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개인적인 고민. 오직 개인의 고민
박철균
1. 성평등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선 조직이 완전무결점의 조직임을 증명하는 것이어야 할까? 아니면 피해자가 이후에 안전하게 활동하는 것임을 증명해야 할까?
2. 가해자는 무조건 엄벌되어야 하고 아예 여지가 없게 추방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가해자 역시 제대로 사죄하고 책임지는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
3. 피해자다움은 어떤 것일까? 피해자가 피해자다운 모습이 아니라고 위축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피해자다움일까? 아니면 피해자의 말 이외에 이의든 질문이든 그 밖의 것에 대해선 2차 가해니까 일체 언급할 수 없게 하는 것이 피해자다움일까?
4. 김종철 전 당대표는 분명 성폭력을 한 것이 맞고 그에 따라 직위해제를 한 것은 맞다고 본다. 그런데, 빠른 속도로 당기위가 꾸려지고 그 다음 당기위의 결정은 "제명"이었다. 보기에 따라선 정의당 뿐만 아니라 이 운동판에서 추방됐다고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논란이 발생하고 나 역시 고민에 빠진다. 피해자가 안전한 활동을 보장하게 하고 2차 가해라고 하는 제 2의 피해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가해자가 하는 행동에 무엇이 문제가 있었고 소위 어떤 "개선 및 교정"이 있어야 하는지 가해자의 솔루션도 있어야 하지 않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가해자가 그 행위를 부정하고 제2 제3의 가해를 한다면 모를까, 지금 같은 경우는 가해자가 성폭력이라고 인정하고 관련된 절차를 거부하지 않고 응했다면 말이다. 당 조직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가해자에게도 해당하는 것이라 본다. 그런데, 그런 여지가 없이 가해자가 너무나 빠르게 제거되었다. 이런 상황이 당 조직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 긍정적일지는 고민이 든다.
5. 내가 속한 조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솔직하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폭력을 비롯한 온갖 문제에서 절대 결점이 없다고 판단하는지, 아니면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때 피해자를 일상에서 다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여타 필요한 조치들을 적절하게 할 수 있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어떤 관점이냐에 따라 대응방향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후자는 조직에 안타깝거나 그 이상의 일이 일어났을 때 그 메뉴얼에 따라 대응하고 그 대응방향이 모두에게 교훈과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만, 전자는 그런 상황이 혹시나 발생한다면 견디기 어려울 것이고, 더더욱 엄벌주의로 이어가기 쉬어서 논란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정의당은 어떠할까?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전자의 루트를 밟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에서 후자의 시스템은 없는 건가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번 성폭력 사건은 매우 불편한 일이다. 특히나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기성정당의 성폭력 대응에 대해 비판하고 제시한 상들이 있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힘들 것이다. 여전히 기성 정당들은 이에 대해 무심하거나 은폐하거나 심지어는 부정하거나 2차가해를 밥먹듯이 하는데 정의당에게 특히나 "정당 해산 수준" 운운하며 필요 이상으로 공격받는 것이 너무 힘들 것이다. 그런데, 그 대응에 대해선 우리는 차분히 메뉴얼에 따라 대응하는지는 많은 고민이 든다. 다들 너무 급한 것 같고, 다들 너무 과열된 것 같고 그래서 서로 너무 많은 감정과 에너지가 소모되고 남겨진 서로에게 상처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아프다.
6. 조직의 성폭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앞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토론하고 얘기하며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뭔가 질문을 얘기하고 아쉬움을 얘기하는 것을 모두 2차가해인 듯이 막는 것이 과연 성평등한 조직에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사실 나도 이런 고민을 쓰는 것이 맞는 건지 무섭다.) 다만 정말 잘 얘기되고 그 방향을 함께 얘기했으면 좋겠다. 정의당이 이 문제를 잘 해결하고 구성원 모두가 성평등한 조직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특히나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7. 장혜영 의원의 빠른 회복 및 일상으로의 귀환을 기원한다.
