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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에 관한 7가지 테제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12. 12.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 논쟁2

-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에 관한 7가지 테제

  

마이클 A 맥카시(Michael A. McCarthy)

번역: 두견

 

 

[근래 미국에서는 좌파진영을 중심으로 사회변혁의 전략에 대한 논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여성차별, 인종차별, 환경파괴 등에 맞서는 다양한 운동들의 성장, 노동자 파업 물결의 부활, 버니 샌더스와 민주적사회주의자들(DSA)의 급부상 등이 이런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그런 논쟁의 일환으로 자본주의 국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몇 번에 나누어 소개한다. 첫 번째 글은 데이비드 맥낼리(David Mcnally)가 쓴 마르크스주의와 국가에 대한 글이었다.(https://www.anotherworld.kr/746) 이어서 마이클 A 맥카시(Michael A. McCarthy)의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과 기능에 대한 7개의 테제를 싣는다. 마이클 A. 매카시는 미국의 사회주의자이며 마르케트(Marquette) 대학의 사회학과 조교수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는 무엇이고 그것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좌파는 일반적으로 국가는 계급 지배의 도구이기에 그것을 "분쇄"해야 한다고 봤거나, 사회민주주의에 따라서 올바른 사상을 가진 공무원에 의해서 운영될 수 있는 중립적 수단으로 보았다. 마이클 A 맥카시(Michael A. McCarthy)는 둘 다 틀렸고 우리는 국가에 대한 완전한 민주주의적 이해를 위해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의 후기 작업을 다시 한 번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처:

https://www.versobooks.com/blogs/4308-seven-theses-on-the-capitalist-democratic-state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는 무엇이며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이 문제는 여러 세대에 걸쳐 좌파를 괴롭혀 왔다. 한편, 올바른 사상을 가진 관료들에게 포획되고 사용될 수 있는 중립적 기관으로서의 국가라는 사회민주주의적 관념은 사회주의 통치의 실험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자본가들의 사적인 권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적 반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른 한편, 국가를 "분쇄"해야만 하는 계급 통치의 도구로서 생각하는 개념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 계급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혁명적 투쟁을 수반한 상대적 후진국에서는 상명하달식 권위주의적 형태의 정치권력의 수립이 그 장기적 결과였다.

 

비록 포괄적이기보단 예비적이고, 상당 부분 다른 사람들의 성찰로부터 도출되긴 했지만, 여기서 나는 사회민주주의와 혁명적 모델 모두를 깨뜨리며, 일반적으로 니코스 풀란차스의 저작들과 관련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제3의 접근법을 개발하기 위한 일곱 가지 테제를 제시하고 싶다.

 

테제1: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는 중립적인 경기장이나 단일한 주체가 아니라 느슨하게 상호연결된 일련의 기관들로서 투쟁의 장소이다.

 

단지 중립적인 기관들의 총체로서 국가라는 사회민주주의적 논의와 자본주의 계급 지배의 도구로서 국가라는 혁명적 논의, 둘 다와 다르게 자본주의 국가는 모순된 사회적 관계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물건/기구가 아니며, 그 자신의 이미 정해진 조직적이고 공동의 이해를 가진 단일한 주체도 아니다. 또한 그것은 일단 노동계급의 힘이 그 밖에 충분히 축적되고 나면, 어떤 거대한 최후의 전투에서 모조리 부숴져야 할 인류의 민주주의적 본질에 포개진 소외된 사회정치적 형태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자본의 논리 자체의 파생물로 생각할 수 있는 정치적 형태도 아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는 자본 자체가 사회적 관계라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에서 사회적 관계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그것의 기관들을 통해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힘을 가진 활동적인 물질적 힘의 정치적 표현이다. 계급투쟁의 관계가 모두 국가에 의해 구성되고, 그 지형을 횡단하여 내적 모순을 생산하고 해결하는 자본주의 민주주의에서 국가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그에 대한 명확한 사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의 국가기관들은 사회에 지속되는 사회적 계급들 간의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이 견해의 결론은, 우리가 아래에서 보게 되겠지만,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의 제도에는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위해 작동하는 깊은 편향들이 존재하지만, 그러한 편향들은 민주주의 세력들이 같은 지형에 대항할 기회와 공존한다는 것이다.

