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미국에서는 좌파진영을 중심으로 사회변혁의 전략에 대한 논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여성차별, 인종차별, 환경파괴 등에 맞서는 다양한 운동들의 성장, 노동자 파업 물결의 부활, 버니 샌더스와 민주적사회주의자들(DSA)의 급부상 등이 이런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그런 논쟁의 일환으로 자본주의 국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몇 번에 나누어 소개한다. 첫 번째 글은 데이비드 맥낼리(David Mcnally)가 쓴 마르크스주의와 국가에 대한 글이다. 그것을 논평하며 반박하는 마이크 맥카시(Mike McCarthy)의 간단한 글도 첨부했다. 맥낼리는 캐나다 ‘뉴 소셜리스트’(New Socialist)의 주요 활동가이면서 세계 경제, 여성 억압, 변혁운동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많은 책과 글을 쓴 학자이기도 하다. 마이크 맥카시(Mike McCarthy)는 미국의 사회주의자이며 학자이다.(번역: 두견)]
출처:
https://socialistworker.org/2019/03/11/should-socialists-want-to-keep-the-state
파리 꼬뮌과 바리케이드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 다시 한 번 좌파의 여러 곳에서 냉대를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해졌다. 때때로 이런 냉대는 국민 국가에 대한 대대적인 정치적 협상으로 숨겨진다. 예를 들어, 좌파이면서도 국경 개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괜찮은" 이민 통제를 위한 일종의 겉보기에 "좌파"적 주장을 몰래 들여온다.
그러나 이를 넘어, 좌파에는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을 '공상적'이라고 비난하는 새로운 '현실주의'가 있다. 이러한 주장은 종종 일부 국가 서비스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도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를 "분쇄"해야 한다는 비유를 공격한다.
이 경우에, 우리는 신용을 떨어뜨리려는 나쁜 믿음의 시도보다는 어떤 근본적 개념에 대한 진정한 지적 혼란을 다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선의로 이 토론에 개입한다는 정신으로 마르크스주의와 국가를 주제로 다음과 같은 노트를 썼다.
민주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점
국가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접근은 급진적으로 민주주의적인 약속에 몰두하고 있다. 일찍이 1843년에 마르크스는 헤겔의 국가 철학에 대한 비판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즉, 급진적이고 직접적이며 참여적인 민주주의)가 "특수와 보편의 최초의 진정한 통일"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줬다.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대조적으로, 현대 사회의 국가는 추상화된 사회적 힘, 민중의 통제 밖에 있는 힘, (시민에 대한 권위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관계속에서)그것과 대립되며 위에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소외된 노동(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예측하면서 어떻게 인간의 창조물인 국가가 창조자들을 지배하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국가의 소멸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현대에 프랑스인들은 이것을 진정한 민주주의에서 정치국가가 사라진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그는 쓰고 있다.
마르크스는 그의 텍스트에서 '정치국가는 사라진다'는 문구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러한 강조는 국가에 대한 진정한 혁명적 사회주의 접근법의 핵심이다. 자본주의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승리는 정치권력의 탈소외화, 즉 민중의 권력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민중으로부터 분리되고 추상화된 권력으로서 국가의 종말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정치 국가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국가를 파괴하고 대체한다는 모든 이야기는 혁명적인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승리가 국가의 초월을 구성한다는 이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국가에 대한 이 승리는 정치적 소외의 패배, 즉 민중과 시민의 권력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다.
식민주의 및 전쟁에 관한 서론
마르크스의 근대 국가론은 초기 단계에 헤겔의 정치 철학에 대한 비판적 개입을 통해 발전했다. 물론 청년 마르크스는 이미 현대 국가가 새로운 형태의 사유재산의 지배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목재 절도 논쟁에 관한 그의 기사를 참조하라). 그러나 이러한 통찰은 아직 이와 같은 현대 국가의 이론을 구성하지는 않았다.
