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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용병의 시대가 돌아왔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3. 22.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태초에 용병이 있었습니다. 중세후기나 절대 왕권 시대, 유럽의 대부분의 전쟁들을 대체로 용병과 강제로 차출돼 징집된 일부 농민 등이 수행한 것입니다. 한데 주로 농민 출신의 징집병에 비해 직업적 용병들은 훨씬 더 "양질의 군인"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양질의 전사"인 만큼 물론 고액의 보수도 요구하곤 했죠. 또 보수가 좋은 만큼 스위스와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용병"은 남성들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종이었습니다.

30년 전쟁(1618-1648)의 경우에는, 합스부르그 제국의 군에서 용병 졸병의 월급은 4굴덴 정도로, 대체로 고용농의 한달 벌이보다 약 2배 높은 금액이었습니다. 한데 전리품 취득, 즉 약탈이 사실상 합법이었던 시대에, 빈농 출신의 용병은 전투에서 전몰하지 않고 불구자가 되지 않는 이상, 몇 번 부유한 대도시 함락시의 약탈에 참여하고 꼬박꼬박 월급을 모았다면 전후에 작은 가게를 열 정도로 "치부"할 확률도 있었습니다. 전쟁은 대초에 "무력을 사용한 비즈니스"의 일종이었던 것이죠.

영국 같은 패권 대국은, 사실 1914년까지 주로 용병에 의존하여 징집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영국군의 졸병 월급은 낮은 것으로 악명 높았습니다. 1870-80년대에 1년에 30파운드밖에 되지 않는 돈이었는데 숙련공의 평균 임금보다 두 배나 낮았던 것입니다. 한데 빈촌의 고용농 벌이에 비해 약간 높은 금액이었기에, 군은 주로 아일랜드 농촌 등 가난한 주변부 지역의 빈촌 출신으로 충원됐습니다. 그런 군인들이 중국이나 인도, 아프간, 남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식민지 전쟁에서 많이 전몰돼도 영국의 주류 중산계층 사회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국주의 대국의 전쟁 불감증은 이렇게 탄생된 것이죠.

한데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로는 유럽은 점차 용병 전쟁에서 징병제 전쟁 시대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1,2차 대전과 같이 엄청난 인적 규모의 전쟁을, 소수 용병으로 수행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세계대전의 징집병 졸병들은 아주 소액의 보수만 받았습니다. 영국군의 경우에는, 1차세계대전 때의 졸병의 보수란 오늘날 돈으로 환전하면 약 한달에 300파운드, 50만원도 채 안되는 금액이었습니다.

이렇게 돈도 별로 안주고 총력전이라는 최악의 고위험 노동을 주로 노동자, 농민 출신의 병사들에게 강요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물론 "국토 수호" 등 애국주의적 프로파간다가 일단 먹힐 수 있었던 "총동원"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참, 참고로... 2차 세계대전 때 소비에트군 졸병의 한달 보수는 17루블 (평균 노동자 임금의 약 10%)이었던 반면 장교의 보수는 600루블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회주의"를 내건 국가에서는, 졸병과 장교의 임금 격차는 미군보다 더 심했던 것이죠. 북조선을 포함한 여러 점령 지역에서의 소련군의 태심한 약탈 행위도 그 비참한 "저임금" 처우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자국의 영토나 그와 인접한 곳에서 수행되는 "대전"의 상황에서는 징집제 군대는 대체로 쓸만했습니다. 특히 프로파간다의 힘이 커진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의 패전이 확실시되었던 1945년에도 나치 독일군은 끝까지 "사수전"을 펼치고, 집단 항명 등의 상황을 별로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한데 20세기의 경험이 확실히 보여준 것은 징집병들을 타국에서의 제국주의적 전쟁에서 사용하기가 힘들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단, 징집병이 수행하는 해외 전쟁은 대개 "저임금 전쟁"이 되기가 쉬웠습니다. 한국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군 졸병의 한달 벌이는 그 당시의 돈으로는 약 70-80, 즉 요즘 돈으로 환전하면 대체로 80-90만원 정도이었습니다. 특히 명분이 취약하거나 거의 없는 전쟁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3-4년 이상 끌고 갈 경우에는, 자국 안에서 매우 강력한 반전 운동을 직면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특히 중산층 구성원까지 징집돼 강제적인 "저임금 고위험 전쟁 노동"에 노출되는 상황에서는 미국 등 사회의 중산계층 주류까지 동요하여 "반전"으로 돌아서기가 쉬웠습니다.