 

테제2: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는 어떤 특정한 계급이나 계급의 일부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이것은 국가의 손이 그 주인을 공격할 수 있는 항상 존재하는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국가의 능력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것에 의해 조건화되지만, 단지 그것들에 대한 환원이거나 부수적 현상인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의 구조와 이러한 관계에 대한 그것과 밀접히 연결된 통치는 자본주의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한 정치적 전제조건을 확립한다. '상대적 자율성'은 대개 더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위해 봉사하는 '기능'의 관점에서 탐구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가지고 상대적 자율성을 설명하는 것은 신비화하는 생각이다. 사물의 기능은 처음부터 왜 그것이 그런 식으로 기능하게 되었는지 또는 왜 그 기능 자체가 재생산되는지와 흔히 꽤나 구분된다.


그보다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완전히 역사적이고 발달에 따른 이유로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어리석은 자본가 계급에 의해 완전히 사로잡혔고, 그들을 이익보다는 자본가들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으며, 그리고 자본주의 성장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운영된 직접적 결과였다. 가장 발달된 자본주의 국가들도 역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것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특정 자본가와 이런 거리가 없다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는 자본주의적 성장을 위해 그만큼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자본가들에게 붙잡힌 국가는 두 가지 기본적인 제약에 직면한다.

 

첫째, 자본가들은 자본주의를 번성하게 만드는 사회적 투자에 관여하기에는 너무 근시안적이고 즉각 이윤을 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만일 자본이나 자본가가 국가를 도구처럼 휘두른다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들은 상업과 이윤 증대를 돕는 인프라, 연구개발, 교육에 대한 지출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 자체가 너무 자기파괴적이어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 번창할 수가 없다. 경쟁, 수익 감소, 수요의 위기, 사회적 위기는 특정 자본가 계급 분파의 즉각적인 단기적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자본주의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정치적 권위에 의해 모두 더 효과적으로 관리된다.

 

많은 경우에 민주주의는 이처럼 거리를 둔 통치의 생성에 필요한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그러나 중국의 엄청난 부상이 너무나 잘 보여주듯이 상대적 자율성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도 확보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도 존재하는 중대한 모순, "프랑켄슈타인 문제"라고 불릴 만한 모순으로 이어진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가 자본주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정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자본주의를 해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자본을 위해 운영되는 경향이 있지만, 동시에 한때 개별 자본에 맞서서 자본주의을 재생산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정책적 도구들이 그것을 휘두르는 자본가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다.

 

테제3: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가 전반적으로 상대적 자율성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지만, 자본가들은 여전히 그들의 자원을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데 사용한다.

 

상대적 자율성은 정치 기관과 행위자들이 외부의 기업과 지배력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가능한 포획의 대상이며 자본가들은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소비한다. 자본가들은 사회의 핵심 자원, 즉 부를 장악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을 파악하라고 촉구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것에 대한 통제가 집중된다.

 

전쟁의 참화나 복지국가의 확장이라는 대항력에 의해 완화되지 않는 한 소득과 특히 부의 불평등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기록에서 드러났다. 자원의 불평등은 자본가들에게 정책입안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더 큰 능력을 준다. 그들은 법적 인재를 고용하고, 캠페인에 기부하고, 조율된 로비력을 발전시키고, 기술적 컨설턴트를 고용하고, 사회적 위신을 높이고 유권자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를 재구성함으로써 정치적 통제와 영향력 둘 다를 위해 집중된 자원을 더 잘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자원은 또한 자본가 계급에게 다른 계급들이 쉽게 가지지 못한 네트워크화된 지위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들은 정책 입안자들을 위한 정책 문서를 작성하는 것을 돕기 위해 싱크탱크나 연구기관에 관여하는 것을 이용하게 해주는 정책입안 과정의 고정물이다.

 

그들은 또한 정치인들과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의 아이들이 같은 엘리트 학교에 다니고 같은 장소에 휴가용 별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추가적인 정치적 능력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물질적 자원과 사회적 자원의 조합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를 일반 노동자보다 자본가들에게 더 쉽게 가로지를 수 있게 만든다.

 

테제4: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의 관료들과 선출직 공무원들은 자본주의의 재생산에 의존하고 있다.

 

심지어 돈과 연줄로 인한 종류의 사건들이 정치판 전체에서 사라지더라도,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서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자본가들의 경제에 대한 투자에 의존할 것이다. 비록 자본주의적 노동은 비민주적이고 착취적이며 노동자들에게 좌절감의 원천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살아남을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은 "이중적 의미에서 자유롭다"는 말을 기억해보자. 옛말에 이르기를 노동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노동하지도 못하는 것밖에 없다.

