선출되며, 대다수는 당의 전일 상근자로 구성되어 있다. 또 그들은 런던이나 그 근교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현재 계급투쟁의 상황을 분석하고 정책을 짜며 전략을 구체화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다른 당원들도 어떻게 하면 이 정책과 전략들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고려하는 자리에 초대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 자리들은 주로 전국위원회(National Committee)나 당 위원회(Party Council), 그리고 지회모임 등으로, 실제 조직의 주도력과 지도력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온다.

아주 부분적인 수정은 한다하더라도 대체로 이 모델을 유지하고자 하는 동지들은 주로 두 가지 논의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한다.

먼저, 지도부가 어떻게 선출되어야 하느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만일 중앙위원회가 구성원들 간에 강한 응집력을 가지고 하나의 관점 아래서 서로 보완하고 협력하며 일하기를 원한다면, 이를 위한 최상의 선출 방법은 바로 현재 방식이다. 현 중앙위원회가 다음 해 중앙위원회에 포함될 새 구성원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 명단을 협의회에 제출해 집단적으로 선출하는 방식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의사결정과 관련한 문제다. 만일 중앙위원회가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새로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그리고 이 문제를 공식적 자리에서 민주적으로 토론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중앙위원회는 필요에 따라 회의를 소집할 권한과 당원들에 의해 수행될 어떤 정책을 즉시 결정할 권한을 가져야만 한다. 결단력이야말로 우리가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중앙위원회 구성원의 기반을 전일 상근자, 그것도 주로 한 지역에만 거주하는 사람들로 협소화하는 것은 잠재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정식을 지금 마르크스주의자들 자신을 의심하는 데에는 적용하고 있지 않은 셈이다.

작업장에서의 직접적 경험을 [흡수할 수 있게 해주는 인물을 중앙위원회에서] 배제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마주하는 일상 현실에 대한 둔감한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지나치게 예외적인 개별 투쟁들을 마치 전체 작업장의 경향인 것처럼 잘못 받아들이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계급의 최상의 경험들을 일반화해야지, 어떤 경험들이 이미 일반화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 당은 너무 자주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중앙위원회의 구성원들이 작업장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보니, 그들은 노동 계급에게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바라볼 때 믿을만한개인들의 시야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개인들은 대체로 중앙위원회의 판단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계급투쟁 수준이 지난 몇 년간 낮았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파업과 다른 형태의 산업 행동이 자본주의 하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굳이 레드 던(Red Dawn)에 대해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금과 같은 긴축의 시대에 저항의 발생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보통 많은 경우에 그렇다고 해도, 런던의 상황이 반드시 전체 영국의 상황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리라 우리가 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비록 여러 가지 면에서 런던과 다른 영국 도시들을 비교하는 것이 글래스고우와 뉴캐슬의 상황을 서로 비교하는 것보다는 공통점이 많겠지만 말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자신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서 후보로 지명한 뒤 지지를 요청하는 현재 중앙위원회의 선출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곧 어떤 당원들의 조합도 현 중앙위원회의 지도력에 못 미치리라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일종의 협박이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선출하라, 그렇지 않으면 중앙위원회는 적절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에 실패할 것이고 우리는 그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 좀 더 일상적으로 쓰는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를 지지해달라, 그렇지 않으면 당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클리프가 1968년에 했던 제안은 사실 이보다 훨씬 덜 빡빡했다. ‘사무국, 정치 위원회 등은 협의회에서 개인별로 선출되거나 분파들이 제안한 후보 명부를 통해 선출된다. 각 분파의 대표자들은 협의회에서 그들의 지분을 반영해 위원회에 몇 사람을 선출할 자격이 있다.’

, 당시에는 개인 선출 방식과 분파의 권리가 모두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당시와 너무나 대조되게도, 흔히 얘기되듯이 전체 당원 숫자 2천 명 중 오직 15명만이 응집력 있는 지도부를 구성할 수 있다. 이런 부조리는 계속해서 방치되어 왔다. 일부 중앙위원들은 특정한 역할들을 맡아서 수행하곤 하는데, 우리는 이런 역할들, 즉 재정 조직자나 산업 조직자, 그 외 기타 등등의 역할에 대해서도 꼭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선출방식이 우리의 당원들에 대해, 나아가서 당원들을 대한 지도부의 태도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만일, 지도부의 당원에 대한 태도가 너무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라면? 사실 현재의 중앙위원 선출방식에는 올바른사람을 신중하게 선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앙위원회 내에서 이견이 발생하고 우유부단한 태도가 생길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이런 이유에 공감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이런 선출 방식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번에 중앙위원회 안에서 분열이 벌어졌던 것을 보면, 정말이지 중앙위원회가 내부적 의견 차를 조율하는 어떤 관리 장치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장은 [차이를 조율하는] 메커니즘을 찾으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사전에 차이를 배제하려는 쪽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이 점을 뒤에서 다루겠지만, 일반적 차원에서 보면, 중앙위원회 멤버들 역시 다른 어떤 기구에 선출된 모든 사람들처럼 항상 의견이 하나로 모아질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당은 중앙위원회 멤버들이 개인 자격으로 선출된다고 했을 때 조차, 그들이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르크스주의적 신념 위에서 함께 협력할 것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 지금의 지도부 선출 방식은 세 가지 문제를 초래한다.

