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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러시아 반전 운동이 미약한 이유/ 문화에 죄가 있느냐?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11. 21.

[러시아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통찰력을 보여 온 박노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서 시작된 전쟁에 대해서 분석하고 전망하는 글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러시아 반전 운동이 미약한 이유

2022224,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 군의 공격 개시가 임박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젤렌스키가 러어로 연설한 바 있었습니다. 러어가 그의 모어인 만큼 그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겠지만, 그 의미는 러시아 국민에게의 "호소"이었던 겁니다. 그는 자신이 "나치"가 아니라는 점, 자신의 가정이 소비에트 시절의 붉은 군대 장교를 배출하고 홀로코스트에 피해를 봤다는 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위협한 적도 없고 할 수도 없다는 점 등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러시아 국민들의 반전 저항을 당부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당부가 헛되지 않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침략 초기에 러시아 곳곳에서 반전 집회가 열렸는데, 그 규모 역시 상당했습니다. 그 집회 과정에서 약 15천명이 경찰이 붙잡힌 것으로 보면 적어도 수 만명이 집회 참석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한데 집회는 있어도 반전을 외치는 파업 등 조직 노동의 반전 행동은 보이지 않았고, 그 반전 집회도 약 한달 지나서 거의 그 흔적을 감추었습니다.

지난 9월에, 침략의 현장에 보낼 군인들을 이제 강제 징집하기에 이르자 수십만 명의 남성들이 러시아 국경 밖으로 달아났지만, 역시 일부 지역 (다게스탄 등 소수자들의 거주지) 이외에는 반대 집회가 없었고 "적극 저항"의 주된 형태는 산발적인 개인적 행동 (병무청 방화 등)이었습니다. 도대체 상당수의 러시아인들이 친척과 친지, 친구를 갖고 있는 이웃나라를 향한 명백한 침략 행위에 대해 러시아 국민들이 왜 이토록 저항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외신을 보면 러시아인 저항의 부족을 "탄압""국가적 프로파간다의 흡입력" 등으로 설명하는 게 보통입니다. 물론 틀린 말도 아닙니다. 이미 전쟁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 즉 전쟁을 "특수군사작전"이 아닌 "전쟁"이라고 불러서 징역 5-7년을 받은 수많은 탄압의 피해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전쟁을 비판하는 페북의 포스터에 "좋아요"를 눌러도 감옥 갈 수 있는 곳은 금일의 러시아입니다.

국가적 프로파간다가 그 프로파간다에 노출된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일종의 "별도의 세계", 즉 푸틴의 국가에 유리한 상당히 시종일관한 "세계의 그림"을 만들고 있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프로파간다가 만들어 놓은 그 세계 속에서는 "도덕적으로 타락해서 동성애 같은 죄악에 빠진 서방, 특히 앵글로색슨 국가"들이 "유일하게 전통 가치와 도덕 규범이 남은 러시아"를 상대로 해서 그 "흉계"를 벌이고 우크라이나를 "그 흉모의 도구"로 만든 것입니다.

이 프로파간다를 듣다보면, 태평양 전쟁의 시절에 "이익 공동체"인 서구 국가와 "도덕 공동체, 가족 공동체"인 대일본 제국, 그리고 "흉측한 귀축영미가 그 도구로 만든 중국의 장개석 정권"에 대한 일본 신문들의 기사들이 연상될 정도입니다. 전시의 일제든 푸틴 정권이든 극우 민족주의 정권에는 늘 양면의 칼처럼 억압과 선전이 필요한 것이지요.