징집병들의 이런 한계를 깨달은 세계체제 핵심부 주요 국가들은, 1970년대중반부터 징집제를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부터 1973년에 선구적으로 징집제를 폐지하고, 구미권의 주요 국가들은 1990-2000년대에 그 전례를 따라갔습니다. 구미권은, 어떻게 보면 다시 18세기말 이전의 "용병의 시대"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라크, 아프간, 리비아 등 1990-2010년대의 구미권 국가들의 주변부에서의 주요 침공 전쟁들에서는 징집병들은 일절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참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죠. 이라크 침공 같은 경우에는, 미국에서 개전 초기에 다수 (70%)가 지지하고, 잔혹 행위가 알려지고 전쟁의 무망함이 노골화되자 지지보다 반대가 더 크게 나오기 시작했지만, 일단 베트남 전쟁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격렬하고 줄기찬, 지속적인 가두 반전 운동이 개전 이후로는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하층민들에게는 이 전쟁을 "아주 궁벽한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최후의 몸을 일으킬 기회", "고위험 고임금 노동의 기회" 정도로 인식되었던가 하면, 중산층은 관념적으로 반전의 입장에 서도 본인들이 징집되어 갈 전쟁이 아닌 만큼 대체로 방관적인 태도이었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결국 사실상의 패배로 끝났지만, 베트남 전쟁과 같은 사회적 상흔을 미국 사회에 그다지 남기지 않고 지금쯤에 거의 잊혀져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용병 시대로의 귀환"의 효과란 바로 이런 것이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이 "용병 시대의 귀환" 흐름 속에서 이해돼야 할 듯합니다. 물론 이 전쟁에 내몰린 '모든' 러시아 병사들은 '' 용병은 아닙니다. 30-50만 명 정도로 징집병으로 추산됩니다. 한데 징집병이라 해도, 푸틴 정권은 한 가지 불문율을 철저히 지키는 것입니다. 러시아 군인이 우크라이나 가서 받는 최저의 전장 보수는 일단 한국돈 350만원 정도인데, 그 금액 이상으로 이미 벌고 있거나 벌 가능성이 있는 대도시 중산층들을 보통 징집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침략 참여가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아닌 "손해"인 만큼 그들의 도주 우려가 크고 사기가 절대 높을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한데 평균 벌이가 350만원보다 훨씬 더 낮은 소도시나 공장 지대, 아니면 농촌, 그리고 주변부의 소수자 지역 (부랴트 자치 공화국, 투바 자치 공화국 등) 등에서야말로 징집이 가장 대규모적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도 물론 징집에 대한 저항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데 군인들에게 제시되는 비교적 고액의 보수는 그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새로운 "용병 시대"의 흐름 속에서 감행된 침략 전쟁인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분명히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안에서는 침략에 대한 총국민적, 시민적 저항의 분위기가 여전히 강한 반면, 러시아의 경우에는 전쟁에 가장 많이 노출된 주변부 지역의 빈민들 사이에서는 참전을 주로 개개인의 "경제적 차원"에서 보려 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적 격차 사회에서 빈민으로 전락된 옛 소련 공민들과 그 자녀들이 이제 "고액의 보수"를 보고 우크라이나에 가서 같은 소련 유민과 그 자녀들을 죽인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역사적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비극이 벌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쟁의 주력 부대가 된 러시아 노동자, 농민들에게 계급 의식이나 계급 조직이 거의 없다는 점이 매우 크게 작용된 것입니다.

그들이 우크라이나의 전장에 갔을 때에 거기에서 반대쪽에 서 있는 우크라이나 병사들을 "같은 계급에 속하는 형제"가 아닌, 러시아 프로파간다의 가르침대로 "서방이 유혹하고 매수한 배신자", 내지 "타국민"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지금 잘 없는 계급 의식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좌파가 전쟁에 저항하면하면서 그 의식을 차츰차츰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아직은 반전 좌파 자체가 러시아에서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부터 가장 큰 문제입니다...

(기사 등록 202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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