첫 번째로, 권력의 집중은 물론 중앙위원회가 결단력 있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지만, 기존에 충분한 동의를 형성해놓지 않은 새로운 문제가 터졌을 때는 효과적인 대응을 못하게 만들 수 있다. 당의 더 넓은 부문과 상의할 필요 없이, 언제나 모든 문제에 대해 올바른 답을 제시하면서 지도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중앙위원회 멤버들에게 사실 거대하고 파괴적인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런 관점 하에서라면, 이미 우리가 보아왔듯이, 지도부내에서 분열과 불확실성이란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모습은 지도부가 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분열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는 전략 문제에서 뿐 아니라 이론적 차원에서도 또한 적용된다. 어차피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믿을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거의 없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중앙위원회는 그저 특정한 기술들, 능력들, 경험을 가진 유능한 동지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지 초인들의 모임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활동들을 총괄하여 지휘하는 특정한 역할을 맡기고자 회원들 중에서 그들을 선택했을 뿐이다.

혁명가들은 노동계급에서 가장 반항적이고 주체적인 사람들이다. (혹은 그래야한다.) 바로 그런 이들이 일시적으로 지도부로 올라선 다른 동지들이 제시하는 방향에 따르려고 마음먹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일부 동지들이 어떤 역할에서 더 특화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중앙위원회 멤버들이 우수한 수많은 동지들 중 뛰어난 이들이라고 보기보다 그들이 그 자체로 특별하고 우월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최근 위기의 원인이 된 지도부 무오류의 신화는 언제든지 또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실질적인 민주주의 없는 집중주의는 수동성(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활동들과 함께 양립할 수 있는)을 낳는 경향이 있다. 이는 중앙위원회의 다음 계획을 그저 기다리는 태도를 만들고,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는 효과적으로 논쟁할 수 없게 만든다. 다음은 1923년 루카치의 글이다.

 

만일 당이 일반 당원대중과는 동떨어진 단순한 직무상의 위계질서로 구성되고, 이런 당 구조에 대해 당원들이 일상적으로 방관자의 역할만을 하게 된다면, 또 전체로서의 당의 행동이 단지 임시변통적인 것이라면, 당원들 속에는 당의 일상행동에 대한 어떤 무관심, 곧 맹목적인 신뢰와 무감각으로 혼합된 무관심이 발생한다. 당원들의 비판은 기껏해야 (당 대회 에서의) 사후적 비판이 되거나, 앞으로의 행동의 현실적 방향에 대해서는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하는 비판으로 전락할 뿐이다.

 

아래는 1926년 그림시와 톨리아티의 글이다. 그는 혁명 정당의 중요한 측면이 지도부로부터 지시가 도착하기 전에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응해 그 속에서 올바른 위치를 점하려 지역 조직과 동지들 개인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단지 위로부터의 명령을 기다리는 수동성 …… 과 투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당은 기층으로부터의 이니셔티브에 의해 특징 지워져야 한다. 말하자면, 기층 기관들은 모든 예기치 못한 그리고 예고되지 않은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충고를 무시했다. SWP가 건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크리스 하먼은 이런 주장을 했다.

 

ISSWP에서 우리는 여러 해에 걸쳐 어떤 조직 모델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시도해왔다. …… 그 모델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러시아 혁명의 분열과 변질 전에 존재했던 볼셰비키 당의 모습과 얼마간 유사성을 가진 모델이었다. 이 모델은 지도부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계급 투쟁 역시 결국은 일종의 전쟁이다. 전쟁 중에 군대는 지휘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모델은 지도부와 전략과 전술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어서는 안 되며, 당원들의 토론에 열려 있어야만 함 역시 인정한다. 특히 핵심적 투쟁이 벌어진 후와 협의회 전에 그렇다.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 지도부는 투쟁의 생생했던 경험과 접촉을 유지할 수 있다.