국가에 대한 헤겔의 교리의 중요성은 고전 정치경제학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과 많은 관련이 있다. 후자를 통해 헤겔은 현대 자본주의 경제가 체계적으로 과잉생산, 빈곤, 식민지화를 향한 팽창의 추진력을 발생시킨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법철학 제2장, 제C절). 식민주의는 헤겔에게 자본주의 경제의 내재된 모순과 적대의 산물이다. 그것은 단지 특정한 정책적 선택보다는 현대 국가의 필수품이다.
그 후 헤겔은 그의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현대 국가의 "개성"을 조사하면서, 그것이 보편적인 법과 세계 평화를 향한 본질적인 추진력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대신에 각 국가는 "다른 국가"에 반대하여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전쟁의 불가피성을 초래한다(권리의 철학, 제3절, 제3절, 제Aiii).
헤겔에게 있어서, 다시 말하면, 이것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국가의 구성적 특징이다. 이에 따르면 식민주의와 전쟁을 향한 추진력은 보통 말하는 현대 국가에 내재되어 있다.(이것은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모든 개혁적 접근에 틀림없이 치명적일 수 있는 인식이다.)
헤겔의 국가 이론(1843년)에 대한 기존 논평에서 마르크스는 이 법철학의 어느 부분도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그것들을 연구했고, 그가 그것들을 고찰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1843년에 그는 아직 고전 정치경제학과 비판적 대결을 시작하지 않았고, 이러한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독일 이데올로기>(1846년)를 쓸 때쯤, 우리는 그가 그것들을 다루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독일 이데올로기> 제1부에서 유물론적인 역사 개념을 발전시키면서 마르크스는 잠시 국가의 문제로 눈을 돌린다. 여기서 그는 현대 국가의 구별되는 특징은 그것이 사회를 초월하거나 그에 맞서는 "독립된 실체"가 되는 형태라는 그의 이전의 주장을 반복한다(그래서 그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그러한 국가의 "소멸"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면서 그는 부르주아적 정치권력은 "내부적 목적과 외적 목적 둘 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조직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우리는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현대 국가는 자본가들의 재산의 사회적 힘을 그 영토 내의 모든 하위 계급과 다른 모든 국가에 대항하여 조직한다고 한다. 현대 국가는 계급적 지배와 국가간 경쟁 관계를 표현한다.
헤겔도 인식했듯이, 국가는 다수 국가의 시스템 속에 존재하며, 이들 국가들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대립적이다. 따라서 현대 국가 권력의 내부적 힘과 하층계급에 대한 폭력은, 그것의 외부적 힘과 폭력만큼이나 고유한 특성이다.
이러한 노선들에 따라, <독일 이데올로기>의 앞선 구절에서, 마르크스는 현대 사유 재산의 체계가 “그 대외관계에서는 스스로 민족임을 주장해야 하며, 내적으로는 스스로 국가로서 조직되어야 한다”고 썼다(<독일 이데올로기>, 제1부: 포이에르바흐, 10절과 11절)
요컨대 현대 국가는 민족국가다. 영토적 구역 내에서 주권적 권력을 투영하는 국가, 다른 민족국가들에 반대하여 스스로를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국가다. 헤겔에게 그랬던 것처럼 군국주의와 전쟁은 현대 권력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뒤따른다. 확실히 마르크스의 식민주의와 전쟁에 대한 생각은 그 시점에서는 전혀 발전되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자본, 원시적 축적, 세계시장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키는 초기 단계에 있었다.
마르크스가 죽은 후 엥겔스는 당대의 유럽 열강들 사이에서 전쟁을 향한 추진력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론 구축에서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와 전쟁에 대한 추진력이 세계체제로서 자본주의의 주축임을 이해한 것은 룩셈부르크, 리프크네히트, 레닌, 그리고 부하린과 같은 사람들의 장점이었다.