한데 푸틴 정권의 억압과 선전 전략 그 자체는 그 정권, 그리고 그 정권이 벌이는 침략 전쟁에 대한 저항의 부족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유사 파시즘이라고 부를 만한 극우 민족주의 정권들을 근현대사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그들이 - 그들의 억압과 프로파간다에도 불구하고 - 강렬한 저항에 부딪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전두환에 대한 한국에서의 저항을 다 기억하지만, 지금 다시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된 룰라만 해도, 1985년까지 지속된 브라질의 극우 (유사 파시스트적) 독재 정권과의 투쟁 속에서 그 정치적 기반을 처음으로 다진 사람입니다. 경찰에 의한 체포, 고문, 징역 등등이 다 인간으로서 두렵지 않을 수 없지만, 한 나라의 정권이 그 나라의 다수가 용납할 수 있는 어떤 ''을 넘는다면 결국 그 다수가 정권에 대한 동의를 철회하는 분위기 속에서 체포, 고문, 징역을 각오하고도 투쟁에 나서는 이들이 속출합니다. 1917년에 무너진 제정 정권은 그 당시 유럽에서 가장 억압적인 정부이었는데 말이죠. 그 정권을 급기야 무너뜨린 "민중의 힘", 왜 오늘날 러시아에서 볼 수 없게 된거죠?

결국 해답은 민중을 저항에 이끌만한 "정치 세력"의 유무에 찾아야 할 것입니다. 1987-8년도의 한국이나 1985년의 브라질, 아니면 19172월의 러시아에서는 독재를 무너뜨린 ""이란 계급적으로 노동계급과 중간/중산계급의 연합이었으며 정치적으로는 국회 장내의 (중산계급을 그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 야당과 길거리, 공장에서의 좌파 운동의 연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연합이 지금도 불가능하고 앞으로 아마도 10-20년동안 어렵울 것이라는 점은 바로 오늘날 러시아 '특수 사정'의 주된 특징입니다. 지금 당장에 전쟁 중지를 위한 혁명적 움직임들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의 노동계급은 1970-80년의 치열한 파업 등 계급적 전투 속에서 그 투쟁 역량을 키워 나갔습니다. 한데, 2000-2010년대 러시아를 보면 파업이 일어나는 것은 주로 외자 기업 (특히 자동차 생산 부문)이었습니다. 외자 기업이 아닌 대부분의 국내 제조업이 군수 공업이거나 군수 업체의 유관 업체인 러시아에서는, 사실 많은 노동자들이 2007년부터 현제까지 푸틴 정권에 의해 6배나 증가된 군부 예산의 증액을 쌍수 들어 환영했습니다. 이는 이들에게 당장의 "일거리"가 있음을, 그리고 임금 인상이 가능함을 의미했기 때문이죠.

특기할 만한 점은, 지난 9월에 징집을 피해 국외로 탈출한 사람들 중에서는 제조업 노동자들이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기업과 그 노동자에 대한 국가의 "관리"도 촘촘하지만, 그 노동자들이 아직도 소련 시절에 무료로 받은 아파트에서 살고 무료 의료 혜택을 받고 그 자녀들이 무상으로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아는 겁니다. , 대기업 노동자 등 "" 노동계급에 대한 국가의 "포섭", 아직도 그들의 조직 행동을 미연에 차단시킬 만큼 철저하다는 거죠.

서비스 부문 비정규직 등 "" 노동계급의 사정은 전혀 다르지만, 러시아의 주류 좌파 정당인 연방 공산당은 이들 비정규직의 이해관계를 표방하지 않고 있으며 주로 대기업 노동자와 공무원 노동자, 즉 국가에 포섭돼 있는 노동자들을 그 기반으로 삼는 거죠. 연방 공산당의 일부 풀뿌리 일꾼들이 침략 전쟁을 반대해도, 당책 차원의 입장은 어쩌면 푸틴 정권 이상으로 더 호전적입니다.

중산 계급의 일부와 그 일부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주의 정치 세력 등이 반전 입장을 취하지만, 이 자유주의 정치인들은 다수의 러시아인들에게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적 자본화의 "참극"부터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자유주의가 1990년대의 마이너스 성장, 양극화, 약육강식을 연상시키는 이상, 수많은 노동자들부터 자유주의보다 푸틴 정권의 국가주의적 프로파간다 세계를 더 지향하는 것입니다....