 

여러 측면에서 이 글은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면, 이 글은 혁명 조직 내에서 자율주의는 권위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럼에도 이 문단에서는 두 가지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하나는 바로 지도부에 대한 절대적 강박관념이다. 이 글에서 평당원들은 지도부의 활동에 대해 토론할 수 있게끔 관대하게 허용 받고 있다. 두 번째는 군대의 은유를 눈에 띄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은유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알아챌 수가 없을 정도이다(‘우리는 전투를 위한 정당이다는 등의 표현).

그런데 결국, 군대의 주요한 특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공식적인 명령에 대해 맹목적으로, 생각 없이 복종하는 것이다. 간부들(the cadres, 원래 이 용어는 원래 혁명 후 프랑스 군대의 하사관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역시 지도부들의 명령에 질문하지 않고 단순히 평당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그것들을 번역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당신은 지도자들의 당을 건설하기를 열망할 수 있지만, ‘지도자들의 군대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개념상 형용모순이기 때문이다.

복종을 찬양하는 태도(비신고분파라면 아마 이를 충성이나 규율등으로 표현할 것이다)가 혁명 정당에서조차 발견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태도는 사회민주주의, 스탈린주의, 그리고 정설 트로츠키주의에 맞선 투쟁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1969년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뱅센느(Vincennes)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혁명가로서 원하는 것은 새로운 주인이다. 여러분은 새로운 주인을 얻게 될 것이다.’

라캉이 일침을 놓은 것은, 젊은 혁명가들이 스스로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독립적 사고의 어려움과 불확실성으로부터 회피하면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다른 누군가로부터 그저 손쉽게 듣기를 원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모습은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알렉스가 주장한 것과는 달리, 혁명정당의 구성원들은 단지 부르주아 사회 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그 사회의 일부이다. 그리고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정확히 이런 순종적 태도를 심어준다. 게다가 개인들은 그런 태도를 취함으로써 얻는 것도 있다. “그가 동질감을 갖는 집단[의 분위기]에 순응함으로써, 개인들의 인생은 더 편안해진다. 그는 자신의 무기력에 대해 인식하지 않을 수 있다. 동료들과 함께 함으로써, 소수는 비로소 다수가 된다.”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이것을 체념으로 설명한다. 집단 속에서 느끼는 새로운 안정감은 자주적인 생각을 희생하는 대가로 얻어 진다. 이러한 복종을 조장하는 경향에 맞서, 우리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모델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는 규율(discipline)’이라는 똑같은 단어를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의미를 가리키는 데 사용한다. 첫째, 사고와 의지가 결여된 채, 신체기관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현상. 둘째, 인간의 의식적·정치적 행동으로 이뤄지는 자발적 협력. 이러한 단어 사용은 완전히 잘못되었고 자기 기만적이다. 억압당한 계급이 보여주는 통제된 순종성과, 자기해방을 위한 계급투쟁과정에서 생겨나는 자기훈련 및 조직화 과정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도 없지 않은가?

사회민주주의의가 추구해야 하는 당의 자기훈련방식은 단순히 부르주아 지배자들의 권위를 사회주의당 중앙위원회의 권위로 대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국가가 강요한 규율과 오랜 관습으로 몸에 배인 복종적 태도 노예근성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새로운 자기훈련 방식을 배울 것이다. 자유롭게 사회민주주의의 자기훈련 방식을 획득해 나갈 것이다.

 

민주적 토론이란 결국 동지들이 어떻게 우호적인 방식으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공통된 가치관이 확인되는 분위기 속에서 토론과 논쟁하는 방법을 배워 나갈 것이냐의 문제다. 그리고 이것은 운동에 참여하는 데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운동 속에서 우리는 단지 야유하거나, 강변하거나, 중앙위원회 동지들이 한 말을 그대로 언성 높여 반복하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논쟁거리들을 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행 지도부 선출 방식이 낳는 세 번째 문제는 바로 지도부가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당원의 목소리를 듣도록 하는 효율적 피드백 구조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고전적인 도구주의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로 귀결된다. 토론과 논쟁의 과정이 올바른 결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대가로 치러야하는 불편함과 기회비용들 외에, 어떤 작은 모임이 올바른 결정을 하는 데 난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무엇보다 이 점은 최근 상당 기간 동안 계속해온 우리의 실천에 비추어 보아도 들어맞는다.