P.S : 소위 "2차가해 신고" 논란은 당에서 내부 스피치와 외부 스피치를 나눈다기 보단 그냥 모두 총체적으로 얘기해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아쉬움은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2차가해 신고를 취소하고 당은 공식적으로 사과하라"고 대뜸 요구하는 것은 피해자의 안전과 일상복귀보단 조직보위가 우선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관련된 연서명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물론이고 정의당의 조치를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다른 성폭력 피해자 및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매우 폭력적인 움직임이라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부디 생각했으면 좋겠다.
●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을 위하여
전지윤
많은 분들이 당혹 속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지만,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부터 다시 돌아보게 된 분들도 많을 것이다. 물론, 역시나 선정적으로 접근하는 언론, 정략적이고 정치공학적 계산과 대응에 바쁜 사람들, 구조보다 개인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사람들, 성찰과 공감보다 감정적이고 서로 상처를 주는 반응도 많다.
그래도 이번에 정의당 지도부가 보여 준 모습은 어느 정도 희망을 줬다. 가해자를 편들며 피해자가 조직에 해를 끼쳤다고 비난하거나, 그 반대로 피해자를 편들지만 가해자만 도려내며 조직만 지키려는 조직보존주의의 동전의 양면같은 모습은 초기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면서 공동체의 책임과 구조도 돌아보는 노력이 보였다.
따라서 이때다 하면서 정파적으로 이용하기 바쁜 하태경이나 활빈단같은 우파들의 모습은 참 보기 괴롭다. ‘좌파의 위선과 이중성’을 말하면서 정의당을 공격하는 우파, 언론들과 총사퇴와 당 해체를 운운하는 목소리들에도 공감할 수가 없다. 오히려 정의당 지도부가 초기에 보여준 이런 가능성을 더 많은 곳에서 발전시키고 확산했으면 좋겠다.
특히 민주당이 그렇다. 보수언론들처럼 일부 개인들의 댓글과 심한 말이 곧 민주당을 대표하고 공식입장인 것처럼 과장할 수는 없지만, 분명 피해자를 불신, 비난, 2차가해하는 입장이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 속에서 방치돼 온 것이 사실이다. 반면, 민주당에서도 이미 권인숙, 정춘숙 의원 등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왔다.
“우리 모두는 치열하게 생각해야 해요. 박원순이 그럴 리 없어라는 생각을 벗어나면 바로 물어보게 되죠. 박원순조차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박원순조차 그랬다면 어떻게 이걸 뛰어넘을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생각해야 합니다.”(정춘숙)
‘2차가해에 반대하는 박원순 지지자들’의 서명운동도 있었고,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도 박원순을 딛고 나가자고 했었다. “인권 감수성이 그렇게 뛰어난 박 전 시장조차 자기 행동이 문제가 되지 않는 수인한도 내에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조직의 문화가 있다... 이런 문화를 깨뜨려야 한다. 피해자 호소를 바라보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박 전 시장과 각별했지만, 그를 딛고 가겠다.”
다행히, 인권위의 조사 결과 발표 이후 늦게나마 민주당도 모호한 입장과 침묵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믿고 지지했던 사람의 허물과 과오를 직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우파, 언론들이 고인을 지나치게 악마화하며 문제를 진영화하고 갈등을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래도 절대 하지 말아야할 언행이 있는 법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에게 심각한 고통과 상처를 주는 잘못된 언행에 대한 지적을 받고 나서의 태도이다.
