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사회주의를 퀴어화(Queering) 하기 - 2

사회주의를 퀴어화(Queering) 하기: 앨런 시어스와의 인터뷰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운동의 성과에 대한 공격과 함께 미국과 주요 선진국에서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들의 결혼과 시민권의 진전을 목격했다. 평등에 대한 많은 법적 장벽의 해체를 축하하면서도 이런 변화가 젠더와 성적 자유에 대한 급진적 사고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생각하기 위해서 퀴어 운동가, 작가, 사회학 교수이며 성소수자인 앨런 시어스(Alan Sears)를 인터뷰한 글이다. 시어스는 <매끄러운 세상 속의 퀴어 Queer in a Lean World>, <퀴어 반자본주의: 레즈비언과 게이 해방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등의 저자이다. 20136월에 실시된 이 인터뷰는 동성애 해방운동의 역사, 주류 동성애자 권리와 급진적인 퀴어 운동 사이의 분열, 자본주의에서 젠더와 성 정체성의 구축, 사회주의와 젠더 정치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분량이 길어서 일부 부분은 생략해서 번역하면서 2번에 나누어서 싣는다. 이번 글은 마지막 2번째이다.(번역: 두견)

 

출처: https://newpol.org/queering-socialism-interview-alan-sears/

 


 

 

<1편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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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미국에서는, 평등 결혼을 둘러싸고 많은 전진이 있고 주들을 거치며 법을 통과시키고 있다. 나는 지난해 사람들이 평등 결혼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하고 있던 '점거하라'와 같은 모임에 많이 가본 적이 있다. 항상 제기되는 이슈는 건강 돌봄이다. 그리고 나는 가서 모든 사람들의 건강 돌봄 필요성(단일보험 체제)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당신이 부부생활의 권리를 얻는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것에 감사한다. 에이즈 운동에서 나온 이슈는 단지 결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건강 돌봄을 위한 싸움이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가 항상 법적 차별에 반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결혼 권리를 이성애적 독점을 끝내기 위해서만 지지한다. 그것의 다른 측면은 결혼 권리에만 노골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이 낳을 비용이다. 인구의 한정된 부분에 대한 작업장 복리후생에 관한 것이라면, 많은 퀴어 혹은 단순한 커플들이 있는데, 그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이득을 얻지 못한다. 그것은 지금 많은 노동자들에게 해당된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부부의 권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할 보편적 권리라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는 단일보험 의료 서비스 덕분에 미국보다는 캐나다에서 그것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두 나라 사이의 차이점 중 주목할 만한 것은, 단순히 미국의 건강 돌봄 비용은 고용주들이 가족에 대한 지원을 추가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캐나다 노조가 미혼 게이 커플에게 동성 직장 혜택을 얻어주는 것이 더 쉬웠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것은 건강 돌봄에 관한 것이고, 부부간의 문제가 아니라 성적인 자유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커플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과 성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은 서로 다른 선호와 욕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성 해방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동의하는 한, 원하는 것을 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해 파트너와 솔직히 말을 하기 어려운 섹슈얼리티에 대한 수치심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 성적인 이미지는 모든 광고판, 모든 자동차 광고 등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섹슈얼리티와 실제로 그들이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침묵한다. 어떤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락커룸 허세는 있지만, 그건 정말 섹슈얼리티에 대한 것이 아니라 타자의 정복에 관한 자랑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이득을 보았지만 성적인 개방성, 낙인 없애기, 선택들과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실제로 달성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이 인터뷰를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퀴어 정치에 대해 매우 주저하는 듯한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적 태도들을 뒤로 밀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재 사람들은 퀴어 이론을 통해 나온 많은 개념들에 대해서 반대한다. 퀴어라는 단어, 특권의 개념,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명확하게 기술되지 않은 많은 도전적인 개념들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섹슈얼리티에 대해 일종의 긴장이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무엇이든 달라지길 바라는 것이다. 당신은 그것에 대해서, 그리고 이 부분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대해서 코멘트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최근에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에 관한 쉴라 로보썸(Sheila Rowbotham)의 책을 읽고 있었다. 그들은 1800년대에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간주했고 더 나은 세상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은 물론 일부 남성들도 지금 우리가 해방 투쟁이라고 부를 성정치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들 중 몇몇은 동성애 실천을 분명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진정한 성적 자유가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운동 내의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20세기에 걸쳐 점차적으로 밀려났다. 마르크스주의와 성적 해방이 새로운 만남의 장소를 찾아낸 곳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계급작업장이라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경제적 범주의 해석이 많았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이 생산 지점, 즉 작업장에서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 강박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힘의 원천이라는 것은 사실이고 나는 총파업의 힘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가 일터에만 집중한다면, 거기서 섹슈얼리티는 크게 배제될 것이다.

