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이제 지나간 2024년 한 해를 집약적으로 한 단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생각이 나는 "2024년을 상징하는 단어"는 "극우"밖에 없습니다. "용의 해"이어야 했을 갑진년인 2024년은, 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독사"에 더 가까운 극우의 해가 된 것입니다.
일단 꼭대기, 즉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쇠락해가는) 패권 국가부터 시작합시다. 미국에서는 극우가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고, 이제 장기적 지배체제를 구축하려고 합니다. 트럼프에 아부하여 새 정부에 연줄을 대려 하는 아마존과 구글, 애플 등 미국 하이테크 재벌들의 행태로 봐서는, 일단 저들이 트럼프2기를 넘어서도 극우화된 공화당의 지속적 지배를 예상하는 것 같습니다.
하도 극단적 언어와 나름대로 계산된 행동이 맞지 않은 트럼프인지라 예측은 매우 힘들지만, 일단 미국은 고관세와 특정산업 (반도체 등) 양성책 등 탈세계화의 방향으로 계속 가고, "중국의 영향이 지나친" 파나마 운하를 다시 장악한다든가 등등 대중국 대립의 각을 계속 세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린랜드 장악 관련의 발언으로 봐서는, 북극 지역에서의 자원 쟁탈전에서의 더 공격적인 자세도 보일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국내에서의 소수자 (미등록 이민자 등)에 대한 탄압/배제와 탈세계화/국민경제로의 회귀 조치, 그리고 대외적인 대립의 지속이 우리가 현재로서 이해할 수 있는 트럼프주의의 요지입니다. 대러시아 대립은 아마도 다소 완화되겠지만, 그만큼 대중국 대립은 악화될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특히 백인 하층과 중하층, 그리고 광범위한 "전통 가치 지향의" 대중적 기반을 가지고 압승한 겁니다. 한국의 극우들은 트럼프와 전혀 다릅니다. 트럼프의 대중국 대립 노선과 고관세, 보호주의 노선은 예컨대 세계화와 중국과의 경쟁 등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잃을 위험에 처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수많은 노동자 등의 지지, 즉 나름의 대중적 기반을 확보한 것입니다.
반대로 윤석열의 대북 국지전 도발의 시도는, 한국인 대다수가 결사 반대할 망국적 망동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극우들은 상당한 대중성을 갖고 있지만, 한국 극우들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대체로 10-15%에 불과합니다. 대체로 특정 연령대와 특정 지역, 특정 종교 광신도에 한정된, 매우 협소한 지지기반입니다.
그런데도 윤이 국정을 장악하여 내란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핵심 국가 관료 기관 (검찰, 군의 정보계열 등)에 극우세력들이 절대적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한국 총지배층의 이익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았던 윤의 망동의 결과로 윤은 감옥에 가고 조기 대선에서 온건 자유주의 세력들이 압승을 거두겠지만, 일단 이 권력형 극우들을 제거시키지 않는 이상 한국 민주주의는 안정적일 수 없을 것입니다.
좌우간, 2024년에 우리가 미국 극우와 한국 극우 사이의 "차이"를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미국의 극우들은 집권을 준비하고 있고, 한국의 극우 수괴는 사실 감옥행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미국에서는 극우들이 약진했고 한국에서는 내란을 도모했다가 실패했습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극우들의 약진을 지금 목도하고 있습니다.
핀란드, 크로아티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이탈리아, 네덜란드에서는 극우들이 이미 입각돼 있고, 스웨덴에서는 20%대의, 프랑스에서는 30%대의 지지를 받고 있어 "핵심적 정치 세력"으로 부상한 것입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90년 전에 이미 "극우의 승리"를 한 번 경험해 "최악"을 맛본 독일에서마저도 극우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은 대체로 18-22%의 지지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의 핵심 국가 (독-불-이)와 북구의 부자나라 (스웨덴, 핀란드 등)를 포함해서 20-30%대의 극우 지지는 지금 유럽의 "새로운 노멀"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다중, 복합 위기가 심화될 수록 이 트렌드가 더 악화돼 갑니다.