그런 지적과 비판을 받고나서 자신의 무지와 부족한 감수성을 돌아보면서 고치고 배우려는 태도를 취하면, 소통은 계속되고 관계는 더 발전할 수 있다. 그 과정은 일방적이기 보다 상호적인 토론을 수반할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더 심한 언행으로 받아치고 나온다면 사태는 그야말로 새로운 폭력과 가해로 발전하면서 악화하기 십상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어려움을 딛고서 이 고비를 넘어서면서 여전히 굳건한 성차별적, 성폭력적 사회구조와 문화, 규범을 직시하고 아직도 고립돼 있고, 입도 열기 어려운 처지의 더 많은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줄 때다. 당장 지난 주말 방영된 <스트레이트>를 보면 고위급 탈북자 장진성이 저질러온 충격적인 성범죄가 나온다.
그걸보면 국정원-탈북단체-우파언론과 정치세력-사학재단과 재력가로 얽힌 네트워크 속에서 이런 범죄가 자라났고, 피해자가 6년 동안 침묵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실명과 얼굴까지 공개하며 용기있게 미투에 나선 피해자를 향해서 가해자는 반성과 사과가 아니라 ‘정신이 이상한 여자이고 나를 음해해 이득을 얻으려 한다’는 지독한 공격을 퍼붓고 있다.
윤지오 씨를 대대적으로 마녀사냥하면서 자신들의 성범죄 허물을 덮어버린 조선일보는 지금 또다른 성폭력 가해자 김학의 감싸기에 열심이다. 수많은 내부적 성폭력 사건을 덮어버리고 피해자를 조직적으로 음해하고 괴롭혀 온 검찰은 어떤가. 오히려 ‘살아있는 권력을 감시하는 정의의 사도’처럼 설치며 주류언론들의 비호를 받고 있다.
‘저기에 나쁜 놈들이 더 많다’는 진영논리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성폭력은 사회적, 구조적인 뿌리가 있고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문화와 규범, 중앙집중적 권력과 권위주의적 위계질서가 더 심한 곳에서 더 많이 자라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낮은 곳의 힘없는 더 많은 피해자들은 아직도 침묵하고 있고, 어렵게 목소리를 냈다가도 언론과 대중의 별다른 관심도 못 받고 좌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누구든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다는 말이 맞다면 ‘무관용 원칙’이라는 말은 재고됐으면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만 악마화하는 게 대안이 아니라면, 가해자라는 게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위치가 아니라 반성과 책임을 통해 벗어날 수 있는 감당 가능한 위치가 됐으면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가해자 위치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반작용 속에 우리 모두와, 더구나 피해자들이 더 고통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어떤 잘못을 하면 고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 늘 아웃되기만 하면 조직은 바뀔 수 없다. ‘무관용 원칙’ 또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박원순 시장은 ‘무관용 원칙’을 천명한 장본인이기에 스스로를 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해결하는 것을 ‘끝장내는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에게 나올 수 있는 결과였다고 본다.”(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피해 자체를 부정해서 ‘무관용’의 허상을 유지하려는 태도도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지금도 ‘성폭력 무관용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실제로는 성폭력 피해자를 끈질기게 괴롭히다가, 피해자를 돕고 자신들을 비판했다고 나에게 5천만원 손배 청구까지 했다. 노연 지도부는 최근에도 박시장 사건에서 피소사실을 유출했다고 여성단체들을 맹비난하면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런 단체를 어떻게 신뢰하겠냐’고 한다.
박시장 사건에 대해 논평하고 훈수두면서 ‘박시장도, 민주당도, 페미니스트도, 여성단체도 다 틀렸고 우리만 옳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피해자의 직장내 성폭력 상담기밀을 자신들 기관지에 적나라하게 실어서 방방곡곡에 알리고 공문으로까지 여기저기 전달했던 분들이 이러는 것을 보고 생존자는 말을 잃을 정도다, 노연 지도부가 앞뒤도 안 맞는 ‘무관용 원칙’을 내려두고, 스스로부터 성찰 반성하면서 생존자들에게 사과하고, 나에게 건 손배소송도 철회하고 모든 책임을 지면서 스스로 가해자로서 위치를 벗어나기를 다시 기대하고 촉구한다.
(기사 등록 20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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