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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국가와 안전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11. 9.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이번주 월요일날에 제가 한국에서 돌아온 뒤에 첫 출근을 했습니다. 연구실에 들어오자마자 노크소리가 들렸습니다. 저의 소속 학과의 학과장이 "당신이 생존해서 돌아왔는지 알고 싶어서 왔다"고 제 방에 돌연히 온 것입니다. 노르웨이 학생 1명을 포함해서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소식은, 많은 노르웨이인들을 충격에 빠뜨려 저같이 한국에 있다 오는 사람들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참사의 현장이 될 해밀턴 호텔의 근방을, 참사가 나기 이틀 전에 큰사이즈 옷 사려고 배회한 바 있었습니다. 그 때야 그 장소가 "참사 현장"이 될 줄을 상상조차 못했지만요.

노르웨이사람들이 참사의 소식을 듣고 느낀 충격의 상당부분은, 이번 참사와 저들이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 사이의 ""에서 발생된 듯합니다. 노르웨이에서 흔히 상상하는 "한국""초현대적인" 사회인만큼 "거리 안전이 잘 돼 있다"는 것은 그 이미지의 골자입니다. "한국"에 대해 약간 더 아는 노르웨이 사람이라면 예컨대 부당 노동 행위가 많고 노동의 현장에서는 치명 사고를 포함해서 사고가 매우 많다는 사실쯤은 알 겁니다.

한데 "공사장"이나 "공장"과 달리 "거리"라는 공공 장소는 한국에서 "안전"하다는 것은 저들의 한국관에서 매우 중심적이었던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무너진 것은 저들이 느낀 충격의 깊이를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거리들이 정말 "안전"한가요? 저는 국내에서 지냈을 때에 밖에 나가는 순간 별다른 걱정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지만, 제가 만약 여성이었다면 아마도 일부 동네에서는 밤에 밖에 나가는 데에 대해 좀 주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전"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젠더와 연령 등 많은 변수에 영향을 받고, "어느 지역"인가에 따라 또 다를 겁니다.

물론 전반적으로는 예컨대 남유럽이나 동유럽에 비해 한국에서 "거리 안전감"이 강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시아적 가치", "아시아적 자본주의론"이 학계 일각에서 인기를 얻었던 1990년대 초반에, 이를 "유교적 윤리를 바탕으로 한 공공도덕 등을 이용한 효율적인 사회화 과정" 등의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학자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물론 독거 노인의 고독사가 확산되고 전반적으로 "가족" 제도의 해체가 가시화된 오늘날에는 한국 사회에 대해 "유교"를 가지고 뭔가를 설명하려는 움직임들은 이제 다행히 거의 보이지 않는데 말입니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유교보다는, 한국 거리의 상대적 안전성을 설명해주는 코드는 뭐니뭐니해도 "국가"일 겁니다.

한국에서 인구 10만명당 경찰관의 숫자는 약 230명이나 되는데, 이는 일본 등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노르웨이 (189)나 핀란드 (132)보다 훨씬 높습니다. 거기에다 인구의 대부분은 수도권이나 여타의 대도시 지역에서 거주하고, 그 안에서는 파출소들이 많고 신고만 하면 경찰 출동 시간이 짧고...

또 거기에다 서울만 해도 CCTV카메라의 숫자는 약 77천개나 되는데, 이는 예컨대 뉴욕 (56천개)보다 훨씬 높은 숫자입니다. 만약 1평방킬러미터당 CCTV 카메라의 숫자로 따지면 서울은 세계 대도시 중에서는 4위 정도 됩니다. 경찰, 파출소, CCTV에다가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이탈"로 인해서 받아야 되는 사회적 "징벌"인데, "징벌"도 결국 국가의 감시-처벌 기능과 직결돼 있습니다.

한 번 이탈을 해서 "거리 안전"을 해치게 되면 평생 "전과자"로 살아야 할 터인데, 이는 한국에서 공식 부문에서의 "준추방"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이탈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비공식 부문의 크기나 사회적 비중은, 예컨대 중남미나 동유럽, 남유럽에 비해 훨씬 작은 거죠. 결국 쉽게 이야기하면 한국의 그 괄목할만한 "거리 안전"은 국가 시스템 작동의 결과지, 그 어떤 "전통 가치" 등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문제는 "시스템 관리"가 잘 안될 때입니다. 상명하달적 시스템인데, 위에서 약간이라도 균형을 잘 맞추지 못하면 바로 시스템 관리에 문제가 생겨 시스템이 오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예컨대 "윗분"들이 대통령 사무실 경호, 그리고 야당 집회 관리에 무조건 중점을 두라는 지침을 계속해서, 누차에 걸쳐 지속적으로 보내면 우선 순위에서 빠지는 부분들은 더이상 "관리"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군중들이 많이 보여도 정치적 집회가 아닌 이상 "관리" 받지 않습니다.

한데 "시스템의 관리"를 받지 않는 이상 그 유명한 "거리 안전"은 바로 증발됩니다. 관리자가 제 자리에 있지 않으면 결국 거기에서 남는 것은 비좁은 골목에서의 인산인해죠. 그리고 "관리"가 중지되는 순간 그 인산인해 안에서는 신체적인 약자, 20대 여성 등부터 시작해서 피해자들이 막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한국에서는 국가 시스템 오작동은 바로 인명 사고로 직결되는 법칙이죠.

이렇게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에서 대선을 둘러싼 비상한 관심과 열정 역시 설명됩니다. 대통령은 결국 행정 시스템의 "최고위 관리자"입니다. 그 최고위 관리자가 시스템 운영에 필요한 균형을 잡지 못하고 관리 소홀을 방치하거나 시스템의 자원을 잘못된 방식으로 편중시키면 시스템이 바로 오작동해 대대적인 인명사고까지 납니다.

"관리"가 생명인 사회에서는 무능한 무자격 최고위 관리자는 바로 약자에게 "죽음의 그림자"로 다가가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 정권의 남은 4년은 저로서는 대단히 두렵습니다. 시민 안전 아닌 "정권 안전"만을 중시하는 관리자들 밑에서는 시스템 오작동이 불가피해 앞으로 또 대대적 피해가 발생될 것을 크게 우려하게 됩니다....

(기사 등록 202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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