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사회주의를 퀴어화(Queering) 하기 - 1

사회주의를 퀴어화(Queering) 하기: 앨런 시어스와의 인터뷰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운동의 성과에 대한 공격과 함께 미국과 주요 선진국에서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들의 결혼과 시민권의 진전을 목격했다. 평등에 대한 많은 법적 장벽의 해체를 축하하면서도 이런 변화가 젠더와 성적 자유에 대한 급진적 사고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생각하기 위해서 퀴어 운동가, 작가, 사회학 교수이며 성소수자인 앨런 시어스(Alan Sears)를 인터뷰한 글이다

시어스는 <매끄러운 세상 속의 퀴어 Queer in a Lean World>, <퀴어 반자본주의: 레즈비언과 게이 해방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등의 저자이다. 20136월에 실시된 이 인터뷰는 동성애 해방운동의 역사, 주류 동성애자 권리와 급진적인 퀴어 운동 사이의 분열, 자본주의에서 젠더와 성 정체성의 구축, 사회주의와 젠더 정치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분량이 길어서 일부 부분은 생략해서 번역하면서 2번에 나누어서 싣는다. 이번 글은 첫 번째이다.(번역: 두견)

 

출처: https://newpol.org/queering-socialism-interview-alan-s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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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자본주의에서 젠더와 성 정체성이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자본주의적 노동이 어떻게 조직되는지와 큰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쓴 당신의 작업에 대해 물어보려고 한다. 나는 당신이 이것을 해낼 수 있기를 바랬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아이디어고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퀴어 이론의 만남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게이는 역사를 통해 항상 존재해 왔다"는 주문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정말 다르게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드디어 나올 수 있는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좀 더 미묘한 말을 하고 있다.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게이"라는 생각은 부분적으로 인권을 법으로 보장받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며, 그 부분은 일리가 있다. 시스템을 뒤엎기 위해 운동을 건설하면서 차별과 싸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전혀 선택이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태어난다"는 주장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고유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마치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지는 고유한 권리의 영역 밖에 있고, 따라서 법적 도전과 같은 것 밖에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의심스러운 정치적 구분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삶에서 하는 선택과는 반대로 여러분이 가지고 태어난 것만이 여러분에게 권리를 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정말 나쁜 인류학이고 인간의 성에 대한 매우 역동적이지 않은 관점이다. 1800년대에 생겨난 용어일 뿐인 지금 우리가 '이성애'라고 부르고 있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시간을 관통해서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배열에는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이성애자 혹은 본질적인 동성애자라는 생각이 그 중심에 있었다. 마침내 현대 북미에서 우리의 다양한 성애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을 때까지,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꽤 잘못 이끌려진 것처럼 보인다.

 

이것에 관한 최고의 작품들은, 내가 John D'EmelioBarry Adam을 통해서 처음 발견했는데, 기본적으로 "무엇이 바뀌기 시작했는가?"라고 물었다. 그것은 1860년대에야 '동성애'라는 용어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진작 그 말이 필요하지는 않았을까? 확실히 동성간의 관습은 이미 있었다. 인간 사회의 거대한 다양성은 모든 종류의 형태를 취해온 동성애적 관행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헌신적이고 변치 않는 동성애 수행의 일종의 '항상적''동성애자'라는 단어는 오로지 1860년대에 단어로 생겨났을 뿐이고,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그때까지도 항시적 동성애는 실제로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동성간의 관습은 많았지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의 젠더나 다른 한 사람을 향한 기본적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대부분 자본주의의 등장과 일과 가정생활의 분리와 함께 가능해졌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살아있게 하고, 새로운 삶을 유지하며, 정서적인 필요를 돌보고, 몸을 씻고, 휴식을 취하는 이러한 관계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 대부분의 노동관계와는 다른데, 거기서 우리는 나머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돈을 번다. 우리 대부분은 일하러 나갔다가 집에 온다. 일단 그러고 나면, 가정에서의 관계는 여러 가지 다른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이전에는 불가능했을 탐험을 위해 만들어진 어떤 종류의 공간이 있다.

 

기본적인 자본주의 구조는 새로운 종류의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푸코는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러한 맥락에서 섹슈얼리티의 부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푸코는 그것의 자본주의적인 성격을 훨씬 적게 보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일과 가정의 분리를 주목한다. 이제, 정부와 국가 정책 입안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나쁜 것이었다. 1840년대와 50년대의 영국에서는 이런 "근로 계급의 조건"에 대한 보고서가 있었는데, 국가 관료들은 소위 빈민굴에 들어가 노동자들 사이의 도덕관념 상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매우 걱정했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의 관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잡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동성애를 금지하고 학교 등을 통해 섹슈얼리티와 젠더적 습성을 규제하는 것이었다. 1880년대에는 영국이나 영국의 뒤를 따르던 캐나다에서 남성 동성애를 불법화하게 된다. 여성의 동성애 행위나 레즈비언니즘은 기본적으로 불법이 아니었다. 이것은 의회가 여성들이 서로 간에 성애를 가질 수 있는 충분한 섹슈얼리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조치가 아니라 성적인 주체로서 여성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었다. 자본주의의 부상은 특정한 가능성을 만들었지만 또한 국가의 관점에서 다른 종류의 제약조건들을 만들어냈다.

