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선에 대한 다양한 평가들이 나오면서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토론에 기여하기 위해서, 서로 다른 측면들을 평가하면서 몇가지 교훈과 강조점을 보여주는 두 개의 글을 묶어서 싣는다.]
● 그러고도 이길 거라 생각했는가?
박철균
부산은 모르겠는데 서울은 예상밖이라는 사람의 반응을 보았다. 틀렸다. 이미 이 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이 질 수밖에 없는 선거였다.
애당초 보궐선거 자체가 두 지역 모두 전 시장이 성폭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엎드려 절하고 절하고 또 절하고 반성하고 또 반성하면서 후보 출마를 하지 않고 대신 시민사회에서 후보를 내서 거기에 함께 하는 전략을 썼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렇지 않았다. 예전 문제가 터질 때 출마하지 않는다는 자신들의 규칙마저 스스로 말장난을 하며 바꿔 가며 두 지역 모두 출마했다. 더군다나 제일 문제가 있던 서울지역에서 특히 오만했다.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고 증거를 내밀고 성폭력이란 판결을 내밀어도 민주당 지지자들은 절대 부정하며 오히려 그 피해자에게 심각한 2차 가해를 가했다. 일반 당원이건 요직에 있는 사람이건 모두... 그것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가 한 게 무엇이냐?
심지어는 그 성폭력 사건에 가장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후보 캠프에 기용했다 나중에 논란이 있으니 슬그머니 뺐다. 그러고도 다른 한편으론 그런 읍참마속인양 상황을 안타까워 했다.
피해자를 진심으로 미안해 하고 반성한 적 있었냐? 정치논객이, 전직기자가, 자칭 역사학자가, 전청와대 비서실장이 온갖 곳에서 피해자를 비난하고 몰아세울 때 당신들은 가만히 그것에 취해 있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선을 긋고 제대로 반성하는 모습을 했어야 했다.
관련된 성의는 하나도 보여 주지 않았으면서 무슨 당선을 바라는가? 정말 당신들이 정의고 나머지는 악이고 토착왜구라고 진심으로 믿었던 것인가?
사람들이 민주당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힘이 좋아서가 아니라 언제나 정의의 사도인양 얘기하며 온갖 무능과 사고에 제대로 잘못과 반성은 고사하고 계속 남탓만 해대던 사람들이 싫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10년 전 사망한 그 시장을 다시 좀비화시켜서 부활시킨 주술사는 바로 민주당 스스로인 것이다.
물론 당선된 사람이 나쁜 자인 것은 맞다. 용산참사, 장애인 활동가에게 대하는 태도, 그리고 성소수자를 대하는 태도 모두 최악이다. 여기저기 선거기간 동안 나온 온갖 의혹도 최악이다. 이 사람과 함께 하는 서울시 1년이 정말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을 찍을 수는 없을 정도로 당신들은 문제가 많았다. 내로남불에 무책임이 시종일관이었던 당신들을 무엇을 믿고 지지하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특히 서울시 관련해선 당신들이 너무나 잘못된 행동만 골라 했기 때문에 당신들이 패배한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부디 이 상황 속에서도 당신들에게 만만한 진보정당 혹은 성폭력 피해자 탓을 하고 20대 탓을 하며 욕을 퍼붓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오로지 당신들의 잘못이다. 부디 부끄러워하고 반성하길 바란다. 그렇지 않는다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도 많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재보선이 보여 준 몇 가지 역설과 주변화된 진보
전지윤
재보선 결과가 오세훈, 박형준과 국민의힘의 압승으로 나타나고 서울과 부산의 각 선거구가 붉은색으로 채워지는 것을 지켜보는 가슴은 쓰리고 너무 우울했다. 바로 그 순간, 10년도 전의 그 악몽을 다시 되새길 용산참사 유가족들의, 태극기 부대가 세월호 광장을 위협하는 장면을 걱정할 세월호 가족들의, ‘안볼 권리’라는 말에 분노했던 소수자들의, 이제 그나마의 ‘협치’도 사라지는 ‘암흑의 시대’를 걱정하던 지역 활동가들의 심정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것은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둘러싼 투쟁에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국제적 반격의 일부일 것이다. 미얀마, 태국, 홍콩, 러시아 등이 대표적이고 노골적이지만, 프랑스에서는 마크롱 정부가 반무슬림 법안을 추진하고 있고, 극우 르펜의 집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영국에서 보리스 존슨 정부는 경찰국가로 가는 법안을 추진하며 거리 시위대를 짓밟고 있다.
