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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중-러에 비판적일 수 있는 좌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10. 27.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제 학생들 중에서는 홍콩 (향항)인들이 좀 꽤나 있습니다. 그들의 과제물을 읽거나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홍콩 역사의 변천들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지요. 사실, 1960-70년대만 해도 홍콩은 일본 이상으로 중국-북한-월남 이외의 동아시아에서 뜨거운 혁명 운동의 중심지이었습니다. 민족 모순 (영국 식민주의, 영국인들의 인종주의)과 계급 모순 (저임금 중국인 육체 노동자들의 분노, 개혁에 대한 욕구)들이 완벽하게 중첩돼 종종 "폭동", 즉 매우 폭력적인 가두 행동으로 폭발되는 좌파적 사회를 만든 겁니다.

1967년 봉기 ("67사건")만 해도 港九工會聯合會 등등 좌파적 노조들이 주도하고, 50여명이 비명에 죽을 정도로 가열했습니다. 전투적인 좌파는 林彬 같은 우파 언론인을 길거리에서 보란듯이 생화장하는 등 일종의 "적색 공포" 전술을 채택할 정도로 자신감이 컸으며 분노가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군사 보호령이라면 홍콩은 "그냥" 일반 식민지이었기에, 홍콩 좌파의 중국을 향한 "애국" 의식은 강렬했습니다. 반환은 "민족 해방"처럼 의식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데 반환되고 나서는 식민 모국이 바뀌었을 뿐, "식민지적" 상황은 알고 보니 그대로이었습니다. 현재 홍콩에서는 북경을 향한 "애국"은 일부 나이 든 과거의 좌파 할동가 이외에는 주로 북경의 보호막을 필요로 하는 부자들의 본령입니다. 젊고 진보적인, 홍콩의 보다 많은 자율성과 사회적 모순의 완화 등을 원하는 홍콩인들은, 그 반대로 본고장인 홍콩을 애국하고, 식민 모국이라고 생각하는 중국을 멀리하고 싶어할 뿐입니다.

한데 그들 중에서는 구미권 식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이들이 많아도 고전적 좌파는 거의 없습니다. 좌파를 친북경 지향, 즉 홍콩의 식민지적 신분에 대한 자진 수용과 동일시하는 이들에게는, 북경과 선을 긋지 못하는 좌파 인사들은 그저 "홍콩의 배신자"일 뿐입니다. 한데 좌파들 중에서는 중국 공산당과 확실한 ""을 그을 용기가 있는 분들은 많지가 않아 홍콩 젊은 세대들에게는 거의 매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중국의 주변부가 그렇듯, 러시아 주변부도 좀 그렇습니다. 지금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인민들 중에서는 좌파 활동가들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극소수입니다. 상당수의 좌파 지향의, 특히 스탈린주의 계열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는 러시아 침략에 맞선 시민 운동은 대단히 이질적이고 불편했습니다. 구미권에 의한 "경제적 식민화"를 정당하게 비판해온 이들에게는 러시아는 "소련의 후계국", 즉 적어도 서방에 비해서는 "차악"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1930년대 초반의 홀로도모르 (대량 아사 사태)에서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를 굶겨 죽인 소련도 역시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꼭 "해방적 존재"만도 아니었고 많은 차원에서는 여전히 "식민 모국"이었지만, 스탈린주의적 모스크바 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부 좌파들은 현재 러시아의 침략도 "구미권에 의한 경제 식민화에 대한 차악과 같은 대안"이라고 인식합니다. 그런 인식은, 우크라이나 대중들에게 이질감과 몰이해 등을 강하게 주어서 사실 좌파의 대중적 인기를 크게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발틱 3국에서 원주 인구 (에스토니아인, 라트비아인, 리투아니아인)에 속하는 이들 중에서는 좌파들은 거의 없습니다. 유럽에 대량으로 "저임금 노동력"을 수출하고 사실 매우 여럽게 사는 이들 나라에서는 마땅히 좌파가 해야 할 역할 역시 적지 않을 터인데, 현실 속에서는 좌파가 있어도 주로 스탈린주의 경향의 러시아인 정착민들입니다.

이들의 "좌파" 의식이란 스탈린주의적 국가주의가 레닌의 민족 자결론이나 소수자 존중 요구를 완전히 덮은, 그런 상태죠. 푸틴 제국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이들의 집회를 보면서, 원주 주민들은 반대로 "민족"을 내건 우파에 표를 주는 형국입니다. 이렇게 해서 중-러의 근처에서는 중-러에 대한 맑스주의적 비판 의식이 제대로 성장되지 못한 일부 스탈린주의적 좌파들이 좌파 자체에 대한 광범위한 민중들의 호의를 애당초에 죽여버리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반패권/반제"란 반미를 뜻하지만, -러 영향권에서는 중-러 양 제국에 대한 비판 의식이 개입돼 있지 않는 진보적 저술을 일단 유통시키기가 힘듭니다. -러 영향권에서는 중-러가 미국을 대신해서 "제국"을 대표하는 거고, -러의 역할에 대한 맑스주의적 비판은 그 어떤 좌파적 서술로서도 그 서술의 독립적 한 챕터로 들어가야 할 형국입니다. 이런 비판적 분석을 못하고 있는 좌파는 끝내 대중 운동에서는 지도적 위치에 오르기가 힘들 것입니다. 스탈린주의에 대한 향수에 젖은 중-러에 대한 이상화는, 진보적 대중 운동를 망칠 수 있는 첩경이라고 봅니다

(기사 등록 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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