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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강제동원/간첩조작/이태원 참사/학교폭력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3. 19.

전지윤

윤석열의 강제징용 문제 해결가해자의 승리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문제 해결은 가해자의 승리이면서 거대한 2차가해인데, 그러면서 정부와 족벌언론들이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미래를 위한 대승적 화해와 용서이다. 이들은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도 없이 용서를 강요한다.(‘대승적이라는 단어처럼 가해자들이 즐겨쓰는 단어는 없다.)

개인적으로도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다가 가해자 쪽에서 기가 막힌 논리를 펴며 화해를 말하며 용서를 강요하는 경우를 몇 번 경험하고 목격했다. 한번은 우리도 잘못했지만 피해자도 공론화를 통해서 우리를 힘들게했으니 이제 대승적 쌍방 사과를 해서 문제를 풀자고 했고, 그것을 거부한다고 또 피해자를 비난하고 괴롭혔다.

한번은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떠넘기는 듯한 사과문을 피해자도 아닌 남에게 써보내 놓고는, ‘이렇게 사과했는데도 몇 년 동안이나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가스라이팅이고 또다른 가해다라면서 피해자와 연대자들을 공격했다.

그런데 이런 가해자들과 그 지지자들이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피해자야말로 누구보다 용서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심리학자인 해리엇 러너가 쓴 <당신, 왜 사과하지 않나요?>를 보면 그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충분히 오래 대화를 나누며 경청하고 나면 실제로는 용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용서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님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보다는 스스로가 분노, 고통, 후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뜻이다.... 결국 ‘용서하고 싶어요’라는 말은 ‘이 일을 떠나보내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어요’라는 뜻이다.”

그런데 용서를 하려면 가해자가 먼저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며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의 경우에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의 배상이 필수불가결하다. 그것이 없는 용서와 화해는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도 망치는 길이다.

“나는 가해자가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자기반성을 할 수 있는 경우에만 '용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가 없다면, 또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라도 미안함과 재발 방지 맹세를 해오지 않는다면 용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재니스 에이브람스 스프링의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인간애에 반한다. 가해자는 용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성을 회복할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 일본이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 전쟁 범죄를 저지른 나라의 정부와 구성원들로서 그러한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서 인간적 가치들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반성과 사과가 필요하다. 이것은 당연히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지금 반성과 사과없는 화해와 용서를 말하는 이들은 가해자의 승리를 위해 이 모든 것을 망치고 있다.

조작도 성의가 있어야 한다

요즘 국정원과 검찰과 조선일보 등이 북치고 장구치는 공안 탄압과 간첩 조작에 대해서 원래도 전혀 믿음이 안갔지만, 며칠전 아침 조선일보를 보고는 정말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아래에서 보듯이 북한이 민주노총에 퇴진이 추모다라는 구호를 지령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왜 뿜게 됐냐면은 민주노총은 지금 윤석열 퇴진구호를 채택하지 않고 있어서 안팍에서 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퇴진 구호는 이미 작년부터 촛불행동이라는 연대체에서 채택해서 거의 매주 주말마다 시내에서 촛불집회를 진행해 왔다.

이 연대체는 상대적으로 민주당과 가까운 단체들이 많이 포함돼 있고, 따라서 진보정당들이나 민주노총은 여기에 최근까지도 결합하지 않아 왔다. 그래서 촛불행동은 진보정당들이나 민주노총을 향해서 왜 윤석열 퇴진 구호를 내걸지 않고, 촛불집회에 함께 하지 않냐고 비판해 왔다. 촛불집회와 민주노총 집회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진행돼 왔고,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이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진행돼 왔다.

