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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10.29 참사/ 미국 중간선거/ 이란 민중 투쟁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11. 18.

전지윤

세월호 때의 분노가 이태원에서 체념으로 바뀌지 않기를

최근에 가까운 분의 아버님 장례식장에 갔다 온 적이 있다. 가서 보니 연로하신 아버님은 큰 고통없이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마지막이 좀 갑작스럽긴 했지만 가족들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럼에도, 가깝고 사랑했던 이의 죽음은 누구에게든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자리에 갈 때면 항상 조심스럽다. 조문을 언제 가는 게 좋을지, 어떤 옷을 입고 가야할지, 조의금을 어느 정도 할지, 가서 어떤 것을 묻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하나하나가 고민이 된다. 더구나 어떤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가장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경우는 말할 수도 없다. 함께 울고 위로하면서도 모든 게 극도로 조심스러운 게 당연하다.

이번에 10.29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해 큰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그래서다. 그것은 윤석열 정권, 국민의힘, <조선일보> 등이 말하듯이 명단을 공개하고 그것을 퍼나른 분들이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아픔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만 하는 악질적인 2차가해자들이라고 봐서가 아니다.

피해자가 아니라 사망자라면서 가해 자체를 인정하지 않던 자들이 이럴 때만 ‘2차가해를 운운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혀서 쓴웃음만 나온다. ‘전교조 명단과 5.18 유공자 명단도 공개하지 않는다? 전교조를 마녀사냥하고, 5.18 유공자들을 낙인찍어 온 것이 누군지는 잊어버린 것인가? 유경근 전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님의 반응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힘이 '이태원참사' 희생자명단 공개된 거 놓고 '유족동의', '법적책임' 운운하는 걸 보니 8년 전 국회 돌바닥에서 먹었던 사발면이 올라오려고 한다... 그럼 유족동의 받아 명단공개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건가? 너희들이?”

정말이지 모두가 명단 공개를 비판해도 절대 입을 열 자격이 없는 게 바로 윤석열 정권이다. ‘유가족들의 동의나 의사 확인도 없이 영정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를 만들고, 희생자들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통제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럴 능력과 책임이 있는 정부가 그런 과정을 거쳤다면 명단 공개는 애초에 논란이 되지도 않았을 문제다. 그래서 유경근님은 얼마 전에도 이렇게 지적했다.

“한 분 한 분 이름 부르고 기억하며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면에서 명단공개는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명단공개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지 않나 싶다. 공개하더라도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공개할지, 공개 후 부작용을 어떻게 대비할지... 하루빨리 유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계기,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다. 그래야 유가족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부담없이 생각을 나누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정확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못하고 가장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분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통제권과 결정권이 있어야 한다.(물론, 망자에 대한 모든 권한이 법적 가족에게만 가야하는가의 문제는 또 다른 쟁점이다) 더 이상 윤석열 정부가 그것을 방해하고 가로막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유가족이 연결되지 못하게 막는데 모든 힘을 쏟는 정부의 행태에 이런 방식의 명단 공개를 초래한 원인과 책임이 있다.

따라서 명단을 공개하고 퍼나른 분들만을 거짓 눈물을 흘리던 우리 내부의 적인 것처럼 불신하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아고 생각한다. 그 분들도 대부분 이번 참사에 누구보다 슬퍼하고 분노하고 눈물 흘리고 촛불을 들던 분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는다. 나의 슬픔과 분노에는 진정성이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것이 없다고 한다면 너무 섣부른 말일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유가족만큼이나 슬퍼하고 분노한다는 것이, 그 의사를 쉽사리 넘겨짚거나 넘어서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장례식장에서도 지나치게 흥분하고 목소리 높이는 조문객이 때로는 유가족을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정권과 거대언론들이 만들어낸 이상한 상황 때문에 지금 명단 공개는 과거에도 공개했다고 넘어갈 문제가 아닌 매우 민감한 문제가 됐다는 것을 이해하고 동료 시민들의 비판에 귀를 열어야 한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 명단 공개에 대한 인권단체 입장 https://equalityact.kr/1116-2/)

