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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차별

로리타룩 논쟁 - 문제는 옷이 아니라 성적 대상화이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10. 3.

이 한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서 로리타룩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펼쳐지고 있는 걸 발견하였다. 마침 최근에 계속 일상복으로 스쿨룩을 입고 다녔던 나는 당사자로서 이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장을 좀 거칠게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입고 다니면 기분 조크든요", "내 봊대로 입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다. 사실 스쿨룩을 일상복으로 입으면 기분이 마냥 좋기만 하진 않다. 불편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로리타룩을 즐겨 입으시는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특히 대학이란 공간에서 그런 옷차림을 고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나름 교양과 지성이 있는(?) 사람들은 앞에다 대고 뭐라 하진 않겠지만 신기한 듯이 보는 시선이라든가, 뒤에서 ". 쟤 공주병 아니야? 지가 동안이라고 생각하나봐" 혹은 "나이가 몇 개인데 아직도 저러고 다녀? 완전 씹덕후 아냐?"라고 수군거릴 것이 신경 쓰인 달까.

 

그런데 페미니즘을 말하는 일부 사람들까지 아동성범죄 조장하는 사람이라며 비난을 하다니, 너무 실망스러웠다. 사회의 주류(기득권을 가진 사람들, 다수자)가 가하는 낙인이나 억압, 프레임에 순응하는 게 아니라 저항하는 게 진보이자 운동이고 페미니즘이 아닌가.

 

소녀의 약하고 순수한 이미지? 말도 안 된다. 난 중학생 때부터 친구들과 19금 소설을 읽고 창작도 했다고.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규정하는 것에 대해 강렬하게 저항하지는 못할 망정, 남성중심적 잣대와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해당하는 코드를 기피하는 게 지금 우리들(페미니스트들)이 해야 할 일이란 말인가.

 

로리타룩 입지 말자고 주장하시는 분의 글을 몇 개 읽어봤고 나름대로 그 논지를 따라가봤지만 역시 동의하기 어려웠다. "로리타 패션이 소아성애를 조장한다"는 발언은 "여성의 야한 옷차림이 성폭력을 유발한다"는 발언만큼이나 반여성적인 발언이다.

 

어떤 페미니스트는 이미 어린 아이를 연상시키는 옷차림이 남성들에 의해 성적 코드로 만들어지고 받아들여진 현실에서 성인 여성이 어린 소녀처럼 입으면 미성년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더욱 더 부추겨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주장대로라면 술집 여자”, “걸레라는 멸칭이 붙여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아도 되고 그런 여성에 대한 강간이 정당화 되는 한국 사회에서 홀복 같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것은 "그렇고 그런 여자들"에 대한 강간 판타지를 더욱 심화시키고 부추길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강간 문화를 없애기 위해선 남성에게 성애적 코드로 받아들여지는 술집 여자”, 슬럿의 옷차림을 되도록 입지 말라는 결론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것이 야한 옷차림이 강간을 부른다는 말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아동, 청소년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문제라면 그 대상화를 깨부수는 운동을 해야지, 왜 그 코드를 금지시키는 방향으로 간단 말인가?

 

그런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듣고 있으면 이제 한국에 로리타 워크가 필요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로리타룩을 입었다고 해서 나를 순진하고 귀여운 여자로 봐달란 뜻 아니거든요”, “교복 = 영계 아니거든요라는. 아니 로리타룩이 얼마나 비싼데(상대적으로) 여성들이 고작 여자만 보면 하악대는 한남충들 보기 좋으라고 그 비싼 옷을 사 입겠는가?

 

결론은 아동성범죄와 로리타룩의 상관성은 거의 전무하니 여성들이 무슨 옷을 입든 냅두자는 것이다. 야한 옷 입은 여성을 보면 강간해야지!”라고 생각을 하는 남성들과 우와 고삐리다. 따먹어야지!” 혹은 “7살짜리 사촌한테 성추행해야지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별개의 남성일 리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여자가 그냥 평범한 흰 티셔츠에 반바지 입은 거 보고도 꼴린다는 글이 하루에 17846549개씩 올라오는 세상, 모든 연령대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여성이 어떤 옷을 입든 뭐든지 성적 대상화해버리는 사회에서 여성이 스쿨룩을 입든 오피스룩을 입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문제는 특정 복장을 입는 여성들이 아니라, 어떤 여성이든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남성중심적 사회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덕후들이 로리타룩을 입는 건 그냥 이런 거다.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서 연예인이 입고 나온 옷을 많은 사람들이 따라 입고 그 옷이 유행하게 되듯이, 덕후들도 자기들이 덕질하는 분야(애니메이션이나 특정 역사나 문화권 등)에서 나오는 옷이 예뻐 보여서 따라입는 것뿐이다.

 

그러니 그걸 가지고 남자한테 섹스 어필하려고 입는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무례할 뿐만 아니라 폭력적일 수 있는 발화라는 것을 비덕후들은 알고 조심했으면 좋겠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이 세상에 그 어떠한 옷도 옷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 옷에 대한 남성중심적 해석을 강요하고 대상화하려 하는 사회이다.

 

그런 사회에서 여성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사회의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의식과 시선에 의해 기피하기보다는 원하는 대로 입으며 새롭고 다양한 해석들을 만들어가는 게 훨씬 더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기사 등록 2016.10.3)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anotherworld.kr/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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