잠시, 20세기 초의 좌파 개혁주의에 대한 가장 세련된 시도가 마르크스의 두 가지 주장과 함께 깨졌다는 것을 주목해 보자. 그 점에서 적어도 어떤 (개혁론자들은) 일관성을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 전 독일 사회민주주의에서 당시 "중앙파"의 지도자였던 칼 카우츠키는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를 "사회주의"적 목적으로 사용하자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당이 기존 국가의 "어떤 정치적 부처"도 제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신 전술>) 한마디로 카우츠키는 제도적 변혁이 아니라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일관되게도, 그는 그의 "초제국주의"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그에 따르면 전쟁이 아닌 세계 평화를 향한 추진력이 국제 자본주의의 내재적 논리였다. 그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호소는 "만국의 자본가들이여, 단결하라"와 결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제국주의: Der Imperialismus>, 1913-14).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경향에 대해 그가 제시한 중요한 사례는 미국이었다.(이 영역에서 카우츠키의 주장에 대한 좋은 요약은 마시모 살바도르의 <칼 카우츠키와 사회 혁명, 1880~1938>, 170~200 쪽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앞으로 이 문제들을 좀 더 자세히 검토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자본주의 국가의 어떤 적절한 이론도 국가적 수준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는 '다수 국가들'간의 경쟁의 관점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정확히 그것이 "민족"에 따라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민족국가는 다른 국가에 대한 적대적인 논리를 나타낸다.
물론 이러한 논리는 제국주의와 (탈)식민주의의 세계를 규정하는 지배와 종속의 체계적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매우 차별화된 논리다. 이러한 관계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로 가는 길에 없어질 수 있는 우연한 특징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필수 구성인 것이다.
관료-군사적 국가 vs 급진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지지자들
신자유주의 시대에 좌파의 상당부분의 정치적 지평선이 축소되면서, 그들은 엥겔스가 한때 "국가와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물신적 숭배"라고 불렀던 것의 포로가 되었다.(마르크스의 <프랑스 내전>에 대한 서문, 1891) 이것이 마치 반자본주의적 교두보를 대표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공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무릎반사적 변호로 표현된다.
여기서, 희석된 "좌파"적 사고 방식은 국가 서비스를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데 있어서 주류 언론과 알게모르게 손을 잡는다. 예를 들어, 지난 주 <휴스턴 크로니클>의 한 칼럼니스트는 "미국은 사회보장제도, 의료보험제도 등 몇 가지 사회주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읊조렸다. 이 진술의 부조리함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좌파에게는 이 말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더 이상 당연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국가에 대한 나의 비판에 비추어, 한 비평가는 내가 자본주의 아래서 부분적으로 사회화된 의료를 논리적으로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므로, 무엇이 자명한 것인지를 내가 진술하게 한다.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이와 노동계급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비판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프로그램들을 사회주의적 성과와 혼동하지 않으면서 전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는 근대 국가의 본질적인 반민주적 구성을 주장함으로써 그러한 혼란을 피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공공적 통제를 국가의 소유권 및 방향과 날카롭게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가 1852년에 쓴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라는 글에서 보인 통찰력을 따라갈 수 있다. 이것은 여러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의 한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현대 국가의 숨막힐 정도로 관료적인 성격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이 그것이다. 실제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형태의 정치 권력을 "분쇄"하자는 생각을 소개하는 것은 이 분석 과정에서이다.
<브뤼메르 18일>의 7장에서 마르크스는 당시에 노동자 봉기(1848년)를 진압하고 루이 보나파르트(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증조카)가 주도한 1851년 쿠데타로 통합된 프랑스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으로 시선을 돌린다. 마르크스는 이 국가가 어떻게 집행부의 손에 권력을 거대하게 집중시키는지 지적한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또 다른 50만 명의 군대뿐만 아니라 50만 명의 많은 관료들을 아우르는 넓은 층위와 정교한 국가 기구를 갖춘 거대한 관료적이고 군사적인 조직”이라고 고발한다. 그는 이들 부대와 관료들은 대통령과 그의 집행간부들 외에는 누구의 권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관찰한다.
