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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헌법재판소와 법무부가 '사상감별'하는 나라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4. 10. 24.

"이 100명중에서 누가 NL인지 말해달라"  


전지윤


엊그제 헌법재판소의 진보당 해산 청구 재판에서 그야말로 사상검열이 벌어졌다. 국정원 끄나풀 김영환과 이성윤이 법무부가 신청한 증인으로 출석해서 진보당 활동가 100여 명의 사상을 하나하나 검증했다. 검찰은 명단을 제시하며 이 중에 누가 NL인지 말해달라고 했고, 두 사람은 사상 감별사로 나섰다. 1950년대에 미국에서 매카시가 그랬듯이 두 사람도 앞뒤도 안 맞는 논리로 별 근거도 없이 마녀를 지목해 나갔다


앞선 재판 때도 정부측은 진보당 당원과 연대세력을 4가지로 감별한 바 있다. “혁명적NL세력, 이념적NL세력, 지지옹호세력, 묵인세력정부는 공안탄압 대책위에 속한 44개 단체들은 지지옹호세력이라고 분류했다. 이런 분류에 따르면 진보당과 연대세력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저 사람들은 문제가 있지만, 나는 그들을 지지하거나 묵인하지 않았다고 선을 긋지 않는 이상 말이다.


이런 기가막힌 일이 21세기에 최고 사법기관이라는 곳에서 벌어지고, 언론과 방송은 이것을 하루종일 틀어대고, 이를 문제삼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세상, 이것이 박근혜의 나라다. 정말 매카시즘이 따로 없다.


매카시즘을 다룬 최고의 영화중 하나는 <크루서블>이다. 매카시즘의 희생자이기도 한 아서 밀러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17세기 마녀사냥을 통해 이를 풍자한다. 영화의 절정은 살기위해 이웃을 마녀라고 고발하던 주인공이 마침내 그것을 거부할 때다.


그는 교회에 마녀 명단을 만들어 주지만, 거기에 자기 이름으로 서명하라는 요구에서 멈춰 선다. “내 이름은 안돼요. 내 인생에 하나뿐인 이름이니까.” 결국 그는 부인과 마지막 키스를 나누고 목매달려 죽는다. 부인은 슬퍼하지만, 그가 진실과 선함을 되찾았다고 안도한다. ‘증거가 필요해서 서명을 요구했던 판사는 주인공이 죽어갈 때 이 광경을 보고 우는 사람은 마녀에 동조하는 자다라고 엄포를 놓는다.



지금 한국 사회가 여기서 얼마나 다를까. ‘종북’, ‘간첩이런 딱지만 붙이면 어떤 말도 안 되는 짓거리도 가능하다. ‘기억제거 패치를 이용해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한 여간첩? 이 공상소설에 대해 최근 대법원은 최종 유죄를 선고했다. 다음날 <조선일보>는 아주 진지하게 북한이 거짓말탐지기의 원리를 간파해서 간첩을 훈련시킨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유우성 간첩 조작에 대한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나아가 요즘 우파와 공안검찰은 도청 허용, 영장없는 구금, 변호권 제한 등의 국가 위해 사범 특별법과 공안사건 전담재판부가 필요하다고 설치고 있다. ‘유우성 무죄 같은 일을 막기위해라며!


대부분의 언론과 방송이 외면할 때, 그나마 이런 문제를 꾸준히 용기있고 끈질기게 다룬 것은 <뉴스타파>. 그래서 <뉴스타파>의 최승호 PD가 지난주 성유보 선생님의 부고를 전하며 울먹일 때 그 울림은 남달랐다. “40년전 그를 동아일보에서 쫓겨나게 했고 평생을 풍찬노숙하게 했던 그 꿈이야말로 그때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꿈이라는 것을 압니다. 성유보 선생의 영전에 나직이 외쳐보고 싶습니다. 자유언론 만세” 


매카시즘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여간첩의 남자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법과 똑같아요. 생사람을 뒤집어 씌워서 지옥으로 보내고정말 그렇다. 북한에 우호적인 좌파를 종북이라고 조작해서 탄압하고, 한편으론 북한에서 핍박받던 탈북자를 간첩이라고 조작해서 탄압하고.


미국 지배자들에게 이슬람주의가 꽃놀이패이듯이 이 나라 지배자들에게는 북한이 그렇다. 얼마 전 카톡 사찰 논란이 커지자 <문화일보>간첩, 카톡으로 상부 보고하고 종북세력 접촉기사를 실으며 사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저들은 북한 3대 세습, , 인권에 대한 머리 속 생각을 공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에 답을 안 하면 비난받아 마땅하고 정치판을 떠나야하고, 심지어 사법기관의 조사도 감수해야 한다는 게 일종의 상식이 돼 있다. 반면 삼성 3대 세습, 남한 핵발전, 카톡 사찰에 대해서 이런 잣대가 적용될 리가 없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북한 사회 성격에 대한 진정한 비판과 분석을 가로막고 있다. 진보당에 대한 진정한 동지적 비판과 혁신 촉구 시도도 가로막고 있다.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도 이런 상황을 못 본척하거나 진보당이 마녀는 아니지만 진보당 때문에 다른 진보정당들이 외면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걸 보면 씁쓸하다. 진보당 사태와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종북몰이가 한참이었을 때, 자유주의 언론사들에서도 내부 구성원 중 누군가를 친진보당’, ‘친경기동부라고 딱지 붙이고 따했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진보·좌파 진영 여기저기서 이 비슷한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말하고 이런 태도를 취하면 너무 진보당이나 경기동부연합과 가깝거나 우호적이라고 보이지 않을까눈치 보게 만드는 분위기.


이뿐 아니다.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이나 노동조합 조직화를 위한 일들도 진보당이나 소속 국회의원실이 관여돼 있으면 사측이나 지역사회, 관공서에서 문제삼고 차단하는 게 당연시돼 있다. 이런 일을 지켜 본 한 동지는 진보당은 멍에이고, 진보당이 끼어있으면 나도 돕기가 꺼려지고 발을 빼게 된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과연 누구에게 득이 될까? 진보당이 배제되는 덕에 다른 진보정당과 세력에게 활동과 성장의 공간의 넓어질까?


미국의 사회주의자인 조나선 닐이 매카시즘을 분석한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자국의 통치자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상대편의 통치자를 이상화했다...사회정의를 진지하게 원하는 사람들일수록 공산당에 가입했다.”

“1945년에 공산당원들은 다수의 노동조합에서 활발한 좌파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공격받고 탄압받았던 것은 사회정의였[지만 지배자들은]...소련의 공산주의가 잔인한 독재 체제이며 미국 공산당은 소련 정부의 하수인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다...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적절하게 방어하지 못했다.”


두려움과 수치심이 노동조합 내 좌파를 분열시켰다...사회주의 사상을 표명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널리 퍼져 있었다...이제 그들은 러시아의 간첩이자 앞잡이로 그려졌다...문제는 그 활동가들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 두려워서 그들을 방어하지 못한 수많은 현장 투사들에게 미칠 영향이었다...반공산주의 캠페인은 투사들과 지역의 조직들을 전반적으로 약화시켰다....이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자신을 민주당의 완전한 하위 파트너로 종속시켰다.”


헌법재판소장 박한철은 새누리당 위원들의 닦달에 올해 말로 진보당 해산 심판을 결론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재판은 요식행위이고 결론은 나와 있단 뜻일까?

홍콩 민중들이 만든 우산혁명의 노래 가사가 와 닿는다. “마음껏 외칠 기회가 없을까 두렵다. 우산을 같이 들자, 함께 버티자, 함께하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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