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레닌의 당은 어떻게 ‘볼셰비키’ 당이 되었는가

라스 T.

 

 

내년은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관련해서 러시아 혁명의 의의와 교훈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재검토하려는 노력과 시도를 계속하고자 한다.

레닌과 볼셰비키가 새로운 유형의 당을 만들기 위해 러시아 혁명조직으로부터 멘셰비키들을 배제하였다는 것은 그동안 좌파들 사이에 통설이 돼 있었다. 라스 리가 이 통설에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해석을 제기한다.

라스 리는 러시아어 원자료와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에 입각한 레닌주의에 대한 재해석으로 주목받아 왔고 <레닌의 재발견: 맥락에서 본 무엇을 할 것인가?’> 등의 책을 썼다. 번역에 수고해 준 김민재 동지에게 감사드린다.

 

출처: http://links.org.au/node/2874

 


 

1898년부터 ‘Rossiiskaia sotsial-demokraticheskaia rabochaia partiia’(RSDRP) 즉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라는 정당이 존재하고 있었다. ‘Rossiiskaia’는 민족적으로 러시아인임을 의미하는 ‘russkaia’와 달리 러시아 국가의 시민이라는 의미에서 러시아인의를 뜻했다. 물론 이 당명은 이후에 생겨날 두 분파, 멘셰비키와 볼셰비키 중 어떤 것도 뜻하지 않았다.

 

19183월 제7차 당대회에서 이 당은 당명을 ‘Rossiiskaia kommunisticheskaia partiia (bol’shevikov)’, RKP(B)[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로 공식 변경하게 된다. 비록 괄호로 붙인 것에 불과하긴 하지만 당은 이제 스스로를 볼셰비키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예컨대 19174월부터 19183월 사이의 기간 동안 당이 RSDRP(B)[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볼셰비키)]와 같은 중간 단계의 이름을 가진 적은 없었던 것일까?

 

없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RSDRP(B)라는 이름은 1917년에 가끔 비공식적으로, 다른 즉흥적으로 붙여진 호칭들과 함께 쓰인 바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칭이 RSDRP(B)라는 당은 공식적으로 존재했던 적이 없다.

 

현재 널리 퍼져 있는 이와 반대되는 생각들은 소비에트 편집자들이 열심히 색칠한 결과이기도 하고 그들이 레닌의 저작, 당 회의 기록 등을 제시한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지배적인 소비에트 정통 역사는 당이 최대한 이른 시기부터, 공식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당에 걸맞는 표시로서 볼셰비키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소비에트 편집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사적 문서에 붙인 제목에 RSDRP(B)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19178월 제6차 당대회의 기록을 포함하고 있는 책은 <RSDRP(B)의 제6차 당대회 속기록>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문서들 자체를 검토해 보면 당의 명칭(모든 참가자들이 사용했던 명칭)은 여전히 그냥 옛 ‘RSDRP’였음을 알 수 있다.

 

소비에트 편집자들에 의한 이런 사실상의 위조는 당명이 어떻게 그리고 왜 바뀌었는지에 대한 탐구의 필요성을 과제로 제기한다. 다음의 내용에서 나는 소비에트 편집자들이 붙인 제목들은 무시했지만, 문서 자체의 텍스트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평소에 보여 준 성실성에 여전히 의존했다. 나는 또한 사람들이 말하지 않은 무언가에 대해 일반화하는 것이 항상 다소 까다롭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의 논평들은 어느 정도 잠정적이다.

 

레닌이 19174월의 시작(여기서는 옛 러시아 달력을 사용한다)에 러시아로 돌아왔을 때, 그는 당을 지칭할 때 볼셰비키라는 말을 쓰는 것을 세심하게 피했다. 이렇게 피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는 분파와 당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에 대해 오랫동안 견지했던 관점을 갖고 있었다(내가 분파는 당이 아니다라는 글에서 설명한 바 있다. http://weeklyworker.co.uk/worker/912/a-faction-is-not-a-party/).

 

분파는 중요한 전술적 쟁점에 대해 생각이 같은’(edinomyshlenniki)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기에 외관상 당보다 더 동질적이었다. 러시아에 도착하고 나서 그가 처음으로 한 발언들 중 하나는 이 구분을 강조한 것이었다(소비에트 시대 영어 번역은 ‘edinomyshlenniki’를 센스 있게 같은 생각의 동지들로 번역해 놓았다).