이외에는 러시아의 집권 극우인 푸틴은 돈바스 영토 대부분의 점령에 성공하고, 터키의 극우인 에르도완은 그가 후원해온 이슬람주의 세력의 시리아 장악을 가능케 한 뒤에 지금 현재에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극우 정치는 핵심부에서도 준주변부에서도 거의 "새로운 대세"로 보이는 것입니다.
극우들은 사회적으로 누구인가요? 러시아나 한국의 경우처럼 국가 폭압 기구의 출신 (비밀 경찰, 검찰 등)이 극우를 주도할 수도 있지만, 핵심부에서는 극우의 우두머리들은 종종 대기업인이나 직업적 정당 정치인들입니다. 그 지지층은 일부 "정통" 우파 지지자 (부유층, 소기업인 등)도 포함하지만, 요즘 가면 갈수록 하층과 중하층, 그리고 특히 수많은 비조직 노동자들을 더 포함합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르펜 등 대선 때의 극우 후보들은 대개 30-40%의 블류칼러 (육체 노동자)의 표를 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극우를 지지하는 노동자들은 대체로 이민자들을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자로 인식하는 한편 보호주의적 국가가 부활하여 산업 부문을 보호, 육성할 것을 기대합니다.
즉, 그들이 탈세계화를 지지하는 것이죠. 무역 국가인 한국으로서는 탈세계화는 그냥 망국에 준하는 재앙을 의미하기에, 한국에서는 구미권과 달리 이런 "극우파의 대중적 기반"은 거의 형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말입니다.
그러면 극우파가 집권해서 그 대중적 기반을 이룬 계층들의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인건비/이윤율/생산비용 등으로 봐서는, 트럼프가 중국산 수입에 60%의 관세를 설령 부과해도 그 혜택을 미국 생산업자보다 멕시코 생산업자들이 더 많이 챙길 것입니다. 멕시코/캐나다에도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지금 협박하지만, 이는 아마도 외교, 정치 등의 차원에서는 중국 상품에의 관세 부과보다 훨씬 더 힘들 겁니다.
설령 미국 생산업자들이 그렇게 해서 일부 일자리 창출 효과를 보더라도 상품 가격이 비싸져서 결국 노동계급의 소비자들이 물가 인플레이 등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많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이민 통제와 미등록 이민자의 대대적 강제 추방은 특히 농어업과 서비스 부문에서의 생산비용 상승, 그리고 궁극적으로 물가 인플레이만을 부추길 것이고, 미국 노동자들이 몸으로 느끼는 "실감 경기"를 더 악화시킬 겁니다.
즉, 궁극적으로 현재와 같은 일부 노동자들의 극우파 지지는 그야말로 "허상"에 근거한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의 "배반"에 불과합니다. 저는 그래서 2020년대 초-중반의 극우 약진 트렌드는, 2020년대 후반이나 2030년대에 얼마든지 구미권의 "좌파 약진" 트렌드로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트럼프 이후의 세계는 훨씬 더 혼란스럽고 폭력적일 것이고, 그 세계에서의 구미권의 위상도 옛날 같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구조화돼 가는 구미권과 중국권의 대립 등 제국주의적인 글로벌 대립, 대결의 구도 등을, 좌파가 어떻게 완화시킬 수 있을는지 이제부터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기사 등록 2024.1.13)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http://www.anotherworld.kr/1300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 가입 신청 https://forms.gle/RJPxoUvQw4MQnkw57
- 문의: newactorg@gmail.com/ 010 - 8230 - 3097
'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읽기 - 가자는 상품이 아니다/ 1.19 폭동/ 계엄 체포명단 (2) | 2025.02.10 |
---|---|
[박노자] 글로벌 민족주의 시대의 개막 (1) | 2025.02.04 |
'2016 촛불혁명'에서 '2024 빛의 혁명'으로 (1) | 2024.12.27 |
[박노자] 제국의 주요 상품, 무기 (3) | 2024.12.22 |
'내란의힘'은 가야한다.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6) | 2024.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