 

기껏해야 마르크스주의의 더 나은 목표는 성적 자유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최상의 생각을 채택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확실히 사회주의자이고 퀴어 운동가로서의 나의 시대였던 20세기를 거치면서, 사회주의 퀴어 운동의 기록을 돌아보는 나의 견해로는 그것이 대체로 기존 운동의 자유주의적 좌파들에 대한 최고의 지식을 습득하면서 자유주의적 정치 실천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퀴어 운동으로부터 배운 것 중 하나는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서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빠져 있다. 우리는 가장 앞장서서 누가 소외되고 왜 탈락했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려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돼야 한다. 어떻게 "게이"가 인종 차별의 양식으로 작용하는가? 백인들이 더 많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누가 게이나 레즈비언으로 간주하고 그것이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전체적인 정의와 관련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또는 넓은 의미에서 사회주의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 일과 가정의 분리가 '게이'가 하나의 범주로 존재하기 시작하는 방식의 일부라면, 그것은 이 범주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질문들이 있다. "직장은 왜 그렇게 젠더 규범적인가?" "특정한 작업장들이 왜 아주 노골적인 종류의 남성성을 통해서 굴러가는가?" 그것은 단순히 "그 놈들이 그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특정한 방식으로 젠더화된 행동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지키게 하도록 작동하는 작업장의 동역학은 무엇일까?

 

사회주의자로서 우리가, 우리의 도구들이 배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우리가 퀴어 이론과 반인종주의 이론, 페미니스트 이론들을 활용하는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다. 이것은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가의 문제다. 소외와 결속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 인간이 세계에 우리의 발자취를 남김으로써 번성한다는 관념은 왜 젠더 체제가 지속되고, 왜 오로지 균열(쾌락주의의 배제, 의무로서의 일, 인생에서 즐거운 측면을 몰아내기에서 작용하는 것) 속에서만 섹슈얼리티가 일어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며 젠더와 성적 해방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도구들이다.

 

그것은 조직에서 흔히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종류에 도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만 하고 놀지 않는 것은 사회주의를 따분한 것으로 만든다." 마치 자본주의가 단순히 경제적 관계의 집합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상호관계의 집합으로서도 존재하는 것처럼 작업장과 경제에 대한 많은 집중은 사회주의를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게 한다. 새로운 좌파를 건설하기 위해 활성화할 부분은 그런 흥분을 회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혁명이 진정으로 가져올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사회주의와 퀴어 행동주의가 어떻게 협력하고 있으며, 그러한 것들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할 수 있도록 어떻게 서로에게 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는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사회주의적 사고는 혼종적 사고라고 믿게 된다. 그것은 순전히 "사회주의자"만 아니라, 투쟁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론, 생각, 행동, 그리고 세상이 그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깊은 관여를 포함한다. 사회주의의 "퀴어화"는 젠더와 성적 해방의 영역뿐만 아니라 노동에 대한 접근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회를 제공한다. 바로 지금의 퀴어 이론에는, 도전하는 퀴어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비퀴어적인 성적 관계의 지배적인 세트에 대항하여 행동한다. 그러나 영구적인 도전은 불만족스러운 종류의 것이고, 사회주의는 우리가 도전에서 변혁으로 나아가는 것을 도울 수 있다. 목표는 모든 관계를 새로운 자유의 영역으로 바꾸는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퀴어가 무엇인지 모르게 될 것이다.

 

덧붙여 퀴어들, 사회주의자들, 반인종주의자들이 함께 이제 서구 제국주의의 패권 전략의 일부로서 "게이"라는 생각이 어떻게 전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할 수 있다.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것이 "게이"에 대해서 배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세상의 다른 모든 종류의 동성애적 실천이 포착되지 않거나 혹은 덜 중요한 형태, 즉 아직 나오지 않은 섹슈얼리티의 형태로, 그리고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불균형한 백인층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는, 자칭 게이와 레즈비언의 특정한 종류로 보여지는가. 사회주의는 몇 가지 해석 수단을 제공하지만, 그것들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처음 정치에 들어섰을 때는 그저 재미있었던, 이런 즐겁고 도전적이며 배짱 좋은 해방운동은 어떨까. 더럽고, 고약하고, 기념할만큼 재미있었다. 그런 종류의 운동 기풍을 어떻게 사회주의로 끌어들일 것인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강력한 도구들의 묶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지루한 의무에 대한 것, 다른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범죄와 정치적 일탈에 대해 탐탁지 않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놀라운 축복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될 수 있는 것,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 그것을 부수고 나가는 모든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퀴어, 사회주의자, 반인종주의자를 모으면 우리는 그 모든 것이 어떻게 시작될 수 있는지를 지적하기 시작할 것이다.

 

(기사 등록 20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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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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