마르크스는 이 국가가 민중의 사회적 삶을 질식시킨다고 단언한다. 그는 그것을 "프랑스 사회의 몸통을 그물처럼 얽어매고 모든 땀구멍을 틀어막는 소름끼치는 기생체"라고 묘사한다. 18세기의 절대 군주제 하에서 이러한 구조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주목하면서, 그는 프랑스의 부르주아가 이 관료주의적-군사적 형태의 국가를 인수하고 "완성시켜 자본주의적 목적에 적응시켰다"고 주장한다.
아, 하지만 이 국가에서 시행하는 모든 공공사업들, 즉 학교와 대학교에서 다리, 그리고 공공소유의 철도에 이르기까지는 어떻게 볼 것인가? 확실히 마르크스는 이것들을 진보적인 것으로 보았나? 그와 정반대다. 마르크스는 이 모든 것이 민중의 공통의 이익으로부터 그들을 단절시키면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그들을 국가 관료의 손에 쥐어줌으로써 민중들을 소외시켰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공통의 이해관계는 곧바로 사회로부터 단절되어, 그것을 더 높은 일반의 이해관계로 대치시키면서 다리, 학교, 마을 공동체의 공동 재산부터 철도, 국유 재산, 프랑스 국립 대학까지 사회 구성원들의 활동에서 낚아채여져 정부 활동의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공공적" 서비스와 사업들을 낭만화하기보다는 그들의 소외된 형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운영은 "사회 구성원들 자신의 활동으로부터 낚아채졌다." 토지, 학교, 대학, 즉 민주적이고 공동체적인 통제의 대상이 돼야 할 공공 서비스, 이 모든 것들이 공동 운영되기 보다 "민중의 공동의 이해관계"에서 단절되었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국가의 소유와 공동체적 소유를 근본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후자는 민중에게 속하고 규제받는 사회적 자산을 나타낸다. 반면에 현대 국가가 관리하는 "공공" 서비스와 기업들은 실제 민중들의 공동체의 민주적 생명줄을 질식시키는 관료주의에 의해 통제될 뿐이다. 마르크스가 국가를 '분쇄'한다는 사상으로 나가는 것은 오늘날 정부 관료기구의 소외된 성격을 분석하는 이런 맥락에서이다.
그는 1789년부터 "모든 혁명은 이 기구를 분쇄하는 대신 더 강화시켰다"고 주장한다. 1830년과 1848년의 대반란 때, 모든 정당들은 단지 "이 거대한 국가 조직을 소유"하려고만 추구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개념은 급진적으로 민주주의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관료적 국가의 "소유"를 추구한다면 노동자들의 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군사기구가 먼저 그것을 파괴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국가의 반민주적 구조는 사회와 정치 생활을 근본적으로 민주화하려는 모든 노력을 손상시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국가의 관료적 구조와 군사적인 구조들은 해체되고, 대체되고, "분쇄돼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두 가지 요점을 추가하겠다. 첫째, 마르크스의 "분쇄" 은유는 변증법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 속에는 파괴에 대한 허무주의적인 분노는 아무것도 없다. 그 대신 '분쇄'해야 할 것은 국가에 내재하는 민주적이고 공동체적인 형태의 사회생활 건설에 대한 장애물들이다. 마르크스는 관료주의와 군사적 장애물이 해체되어 급진적 민주화로 이어지면서 정치국가가 시들어가는 것을 상상한다.
둘째로, 마르크스가 <브뤼메르 18일>에서 그와 같은 '분쇄'나 '해체'를 위한 어떤 명확한 프로그램도 제시하지 않은 것이 전적으로 사실이다. 1871년 프랑스 노동자들의 봉기와 그들이 새롭게 파리 코뮌을 창설한 것에 비추어 보면서, 비로소 그는 노동자 국가의 몇 가지 기본 원칙을 개략적으로 설명하게 된다.