 

191744, 저는 제목에 명시된 주제[전술]에 대해 페트로그라드에서 보고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먼저 볼셰비키 회의에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분들은 전 러시아·노동자 병사 소비에트 대표자 협의회’(All-Russia Conference of Soviets of Worker and Soldier Deputies)에 파견된 대표들이었고 집으로 출발해야 해서 제가 보고를 미룰 수 없었습니다. 회의 이후에 의장인 지노비예프 동지는 저에게 전체 회의를 대표하여,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을 통합하는 문제를 논의하고자 했던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대표단의 합동 회의에서 제 보고를 반복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출발이 임박해서 제가 미루도록 허락할 수 없는 제 ‘edinomyshlenniki’(같은 생각의 동지들) 멘셰비키들 모두에 의해 이것이 저에게 요구된 이상, 비록 보고를 즉시 반복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저는 거절할 권리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게다가, 레닌은 몇 년 전 1912년 프라하 협의회 때 당내에서 쿠테타를 일으키고 자기 분파를 당으로 선언했다는 혐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혐의를 격렬하게 부인해 온 그는, 1917년에도 당을 볼셰비키로 부름으로써 앞선 그 혐의에 근거를 제공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레닌에게 있어서 엄격한 의미의 볼셰비즘은 러시아 혁명에 대한 전술상의 한 관점으로서, 사회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트와 전체 농민 사이의 연합이라는 시나리오로 구성돼 있었다. 2월 혁명과 차르의 몰락 이후 그는 이 시나리오가 여전히 타당한지 진지하게 의심했다. 농민에 대한 올바른 전술적 태도에 대한 논쟁에서 레닌은 볼셰비즘에 대해 기꺼이 이야기했지만 그의 평은 오히려 다소 비판적인 쪽이었다.

 

사실 그는 옛 볼셰비즘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의 볼셰비즘은 어쩌면 사실은 이미 과거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더라도 볼셰비키는 당을 칭하기에 그렇게 좋은 호칭이 아니었다. (레닌은 이후에 옛 볼셰비키의 시나리오에 대한 그의 태도를 바꾸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하게도 레닌은 당의 이름을 다시 지을 자기 나름의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사회민주주의를 버리고 그것을 공산주의로 대체하고 싶어 했다. 이그 이면에 깔린 생각은 유럽 전체에서의 사태 전개에 기반하고 있었다. 공식적인 사회민주당들이 각각 자국 정부의 전쟁 사업을 지지함으로써 스스로의 이름에 먹칠을 했던 것이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라는 깃발은 고쳐 쓰는 것이 불가능하여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야 할 정도로 더럽혀졌다. 만약 러시아 사회민주당이 볼셰비키라는 극히 러시아적인 이름으로 알려진다면 이 시도에 담긴 논리 전체가 흐려질 것이다.

 

곤경에 처하다

 

그 결과 볼셰비키볼셰비즘같은 단어들은 레닌이 러시아에 도착한 후 약 한 달 정도 동안은 드물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4월 말에 열린 당의 전러시아 협의회에 대한 레닌의 기고문은 그의 전집 24권 중에 대략 90페이지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 페이지들에서 나는 볼셰비키나 관련된 용어가 사용된 것을 단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실제로 레닌은 당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신이 곤경에 처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당을 볼셰비키라고 부르는 것을 극도로 꺼렸고,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대놓고 경멸했으나, “공산주의라는 명칭은 당대회가 공식적으로 명칭을 변경할 때까지 사용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레닌은 가끔 당을 RSDRP로 부르기는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는 혁명적 사회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당”, 혹은 간단히 제일 막연하고 제일 흔한 호칭인 우리 당과 같은 완곡한 표현에 의존했다.

 

레닌의 관점은 이러했다. 하지만 그는 곧 당명이 그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당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님을 발견했다! 당 외부의 사람들이, 친구들과 적들 모두, 그 당을 볼셰비키 당으로 알고 있었고, 특히 공개적인 정치와 선거 경쟁의 새로운 맥락에서는, 그들의 관점이 결정적이었다. 얼마 안 가 우리는 레닌이 볼셰비키들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이야기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로, 잠재적 지지자들의 관점에서 당을 경쟁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로 정치적 적들의 볼셰비키 극단주의에 대한 공격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19174~5월 동안 레닌의 글에서 볼셰비키볼셰비즘을 찾아보면, 우리는 근처 어딘가에서 선거의혹은 공격이라는 단어 둘 중 하나를 분명 발견하게 된다.