따라서 퇴진이 추모다구호도 촛불행동의 촛불집회에서 나온 것이지 민주노총에 내건 구호가 아니었다. 실제 조선일보 사진을 보면 민주노총 집회가 아니라 촛불행동의 집회 사진이다. 결국 국정원과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면, 민주노총은 북한의 지령을 거부하고 있는 셈이 된다. 노동운동과 반윤석열 투쟁 등에 대해서 관심이 있고 참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만한 사실도 모르고 조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과 조선일보의 정보력이 이 정도 수준이라니 정말 실망(?)스럽다. 조작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최소한의 성의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적어도 뭔가 말이 되고 그럴듯하기라도 해야지 믿어 줄 것 아닌가. 민주당 쪽에 대한 수사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최근에 거의 검찰과 조선일보가 추앙하는 정신적 지주나 교주처럼 보이는 유동규(이 사람이 무슨 말만 하면 무조건 1면 톱이다)김용에게 종이박스에 1억을 담아서 전달했고, 김용은 그것을 외투에 숨겨서 가지고 사무실을 나갔다고 하고 있다. 1억담긴 박스를 안보이게 숨기는 외투는 무슨 요술외투인가?

그동안에도 국정원과 조선일보의 소설은 너무 심했다. 지난해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조선소 점거 파업도, 화물연대 파업도, 이태원 참사 추모집회도 모두 다 북한의 지령과 지시에 따라서 진행된 것이라니... 그 투쟁들이 어떤 상황과 맥락과 주체들에 의해서 힘들게 건설되고 진행됐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에게는 기가 막힐 말들이었다.

그런데 보자 보자하니 이제는 대놓고 아무말 대잔치를 하며 코미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의 수사를 공안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북한의 지령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정말 중증이라는 생각 밖에 안든다. 이들에 따르면 정말 북한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닐 수 없고, 나는 북한의 지령에 따라 행동하고 사고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된다.

북한이 내 머리 속에 칩을 심어서 내가 매번 북한의 지령에 딱 맞는 주장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런 소설을 바탕으로 해서 며칠전 조선일보의 김대중 칼럼은 북한은 이틀이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 한국을 위협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 내에선 친북 세력이 활개 치고 종북 세력이 암약하는가 하면 여기저기서 간첩이 보란 듯이 나대고 있다며 호통치고 있다.

또 조선일보는 이미 5년 전에 단서를 잡았다는 수사가 왜 이제야 이루어지는 건지, 왜 새 정부가 출범하고도 8개월이나 시간이 필요했는지 궁금하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고 했다. 친북간첩인 문재인이 수사를 못하도록 가로막았다는 이야기다. 너무 딱해서 설명해주고 싶다. 이 정도로 허접한 소설이니 이전 정부에서는 그나마 상식이 있는 관료들이 좀 더 말이 되게 만들어보자고 말렸던 것이다.

이 나라 정보기구와 우파 언론들의 수준이 왜 이럴까 생각하다가 최근 국민의힘 경선에서 황교안이 천하람을 공격하던 것이 떠올랐다. “과거 같으면 이런 경우 (검찰 공안부에서) 내사를 해서 왜 이런 발언을 했는가, 북한을 돕기 위해서 했다고 그러면 그건 이적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보수우파를 대표하는 국민의힘의 전 대표이고 대선 후보중에 하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이 상황들이 모두 이해가 간다.

(* 유가족들의 뜻을 거슬러서 10.29 이태원 참사를 곧 죽어도 핼러윈 참사라고 부르고 있는 조선일보에 대해서도 한마디하고 싶다. ‘재난의 정치화는 바로 당신들이 하고 있다고.)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기억과 연대는 계속된다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해 내가 정리해서 쓴 글이 <황해문화> 118호에 실렸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7761719 이 글을 제안해주시고 실어주신 <황해문화>와 몇몇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많은 사람에게도 그렇겠지만, 이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 함께 내가 평생 잊을 수 없고 계속 추적하며 함께 가야 할 문제가 됐다. 이번 글을 보내고 나서도 몇 가지 덧붙일 생각과 쟁점들이 나타났다.