재보선 다음날 <조선일보>를 보니 칼럼, 사설 등을 통해 ‘이제 문재인 정부는 반성하고 민심을 받아들여 반기업, 반시장, 친노조, 탈원전, 대북화해,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시장 규제, 친중국, 검찰개혁, 언론개혁 정책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안팎에서도 비슷한 방향으로의 ‘반성과 방향 전환’에 대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항상 반복되는 전형적인 매카니즘이다. 기득권 우파에 맞서는 개혁에 대한 희망 속에 중도개혁 세력이 집권한다. 그러나 여전히 부와 권력을 가진 재벌, 언론, 관료들은 어떤 의미있는 개혁도 가로막는다. 더구나 중도개혁 세력 내부에서도 반대세력은 강력하다. 타협과 굴복 속에 개혁은 지지부진하고 실패해 간다. 그러면 실망 속에서 중도개혁 세력의 입지는 약화된다. 그럴수록 기득권 우파는 더욱 기가 살아난다.
나는 지난 총선 직후에 이렇게 예측했다.
“민주당은 이제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코로나발 세계적 위기라는 악조건 속에서 여전한 검찰 등 관료기구, 족벌언론, 재벌들의 방해와 반동 시도를 뚫고 개혁의 성과를 거두는 실력을 보여야 한다. 또다시 우파와 기득권에 굴복하면 개혁은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허락하는 남북화해’, ‘재벌의 눈치보는 경제개혁’, ‘윤석열에 맡겨놓고 뒤통수 맞는 적폐청산’이 지속되고 차별금지법은 또 물 건너가면 실망은 환멸로 변하게 될 것이다.”
타협과 굴복 속에 개혁이 실패하면 몇 가지 역설이 나타난다. 먼저 개혁이 실패하면 대중의 삶을 개선하고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다. 희망을 잃은 대중은 각자도생에 내몰리고, 그러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과 ‘능력과 노력에 따라 경쟁에서 승리할 기회’에 이끌리게 된다. 이것이 부동산 투기 척결에 실패한 결과가 ‘빛내서 집살 기회’와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 벌 자유’를 주장하는 우파의 득세로 이어진 이유다.
타협과 굴복으로 개혁이 실패하면 기득권 세력은 만족하는 게 아니라, (아웅산 수지의 타협에 만족한 게 아니라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처럼) 더 나아가 개혁의 싹을 자르려고 한다는 것이 두 번째 역설이다. 이것은 사회적 격돌을 일으키고, 애초에 개혁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 문제라거나, ‘이’ 개혁 추진이 ‘저’ 개혁 추진을 가로막았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세 번째, 가장 큰 역설은 개혁을 가로막고 그것을 실패하게 만든 바로 그 세력이 대중의 환멸을 이용해서 다시 권력을 탈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재보선 결과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론 개혁 실패의 역설만으로 이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지난해 총선과 달라진 사실은 2016년 촛불 이후에 심각한 분열과 혼란에 빠져있던 기득권 우파가 어느 정도 (정치의) 재구성과 (세력의) 재통합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김종인, 오세훈, 안철수, 금태섭 등을 내세우고 힘을 합치며 뭔가 낡은 과거를 벗어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철지난 종북혐오 선동은 어느 정도 축소됐다. 성소수자 혐오, 반페미니즘, 혐중 선동, ‘586엘리트의 위선’에 대한 비난과 혐오가 그것을 대체하는 중이다.