 

이 주제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말해 주는 글은 5월에 정당들 간의 차이를 설명하는 팸플릿에서 볼 수 있다. 레닌은 다수 일반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고 있었고 당을 사회민주주의자들, 사회혁명당 그리고 그 비슷한 집단들”(그는 이렇게 집단을 묶을 때 이라는 용어는 피한다)과 구별해야 했다. 다양한 정당들을 열거한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D. (“볼셰비키”). 제대로 부르자면 공산당이라고 불려야 하지만 현재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라고 이름 붙여진, 중앙위원회 혹은 속칭 볼셰비키하에 단결된 당.

 

중앙위원회 하에 단결된이라는 어색한 표현은 이전에 레닌의 집단을 다른 사회민주주의 주장자들과 구별하기 위해 고안된 신조어였다. 이 우회적인 표현은 바로, 당을 볼셰비키 분파와 동일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채택되었다. 이는 분명히 1917년의 정신없는 선거 경쟁 속에서 정치적인 상표명으로는 부적절했다. 내가 속칭(colloquially)”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prostorechie’인데 이 단어는 비표준적인 용법이라는 어감을 갖고 있다.

 

레닌은 거의,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만이 당을 볼셰비키로 칭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는 진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올바른 당명의 엄밀한 구분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정치적 경쟁자들과 저널리스트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 팸플릿 전반에 걸쳐 볼셰비키는 항상 인용 부호 속에 넣어진 채로 발견된다. 레닌의 꺼리는 마음이 인쇄상으로 표현된 것이다.

 

볼셰비키를 사용하는 또 다른 주요한 동기를 보여주는 것은 5월 중순에 출간된 논쟁적인 신문 기사 글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레닌은 끔찍한 볼셰비키들에 대한 자본가 신문의 비난뿐만 아니라 온건한 사회주의자들의 비난까지 다양한 비난들을 검토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온건한 사회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경제 규제 강령이 사실은 “‘끔찍한볼셰비즘의 강령과 똑같다고 주장한다. 물론, 단지 그 온건한 사회주의자들이 부르주아 정당들과 계속 협정을 맺고 있는 한 그것을 실제 실행할 수는 없다는 점만 빼면 그렇다는 것이다.

 

레닌은 지지를 호소하고 공격에 대응하면서 어쩔 수 없이, “볼셰비키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 점점 더 익숙해져야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것을 피하기 어려운 부담이지만, 당명에 대한 더 원칙적인 고려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여긴 듯하다. 당명을 변경하는 것은 그에게 하도 중요한 일이어서 19183월에, 특별 당대회에서 그는 왜 당명이 사회민주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긴 연설을 했을 정도였다. 그 당대회는 그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라는 매우 긴급한 주제만 다룰 예정이었다.

 

이 연설의 시작 부분에서, 그는 당에 대한 호칭으로 볼셰비키를 사용하는 것을 고집할 사람들의 명단에 외국인들을 추가한다.

 

중앙위원회는 우리 당의 이름을, 괄호 속에 볼셰비키를 넣은 러시아 공산당으로 바꿀 것을 제안합니다. “볼셰비키라는 단어가 러시아 정치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사건의 일반적 윤곽을 따라가는 모든 외국언론에서도 시민권을 획득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추가가 불가피하다고 여겼습니다.

 

비록 괄호 속에 넣어서 외관상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기는 했지만, 이 짧은 논평이 당명에 볼셰비키를 넣은 것에 대해서 레닌이 말한 모든 것이다. 볼셰비키들의 영광스러운 과거, 동질적인 당을 만들 필요성, 혹은 소위 ‘1912년에 볼셰비키 당이 만들어졌다든가 하는 것에 대한 언급은 없다.