 

최저생계에 대한 걱정에서 자유롭다면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다른 곳에서 일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노동을 그만둘 수 있다. 역사적으로, 자본가들은 이런 출구의 선택지, 즉 노동하지 않아도 삶을 더 쉽게 유지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해 필사적으로 싸워왔다. 실행 가능한 출구의 옵션이 없다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의 복지는 회사의 복지에 직접적으로 달려있다. 새로운 배출 규제 때문에 회사가 공장을 이전하면서 도시의 주요 수입원이 줄어드는 것을 생각해 보자.

 

더 큰 규모로 볼 때, 만약 사업 환경이 틀어져 자본가들이 투자를 철회하게 된다면 경기 침체를 야기시킬 수 있다. 그 결과는 모든 사람들이 자본의 옆에서 고통 받는다는 것이다. 투자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기업이 경제력을 행사하는 주된 방법일 뿐만 아니라 기업의 정치적 힘의 주요 원천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은 모두 투자 중단과 회수를 예상하고 반응하며 이를 방지하려 할뿐만 아니라 자본가들에게 투자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좋은 곳이라는 확신을 적극적으로 높이려 한다.

 

종종 그렇기는 하지만 이것은 단지 정치인들이 자본주의에 이데올로기적으로 헌신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대신에 기업의 이익에 너무 깊이 반하는 정책을 내놓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기업들은 투자를 중단하고, 국가는 세수를 잃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고, 다음 선거 주기가 다가 올 것이다. 만약 그들의 정부가 그 전에 붕괴되거나 쿠데타로 무너지지 않는다면, 그러한 정치인들은 투표로 물러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의 이런 결정적 측면은 자본주의의 수익성에 내재된 편향으로서 단순히 국가 내의 인사들을 사회주의자로 대체하는 것으로는 피할 수 없다. 자본가들은 경제에서 구조적 우월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투자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높은 지위를 가지면서, 기업들이 단순히 시장의 신호에 따르는 방식으로 투자를 할당하더라도 그것은 종종 정치를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공동의 투자 파업 때처럼 의도적으로 이런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의도하지 않더라도 정치적 결과는 거의 같을 수 있다.

 

테제 5: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는 자본주의의 축적과 재생산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정당성을 창출해야 하는 모순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자본주의적 투자에 대한 정치인들의 의존과 정치에서 기업의 영향력이 현저한 역할 때문에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들은 자본가 계급의 정치적 헤게모니의 조직화를 돕고 노동계급의 헤게모니를 방해하고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는 보통의 시기에 자본주의 축적을 위한 어떤 길을 가장 장려할 것인가에 대해 자본가들이 싸우고 정책입안자들이 유도하는 장이 된다. 비록 폭력이 국내외의 주민에 대한 국가의 통치 기법에서 핵심적 부분이지만,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들은 또한 착취당하고 빼앗기고 강탈당한 사람들의 동의나 체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급들 사이의 사회적 평화에 의존한다.

 

우리는 이 동의나 체념을 국가의 정통성의 주요 원천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이것은 주로 대중의 묵인이나 선거적 안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 어떤 정해진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주민들이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박탈하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혼란(시위, 행진, 파업, 반란) 또 하나는 선거(정치인들은 투표로 물러나게 할 수 있다)이다. 이른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와 정당 체계는 정부가 "국민"에게서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선언하는 핵심 수단이다.

 

그러나 자본축적에 대한 관리는 때때로 정통성을 확보해야만 하는 의무와 모순되는 경우가 있으며, 종종 후자는 전자를 위해 희생된다. 정통성의 위기는 낡은 헤게모니 질서가 무너지고 한때 정치인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상식이 대중의 경멸을 받을 때 일어난다. 역사적으로 이것은 두개의 길 중 하나를 택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의 현장에 새롭게 나타난 멍든 옹호자나 후원자에 의해 구질서의 정당성이 회복되거나, 또는 다른 지배의 원칙들이 그 자리에 슬그머니 앉혀진다. 그러한 위기의 맥락에서, 기대는 유동적이고 한때 좌, , 또는 둘 다의 여백에 있었던 사상과 실천에 대한 새로운 공간은 열려 있다. 오늘날 선진적 자본주의 민주주의들은 이제 그런 정통성 위기에 깊이 휘말려 있다.

 

테제 6: 정당성 위기의 맥락에서 계급투쟁은 노동자의 능력, 연대, 권력의 핵심 원천인 새로운 법, 권리들, 프로그램을 낳았다.