먼저,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유가족이 참사 이후에 나간 교회에서 왜 우리 신자가 그런 행사에 갖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제 그만 잊으라는 목사님의 말을 들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당연히 그것은 큰 상처가 됐다. 사실 그 목사님처럼 고통 받는 사람의 곁에서 함께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이태원 사태 등으로 지표가 나쁘고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졌다고 발언한 것도 비슷한 문제였다. 문제는 이처럼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들이 잘못을 깨닫고 사과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전문성을 인정받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더 그런 경향이 있다.

유가족이 신자유연대의 괴롭힘에 맞서 제기한 소송에 대한 판결문이 대표적이다. “(유가족의) 행복권이나 인격권이 신자유연대의 집회의 자유보다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신자유연대 측을 배제하고 이 사건 광장을 배타적으로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문구에는 냉혹한 법전문가로서의 언어만이 담겨져 있었다.

한편,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을 평가하면서 흔히 나오는 법적 책임과 처벌보다는 시스템 구축으로 접근했어야 하고, 지나치게 정쟁화하면서 운동의 한계만 만들어졌다는 주장들도 솔직히 동의하기가 어렵다.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같은 재앙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앞당기는 구실을 한 고위공직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 처벌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면, 그런 현실과 법적 구조가 문제인 것이지, 그것을 추구한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다.

정쟁화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쟁이라는 프레임으로 진실을 위한 요구와 투쟁을 색칠해버리고 가로막고 손을 잡아주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아래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세월호 유가족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이태원 유가족들이 또 그 짐을 함께 지고 나서고 계시다.

이런 숭고한 투쟁 속에서 8개 유가족 단체가 전국재난참사피해가족연대꾸리고 오랜 기간 반복되고 고통 받아 온 전국의 재난참사 피해자들과 연대하면서 앞으로 재난 피해자 권리 옹호 센터를 만들겠다는 소식은 정말 슬프면서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끝까지 여기에 함께해야 한다. 더불어 다시 확인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 때문에라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처벌 강화와 무관용 정책이 과연 학폭을 해결할까?

드라마 <글로리>에 더해서 정순신 사태로 학교폭력은 더 뜨거운 사회적 쟁점이 됐다. 하지만 선정적인 보도나 고발을 넘어선 더 깊이있는 고민과 논의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현장의 교사 노동자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요즘의 학교폭력은 갈수록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라는 단어만 들어도 골치가 아프다는 것이다.

들어보면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들이 반성과 사과가 아니라, 한사코 잘못을 부정하며 어떻게든 피해자의 신뢰성을 떨어트리고 고립시키려고 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차가해가 끝없이 이어지면서 원사건 보다도 더 심각한 폭력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먼저, 눈에 띄고 처벌받기 쉬운 물리적 폭력보다도 언어적 폭력이나 문자메시지, 단톡방에서 조리돌림 등을 통한 정신적 심리적 폭력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변화이기도 하다. 이것이 피해자에게는 더 극심한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검찰공화국과 모든 것의 법시장화속에서 학교폭력도 초기부터 변호사와 로펌들이 개입하게 된다. 요즘 인터넷을 하다가 보면 자주 보게 되는 것 중 하나가 경검판 출신 전문 로펌에 대한 광고다. 광고를 따라가 보면 경찰, 검사,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성공을 보장한다면서 온갖 파렴치한 잘못을 저지른 의뢰인들이 어떻게 법망을 벗어났는지 소개하고 있다.

이런 법전문가들이 학교폭력 가해학생과 부모에게 코치하는 게 피해자가 가해에 맞서면서 했던 행동과 언행을 또다른 폭력으로 만들어서 쌍방폭력으로 프레임을 바꾸라는 것이다.(분노를 참지못한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욕하면, 그것을 언어폭력으로 규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심지어 피해자의 편에서 가해자에게 반성을 요구했더니, ‘사과를 요구하면서 괴롭힌 가스라이팅의 가해자라며 낙인찍고 공격하는 것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학폭위에서 결정이 내려지면 이번에 정순신이 보여준 것처럼 재심청구, 행정심판, 가처분소송, 항소, 상고까지 가는 끝장 소송을 통해서 시간을 끌고 피해자를 괴롭히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다. 더 나아가 피해학생이나 부모가 가해학생과 부모를 비판한 것을 허위사실 유포를 통한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하는 방법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피해자는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준 가해자로 뒤바뀌어서 재판에 불려다니고,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막대한 시간, 비용을 투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심지어, 로펌과 법기술를 통해 가해자가 성공하면 피해자는 손해배상까지 해야 한다. 일상은 파괴되고 트라우마는 더욱 깊어진다.(이것 역시 성폭력 사건들에서 직간접적으로 목격하고 경험해 온 사실이다.)