푸틴 정권이 우크라이나 침략에서 참패를 당할 경우에는 이 패배는 어쩌면 국가주의 프로파간다의 "아성"을 흔들어 러시아 노동자들의 계급적 각성에 도움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태까지의 푸틴 정권 자체에 대한 비교적 미약한 저항이나 이번 침략에 대한 반전 저항의 미약함으로 봐서는, 러시아의 다음 혁명은 아직은 가깝지 않은 듯합니다.

노동자들의 자의식이 "국민"이 아닌 "계급"의 축으로 다시 이동하자면 더 긴 시간 동안 더 많은 투쟁 경험을 쌓아야 할 것입니다. 투쟁 경험이 없는, 스스로를 일차적으로 "국민"으로 의식하는 노동자들이 결국 너무나 쉽게 "총알받이"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을, 우리가 역사 속에서 너무나 많이 본 것입니다....

문화에 죄가 있느냐?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거의 9개월이나 됐습니다. 전체 피해의 규모를 이 시점에서 당연히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국 합동참모의장 밀리의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약 10만 명씩 사망자와 부상자를 냈다"는 발언을 충분히 취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을을 가지고 벌이는 공방전에서 하루에 400-500명이 양쪽에서 전사하거나 중상을 당하는 판에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숫자죠.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 (적어도 3-4만 명 이상 사망 및 부상)까지 합하면 이미 약 25만 명이나 사망했거나 부상을 당했는데, 이는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들 때의 손실 (14만 명의 사망자)을 상회하는 정도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1945년 이후 유럽에서의 최악의 대량 살육이죠. 이 상황을 매일매일 뉴스를 통해 접하면서, 저와 러시아 사이의 '관계'를 심각하게 고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 여권을 소지하고 러시아 국적을 포기한지 이미 21년이나 됐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은 저를 대개 "러시아인"으로 보는 듯합니다 (한국도 이제 다민족 사회가 돼간다는 것은, 노르웨이에서는 아직 '통념'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이야기죠....). 한데 이 '러시아인'이라는 게 과연 무슨 뜻인가 라는 질문을 저는 스스로에게 가끔 던집니다. 모어가 러어라는 게 아마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일상에서 하도 그 모어를 쓰지 않고 있기에는 많은 경우에는 이제 러어 표현도 아니고 노르웨이어나 한국어 표현들은 먼저 떠오릅니다 (아이들이나 동료들과 노르웨이어를 쓰니까 노르웨이어 표현들이 더 친숙할 때가 많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저는 지금도 구소련을 모국/고국으로 생각하지만, 러시아에서 다시 한 번 좌파적 지향의 혁명에 기반을 두는 정권이 생길 때까지 아마도 수십년의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1917년 혁명의 유산에 대한 충성 같은 것을 느끼지만, 현실적으로는 현재 러시아의 정권은 세계적 기준으로 봤을 때에는 "중도 우파"도 아닌 한참의 "극우"입니다. 결국 남는 것은 문화, 즉 어렸을 때부터 읽어온 러시아 고전 문학 작품 같은 부분이죠. 그런데 이 '문화' 같은 러시아적 정체성의 부분도,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살육을 보면서 더 이상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문화란 다양합니다. 그 해석도 엄청 다양할 수가 있기에, 일반화시켜서 러시아 내지 한국 문화가 '이렇다', '저렇다'라고 말하기가 아주 힘들죠. 월남에 파병된 한국인들을 현지인의 "구원자"처럼 재현시켜 사실상 월남 파병이라는 제국주의에의 부역 행위를 미화하는 <국제시장> 같은 보수적 색깔의 영화도 한국의 (대중) 문화지만, 월남전을 예리하게 분석, 비판하는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도 엄연히 "한국 문화"입니다. "님을 향한 일편단심", 충효 등 사림 사회의 도덕률을 찬미하는 시조들도 많지만, 이 무명씨의 글도 시조 중의 하나입니다:

"사랑이 어떻더니 둥글더냐 모나더냐

길더냐 자르더냐 밟고 남아 자힐러냐

하 그리 긴 줄은 모르되 끝간 데를 몰라라."