 

이러한 일반적 조건들은 보통 시기에 국가의 기본적 운영을 설명하는 경향이 있지만,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의 특정한 형태는 다양하다. 그 형태는 계급투쟁과 그 제도적 지형에 각인된 정치적 조직의 역사를 반영한다. 노동일의 길이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이 그것에 대한 승리를 얻을 때,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살아가는 조건을 바꿀 수 있다. 이러한 이익은 노동일 길이나 작업장에서 얻는 다른 이익이나 혜택과 더욱 마찬가지로 자본에 의한 잠식과 국가 강제의 침해에 맞서 지속적으로 방어되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 자체에 대한 또 다른 모순도 나타낸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는 노동계급 운동을 분쇄하도록 이끄는 자본주의적 제약에 직면한다는 것과 법률, 정책, 조직할 수 있는 권리는 노동계급의 힘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동시에 모두 사실이다.

 

만약 국가가 단지 노동계급의 능력을 해체하고 약화시킨다면, 그것은 그 영역 안에서 어떤 종류의 개혁이든 목표로 하는 노동자들의 이익에 역행하여 움직일 것이다. 국가에 대한 이러한 지나치게 단순한 비변증법적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개혁들은 그들이 공식적인 정치적 과정에 손을 대는 순간 자본의 목적을 위해 꼬이고 뒤틀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으로 광범위한 이익에 걸쳐 있는 경우가 아니었다. 일부 자본주의 국가들이 비록 한정적이고 제한된 방법이지만 튼튼한 복지를 제공하고 노동자의 대표성을 인정한 것은 개혁이 단순히 반동에 직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19세기와 20세기 동안의 노동계급 투쟁은 자유주의적 권리의 강화와 민주주의적 관행의 도입뿐만 아니라 현대 복지 국가의 출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중에는 보편적 참정권과 언론과 결사의 자유, 그리고 미국에서는 노예제 폐지가 있었다. 이러한 성과들 중 일부가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가 단지 억압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야누스 얼굴의 또 다른 측면은 상대적인 권한 부여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테제 7: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기관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그것을 국면에 따라 분석해야만 국가를 전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주 간단히 말해서,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의 정도는 시간에 따라 그리고 기존의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가변적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에 대한 초역사적인 이론적 선언은 매우 높은 추상 수준의 이론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무언가 정치적 행동을 알려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익집단에 의한 국가의 포획 범위와 자본의 일부나 특정한 자본가들과 국가의 구조적 의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면적 분석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자들은 정치에 대한 어떤 전술적 접근도 그러한 국면적 분석을 통해 직접 알아내야 한다. 오직 의미 있는 국면적 분석만이 주어진 역사적 순간에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

 

국가에 대한 국면적 분석은 공공 고용과 관련된 경제에서 자본의 구조적 두드러짐, 자본의 특정 부문의 구조적 중요성, 특정 기업의 구조적 현저함 등을 고려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특정 직책과 국가 기관이 한 계급 또는 다른 계급을 대표하는 정도, 그러한 기관들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기구와 기관을 지배하는 위치를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가 차지하고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부는 국가 통치의 정당성과 대중적 정서의 변화를 적절히 측정해야 한다.

 

어떤 주어진 국면에서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 실제로 수행하는 것은 자본에 대한 구조적 의존성의 문제와 사회와 응축된 실제 정치적 제도 안 모두에서 계급세력의 균형일 것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가 구조적으로 자본주의와 정치적 정당성을 위해 통치하도록 강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정책입안자들이 연구, 평가 및 숙의를 통해 확인하는 두 가지 과제 모두에 상당히 부합하는 통치 옵션의 메뉴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국면에서, 유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경쟁적인 정책 경로의 범위가 있을 것이다. 선택된 특정 경로는 국가 기관 안팎의 계급 세력 균형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계급 세력의 균형은 자본가의 직접적 힘과 한편으로는 경제에서 자본의 구조적인 두드러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착취, 수탈, 강탈당하는 사람들의 힘 모두에서 깊은 가변성을 가리킨다.

 

경제의 구성이 자본주의적 기업의 고용에서 공공 일자리와 작업장 민주주의로 옮겨갈수록, 민중이 국제적 금융의 제약에 덜 의존하고 제국주의적 국제 관계의 방식에서 자유로워짐에 따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른 계급에 비해 상대적인 자본의 구조적인 힘은 약화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국가가 단순히 중립적이거나 전면적으로 분쇄돼야하는 사회적 힘이라기보다는, 그 대신에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조직되고 도전 받고 변형되어야하는 심하게 편향된 제도의 집합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기사 등록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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