물론 지금 과할 정도로 슬퍼하고 분노하며 바로 행동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토끼머리각시탈등으로 희생양을 찾고 시간을 허비하던 이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이제 꼬리자르기를 하면서, 빨리 이 참극을 덮어버리고 잊어버리려 하고 있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책 마련에서 무엇 하나 할 뜻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결국 지구 끝까지 쫓아가 전장연을 처벌하겠다던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왜 이태원 기동대 지원 요청은 거절했는지, 용산구청장은 왜 권영세 통일부 장관에게 제일 먼저 연락한 것인지, 경찰책임자와 행안부 장관이 윤석열보다 더 늦게 보고받은 게 사실인지, 그 후에 윤석열은 과연 누구에게 무엇을 지시한 것인지, 왜 유가족에게 연락도 없이 지방 장례식장으로 시신이 보내진 것인지 등은 하나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 등은 이런 정부를 편 들면서 세월호 때도 좌파에게 선동당한 유가족들 때문에 9번이나 조사하면서 세금만 낭비하고 쓸데없는 곳에 예산이 쓰였다는 기사들을 계속 기획해서 내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의문 제기는 음모론’, 진실 요구는 패륜’, 정부 비판은 정략’, 투쟁과 연대 호소는 선동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프레임을 설정하고 있다.

더구나 이 프레임은 갈수록 강력해지며 우리를 옥죄고 있다. 지난 며칠간 국민의힘과 <조선일보> 등은 명단 공개를 극악무도한 범죄행위로 낙인 찍으면서 고소고발, 수사와 압수수색을 협박하고 있다. 분노를 너무 거칠고 과한 방식으로 표출한 몇몇 종교인을 표적삼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극우유튜버들은 세월호 때처럼 좌파들이 유가족을 선동해 시체팔이하려고 발악하고 있다는 막말을 하며 일제히 공격하고 있다.

예컨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희생자의 장례식장에서 슬픔과 분노를 못이긴 일부 사람들이 과도한 언행으로 죽음의 책임자들을 비난해서, 주변 사람들이 당황하며 그것을 말리는 사이에 가해자들이 등장해서 저 사람들이 진짜 문제이고 저들을 응징해야 한다면서 큰소리를 치면서 적반하장으로 나서는 것 같은 상황이다. 문제는 저들이 가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과 영향력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정부를 비판하고 행동하려는 사람들이 위축되고 눈치를 보며 쉽게 입을 열지 못할 수밖에 없다. 특히 유가족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엄청날 것이다. 지금 분위기에서 희생자의 이름과 얼굴 공개에 동의하거나, 앞에 나서 정부에게 책임을 물으면 곧바로 종북좌파에 선동 당해서 인륜을 저버리고 시체팔이에 나서는 유가족이 될 것이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때 저들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유가족들의 입을 막고, 낙인을 찍고, 막말을 하고, 괴롭히고, 사찰하고, 결국은 9번의 조사에도 진상규명에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온갖 방식으로 방해했다는 것을, 그런 세력과 주요 인물들이 현재 정부와 국민의힘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는 사람들은 더욱 더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것에 맞서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우리의 목소리와 힘은 아직 부족하기만 하다. 분노만 앞세워 기다리지 않는 섣부른 행동으로 상처를 낳는 이들도 있고, 서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불신과 매도를 통해 힘이 모이는 게 아니라 더욱 갈라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세월호 때의 분노와 저항, 이제는 그렇게 촛불을 들고 싸웠지만 결국 무엇이 바뀌었냐는 절망과 체념으로 바뀌고 있다는 걱정도 커지고 있다.

세월호 생존학생으로 이제는 응급구조사가 된 장애진님은 최근 인터뷰에서 심리치료보다도 잊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말과 진상규명을 위한 운동이 나에게 더 큰 치유가 됐다10.29 참사 유가족과 우리들을 위한 조언을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잊지 않겠다, ‘함께 하겠다고 말하며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요즘 뉴스를 보다가 계속 눈물과 욕설이 터져 나오는 이유

* 기괴한 국가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검찰과 경찰과 국가정보원이 민주당과 진보 운동단체 등에 대한 동시다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보면서, 우리가 충격과 슬픔에 허우적대던 일주일 동안 저들이 무엇을 준비하고 기획하고 있었는지 확인하게 될 때.

