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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차별

청소년도 당신들과 동등한 동지들이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11. 14.

- 운동 속의 나이주의, 왜 문제인가 


정귀정

현) 청소년 대중조직 준비를 위한 연대체

전) 청소년 정의당 운영위원



[박근혜 퇴진 투쟁 속에서 주요한 주체중 하나인 청소년들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관련해서 좋은 글을 기고해 주신 정귀정 님에게 감사드린다.] 




 지난 11월 5일 열렸던 2차 범국민행동에서 가장 돋보였던 장면 중 하나는 중고생연대에서 조직한 청소년들의 집회였다.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라는 슬로건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광화문을 행진하는 모습은 여러 언론에 오르내리며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우려하던 대로, ‘기특한 아이들’, ‘어른들이 똑바로 못 해서 미안하다’와 같은, 보호주의적 관점에 머무르는 억압적인 발화가 집회 현장과 온라인상으로 쏟아져 나왔다. 청소년의 정치 참여에 대한 운동권 내부와 대중의 인식을 재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표현은 왜 문제적인가. ‘기특한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똑바로 못 해서 공부해야 할 친구들이 집회로 나오고 있다. 미안하다’ 와 같은 표현은 무엇을 은폐하고 있는 것일까.


 ‘기특한 아이들’과 같은 표현은 나이주의적 권력 관계를 전제로 등장한다. 가령, 청소년이나 나이가 어린 사람이 어른이나 연장자에게 기특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이와 같은 표현이 나이주의 권력 구도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입장에서만 발화할 수 있는, 수직적이고 시혜적인 표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원래는 시위에 나오지 않을 아이들이 시위에 나오니 기특하다’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며, ‘집회나 시위는 그 또래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편견과 연결된다. 이러한 편견은 ‘청소년은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와 같은 ‘미성숙의 프레임’을 드러낸다. ‘미성숙의 프레임’은 나이주의와 자본주의에 의해 청소년에게 일방적으로 부여된 억압의 사슬이다. 


 연장자가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라는 판단을 내린 이상, 그들에게 청소년은 동등한 운동의 주체가 아닌 운동의 현장에서 보호해야 할 대상(혹은 도구적 존재)에 불과해진다. 이러한 생각은 보호를 명목으로 하는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했으며, 종종 폭력으로 드러나고는 했다. 


 08년 촛불집회 당시, 연행당할 위험이 적은 청소년들에게 대오의 최전선에서 스크럼을 짤 것을 요구하고, 밤 10시가 되면 청소년들이 자진 귀가하기를 바란 시민들의 모습, 어떤 활동가가 백남기 농민 추모 농성장의 흡연구역에서 흡연을 하던 청소년운동가에게 폭언을 쏟아내고 농성장 안으로 경찰을 부른 사건, 소수자 인권교육에서 처음 본 필자에게 ‘이런 자리에까지 참석하다니 기특하다’라고 말하며, 시당 메신저에서는 필자를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배제한 진보 정당의 당원들, 그리고 현장에서 청소년운동가들에게 일상적으로 쏟아지는 반말과 잔심부름까지, 이 모두 나이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운동이 저지른 부끄러운 폭력의 자화상이다. 


백남기 농성장에서 성인 활동가가 청소년의 흡연을 통제하려던 시도


 

청소년에 대한 이러한 인식과 차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은 사람이며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억압받는 민중이다. 또한, 나이를 근거로 한 차별과 편견 등의 굴레로부터 인식되는 청소년의 소수자성은, 청소년의 운동에 필연성을 부여해주고 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가 당신들의 동지인 것처럼, 청소년도 같은 공간에서 당신들과 함께 운동하는, 당신들과 동등한 동지들이다. 지금의 사회계약 속에 청소년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청소년이 인간이라면, 모든 인간이 누릴 수 있고 누려야 마땅한 사회계약은 청소년을 포함한 형태로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혁을 위해서는, 변혁의 선봉에 서게 될 좌파들부터 상상력과 감수성의 폭을 넓히고, ‘내 안의 보수성’을 뜯어 고쳐야 한다.


 청소년운동에 속한 여러 단위의 단체들과 개인들은, 최근 백남기 농민 추모 농성장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촉발된 청소년혐오 논란과 관련한 호소문을 발표하였다. 호소문을 통해, 청소년활동가들은 청소년들이 동등한 주체로서 함께 운동해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실천을 제안하고 있다.


1. 청소년들에게 나이가 적거나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반말을 하거나, 하대하거나, 모욕적으로 대우하지 않을 것. 또한 청소년들에게 함부로 일방적인 친밀감을 표하지 않을 것.


2. 보호를 이유로 청소년의 활동을 제한하거나, 보호·선도를 명분으로 한 폭력·위협에 청소년을 노출시키지 않을 것. 무례한 훈계를 조심성 있는 대화로 대신할 것. 청소년 본인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고, 그 의견 표명을 존중할 것.


3. 청소년을 부모나 그 밖의 보호자에게 딸려 있는 존재가 아닌, 독자적인 인격체이자 운동의 주체로 대우할 것.


4. 청소년의 운동 참여를 예외적이고 특별한 것처럼 표현하거나 청소년이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를 평가 대상으로 삼지 않을 것. 청소년들의 운동을, 연습이나 학습이 아닌 그 자체의 의미로 인정할 것.


5. 나이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에 따라 청소년들에게 특정한 성격이나 역할을 요구하지 않을 것.


6. 청소년들은 사회적으로 여러 억압을 받고 있는 소수자임을 인식하고, 청소년들이 처한 이러한 사회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청소년을 배제하는 문화나 운동방식을 돌아볼 것. 청소년들의 참여와 의견 표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 제도적·현실적 한계가 있더라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청소년들의 참여를 가능하게 할 방안을 충분히 고민하고 모색할 것.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지들 사이에서조차 평등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는 운동이 모든 이들의 해방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청소년운동가들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 속에서 운동이 고민해야 할 것은, ‘운동하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이들이 ‘우리’ 속에서 함께할 수 있도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치열한 사유와 실천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의 해방을 모색할 수 있는 운동이 되기를 바란다. 


(기사 등록 20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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