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다시 돌아보면 12.3 쿠데타는 정말 살 떨리는 순간이었다. 역성 쿠데타가 아니라 이미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국회 장악만을 위한 친위 쿠데타는 소수 병력이면 충분하고 통계적으로도 성공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머지 권력까지 쥐게 되면 윤석열은 전체주의적 독재자가 됐을 것이다.
윤석열만이 아니라 대부분 기득권 우파가 '이대로 갈 수는 없다'라는 비슷한 생각을 공유했다. 조선일보는 이번 쿠데타 다음날에 "야당의 횡포를 비판하는 (계엄) 담화 중반까지는 고개를 끄덕였다"라고 실토했다.
따라서 지금 와서 선 긋는 태도가 아니라, 12.3 새벽과 탄핵 표결 때의 태도를 봐야 한다. 그 새벽에 침묵하고 있었다면, 또 '내란수괴'를 탄핵하지 말고 권력을 유지해 주자는 것이면 기본으로 쿠데타를 기대하고 성공을 응원했다고 볼 수 있다. 설사 내심 반대했더라도, 성공했다면 얼마든지 태도를 바꾸어서 독재에 부역했을 것이다.
윤석열이 내세운 명분이 황당무계하다는 것도 본질이 아니다. 박정희, 전두환 쿠데타의 명분도 지금 다시 보면 매우 황당무계하다. 오늘날 트럼프의 당으로 변신한 미국의 공화당에서 주요 지도자들이 받아들이는 '큐어논'식의 음모론도 매우 황당무계하지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이 지지자들을 결속하고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는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극우 유튜버들의 부정선거론에 속은 것이 아니라, 윤석열 세력이 극우 유튜버들을 부추겨서 그것을 퍼트린 것이 더 진실에 부합한다. '태극기부대'도 단지 소외된 안쓰러운 노인들이 아니다. 부정선거론의 선봉인 황교안은 장관, 총리,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했었다.
따라서 윤석열은 이번에 쿠데타가 성공하기만 한다면 정치검찰, 군부, 국민의힘뿐 아니라 족벌언론, 대자본가, 특권 세력들이 자신의 뒤로 줄을 설 것이라고 확신했을 법하다. 하지만 도박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날 밤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의 용기와 행동, 야당 지도부와 보좌관들의 구실 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구했다.
추가로 두 가지를 더 강조할 수 있는데 첫째,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당과 진보적 야당들이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 둔 것은 정말 중요했다. 둘째, 민주당 지도부의 '계엄'에 대한 사전 경고와 대비가 매우 중요했다. 그런 경고가 마음의 준비와 대비, 즉각적 대응을 가능하게 했다. 계엄이 해제된 순간부터 윤석열이 탄핵당한 14일까지도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쿠데타를 시도한 우두머리가 여전히 군 통수권 등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도 12월 14일 국민의힘은 기권과 무효까지 포함해 절대다수인 96명이 탄핵에 반대했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때보다도 훨씬 이탈표가 적었다. 그만큼 이번 윤석열의 쿠데타는 국민의힘 다수의 공감대 속에서 추진됐다는 뜻이다. 정치검찰이 칼을 쥐고서 박근혜를 꼬리 잘랐던 8년 전처럼 하기가 훨씬 더 어려운 조건이라는 점이 작용했다.
엄청난 피를 흘려 몸통을 죽이지는 않고 윤석열만 도려내는 식의 꼬리 자르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 검찰은 '내란 사태' 수사에 뛰어들어서 어떻게든 이 수사를 망치고 자신들의 범죄 흔적을 덮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다.
물론, 족벌언론들과 국민의힘 일부도 탄핵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일단 들끓는 가마솥의 김을 살짝 빼면서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벌려는 것이다. 그 사이에 다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12개 혐의와 5개 재판'이라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올가미를 이용해 '중범죄자와 방탄 정당'이라는 마녀사냥을 작동시키려는 속셈이다.
몇 개월 내로 이재명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나와서 정치 생명이 멈춰지거나, 내부적 갈등과 분열 때문에 폭발하던 분노가 가라앉고 흩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분명하다. 탄핵 판결이 계속 미뤄지다가 기각될 가능성도 사라진 게 아니다. 돌아온 윤석열은 보복의 피바다를 만들 수 있다.
세 가지 요인들이 걱정을 더 한다. 첫째, 윤석열은 직무 정지됐지만 정치검찰-족벌언론-사법부의 '삼인성호' 카르텔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둘째, 검찰-언론 카르텔이 오랜 마녀사냥으로 만든 낙인과 편견의 강력한 힘은 여전히 50%가 넘는 이재명에 대한 비호감도로 나타나고 있다.
셋째, 이번에 2030여성들의 참가와 주도성이 높은 것은 매우 고무적이지만, 8년 전에 비해서 2030남성들의 참가는 눈에 띄게 줄었다. 통계를 보면 2030여성의 참가가 늘었다기보다, 2030남성의 참가가 줄어든 게 더 진실에 가깝다. 이들은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페미니즘과 소수자들을 조롱하고 혐오하면서 2016년 촛불혁명에서 이탈해 왔다.
따라서 윤석열 탄핵은 신속하게 거둔 우리의 승리이지만, 앞으로 남은 과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이제부터 본격화할 대대적인 반격, 마녀사냥, 갈라치기에 흔들리거나 갈라서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거대한 힘과 대오를 유지하면서, 2030남성 등으로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구실과 책임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이번에 쿠데타를 저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지금도 가장 큰 지지를 받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광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소수자 차별에 대한 소극적 관심과 태도를 벗어나야 한다. "권력은 바뀌었는데 왜 나의 삶은 바뀐 게 없냐"라는 "따가운 질책을 기억한다"라는 이재명 대표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검찰 개혁도 제대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물론 민주당은 폭넓고 다양한 계급과 계층을 포괄하는 중도개혁 정당으로서 또다시 한계와 오류를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소수자 차별에 앞장서 싸우고 더 급진적 개혁 정책과 노선을 추구해 온 민주당 왼쪽의 진보정당과 좌파 단체들이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이들의 영향력이 8년 전보다 오히려 더 줄어들었고, 내부의 갈등과 불신도 여전하다는 현실에 있다.
그저 이재명이 체포, 구속되고 민주당이 망하길 기다리며 욕한다고 해서 '민주당 왼쪽의 진보좌파'들에게 다음 기회가 오는 것은 아니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진보정당과 좌파 단체들이 검찰, 언론 개혁 등에 관심이 없고 국민의힘과 같은 편에서 마녀사냥에 동조하고 있다는 오해와 거부감만 키워서, 영향력과 지지가 더 줄어드는 결과만 낳았을 뿐이다.
한국 사회는 반세기가 넘는 군부 독재와 일당 독재 속에서 형성된 기득권 우파와 권력의 카르텔이 매우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2016년 같은 일이 벌어져 또다시 권력을 놓치는 일은 무슨 수로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됐고, 그것이 이번 윤석열 12.3 쿠데타의 배경이었다.
그것을 막아낸 우리는 기득권 우파의 권력 기반과 검찰-언론 카르텔을 해체하면서 다시는 이런 시도가 가능하지 않을 구조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결코 만만한 싸움이 아니고, 얼마든지 상황은 다시 역전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시작된 '2024 빛의 혁명'은 2016년 촛불혁명을 더 넘어서 나아가야 한다.
(기사 등록 202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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