* ‘국가애도기간에도 10.29 참사 소식 보다는 주로 북한 미사일 기사로 도배를 하던 <조선일보>가 애도기간이 끝나자 마자 대장동’, ‘풍산개로 도배를 하면서 10.29 참사 소식을 저 맨 뒤로 밑으로 쳐박아 둔 것을 볼 때.

* 서해공무원의 죽음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토록 정략적으로 악용하던 <조선일보>와 국민의힘이 10.29 참사에 대해서 180도 태도를 바꾸어서 어떠한 정치적 비판과 책임 요구도 비극을 이용하려는 추악한 패륜행위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게 될 때.

*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의 이러한 대처와 대응 뒤에는 결국 10.29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들을 향한 세월호 유가족이 앞으로 나섰다가 8년 동안 어떤 괴롭힘과 23중의 고통을 겪게 됐는지 잘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소름이 끼칠 때.

* 초중등 새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들어가고, ‘성소수자는 빠지고, ‘노동자근로자로 바뀌게 된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렇게 시계가 갑자기 몇십 년 전으로 거꾸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

* 윤석열의 이번 해외순방에서 MBC 기자들을 배제한다는 기막힌 소식이 들리는데, 당시에 다같이 **’바이든이라는 자막을 달고 속보를 올렸던 대부분의 방송사나 언론사들이 강력 비판하기 보다는 양쪽 주장을 중계하고 눈치보며 대통령 전용기에 함께 탑승할 때.

* 문재인이 돈 때문에 풍산개를 파양한다는 가짜뉴스에 잠깐 속아서 스스로 황당해 하다가, 문재인의 해명글을 보고 정말 나중에, 종북 문재인이 북한 개를 왜 불법적으로 가져갔을까라면서 <조선일보>가 떠들고 감사원이 감사하고 검찰이 압색할 수 있었겠네라는 생각이 들 때.

* 이런 기막힌 일들이 벌어지는 데 어떤 개혁언론들도 이런 점들을 분명히 지적하지 않고, 박영수 특검과 현직 대법관과 전 검찰총장과 국민의힘 곽상도 등 ‘50억 클럽등은 다 사라진 대장동 수사에서도 검찰 받아쓰기만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 문재인 정부를 인민민주주의’, ‘전체주의’, 심지어 파시즘이라고까지 비판하면서 윤석열과 한동훈을 편들고 결국 윤석열 정권 탄생에 힘을 보태던 자유주의나 진보지식인들이 이제 와서 유체이탈하면서 말하거나 간혹 <조선일보>에 나와서 또 검수완박이 문제라는 이야기나 하는 것을 보게 될 때.

* 이태원에 가서 아무 이름과 얼굴도 알 수 없는 분향소와 윤석열과 오세훈의 화환 앞에서 고개를 숙이던 내 모습이 떠오르고, 왜 그때 정신 차리고 용기를 내서 그 화환들을 다 집어던져버리지 못했는가 자다가도 일어나서 화를 내며 울게 될 때.

* “영국에서는 이런 경우 이름을 공개하는데 그래야만 우리가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태원 현장에 있었던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바닥에 누워있는 시신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아니라 그들이 친구와 가족이 있었고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으로 기억하고 싶다”(프리랜서 외신기자 라파엘 라시드)

 

희생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지우지 말라

어제 오전에 예은아빠유경근 전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고 정말 공감이 갔다. “유가족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던 충분히 듣고 또 들어야 한다. 끝까지 다 들어야 하고 더 얘기할 때까지, 다 얘기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산재피해가족들의 모임인 다시는에서 마련한 전시회에 갔다가, 이어서 친구와 같이 이태원 참사 현장에도 갔다 왔다. ‘다시는전시회는 경동건설 산재 피해자인 고 정순규님의 아드님 정석채님이 지킴이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아버님에 대한 사랑과 기억을 붙들고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분이다.