‘정의를 말하면서 특권을 챙기는 위선적인 586엘리트들이 파렴치한 사람들을 앞세워 검찰, 언론을 뒤흔들며 자신들의 반칙을 숨기고, 어설픈 정책으로 한국사회를 망치고 있다’는 저들의 프레임은 이제 진영을 넘어서 대부분의 지식인과 언론들이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헤게모니적 담론의 지위를 얻었다.
진중권, 서민같은 새로운 스피커들이 생겼고, ‘능력과 노력에 따른 공정’은 이제 우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무기가 됐다. 이번에 오세훈의 선거 슬로건의 핵심에도 ‘공정’이 있었다. 그러면서 우파는 지금 청년(남성)층으로 지지기반을 넓혀가고 있고, 이번에 20대 남성의 72%가 오세훈에게 투표하게 된 것이다. 먼저 이 현상은 갑작스러운 게 아니라 이미 2017년부터 나타나 꾸준히 발전하던 경향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이 압승한 지난 총선에서마저 20대 남성은 20대 여성에 비해 두 배나 더 많이 국민의힘에 투표를 했다. <시사인>은 이미 2019년에 치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20대 남성의 10명중 6명은 반페미니즘적이면서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이고, 심지어 그 중에 25% 정도는 스스로 역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관된 “반페미니즘 마이너리티 정체성 집단”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의힘은 하태경, 이준석 등을 앞세워서 이들과 접속하고 소통하는데 성공하고 있고, 이것을 ‘586엘리트’에 대한 적개심으로 연결시켜 왔다. 이번에도 이준석은 “시대착오적 페미니즘을 강요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이번 선거를 ‘앞으로는 페미니즘을 말하면서 뒤로는 성폭력을 저지르는 위선적인 민주당 586 엘리트’를 심판하는 투표로 만들었다.
그래서 성차별이고 성폭력적인 사회구조를 만드는데 가장 책임있는 세력이, 가장 앞장서서 성폭력 피해자에 연대하자는 ‘호소’를 하고, 페미니즘에 가장 부정적이던 사람들이, 그것에 가장 뜨거운 ‘호응’을 보이며 투표를 하는 삼중의 역설이 나타나게 됐다. 박시장 성폭력 사건과 피해자에 대한 민주당의 잘못된 뒤틀린 대응이 여기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물론 우파의 새로운 지지기반이 되어가는 청년(남성)층을 매도하는 것은 대안일 수가 없다. 또 그들의 분노와 불만에 주목하고 공감하는 것과 그들이 우파정치적 대안에 이끌리는 것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것을 양립불가능한 것처럼 취급할 필요도 없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신자유주의가 낳은 고통과 삶의 불안정은 대중의 정당한 분노와 불만을 낳았다. 그러나 신우파는 그것을 포퓰리점적인 인종주의 선동의 기반으로 이용했다. 트럼프의 당선이나 브렉시트 가결에 대해서 ‘정당한 분노의 표출’이냐 ‘잘못된 우파적 반응이냐’는 양자택일식 논쟁이 무의미했던 이유다.
분노와 불만이 혐오의 정치로 향하지 않도록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선거를 평가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온갖 평가와 비판들이 쏟아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별로 거기에 말을 보태고 싶지 않은 것은, 민주당에게 급진적 개혁을 기대하거나 주문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고,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주당이 무슨 ‘악당’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당의 구조적 성격 때문이다. 민주당은 애초부터 한계를 가진 다층적 기반의 중도개혁 세력이고, 물론 그 내부에 진지하게 진보와 개혁을 추구하는 세력도 포함돼 있지만, 그들은 다수이거나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개혁에 성공할 가능성보다, 민주당의 한계와 문제점에 실망해 이탈하는 사람들을 흡수하면서 진보좌파의 지지기반이 크게 확장될 것을 기대해 왔다. 진보좌파의 주도 속에 민주주의적, 반자본주의적, 생태주의적, 페미니즘적 가치가 확대되길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실망하고 우울해진 핵심 이유도, 민주당이 패배하고 국민의힘이 반사이익을 얻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고 심지어 필연적인 면도 있었다. 핵심은 진보좌파 정당과 후보들이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긴커녕 너무나 미미한 결과를 얻었다는 데 있다.