우리도 대가를 치러가면서 배웠지만, 한 가지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비민주적 구조가 옳은 관점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반대로 민주적 구조가 틀린 결론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오로지 민주적 구조만이 실수를 교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명백히도 민주적 구조는 당 전체의 더 넓은 경험에 기초하고 있고, 이를 통해 당은 최고의 경험들로부터 일반화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우리의 내부적 문화와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단지 부정확한 정치적 관점들에 의해서만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동지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우리가 올바른 관점에 어떻게 처음 도달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회피한다.

민주주의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민주주의는 결정사항들을 실제로 집행되도록 보장하기 때문이다. 동의하지 않는 결정들을 실행하려 할 때, 이견이 있는 동지들이 이에 헌신할 수 있는(민주적 중앙집중주의의 집중주의적 측면)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자신들의 반대 입장을 밝힐 수 있는 논쟁 전체에 참여하거나 최소한 경험하는 것이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가 설명했듯이, 민주주의는 과정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사상의 자유와 당의 규율은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가? 사상적 신념의 특정 부분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일원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명히 옳은 주장이 위 질문의 충분한 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상적 공통점 이상으로 날카로운 의견 충돌이 발생할 때, 규율이 허용하는 한 당내에서 소수파의 시각들이 발언권을 최대한 갖도록 함으로써 사상적 자유를 반드시 제공해야한다. 이렇게 된다면, 소수파가 나중에 행동을 방해하거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개인[결정하고 명령하는] ‘전체사이의 허구적 대결을 상정하는 일 없이, 지적 측면에서 의견 불일치를 인정하면서도 조직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중앙위원회와 더 넓은 의미의 당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단지 추상적인 민주적 원칙 차원에서 다뤄질 수 없다. 만일 현재 우리[당재건파]가 지금의 시기를 이해하고 있는 방식이 옳다면, [SWP에서는] 심각한 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정치적 논쟁거리들이 나타날 것이고, 일반 당원이든 중앙위원회 멤버든 진지한 혁명가들은 이런 분열 속에서 서로 다른 대답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논쟁을 하는 것만이 현실에서 무언가를 실행하고 평가 할 수 있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현재의 구조상으로는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논쟁이 일어날 수가 없다. 만약 어떤 쟁점이 중앙위원회를 분열시킬 만큼 충분히 중요하다면, 중앙위원회 내부에서 이 문제는 그저 곪아터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익숙했던 권위적 위치들(그리고 아마 자신의 경력들)을 포기하기보다는 조직을 떠나려 할 것이고, 실제로 이제까지 그래왔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가게 되면, 그동안 당 활동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당수 일반 당원들도 이탈한 간부들과 함께 떠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들은 새로운 조직을 건설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거치고 나서도, 정치적 명료성은 성취되지 못할 것이고 심지어 압살될 가능성이 높다. 분열에 따른 자기 방어적 분위기가 조직 내에 만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중앙위원회는 분쟁이 이루어졌던 방식에 대해 당사자 여성들에게, 그리고 당 전체에, 나아가 보다 넓은 좌파들 앞에서 사과해야 한다. 누구도 우리에게 이 사건들을 재조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지만-어쨌든 이제 그렇게 할 방법도 없다-, 그럼에도 대중은 우리가 우리의 사건 처리 과정이 얼마나 문제가 있었는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동지들은 그런 사과를 하는 것을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약한 모습이라고 여기고 있다. 우리 강철규율의 볼셰비키 간부들은 실수를 절대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같은 식의 태도인 것이다. 그러나 동지들은 이것이 우리 당을 얼마나 우습게 보이도록 만드는지 진정 느끼지 못하는가? 사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 조직이 이를 인정하고 고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힘과 자신감이 있다는 사실을 주위에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당은 비신고분파의 구성원들을 지도부 명부에서 제외해야 한다. 이것은 사건 은폐 시도, 비밀 분파 형성, 그리고 그 외 죄들에 대해 처벌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는 당이 와해되거나 소규모 종파로 분열되고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지금 작성된 중앙위원회 명부대로 내년 지도부가 선출된다면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위해서는 굳이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불행히도 트로츠키주의의 역사가 우리에게 충분히 많은 예들을 제공해준다. 다음을 보자.

 

지도부에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토론은 당원들을 과도한 활동에 밀어 넣는 것을 통해 억눌러진다. 토론 부재는 [바쁜 와중에] 불가피한 것이라고 정당화된다. 빠른 속도로 [이견이 있는] 회원들은 이탈하게 된다.