전시회는 세상을 떠난 산재 피해자들의 유품, 사진, 그림, 기억들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그 분들이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고, 구체적인 이름과 얼굴과 사연 속에서 그 분들은 한명 한명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어서 이태원에 가서는 1번출구에 차려진 추모 공간과 골목골목을 돌아다니고, 녹사평역 분향소까지 들러서 떠난 이들을 기억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 내 마음이 쉽지가 않았다. 뭔가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힘들고 씁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 뉴스를 보는데 도무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한덕수, 이상민, 오세훈, 박희영은 모두 국회에 나와서 기막힌 답변들만 하고 있었다. 국민의힘은 이 참사가 문재인 탓이고, 이재명 지지자들 탓이고, MBC 방송의 탓이고, 촛불집회 탓이고, 각시탈을 쓴 불순한 민주노총 조합원 탓이고, 검수완박 탓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문재인과 민주당이 사과해야 할 문제라며 모두 남탓으로 돌리면서 몇몇 경찰책임자를 꼬리 자르고 말단 경찰, 소방대원들을 희생양 삼기로 방향을 정한 것이 명백했다. 정권 2인자 한동훈은 정권의 책임을 묻는 국회의원들에게 허무맹랑한 유언비어”, “괴담이라며 깐죽거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정말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던 순간은 대통령실이 특별히 세세한 공개를 요청했다는 윤석열의 발언이었다.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는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특유의 반말, 콧소리, ‘어 어하는 추임새 속에서 그렇게 윤석열이 우리에게 화를 내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참사 직후에 정부는 가장 먼저 희생자 1인당 1500만원의 장례비를 지원하고 유가족과 공무원 11 매칭 지원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영정도 위패도 없는 곳에서 추모하는 동안에 희생자 가족들은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장례식을 다 치루었다. 일주일간의 기괴한 관제 애도 기간이 끝나자마자 이 정권이 우리에게 보여준 메시지는 어제와 같았다.

그 일주일 동안 <조선일보>같은 친윤신문은 의혹을 제기하고 진실을 요구하는 모든 목소리를 가짜뉴스라고 낙인찍으며, 스스로 토끼머리띠 남성같은 온갖 가짜뉴스를 퍼뜨렸다. 지난 5년간 아무리 작은 문제만 생겨도 국정조사와 특검, 장관 사퇴와 문재인 사과를 말했던 바로 그 입으로 재난만 터지면 대통령을 비판하는 문화가 문제라고 혀를 찼다.

그 일주일 동안에 우리는 희생자의 이름, 얼굴, 사연들을 외신과 일부 유튜브 방송에서만 볼 수 있었다. 이제 깨달았다. 내가 왜 4월만 되면 세월호 희생자들의 이름과 얼굴부터 생각나는지. 왜 예은 아빠, 영석 엄마, 유민 아빠들의 표정이 떠오르는지. 어제 이태원 현장에서 내가 느낀 벽이 무엇이었는지.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아무 이름과 얼굴도 없는 곳에 국화꽃을 놓으면서 느낀 알 수 없는 심정이 무엇이었는지.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이름들이 분향소 입구부터 놓여진 화한들에 적혀 있는 윤석열, 오세훈, 박희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느낀 참혹한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윤석열 정권은 지난 일주일 동안 이 참사를 수습하고 대책을 마련하려고 정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윤석열 정권과 이들을 돕는 언론들은 모든 고통은 공감, 동일시를 통해서 위로받고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던 것이다. 세월호를 겪으며 이들이 너무나 중요하게 배운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한 감정이입은 모든 경계를 넘어서 우리의 마음과 사랑을 확장시킬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연대의 기초이고 결국 그 힘이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남은 이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며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 안전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윤석열 정권이 지난 일주일 동안 최선을 다해서 막았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국가 애도 기간의 종료 이후에 던진 메시지도 그것은 절대 안 된다는 선전포고와 다름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언론은 이 모든 것을 그냥 따라가면서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그것을 덮으려는 목소리를 그냥 중계하며 또 시작된 지긋지긋한 정쟁으로 프레임화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유가족들이 하고 싶은 말과 목소리를 그 어떤 것이든 듣고 또 듣겠다고 마음먹고 있어도 결코 그것을 들을 수 없었다. 손녀를 잃고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매일같이 이태원역을 서성인다는 할아버지와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려고 이태원역을 찾는 이들이 한 공간에서도 서로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희생자들의 이름과 얼굴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분향소에 가서, 그 희생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책임자들의 이름이 적힌 화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난주 토요일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에서 박주환 신부님이 분노에 차서 소리친 말씀이 백번 천번 옳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윤석열을 끌어내릴 때다.’

