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억압과 차별

‘운동권 혐오’에 직면해 변명, 반발보다 성찰이 필요하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10. 18.

이 한



비운동권 페미니스트들 속에서 나타나곤 하는 "꿘충"이라는 말에 분노하는 운동권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너무 공감이 간다. 특히 운동권 내부에서 반여성적 태도와 성차별적 관행에 대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투쟁하고 문제 제기했던 사람이라면 운동권들은 어차피 다 똑같아라는 말로 퉁쳐지는 것에 대해 억울함과 부당함을 더 크게 느낄 것 같다.

 

나 역시 운동에 한 발 담구고 있는(맨날 이 판을 떠날 거야라고 말해 왔지만 ㅜㅜ;) 상황에서 이런 운동권 혐오를 접할 때마다 기분이 그렇게 썩 좋지 않다. 하지만 나를 더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비권 페미니스트들의 꿘혐 발언이 아니라, 운동권들의 변명이다.

 

운동권들이 비권들의 공격에 대해 모든 운동권들이 다 그렇지 않아요. 일반화하지 마세요라든가, “남성중심적인 문화나 가부장제는 운동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비운동권도 마찬가지입니다라는 말로 응수하는 걸 볼 때마다 별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물론 이분들은 그래서 운동권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전체 사회의 문제를 마치 운동권만의 문제인양 부풀리는 것은 잘못이고, 이것은 일종의 사회의 소수자이자 약자인 운동권에 대한 혐오이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운동권이 일반 사회랑 별 차이가 없는 걸까? 운동사회 내의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성에 비운동권과는 다른 특수성은 없는 걸까? 나는 이 물음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겠다. 운동사회가 일반사회보다 나을 게 없다면 그것도 문제겠지만, 내가 겪어본 바로는 운동사회나 일반사회나 그게 그거라고 쉽게 단순화할 수 없다.

 

물론 여성주의에 대해 많은 관심과 지지, 공감을 표하는 몇몇 운동단체들은 비운동권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들의 노력을 절대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전체 운동권에서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 나는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전체 운동에서는 소수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많은 운동권들은 여성운동을 부문운동으로 생각하고, 페미니스트들이랑 엮이면 골치 아프니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여성 활동가들과 청소년 활동가들은 별로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맨날 운동에 태클만 걸고 다닌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운동사회에서 수적으로 다수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부분의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운동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까지는 운동권이나 일반사회나 똑같지 않냐고? 맞다. 똑같다. 비운동권에서도 회사나 국가의 중요한 요직은 대부분 성차별주의자들과 마초들과 꼰대 아재들이 다 차지하듯이.

 

그런데 문제는 동원력과 집합성(?)의 차이다. 회사나 일반 사회에서 보통의 경우에 개인들은 다들 그냥 파편화된 개인들일 뿐이다. 아무리 애사심을 강조한다고 해도 누가 우리 회사를 위해 내 모든 걸 바치겠어라고 하겠는가. 그냥 돈 주니까 야근하고 잘리기 싫으니까 열심히 일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장소에서 트러블 만들기 싫으니까 적당히 사람들과 우호적으로 지내는 것뿐이지.

 

대부분의 경우 비운동권에서 사람들 사이에는 그다지 강한 결속력이나 공통점이 없다. 하지만 운동권은 다르다. 어떤 운동단체는 종교집단과도 비교될 정도로 강한 신념과 행동의 통일을 강조하고 개개인의 삶의 양식까지 통제하려 든다. 또한 사회(운동)에 대한 헌신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노동이나 금전뿐만 아니라 감정, 시간, 열정 등 개인이 가진 대부분의 자원을 쏟아 붓도록 고무하고 장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본()과의 투쟁을 하고 있다는 특성 때문에 굉장히 피아의 경계가 분명하다는 것도 많은 운동권의 특징이다. 외부의 분명한 적을 상정하고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것은 굉장히 흔한 전략이다. 굉장히 군사주의적인 방식이기도 하고. 아무튼 이런 두 가지 측면 때문에 운동권들은 내부의 균열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어떤 때는 비운동권들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민감하다는 말은 사실 굉장히 완곡한 표현이다. 굉장히 폐쇄적이고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비운동권 사회에서는 그저 프로불편러쯤으로 여겨지고 말 일도, 운동권에서는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맹공격을 가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리고 어떤 운동권들(주로 단체에서 지도부에 해당하는)에게는 자신의 조직의 신념체계나 명예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자신들이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쉽게 인정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한 마디로 매우 경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동권들은 원래 말이나 원칙을 천금같이 여기는 사람들인데도, 어떤 때는 잘못을 덮기 위해 기존에 했던 말이나 원칙을 뒤집기도 한다. 그들에겐 그것이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운동사회에 혹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 균열을 내는 사람에 대해서 정말로 적에게 하듯이 죽일듯이덤벼드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이러한 공격과 집단적 조리돌림에 정말 처절하게 노출된 적이 있었고 그때는 정말로 저들에게 양심이 없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정말 멍청한 질문이었다. 그들에겐 그게 존재가 걸린 싸움이었고, ‘대의와 명분이 있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객관적으로는 단 한 명에 대한 집단의 린치였을지라도.

 

어떤 운동권들은 때로는 자본주의와, 때로는 다른 정파들과 싸우느라 매일매일이 전시 상황이자 전쟁터일 수 있다. 그래서 매일 비장한 마음을 다지기도 한다. 때문에 이런 살얼음판같은 상황에서 내부에서의 문제 제기(그들의 입장에선 조직 파괴’)가 일어나는 것은 그들의 인지체계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수 있고 그래서 어떤 때는 일반사회에서도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가혹하게 문제 제기자들에 대한 공격을 가하곤 하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운동권들 개개인의 인권에 대한 의식이나 감수성은 비권들보다 후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개인 대 개인으로 비교하면 오히려 운동권들이 평균적으로 더 높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운동권들의 이런 예리하고 섬세한 감수성과 인식도 운동사회의 조직 우선적, 군사주의적 심상과 만나게 되면 종종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곤 한다.

 

나는 청소년기 때 학창시절에 반에서 왕따를 당하며 겪었던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경험을 운동사회에서 경험했다. 그리고 그건 단지 내가 있었던 조직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 전체 운동사회가 내가 겪은 일을 알고도 묵인했고 가해자들을 옹호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나만 겪은 게 아니었다. 나에게 가했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폭력을 개인에게 퍼부은 단체가 적어도 두 단체가 더 있었다. 그리고 전체 운동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그래서 나는 비록 상대방이 먼저 혐오를 보였다고 해도, 이에 대해 모든 운동권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비권들이 더 심하면 심했지 우리보다 나은 게 없다로 맞받아치는 것에 대해 너무 화가 난다. 모든 운동권들이 전부 가해를 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운동권들이 폭력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가해를 방조하게 하는 메커니즘은 분명히 운동권에 존재한다.

 

비운동권들보다 인권 감수성이 더 뛰어날지라도, 그들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동기와 기회들이 운동권들에겐 무궁무진하게 많다. 이젠 그래도 비운동권들보단 운동권이 더 낫지라는 안일한 자위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많은 동지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운동사회의 그늘의 책임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의 성평등지수가 OECD 국가들 중 최하위라며 한국인들 성평등 의식 빻았다는 말에 적어도 페미니스트라면 모든 한국인들이 그런 건 아니거든?”이라거나 그래도 우리가 인도보다는 낫거든?”이라고 대응하지 않듯이, 운동권 혐오 발언에 대해서도 더 이상 그런 식의 대응을 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  


(기사 등록 2016.10.18)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anotherworld.kr/164


'다른세상을향한연대의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