조직의 많은 부분은 언제나 신입 당원들이다. 그들은 지도부의 지난 예측들이 현실화되지 않았음을 알지 못한다. [평가가 어려워지면서] 당 노선의 수정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 구조가 자리를 잡는다. 결과적으로 지도부를 세우는 일물론, 이는 조직 건설 그 자체와도 동일시된다이 진지한 정치 활동과 산업 부문 활동을 대체하게 된다.

진지한 투사들은 쫓겨나고 혁명적 젊은이들이 활동가들의 더 많은 부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 탓에 그 자체로 오랜 경험과 [지도의] 연속성을 지니고 있는 지도부는 점점 더 도전받기 어려운 권위를 갖게 된다. 그리고 도전의 부재는 지도부가 그들의 정치와 실천을 점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이것은 분파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진지한 내부적 토론이 사라진 결과, 간부들이 정치적으로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조직의 활동가들과의 접촉이 낳을 오염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바로 분파주의다.

 

낯익게 들리지 않는가? 이 글은 던컨 핼러스가 1969년에 노동자혁명정당(Worker`s Revolutionary Party)이 되는 사회주의노동자연맹(Socialist Labour League)에 대해 쓴 글이다. ‘혁명적 젊은이학생들로 바꾸면 지금 우리 당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거의 똑같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조치는 당의 위기를 종식시키고 우리가 살아남아 새 출발을 할 기회를 붙들기 위해 반드시, 최소한 필요한 것들이다.

물론 몇 십 년 동안 만들어진 우리 조직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우리는 당 전체 차원에서 이런 변화들을 만들어 가는 데 헌신할 중앙위원회를 선출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분쟁해결위원회 감사기구의 보고서를 보강하도록 하는 조치를 지지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민주주의위원회(Democracy Commission)의 보고서(당내 모든 분파들의 대표적 인물들이 서명한)의 제안을 실행에 옮기고, 당 내 민주주의를 확장시키고 심화시킬 모든 협의회 결정들을 지지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업활동가들만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 기층 당원들에 기반을 둔 중앙위원회를 선출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만약 우리가 지금 당을 지키고 민주화할 수 있다면, 역사적으로 봤을 때 위기에 봉착한 당들이 일반적으로 걷게 되는 길, 즉 분열과 축출, 붕괴라는 결말을 현명하게 피해간 것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내부를 개혁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바로 지금이 낡은 셔츠를 벗어던지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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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ladimir I. Lenin, ‘The Tasks of the Proletariat in Our Revolution: Draft Platform for the Proletarian Party,’ in Collected Works, vol. 24, April-June 1917(Progress Publishers, 1964), p. 88. [본문으로]
  2. [역주] SWP 성추문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지도적 당원의 이니셜이다. [본문으로]
  3. [역주] 원문에는 ‘no case to answer’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영국 고유의 사법제도에 존재하는 용어다. 검찰에 의해 기소된 피의자가 자신은 이 사건에 대해 딱히 변론할 것조차 존재하지 않으므로 기소 자체를 아예 기각해달라고 판사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분쟁해결위원회가 M의 피의 사실에 대해서 어떤 규명도 하지 않은 채 사건을 종결지어 버린 것(“case to answer”라고만 말한 것)은 사실상 재판부가 ‘기소 중지 신청’(“No case to answer”)에 대해 동의한다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맥락에서 비꼬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본문으로]
  4. [역주] 2013년 초에 열린 정기 대의원 협의회에서는 현재 당을 탈퇴해 ISN을 결성한 사람들이 주축을 이룬 분파와, 이 글을 쓴 닐 데이비슨과 당의 고참 당원들이 주도하는 분파 등 두 개의 분파가 존재하고 있었다. [본문으로]
  5. [역주] 성폭력 혐의가 제기되어 당이 온통 시끄러운 가운데, 몇몇 당원들이 페이스북에서 비밀 소그룹을 만들어 대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다. 이들은 성폭력 사건에 대해 중앙위원회의 입장에 도전하기 위해 선거 출마를 논의하면서도, 자신들의 그 문제에 대한 견해를 대의원 선출 과정에서는 밝히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은 이 4명의 당원을 비밀 분파 결성 혐의로 분쟁해결위원회에 제소했고 위원회는 이들에 대한 중징계를 시도한 바 있었다. 본문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징계도 지도부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취지에서 이런 언급을 한 듯하다. [본문으로]
  6. Edward P. Thompson, ‘Foreword’, in The Poverty of Theory and Other Essays (Merlin Press, 1978), p. ii. [본문으로]
  7. 역주] 학생 단체 ‘Revolutionary Socialists’의 약자. 홈페이지 http://revsocs.wordpress.com/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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