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초 국정원 선거부정 사태를 종북몰이를 통해 가까스로 넘긴 후 철도 민영화를 추진했다. 철도 파업이 낳은 물결도 간신히 가라앉힌 후, 올해는 본격적인 구조조정과 고통전가를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후폭풍 속에 반년을 발목 잡혔고, 이제 겨우 한 고비를 넘었다. 의료민영화 시행령들을 통과시킨 박근혜는 이제 공무원연금 개악으로 타겟을 잡고 있다. 김무성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십자가”에 비유하며 “꼭 이뤄야 할 제일 중요한 개혁 정책”라고 했다. 철도노조에 이어서 공무원노조의 기도 꺾으며 이어질 구조조정 공세의 마중물로 삼으려는 듯하다.
저들은 ‘이대로 두면 공무원연금에서 부족한 부분을 다음 정부부터 매년 6조 원씩 보전해줘야 한다’, ‘2080년까지 2000조 원이 들어갈 것이다’라며 어아어마한 뻥튀기를 하고 있다. 통계 수치 장난으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다. 그동안 재벌 부자들 세금 깎아 준 것과 앞으로 깎아 줄 것은 왜 저런 식으로 합쳐서 발표하지 않는가?
정부의 개악안대로면 공무원의 연금 기여율은 최대 41%가 늘고, 급여액은 최대 34%가 줄어든다. 2016년 입직자는 나중에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고작 76만 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노후를 보장하는 복지가 아니라 적금이나 곗돈이 되 버린다.
더구나 이미 기초연금을 깍은 정부가 이제 공무원연금을 깍은 후, 국민연금도 깎으려 할 것이다. 실제 지난해 정부는 9%인 국민연금 보험료를 14%까지 올리자는 안을 넌지시 흘렸었다. 이런 공적연금 ‘용돈화’ 속에 사적연금 시장은 2010년 187조 원에서 지난해 345조 원으로 커졌다.
따라서 경제 위기 고통전가의 디딤돌이 될 공무원연금 개악을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막을 이유는 분명하다. 11월 1일 공무원 노동자 12만 명이 결집한 것은 이런 투쟁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공무원노조들은 그동안 투쟁 속에서 조직력을 다지고 투쟁의 근육을 강화하는 데 부족함이 있었겠지만, 이번에 그런 기회가 온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약점은 극복될 필요가 있다. 먼저 우파는 결집해서 단호하게 돌진하는 반면 진보는 여전히 분열돼 있는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우파는 지금 ‘철밥통’ 운운하며 ‘국민연금과의 형평성’과 ‘재정안정성’의 논리로 이간질을 시도하고 있고 이것이 일부 먹히고 있다.
게다가 새민련은 기본적으로 이 개악을 찬성하면서, 시기와 방식만을 문제삼고 있다. 이미 거듭 겪어봤지만 이런 새민련이 국회에서 개악안 통과를 막아주긴 힘들 것이고, 새민련을 믿고 기대해서도 안 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중심이 돼서 공무원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광범한 지지와 연대를 건설해 나가야 한다. 정부에 타협하며 노동자 연대와 공무원노조들의 공동전선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은 분명히 비판해야 한다.
진보정당들도 분열을 넘어서야 하고 동요하지 말아야 한다. 정의당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다른 방법이 없다. … 국가는 어디 흙 파서 돈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며 위험한 입장을 밝혔다. 사실 정의당의 일부는 참여정부 때 국민연금 개악을 주도한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정의당 지도자들은 ‘재정안정성과 형평성’이라는 논리를 일부 수용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공적연금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오건호 씨부터가 이런 논리를 일부 수용해 보험료 인상 등을 주장해 온 게 사실이다.
물론 이런 타협과 동요를 막기 위해서도 단지 개악 반대만으로는 부족하다. 나아가 민주노총과 공무원 노조는 전체 노동자 민중의 인간다운 노후와 복지 증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재벌·부자들에게 세금을 강제해서 전체 민중의 복지 향상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실천으로 보여 줘야 한다. 특히 국민연금 가입할 여력도 없는 열악한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자기 일처럼 싸울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럴 때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철밥통만 지키려고 저러는 것’이라는 이간질은 통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 우리가 굳이 더 나은 처지인 공무원들을 응원해야 하나’라는 망설임도 줄어들 것이다. 투쟁 속에서 공무원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높아질 때 이런 더 넓은 시야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 점에서 11월 1일 집회에서 아쉬운 점도 있었다. 대규모 결집은 단지 정부에게 보여주고 압력넣기 위한 수단에 그쳐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행동 속에서 변화하고 투쟁의 주체가 되도록 하려는 프로그램과 이후 투쟁 일정이 준비돼야 했다.
여의도의 공무원 투쟁과 광화문의 세월호 투쟁이 잘 연결되지 못한 것도 아쉽다. 그날 좌파들의 주장에서도 이것은 찾기 힘들었다. 세월호의 진실과 정의를 위한 투쟁에 앞장서는 것이야말로 공무원 노동자들이 관피아의 하수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가장 좋은 길이다.
공무원 노동자들이 우리 모두의 안전과 생명과 삶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다는 진정성을 보여줄 때 정부의 공격과 이간질을 막아낼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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