이처럼 기막히고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정순신 사태로 일부 드러나면서, 가해학생을 더 강력하게 처벌하고 진학에도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더 높아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그런 방향의 대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해자 도려내기무관용 정책은 별로 대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등은 이런 방식이 교육적이지도 인권적이지도 않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현재의 폭력적인 학교문화, 교육과정 자체를 바꾸어야 하며, 그렇지 않고 오로지 학생들에 대한 처벌과 통제만을 강화하는 것은 제2, 3의 가해자, 피해자를 양산할 뿐입니다.”

특히, 이렇게 되면 가해학생과 부모들은 더욱 더 절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해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법률적 대응에 나설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이 기록으로 남으면 이후에 법적 다툼에서도 불리하고 진학까지 영향을 미치고 평생을 따라다닐 것라고 생각할테니 말이다.

수많은 성폭력 가해자들이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2차가해를 반복하는 이유나, 법기술자인 검사들이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해학생들을 강력 처벌하고, 평생 진학과 취업과 출세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학교폭력을 일으키는 구조와 새로운 가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학폭위가 처음에 만들어질 때의 지향은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선도하면서 화해와 치유로 나아간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학교 구성원들의 신뢰도 회복하게 만드는 길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이상적인 좋은 말로만 들리는 게 사실이다. 왜 그런가?

오늘날 교육현장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우정보다는 입시와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교사와 학교는 인성교육이 아니라 좋은 성적을 내고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느냐로 평가되고 있다. 부모는 돈과 권력에 따른 계급으로 서열이 매겨져 있다. 이 서열은 학교와 학생들에게도 반영돼 있다. 검사 부모같은 이들은 자녀가 학교폭력을 저질러도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줄 수 있다.

돈없고 힘없는 부모를 가진 자녀는 피해자가 되기는 쉽고, 벗어나기는 어렵다. 돈과 권력을 가진 부모들은 사회적 약자와 자신들의 경쟁자들에게 괴롭힘, 낙인찍기, 조리돌림, 마녀사냥을 자행한다. 정치검사들과 족벌언론들이 매일 하는게 바로 이것이다. 그러한 사회의 위계질서와 작동방식은 다시 그대로 학교와 학생들에게서 모방되고 반복된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건설노조 죽이기등에 사용하는 방식을 보면 학교폭력과 너무나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이 정순신을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한 것은 이런 사회적 질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수통 검사야말로 누군가를 끝없이 괴롭혀서 무릎꿇게 만드는 방식에 도통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런 사회적 질서와 구조는 외면한 채,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진학과 취업의 길을 봉쇄해야 한다면서 교육적 해결과 인권을 말하면서 이것을 가로막아 온 것이 바로 전교조라고 공격하는 이들이 있다. 적어도, 이들이 가리키는 곳에 길이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종북몰이와 <아버지의 해방일지>

윤석열 시대에 본격적으로 부활한 종북몰이와 활개치는 국가보안법, 국가정보원을 지켜보는 심정은 씁쓸하다. 심지어 정순신의 고등학생 자녀가 친구를 괴롭힌 방법도 빨갱이라고 낙인찍는 것이었다. 종북몰이는 촛불을 통해서 끌어내린 박근혜 정부와 함께 거의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머리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던 것이다.(이런 종북몰이에 방관하던 이들이 정순신 자녀의 행태에는 분노하는 것도 다소 역설적이다.)