그러나 코뮌의 경험이 있기 거의 20년 전에 이미 그는 현대 국가를 "사회 구성원들 자체의 활동"을 가로막고 "민중의 공동의 이익"을 억압하는 질식할 정도로 관료적인 구조로 파악해 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혁명적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목표에 바탕하고 민중의 민주적 자기 활동에 뿌리를 둔 사회주의 공동체의 건설을 예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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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를 옹호하며: 데이비드 맥낼리에 대한 반박
마이크 맥카시(Mike McCarthy)
출처: https://www.facebook.com/mm123454321/posts/10158354088689488
맥낼리는 최근 마르크스주의 국가 이론과 관련해 좌파의 "새로운 현실주의"에 반대하여 논쟁을 벌였다. 그에 따르면, 요컨대 국가에 대한 이 새로운 현실주의적인 관점은 노동계급의 힘이 국가 기구의 안과 바깥 쪽 모두에 구축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맥낼리의 관점에 따르면, 이것은 혼란스러운 사고방식이고, 그 대신에 소외된 사회 형태로서 “분쇄”돼야 한다는 국가의 개념에 의존하는 정치 전략의 이론은 마르크스 자신의 견해를 계승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정치권력에 대한 우리의 접근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 짧은 반박에서 나는 마르크스의 실제 견해가 무엇인가의 문제는 제쳐두고 대신 맥낼리 주장의 유용성을 고찰하려 한다.
국가에 대한 맥낼리의 기본적 명제는 매우 간단하다.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노동 대중의 위에 있고 넘어서 있는 추상화된 사회적 힘이다. 그것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힘이면서 동시에 그들 자신을 억압하는, 즉 소외된 사회적 형태다. 우리의 모든 급진적 민주주의 약속의 핵심에 놓여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서는, "민중으로부터 분리되는 힘"과 "추상화된" 권력으로서 국가는 초월되어야 하고, 그 형태가 파괴되고 "소멸"돼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추상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 기본적 공식에 반대하기는 어렵다. 확실히,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지배를 조직하고 재쟁산한다. 비록 아주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거의 유용한 지점이 없을 정도다. 우리의 국가 이론은 구체적인 정치적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이론은 정치 전략과 관련하여 의미 있고 구체적인 정치적 용어로 정확히 어떻게 변환되는가? 이 이론이 실천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해 우리에게 정확히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곳에서 저곳으로의 이행을 이론화하는 데 있어서, 이것이 무엇을 제공하는가, 내 생각은 별로 없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현재 국가를 통해 조직된 법률, 권리, 프로그램에 대해 압박하는 구체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들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이 스스로 어떻게 방향을 잡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확실히 현재의 "형태"로서 자본주의 국가는 대체되어야만 하는데, 사회주의 정치조직체에서 정치권력은 근본적으로 변형될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직접적이고 참여적인 형태는 지금 존재하는 구체적 국가 제도에서 민주적으로 선택된 기능과 규칙들을 보존하고 확장하지 않을까? 이 이론이 우리에게 그것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알 수 있는 한 아무것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소외된 국가에 대한 이 추상적 이론이 실제의 구체적인 정치 문제와 좌파의 전략에 대한 고민들을 다루는 데 별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가리킨다.
이렇게 광범한 접근법으로 실제 국가 기구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국면적인 분석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즉, 이 이론은 실제로 국가를 이해하는 데 어설프게 들어맞는데, 이것은 어떤 이론의 요점인 것 같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가 그런 수준의 분석에 참여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모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실천에서 하고 있는 것과 모순된다: 그들은 가정, 직장, 이웃 그리고 심지어 특정한 국가 기구에서도, 널리퍼진 환경 배열을 가로질러 위치한 노동계급 투쟁을 옹호하고, 확장하고, 강화하고, 창조한다. 우리의 국가 이론은 그러한 저항의 현장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주의적이 되는 것이라면 나를 거기에 끼워 달라.
(기사 등록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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