이번에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같은 주요 진보정당들은 아예 후보를 내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어느 때보다 많은 진보 후보가 전부 갈라져 출마했고, 군소후보의 절반 이상이 진보 후보였다. 어느 진보 후보에 투표하고 주변에 권할지가 너무 힘든 고민이 됐다. 그럼에도 진보 후보들은 심지어 허경영보다도 훨씬 못한 결과를 얻었다.
선거 과정에서 군소후보들의 TV토론회나 방송 인터뷰 등을 일일이 어렵게 찾아보면서 안타까움만 깊어졌다. 크게 다를 수 없는 가치와 정책을 가지고 출마한 진보 후보들이 서로의 부족함과 잘못을 찾아내서 공격하느라 바쁜 모습을 서글픈 마음으로 봐야 했기 때문이다.
선거 막판에는 국민의힘에서 여유를 부리며 ‘군소 후보들의 다양한 가치들에도 관심갖고 투표해달라’고 권하는 굴욕적 장면까지 봐야했다. 수많은 선거 평가에서도 진보정당과 후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무관심과 주변화 속에서 진보정당과 후보들을 향해서는 성찰과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조차 별로 나오지 않고 있다.
20년이 넘은 진보정당 운동의 역사가 이제 다 합쳐서 2%도 안 되는 득표라는 결과로 드러나는 지지기반의 축소재생산이다. 민주당이나 우파의 지지기반을 가져오기 위해서 힘을 합쳐서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 작은 지지기반을 서로 갈라먹기 위해 다투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진보의 씨앗을 뿌리기만 할 것인지, 솔직히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심정이다.
그동안 진보정당들은 계속 더 분열했고 더 약화했다. 지역기반은 더 줄었고, 사회운동과 연계는 더 약해졌고 ‘영남노동벨트’는 희미해졌다. 언제까지 이 모든 게 양당구도와 주류 양당 때문이라고만 할 것인가? 양당 구도가 양당 때문이라는 것은 무의미한 동어반복이다. 세상에 어떤 주류 양당이 제3세력을 위해 알아서 길을 비키며 돕겠는가? 제3의 대안을 지지할만한 선택지로 만들어 제시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부터 스스로 성찰하고 쇄신해야 한다.
미국 등에서 제3정치세력이 실패를 거듭한 이유는 단지 양당에 흡수됐기 때문만이 아니라, 수많은 소규모 제3세력이 난립하면서 어떤 의미있는 대안으로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돌아봐야 한다. 그나마 이번 선거 막바지에 기본소득당·녹색당·미래당·정의당·진보당이 ‘반기득권 공동 정치선언’을 한 것에서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을 찾고 싶다.
차이점을 인정하고 비판, 토론하면서도 투쟁과 선거에서 공동의 과제를 위해서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민주당을 통한 개혁과 진보에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한 사람들이, 진보좌파의 기반으로 옮겨올 수 있도록 적절한 동맹과 전술을 택해야 한다. 민주당이 실패하길 기다리며 더 세게 욕하다 보면, 저절로 우리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게으른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진보좌파의 정치세력화를 든든하게 뒷받침할 대중적 기반과 주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지기반이 넓혀지기도 전에 먼저 갈라가려는 시도는 그만 보고 싶다. 이 모든 것은 민주당을 넘어선 진보좌파 정치세력이 한국사회의 희망이 돼야 한다는 기대와 애정 때문에 다소 강하게 하는 비판과 주문이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기사 등록 202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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