지난해 기록적인 판매 부수를 보이며 베스트셀러가 됐던 정지아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그것을 보여 준다. 이 책은 빨치산 출신의 종북좌파를 아버지로 둔 딸이 화자로 나와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 속에서 아버지는 낡았지만 이상적인 사상을 고수한 채 살아가는 인간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런 책이 엄청난 히트를 치고, <조선일보>까지도 동인문학상 후보로 선정한 것은 달라진 세상을 보여 준다.

하지만 동시에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활동가들을 해외에서 북한간첩과 접선한 종북좌파로 낙인찍고서 압수수색을 하고 긴급체포를 하면, 사람들은 위축되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한다. 선을 긋고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일부에서는 실정법을 어기고 간첩행위를 했다면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편견과 낙인의 힘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옭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 된 채 살았던 것이다.”

소설에는 이런 편견과 낙인 속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몸으로 익히게 되는 어떤 서글픈 감각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선을 긋고 거리를 두기 전에 스스로 먼저 거리를 두는 자세 말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몸의 거리로 친밀감을 표현하는 모양이었다. 하기는 동물도 그렇긴 하다. 그 거리를 내가 허용하지 않고 살아왔을 뿐이다. 빨갱이나 그 자식들은 알아서 보통 사람들이 친밀하다고 허용하는 거리를 넘어서 있어야 했다. 그래야 누군가 빨갱이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당하지 않을 테니까.”

이번에 정순신 사태에서 정순신의 자녀가 친구를 종북몰이하게 만든 결정적 힘이 검사 부모의 영향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봤다는 <조선일보> 때문인지,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이 모두 때문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조선일보>가 종북몰이에 미치는 영향력은 다시 확인된 셈이다. 여기서도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재미있는 대목이 나온다.

“아버지는 박선생이 구독하는 조선일보를 빼앗아 후루룩 일별했다. 그러고는 박 선생에게 휙 집어던졌다. ‘이런 반동 신문을 멀라고 아깐 돈 주고 보는 것이여! 한겨레로 바꽈 이번 기회에 평상 교련선상 함시로 민족 통일의 방해꾼 노릇을 했으믄 인자라도 철이 나야 헐 것 아니냐!’ ‘니나 바꽈라. 빨갱이가 빨갱이 신문 본다고 소문나먼 경을 칠 텡게.’”

여기서 조금 씁쓸해지는 것은 세월의 변화 때문인지, 검찰의 목소리를 받아쓰는데서 조선일보와 큰 차이가 없어진 한겨레, 그리고 북한 간첩과 접선한 종북좌파라고 낙인찍힌 사람들의 억울한 목소리를 대변하는데서 적극성이 줄어든 한겨레에 대한 아쉬움이다.

** 지금 '청주간첩단'으로 몰려 국가정보원에 끌려간 사람은 한달째 단식투쟁을 하면서 진술거부 중이지만 어느 언론도 알려주지 않고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정순신 아들의 빨갱이 낙인찍기는 실패했지만, 국정원의 빨갱이 낙인찍기는 성공했다.

유아인의 8년간 휴대폰 기록 46만건을 뒤진다니

종북몰이 마녀사냥에 대한 타협과 굴복을 비판하다가 속해 있던 좌파 조직에서 경기동부연합의 변호인이라는 둥의 또다른 작은 마녀사냥과 조리돌림을 겪은 후부터 이런 패턴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파고 들수록 이것은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한국사회는 검찰, 언론, 정치세력, 바람잡이 지식인 등이 연결돼 있고 그런 시선으로 수없이 반복되는 한국사회의 비슷한 패턴을 지켜보게 됐다.

