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규
요 며칠은 반가운 소식이 많다. 이 사회를 마음대로 주무르던 자들의 본 모습이 속속 드러나고 그에 분노한 시민들이 전국에서 들고 일어나 수십만 씩 거리로 나왔다는 뉴스가 매일 나온다.
수구일간지도 시류에 올라타 대통령에게 사퇴하라고 종용하는 일은 욕지기나지만 참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부패한 대통령을 민중의 힘으로 끌어내리는 일이 이제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축복받은 세대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틀 전 20만이 모인 거대한 집회에서 사려 깊지 못한 발언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더 친근하고 속 시원한 비판을 하기 위해 차용한 말이었지만, 나처럼 속이 더 답답해진 사람들이 꽤 있었을 것 같다.
박근혜도 최순실도 권력의 최정점에서 지배자로서의 부조리와 부패를 저지른 것이지 '여성'이라서 우리를 괴롭힌 게 아님에도 '년'을 붙이지 않으면 강력한 비판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삼성에게 수백억씩 받고 그들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어주는 거래를 한 것은 종교나 정신병의 영역이 아님에도 그들의 행태가 정말 이해하기 힘들기에 '정신병원'에 입원시키자는 사람들도 많았다.
페미니즘단체와 장애인단체 등은 곧바로 차별적이거나 혹은 약자에 대한 혐오를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고 집회를 주최한 단체들의 모임에서는 이에 대해 공식사과문을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한다. 참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어찌보면 사과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수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모인 집회에서 우리의 언어 속에 자신도 모르게 섞여있는 차별과 혐오를 집단적으로 걸러내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농민단체 활동가들이 주도한 백남기 어르신을 지키기 위한 집회에서도 가끔 비슷한 실수와 지적들이 있었는데, 최근의 집회에서 또 실수가 나왔고 다행히 즉시 사과했다.
헌신적인 활동가들이지만 여성주의를 만날 기회도 드물었을 것이고, 여성혐오에 대해 알려줄 사람도 주변에 별로 없었을 것 같다. 어쩌면 중년의 남성 활동가들에게 여성주의자가 곁에 있었더라도 그의 오류를 자세히 알려줄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가 수십만 군중 앞에서의 또 한번 실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일을 이 거대한 운동이 해내고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있다.
여성들에게 비교적 표현이 자유로운 공간인 소셜네트워크 세상에서는 시위현장의 몇몇 발언과 피켓문구에 대해 성토의 장이 벌어졌다. 여성혐오적인 표현들이 난무해서 너무 답답하고 불편해서 집회도 못나가겠다는 불만이다. 거대한 물결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말이다.
시위참가자들은 당연히 여성혐오를 의도하지 않았을 테고, 그런 표현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 지도 몰랐을 것이다. 누군가는 ‘분리주의 페미니즘’이라며 그 정도는 운동 안에서 고쳐나가라고 충고할지도 모르겠다. 심지어는 행동하지도 않으면서 말만 많다며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해야 한다. 화를 내지 않기 위해.
의도하지 않은 여성혐오라면 그 대목을 빼도 대의를 주장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여성에게, 혹은 성평등주의자인 남성에게도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문구를 과연 무엇을 위해서 고집스럽게 사용하는가? 근혜언니, 순시리 어쩌고 하는 건 재미있지도 않다.
조금만 더 설명하자면 '년'과 '놈’은 쓰임이 다르다. 여성이기에 두 배, 세 배로 욕을 먹는 이 기울어진 사회에서 ‘년’과 ‘놈’은 같은 비하발언이 아니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여성이니까 ‘년’을 붙여도 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란 얘기다.
'근혜언니'라며 여성성을 꼭 붙이곤 하는데, 이명박에게는 '명박이형'이라고 하는 걸 본적이 없다. ‘상득이형’이라는 말보다 ‘상왕정치’라는 말이 더 유행했던 그 때를 기억할 것이다. 여성이 밥값에 준하는 커피를 사먹으면 '된장녀'가 되지만 남성이 밥값에 준하는 돈을 들여 밤을 새워 피씨방에서 놀아도 '씨방남'이 되지는 않는다.
대놓고 박근혜가 여자라서 나라를 망쳤다는 얘기를 해야만 여성혐오 표현이 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의 삶에서 주체가 되고자 하는 여성들을 운동에서 ‘분리’시키는 것은 여성들의 ‘분리주의’가 아니라 너도 나도 모르게 여성들을 분리시키는 잘못된 표현과 그 아래의 인식이다. 그것조차 지적하기 위해 운동 안에서도 싸워야 하는 여성들에게는 얼마나 억울한 세상인지 차분히 생각해보자.
관련 링크:
‘박하여행’(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행동 https://www.facebook.com/hayafeminist/
(기사 등록 2016.11.10)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 010 - 8230 - 3097 / http://anotherworld.kr/164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의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억압과 차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수자 해방에 대한 네 가지 명제들 (0) | 2016.12.02 |
---|---|
청소년도 당신들과 동등한 동지들이다 (0) | 2016.11.14 |
‘운동권 혐오’에 직면해 변명, 반발보다 성찰이 필요하다 (0) | 2016.10.18 |
반자본주의와 퀴어 해방 (0) | 2016.10.10 |
로리타룩 논쟁 - 문제는 옷이 아니라 성적 대상화이다 (1) | 2016.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