* 지난 일주일간 눈물흘리면서 듣고 또 들게 되는 것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래 기억할게였다. 8년 전과 모든 게 너무나 똑같고 우리의 과제도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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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이 아직 너를 보내지 못해

빛나는 별들 그 가운데 니가 있다 생각해

아직 많은 걸 몰라 너를 보내지 못해

그곳에서도 알고 싶을 진실이 밝혀지길

여기까지만 하고 멈추라 하는 사람들

가만있으라는 말보다 더 아픈 건 없는데

잊지 않겠단 다짐 벌써 다 잊었나요

감추어진 모든 것들이 드러나게 도와줘요

우리는 작고도 약하지만

너를 사랑한 마음의 크기만큼

힘을 내 앞으로 나아가네

너의 기쁜 얼굴 떠올리며

살아갈 용기 없어질 때

널 위해 할 일 남았음을 기억할게

https://www.youtube.com/watch?v=tY1VKbcD0uQ&list=WL&index=33

미국 중간선거 트럼프의 패배이지만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예상 외의 결과가 나왔다. 집권여당에게 항상 불리했던 중간선거의 성격과 그동안의 역사를 감안하면 사실상 공화당의 패배라고 볼 수 있다. 40년만에 최고 수준의 인플레이션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진행된 선거이기에 민주당의 패배는 거의 확실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공화당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말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그만하겠다는 신호도 보내고 있었다.

지난해 초 의사당 폭력 습격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속에서도 트럼프가 반동적 선동을 하며 붉은 물결을 일으키며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 대선 출마를 선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지난 봄에 트럼프가 임명해 놓은 자들로 구성된 미국 대법원이 임신중지와 총기규제에 대한 반동적 판결을 내린 것도 우익 결집의 시도였다.

대법원과 함께 또다른 선출돼지 않는 권력의 핵심인 연방준비은행의 계속된 금리 인상도 민주당에게는 도움이 안 되는 방향이었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한 트럼프 지지자가 낸시 팰로시의 집에 찾아가 테러를 시도했던 것은 트럼프의 선동이 낳은 우익 지지자들의 분위기를 보여 줬다. 팰로시는 진보적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로 혐오선동의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바이든의 도움 요청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며 망신을 준 사우디도 미국과 관계를 단절한다기보다는 트럼프의 선거 승리를 측면 지원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바이든과 민주당이 크게 나쁘지 않은 결과로 어느 정도 선방한 것이다.

이것은 먼저 대법원과 공화당의 임신중지권 공격이 낳은 역풍으로 보인다. 그것이 우익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보다, 반대로 여성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반트럼프 세력이 민주당으로 결집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리고 바이든 정부의 일부 정책도 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부자 증세와 복지 확대, 기후위기 대응 등을 담고 있는 인플레감축법’, 대학생 학자금 대출 탕감 방안 등이 있었다.

그 내용들은 사실 매우 한계가 많고 부족했지만, 이런 정책들에는 샌더스와 민주적사회주의자들의 요구가 일부 담겨 있었다. 특히 이런 정책과 함께 공공의료 확대, 최저임금 인상, 노동권 강화, 부자 증세 등을 더 분명하게 주장한 좌파후보들이 트럼프가 추천한 후보들에 맞서서 승리하거나 선전했다는 소식은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이런 급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좌파 후보들이 중도층을 불안하게 만들어서 민주당을 망칠 것이라고 경고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민주당 안에서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추진하려는 의원들 때문에 민주당은 지지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주장해 왔듯이 말이다.

민주적사회주의자들은 아마존과 스탁벅스를 중심으로 벌어진 노조 조직화 물결에 적극 개입하면서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의 안과 밖 모두에서 왼쪽의 압력을 형성해서 이런 부분적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이것은 미국에서 양당정치를 벗어나려는 진보좌파가 어떤 식으로 현실정치에 개입해서 힘을 키울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보여 준다.