 

내 느낌은 레닌이 여전히 약간 짜증이 나 있었다는 것이다.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이 순전히 러시아적인 호칭인 볼셰비키를 쓰는 것을 고집하며 끼어들어, “사회민주주의를 거부하고 공산주의를 긍정하는 그의 담대하고 원칙에 입각한 시도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에 말이다.

 

 

국제주의자들

 

레닌으로부터 좀 더 일반적인 용법으로 눈을 돌려 봐도, 우리는 1917년에 당 내에서 근본적인 정치적 선택은 볼셰비키 vs 볼셰비키로 비추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근본적인 구분선은 그보다는 국제주의자 대 방어주의자사이의 것이었다. 러시아의 맥락에서 국제주의자는 임시 정부를 타도하고 민중 권력(narodnaia vlast) 즉 노동자와 농민에 기반을 두고 평의회를 통해 제도적으로 표현되는 권력으로 그것을 대체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국제주의자는 또한 방어주의자들과 단절하는데 전념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즉 연립정부에 참여하거나 타협”(soglashatelstvo)에만 몰두하는 당에 남아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국제주의자/방어주의자 분열은 1910~14년의 청산주의자/청산주의자분열과 비록 동일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유사했다. 이전 시기의 분열에서처럼, 모든 볼셰비키들은 국제주의자인 반면, 모든 국제주의자들이 전부 볼셰비키는 아니라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다시 말해, 당 내에 있는 자와 당 밖에 있는 자를 가르는 선은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사이에 그어졌던 게 아니라 멘셰비키 내부 어딘가에서 그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1917RSDLP의 일관된 공식적 입장은 다른 당의 국제주의자들과 함께 활동하고자 한다는 것과 국제주의자인 사회민주주의자가 당에 오는 것을 환영한다는 것이었다. 레닌이 4월에 말했듯이 지역에서 멘셰비키들 및 그 비슷한 사람들과 동맹을 맺고는 있지만 혁명적 방어주의에 맞서 국제주의 입장을 지키려 노력하는 다양한 노동자 집단들에 대한 우리 당의 정책은, 그런 노동자들과 집단들을 지지하고 더 긴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며, 사회주의에 대한 프티부르주아적 배신과의 단호한 단절 위에서 그들과 통합을 지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6차 당대회는 볼셰비키들과, 정부에 참여한 멘셰비키들과, 공식 소비에트 지도부의 관계가 매우 나빴던 시기인 19178월에 열렸다. ‘7월 시기’[역자 - 19177월에 페트로그라드에서 일부 대중이 봉기를 시도하다가 정부의 탄압이 벌어져 볼셰비키 주요 인물들이 도피해야 했던 상황. 당시 볼셰비키는 봉기가 시기상조라고 봤지만 참가해서 자제를 설득하려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의 혼란 이후, 정부 탄압은 레닌과 다른 최상위 지도자들이 당대회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그럼에도 당대회가 시작될 때 대표단은 이전에 저명한 청산주의자였고 지금은 멘셰비키 국제주의자의 대변인인 유리 라린(Iurii Larin)을 열렬히 맞이했다. 라린은 방어주의자들과 즉각적 단절을 약속했을 때 특히 박수를 받았다. 당의 이름으로 부하린은 라린의 솔선수범을 환영했다.

 

당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민주 세력 전체를 갉아먹는 궤양과도 같은 방어주의자들과의 단절의 필수성에 대한 그의 선언을 저는 특히 따뜻하게 반깁니다. 이 궤양과 싸우기 위해서 모든 국제주의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 회의장에서 살아 있는 모든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단결할 필수성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동지들! 저는 라린 동지가 말한 의견에서 차이점을 곱씹기보다는, 우리가 성장하여 이런 차이를 넘어설, 그리고 국제주의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하나의 당으로 단결할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라린은 “9년간의 분열을 극복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인정했다. 그러니 그는 아마도 1907년에 어느 정도 통합된 당대회가 마지막으로 열렸다고 보고, 1908년부터 거슬러 올라가 당의 분열을 셈한 것이다. 라린이 1912년 프라하 협의회를 분열의 역사에서 중요한 날짜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분열과 관련된 이전의 당대회를 되돌아보면서 제6차 당대회를 시작한 미하일 올민스키(Mikhail Olminsky)의 발언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나는 1917~18년 사이에 내가 본 그 어떤 자료에서도, 프라하 협의회를 새로운 볼셰비키 당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는 최소한의 암시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라린은 멘셰비키 국제주의자의 지도자인 마르토프(Martov) 스스로가 당대회에서 연설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방문은 결국은 한 번도 현실화되지 못했고, 당대회 끝무렵의 분위기는 라린이 박수를 받았을 때보다 이 문제에 대해 더욱 안 좋았다. KK 유레네프(Iurenev)(트로츠키가 속했고, 당시 RSDRP에 가입해 있던 지역연계 그룹의 구성원)오직 멘셰비키의 소수 중 소수만이결국 RSDRP에 가입할 것이라고 암울하게 논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의안을 제시했고, 그 결의안은 당대회에서 받아들여졌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담고 있었다.