그런데 사실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인 신상털기와 조리돌림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연예인들이다. 잘 살펴보면 거의 주기적으로 사람을 바꿔가면서 특정한 연예인의 실수, 잘못, 치부가 드러나면서 언론이 물어뜯고, 사람들이 몰려들고, 댓글들이 달리면서 만신창이가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연예인이 성폭력이나 음주운전 등으로 누군가에게 피해와 고통을 줬다면 다른 이야기이지만, 대개의 경우 사소한 잘못, 실수, 곡해 등을 바탕으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 또는 먼 과거의 알수 없는 일이거나 누군가의 일방적인 주장으로도 무조건 공격이 시작된다. 주로 여성 연예인들이 타겟이 되지만, (또다시 욕먹을 것을 각오하면서도 말하자면) 요즘에는 유아인 씨도 그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유아인 씨는 딱히 좋아하던 배우는 아니고, 여러 논란들에서 유아인 씨의 주장을 지지한 적은 없다.(내가 동의하지 않는 주장을 하던 사람이니 당해도 싸다는 태도는 거부한다.) 하지만 수면마취제 과다 투약과 마약 의혹만으로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지금 분위기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게 혐의의 전부라면,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와 고통을 준 것은 아니다. 무조건 모든 마약을 불법화하고 처벌하는게 맞는지도 의문이다.

가수 신해철씨가 대마초로 처벌받고 합법화를 주장한게 벌써 20년전이다. 대개의 유명 연예인들처럼 공황장애와 피부병에 시달렸다는 유아인 씨의 사정도 들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여기서 또 오해를 피하기 위해 굴욕적이고 비겁한 고백을 알아서 하자면, 나는 마약은커녕 담배와 술도 거의 하지 않는다. 언젠가 마약이 합법화된 나라에 여행을 가게 되면 해볼까하는 호기심도 있지만, 귀국해서 겪을 일들을 생각하면 귀찮아서라도 안할 것 같다.)

하지만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시대에 이런 이야기들은 전혀 파고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수사기관은 서슬퍼런 칼을 휘두르고, 언론은 계속 기사들을 쏟아내고 , 유아인 씨가 출연했던 영화와 광고 등은 지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섬뜩했던 것은 수사기관이 유아인 씨의 지난 8년간 휴대폰 사용 기록 46만건을 모두 뒤지고 있다는 보도였다.

이렇게 또 한 사람이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던 사람이나 연예인들이 뭔가 잘못을 했고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신상털이와 조리돌림을 당하는 것을 볼때면 사회학자 엄기호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다시 들춰보게 된다. 이 책의 후반부에 보면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양상과 패턴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서술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연일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 오는 것을 보면 대부분이 명망있는 사람들의 '추문'이다. 우리 삶을 좌우하는 정치나 경제보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이 바로 이런 명망가들의 위선에 대한 폭로, 그리고 그들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다. 나보다 잘나서 늘 나를 위축시키던 이들의 몰락을 사람들은 웃고 즐기면서 본다. 타인의 고통을 땔감 삼아 자신의 기분을 고양하는 것이다.
”특히 명망가들의 몰락이 큰 쾌감을 주는 것은 이들의 몰락 속도와 추락의 깊이가 평범한 사람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하기 때문이다. 몰락의 속도가 빠를수록, 추락의 깊이가 깊을수록 그것을 당하는 사람은 더 참혹하게 비참해진다. 따라서 타인의 비참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명망가들은 아주 좋은 먹잇감이다.
“이를 부추기는 것이 언론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언론은 거의 대부분이 사실상 관종이며, 이를 체계적으로 양산하고 있다. 언론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것은 '스캔들'이다. 다른 사람의 치 부, 특히 연예인을 중심으로 한 명망가들의 치부를 들춰내고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며 짐짓 도덕적인 척하는 것이 최근 언론이 보이는 행태다. 그렇게 언론은 명망가들의 추문을 정치로 만들 어서 정치를 추문으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신상이 털리고 인육을 사냥당하는 사람은 인격이 파괴되면서 죽음에 이르는 극심한 고통에 빠진다. 이들이 자신의 고통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다. 고통은 느끼지만, 그 고통을 전달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호소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 호소를 들어주는 언어, 즉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혹은 멀쩡하거나, 둘 중 하나를 반복하며 파괴되어 간다.“

 

(기사 등록 202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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