 

20세기를 통해서 오늘날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동성애자 권리 운동과 게이와 퀴어 사이의 표시를 구별하기 시작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가 바로 전후 협정과 가족 구조의 변화인 것 같다. 당신이 우리를 위해 그것을 돌아봐 줄 수 있는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새로운 사회체제가 발달하면서 일어난 일은, 비록 전후 합의가 모두를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노동계급의 층위 내에서 특정한 가족 형태가 새로운 방법으로 안정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것은 엄청나게 젠더 규범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급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대거 참여했던 일종의 성적 패닉이 있었다. 그 후 엄청나게 억압적인 시기가 있었다. 캐나다에서, 그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게이나 레즈비언으로 식별한 사람들을 시민적 권리로부터 추방하는 형태를 취했다.

 

동성애자인 사람들이 러시아로부터 공갈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 냉전시대에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처럼 캐나다에서 주요 보안 업무를 담당한 경찰인 왕실 캐나다 기마경찰은 실제로 동성애 공무원을 식별해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과일 머신을 발명하려 했다. 전후 시기의 첫 번째 영향은 이성애 규범적 가족 형태를 강요하고, 노동자들이 획득한 증가된 소득, 지원, 사회보장을 이용하여 노동계급의 일부, 불균형적으로 백인들 사이에서 가족의 매우 구체적인 모델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였다.

 

여성해방 운동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도중에도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60년대에 여성들은 상당히 단호하게 이것을 위해 동원되었고, 전후의 안정화가 가족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여성운동의 부상, 그리고 블랙파워 운동의 시작은 새로운 모델과 사고방식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는데, 게이들은 그 전에 아주 적은 수의 정치적 게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이 정치적 억압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공동체의 사람들은 단지 이것이 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그것은 전후에 발전된 지배적 규범의 형태에 대항하여 싸우는 운동에 의해 정치화되었다. 거기에는 가족형태에서 약간의 개방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 운동에 의해 궁극적으로 달성된 것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한계를 깨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해방에 관한 것이기 보다는 부부생활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성적 해방보다는 부부의 권리에 대한 것이었다. 전체 운동은 구매와 생활방식 등으로 정의되었고 자본주의는 이런 결과에도 영향을 끼쳤다.

 

당신이 어디서 그것을 끝맺는지 흥미롭다. 왜냐하면 나는 게이와 레즈비언 정체성의 상업화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라이드 행사가 있는 달 동안에, 나의 일부는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퀴어로서 흥분해 있지만, 그리고 나서 나는 행사에 가서 수많은 기업들이 '당신의 게이 정체성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게이 상품을 사라"고 하는 메시지를 본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여전히 그 권리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동성애 정체성을 상품화하는 것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가? 자본주의가 어떻게 동성애자나 퀴어의 대다수를 여전히 배제하면서 적응하기 위해 변화할 수 있는가?

 

토론토 프라이드 행진의 새로운 최저점이라는 점에서, 올해 북미에서 가장 큰 3개 행사중 하나인 프라이드 토론토 집행 책임자는 온갖 프라이드 표지들과 함께 토론토 증권거래소를 열면서 종을 울렸다. 그것은 정말로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의 표시였다. 나는 초기의 토론토 프라이드 행진들에 참가했었는데 그것은 무서웠다. 공격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느꼈고, 사람들이 물건을 던지고, 많은 경멸에 노출됐고, 우리는 극소수였다는 것을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때는 상당히 위압감을 느꼈다.

 

집단행진을 제외한 모든 것이 그 당시에 행해졌다. 그래서 겁먹은 작은 모임에서 토론토 공동체의 거리를 가로지르는 이 축제로의 변화를 보는 것은 놀랍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에 대한 흥분이 있다: 나는 비록 퀴어에 대한 비난이 계속되고 있고, 폭력이 사라지지 않았고 사람들이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하지만, 축하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변화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문제는 어느 지점에서는 질문될 필요가 있는데, 사실상 변화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운동들이 뒤로 밀려난 상황에서 우리가 이득을 본 것은 왜일까?

 

차별 예방 조처, 낙태 권리, 그리고 이주민들은 엄청난 공격에 직면했고 상황은 잔인해졌다; 노동조합은 공격을 받고 있고 노동자들은 모든 종류의 성과들을 내놓고 있다. 노동기본법도 후퇴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전진했을까? 그 이유 중에 일부는 사람들이 싸웠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저항하고, 분노하고, 동원되면서 차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우리가 얻은 것은 돌이켜 살펴보면, 대체로 자본주의와 가장 양립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우리가 싸우고 있던 모든 것들 중에는, 일반적으로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실질적인 방법으로 전반적으로 개방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기술적 의미와 창의적이고 소외되지 않는 활동적 감각 모두에서 유희의 영역을 가질 수 있어야 했다. 대신에 일어난 일은 우리가 가장 체제와 양립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는 것이다. 결혼으로 공식적으로 일부일처제가 되어가는 부부생활, 작업장에서의 어떤 혜택들(그것은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내기에 싸워야만 한다)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우 특정한 상품들의 소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나타낸다는 생각이었다.

 

여러분은 옷과 헤어스타일에 따라서 특정한 장소에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저소득층의 사람들을 배제한다. 그들은 퀴어를 눈에 띄게 드러낼 수 없다. 종종 유색인 사람들은 배제된다. 왜냐하면 그 상업화의 성격은 종종 매우 분명한 방법으로 백인중심적으로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많이 얻은 것 같지만, 우리가 얻은 것이 이 체제에 알 맞는 비교적 쉬운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훨씬 더 많이 분열시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잠재적으로 제한한다.

 

<2편으로 이어짐> 


(기사 등록 20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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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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