 

모든 사람을 단결시킨다는 위험한 슬로건에는 반대하는 한편, 사회민주주의는 실천적으로 멘셰비키-제국주의자들과 단절하는 모든 국제주의자들의 단결이라는 계급-혁명적 슬로건을 내세운다.

 

이런 종류의 단결을 필수적이고 불가피한 것으로 봤기 때문에, 당대회는 사회민주주의의 모든 혁명적 부류들이 즉시 방어주의자들과 조직적으로 단절하고 RSDRP를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요청했다.

 

 

현장의 관점

 

지역 당 조직들 사이에서 유포됐고 제6차 당대회 기록에 포함되어 있는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현장의 현실을 좀 더 직접적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질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귀하의 조직의 명칭은 무엇입니까? 귀하의 조직은 볼셰비키와 국제주의자 모두를 포함합니까? 아니면 순전히 볼셰비키입니까? 이런 질문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19178월 시점에 당이 배타적인 볼셰비키 당이 아니라 볼셰비키가 지배적인 당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답변을 보면 상당한 다수가 간단히, 자신들의 지역 명칭에 “RSDRP”를 덧붙여 스스로를 칭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얼마간의 지역 조직들이 실제로 스스로를 “RSDRP(볼셰비키)”라고 부르기는 했다. 반면 몇몇은 예컨대 다음과 같은 명칭을 갖고 있었다. “RSDRP(국제주의자)의 첼랴빈스크(Cheliabinsk) 위원회

 

자신들의 분파적 구성을 말해 달라고 요청받았을 때, 대부분의 위원회들은 페트로그라드 비보르그(Vyborg)구 당 조직의 다음 설명과 유사한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우리 조직은 단결된 조직으로서, 오직 국제주의자들만 포함하는 것이 원칙이나, 실제로는 거의 배타적으로 볼셰비키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혹은 “RSDRP의 오데사(Odessa) 위원회처럼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볼셰비키 뿐 아니라 볼셰비키의 강령을 받아들이는 통합파들(트로츠키주의자들, 구 친당파들[partyists])과 멘셰비키-국제주의자들, 즉 모든 국제주의자들을 통합합니다.”(“통합파들친당파들1912년 당내 다툼에서 등장한 호칭들이므로, 여기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당시 모든 분파의 단결을 위한 트로츠키의 노력을 지지한 사람을 의미한다.)

 

용어의 사용법이 아직 자리 잡지 않았기에, 우리는 당 조직과 분파에 대해 말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발견한다. 비록 몇몇 호칭들은 미래에까지 남지 않았지만 우리는, 예를 들어 비보르그 구의 지역 소비에트가 제6차 당대회를 국제주의자들의 전러시아 당대회, 그리고 철저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대표들로 받아들였던 방식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봤다시피 1918년에 급하게 소집된 제7차 당대회는 당명을 공식적으로 변경했고 중대한 강령 수정을 요구했다. 새로운 당 강령은 그 다음 해 제8차 당대회에서 채택되었다. 이 두 당대회에서는 강령에 대해 광범위한 토론이 있었지만, 당명 변경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기울여지지 않았다. 1918년에 당명에서 노동자를 남겨 두고 러시아를 없애자는 의견은 신속하게 기각되었다.