저는 '사랑'에 대해 고민할 때에 학생 시절에 배운 이 시조를 속으로 종종 읊곤 했죠. 왕조, 사림 사회의 도덕률 따위와 전혀 관계 없는, 너무나 인간적인 문학이죠? 그러니까 "문화" 내지 "문학"에 대해서 단순화시켜서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쉽지가 않습니다.

이는 제가 어렸을 때에 의무적으로 배워야 했던, 그러다가 결국 제 정체성의 일부가 된 러시아 고전 문학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그 고전 문학 속에서는 물론 반전, 평화, 반제국주의를 지향하는 요소들도 만만치 않게 발견됩니다. 톨스토이의 <하지 무라트> (1904) 같은 작품은 예컨대 코커서스 전쟁 현장에서의 러시아 군대의 살인, 약탈 행각을 본격적으로 고발하고 러시아 제국의 "원주민"에 대한 차별, 멸시, 폭력을 그대로 보여준, 피해자 입장에서 쓰여진 세계적 "반제국주의 문학"의 걸작이죠.

그러니 2010년에 톨스토이 서거 100년이 됐을 때에 러시아 정부가 이를 기념하는 그 어떤 행사도 개최하지 않은 것도 아마도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국가, 교회, 군대, 전쟁의 반대편에 섰던 톨스토이야말로 푸틴에게는 가장 껄그러운 존재죠. 그런 자랑스러운 면들도 러시아 고전 문학에 있지만, 아쉽게도 톨스토이 같은 작가들이 차라리 "예외"에 가까웠다는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푸쉬킨이나 도스토예브스키부터 노벨상 수상자인 요시프 브로드스키 (Brodsky)나 현재의 러시아 원로 시인 알렉산드르 고로드니츠키 (Gorodnitsky)까지 러시아 문학의 "당연한 배경"이 되는 것은 바로 '제국'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보수적 문학자들이 '제국''문명화'를 추진하는 긍정적 행위자로 의식, 무의식적으로 간주하고, '현지인'이나 '적국'의 저항에 부딪치는 경우 '제국'의 군사력을 옹호하곤 했습니다.

푸쉬킨이 그 시 ("러시아의 비방자들에게" )를 통해 1830년 폴란드 독립 운동에 대한 러 군의 진압 작전을 적극 지지했으며, 도스토예브스키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러 군의 점령이나 터키와의 전쟁을 열성적으로 옹호하면서 터키의 수도인 이스탄불까지 러시아가 "탈환"해 다시 비잔틴 시대와 같이 "기독교 도시""복원"해야 한다는 제국주의적 ""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브로드스키의 <우크라이나 독립에 관해서> (1992)"땅이 낳은", 그리고 이제는 [돈이 많은] "독일인들과 폴란드인들에게 나에게 항문 성교를 하라고 무조건 대주어야 할" (Пусть теперь в мазанке хором Гансы с ляхами ставят вас на четыре кости, поганцы) "우크라이나놈"들에 대한 각종 인종주의적 욕설과 클리쉐로 가득차 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판한 고로드니츠키마저도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이 러시아 도시로 남을 것이다"와 같은 노래를 한때에 지을 정도이었습니다. 톨스토이와 같은 "예외"들을 제하면 러시아의 주류 문학은 "제국""전쟁" 없이는 그 구성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물론 문학자들이 침략을 직접 감행하는 건 아닙니다. 한데 제국주의를 내면화한 문화는 분명히 침략주의를 쉽게 키울 수 있는 "토양"이 됩니다. 제 정체성의 구성 요로로서의 '러시아 문화'를 이제 다시 생각하면서, 그 문화에도 분명히 죄가 있다는 결론을, 저는 스스로를 위해 도출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읽은 책들도, 결국 침략이라는 범죄가 벌어질 수 있는 하나의 "배경"이 된 거죠.

(기사 등록 202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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