한편, 이번 결과는 우리도 먹고 살기 어려운데 무슨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냐는 공화당의 주장도 잘 먹히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국내정책에서는 어정쩡한 개혁을 가다서다 하고, 대외정책에서는 공화당과 별 차이가 없는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의 한계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고, 트럼프와 공화당은 계속 뒤집기를 시도할 것이다. 이 속에서 민주적사회주의자들이 트럼프의 반동을 막아내면서 민주당을 넘어서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닐 것이다.

이란 저항의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들

대통령실 홍보수석 김은혜의 웃기고 있네메모 파문은 상징적이었다. 그동안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 정부의 대응을 지켜본 많은 사람이 그것을 무의식적 본심 표출이라고 느꼈다. 우리가 충격과 슬픔에 빠져서 항의하고 비판하는 것을 저들이 어떤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새삼 확인하게 된 것이다. 아마 어제 10만명이 모인 노동자대회를 보면서도 윤석열 정권은 웃기고 있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참사 이후에 이 정권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야말로 정말 웃기고 있네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대표적으로 이란 정부와 한국 정부가 서로를 탓하며 갈등을 표출하다가 다시 수습하는 장면이 그랬다. 먼저 이란 외무부 대변인이 이번 사고로 이란인 5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한국 정부의 관리 실패를 탓하며 한국은 소동의 통제나 윤리에 대해 이란에 훈수를 둘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 정부에게 "이러한 언급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유감을 표명"하며 "향후 각별한 주의 및 재발 방지를 강력 요청했다. 즉 히잡 시위 진압 과정에서 벌써 자국민 300명을 죽인 이란 정부와 10.29 참사로 157명을 희생시킨 한국 정부가 서로 자격이 없다고 탓하다가 같이 침묵하기로 합의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정말 둘 다 웃기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란 정부와 한국 윤석열 정부는 공통점이 훨씬 많다. 둘 다 민생과 민주주의를 망치고 있는 인기없는 정부이고, 수백 명의 시민이 죽었는데도 아무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을 지지 않고 남 탓을 하며 비판을 입 막으려 하는 정부이다.

그러면서 언론이 문제라며 언론인들을 탄압하는 것도 똑 같다. 또 이란 정부가 정부 비판자들을 미국의 첩자라고 하듯이 윤석열 정부는 반대 목소리를 종북세력이고 북한의 간첩이라고 한다. 이란 정부가 사우디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며 시민들의 눈을 돌리려 하듯이,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말하며 한반도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따라서 둘 다 누군가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두 정부를 모두 비판할 자격이 있는 것은 지금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하고 있고 이란 국민 5명을 한국의 이태원에서 잃은 이란 시민들이다. 10.29 참사에 슬퍼하며 윤석열 정부에 맞서고 있고 이란 민중과 연대하려는 한국의 시민들이다.

지금 이란 민중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비록 이란 정부의 폭력 탄압은 계속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이미 이란 사회는 바뀌고 있다. 이란 거리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더 이상 히잡을 쓰지 않고 걸어다니고 있다고 한다. 또 대학교에서는 남녀가 분리된 교실과 식당의 벽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동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란 민중의 저항 정신을 보여주는 노래들도 나오고 있다. 특히 거리에서 자유롭게 춤추고 키스할 수 있기를, 우리 여자 형제를 위해, 여성과 생명과 자유를 위하여라는 가사의 ‘baraye(위하여)’ 노래를 부른 가수는 바로 체포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SmHpGpcADbI 유명한 록그룹 콜드플레이도 연대의 의미로 최근 이 노래를 불렀다. https://www.youtube.com/watch?v=aJb3uc1D1D8

하지만 더욱 인상적인 것은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이 모여서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를 부르는 장면이다. 이 노래는 원래 50년전 칠레 민중들이 불렀던 저항의 노래이다. 미국의 후원을 받는 군사쿠데타에 맞섰던 민중의 노래가 이제 미국과 적대적인 이란 정권에 맞서는 대표적인 저항의 노래가 된 것이다. 어떤 권력과 국가이든 민중의 삶과 민주주의를 짓밟는다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는 계속 되고 민중의 저항정신도 사라지지 않고 이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ajjjmBOhG1o

#Stand_with_Iranian_people #WomanLifeFreedom #MahsaAmini #مهسا_امینی #여성삶자유 #이란시위를_지지합니다

(기사 등록 202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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