 

한 대표자가 당명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없애는 것에 반대한 일은 있었다. 유리 스테콜로프(Iurii Steklov)는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쓸 도덕적 자격을 모두 잃었는데도 자신들을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부르는 멘셰비키 집단들의 정치적 가장무도회를 끝내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봤다. 그는 만약 예전 이름을 없애면 많은 정치적 이점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히 말하건대 이 영광스러운 당명을 바꿈으로써 마르토프와 그 친구들 이외에는 아무도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당명을 바꾸면] 우리는 이 단어[사회민주주의]를 자기들의 당의 표현으로 여기는 데 익숙해져 있는 모든 대중들을 다시 교육해야 합니다.

 

그래서 스테콜로프는 괄호 속에서 볼셰비키를 빼고 대신 공산주의를 집어넣어서, 새로운 당명을 “RSDRP(공산주의)”로 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볼셰비키라는 단어가 오직 역사적으로 1903년 제2차 당대회에서 볼셰비키들이 다수파였던(러시아어로 bol’shinstvo) “우연에서 유래한 의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 대한 답으로, 부하린은 지금 대중들은 볼셰비키들을 자신들의 투사로, 멘셰비키들을 반역자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 주장에 덧붙여 다음과 같은 주목할만한 논평을 했다.

 

문제는 볼셰비키라는 단어가 지금은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 어리석은 단어이고 이 단어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우리는 이걸 유지해야 하는데, 그래야 이 문제의 세부사항들을 접하지 못한 대중들이 이 당이 무슨 당인지를 알아내느라 혼란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 당대회의 결의안을 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7차 당대회 직후에 부하린은 공산주의적 강령’(Programma Kommunistov)이라는 제목이 붙은 작은 책을 하나 썼다. 바로 이 책의 끝부분에서 그는 왜 우리가 공산주의자라고 불리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했다. 새로운 당명의 괄호 속에 들어간 볼셰비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부하린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의 분할선은 모든 나라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을 가로지르는 분할선이었다. 그런 분열의 사례로, 그는 10월 혁명 이후의 멘셰비키들과 볼셰비키들의 무력 충돌에 대해 언급했다. “우리 사이에는 피의 강이 흘렀다. 그런 일은 절대 잊힐 수 없고 잊히지도 않을 것이다.”

 

7차 당대회에서 몇몇 사람들은 괄호 속에 넣은 볼셰비키는 임시적이라고 보았고 이 문제가 1919년 다음 당대회에서 다시 다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비록 1919년 제8차 당대회에서 강령에 대해선 광범위한 논쟁이 있기는 했지만, 공식 당명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었고 당은 계속 “RKP(B)”로 남게 되었다.

 

당이 어떻게, 왜 공식적으로 볼셰비키가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사실 당이 스스로 그 이름을 붙이는 것을 결정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보다 오히려 당은 외부 사람들이 그 명칭 사용을 고집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1917~18년에 당은 정치적 이름 붙이기를 고무한 정치적 경쟁이라는 객관적인 과정의 결과로 볼셰비키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6차 당대회에서 연설을 한 멘셰비키 국제주의자 유리 라린의 경우를 검토해 보자. 라린은 더 나아가 당에 가입했고 볼셰비키 정부의 경제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딸은 이후에, 6차 당대회에서 그의 논평을 반겼던 부하린과 결혼하기까지 했다. 1917년에 라린은 여전히 스스로를 멘셰비키로 생각했고, 그나 레닌 같은 오래 일했던 일꾼들은 전술적 문제에 대한 전통적 갈등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RSDRP에 가입하는 순간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를 볼셰비키로 불렀을 것이다.

 

이 사례는 이 과정의 본질을 보여준다. 당은 스스로가 RSDRP의 예전 분파들 중 한 분파에 불과하도록 쪼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볼셰비키라는 단어는 이전의 분파적 소속과 상관없이 당내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도록 확장되었다.

 

그러면서 외부인들이 쓰는 볼셰비즘의 전반적인 의미가 당내 문제를 잘 아는 이들의 더 정확한 정의보다 지배적인 것으로 되었다. 그 전반적인 의미는 몇몇에게는 공포스럽고 몇몇에게는 감격스러운, 쉽게 말해서 하층계급이 정치권력을 잡고 그것을 러시아 사회의 폭넓은 변혁과 세계 혁명을 위해 사용하는 급진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 중 당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은 자문할 수도 있다: 이 전반적인 정의가 어쩌면 가장 유용한 정의가 아닐까?

  

(기사 등록 20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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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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