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피어볼라’(공포+에볼라)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에볼라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내년 초까지 80만 명의 희생자가 나올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치사율이 60%에 달하는 이 전염병 때문에 특히 아프리카에서 급속도로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 전염 때문에 손을 잡거나 안아보지도 못하는 심정이 어떨까.
일부 언론은 정부와 의료기관을 ‘불신’하고 주술에 의존하는 '미개'한 아프리카인들을 탓한다. 이런 식의 보도 속에 ‘에볼라 때문에 아프리카인의 출입을 제한한다’고 내건 식당도 생겨나는 것 같다. 이 나라의 아프리카인과 동남아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은 유별나다. ‘비정상 회담’같은 TV 프로에 서구 선진국 출신의 잘 나가는 외국인들만 나오는 것에서 보듯이.
아무튼 인종차별적 시선과 달리 에볼라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미개'해서 생겨난 게 아니다. 지금 피해가 가장 심각한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 그리고 콩고, 우간다, 수단, 기니 등은 모두 오랫동안 끔찍한 내전을 겪었다.
시에라리온에서는 1991년과 2002년까지의 내전에서 무려 3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이 속에서 모든 자원은 의료와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과 학살을 위해 투자됐다.
그리고 이런 내전은 모두 제국주의 분열지배가 뿌린 씨앗이거나, 지금도 아프리카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노리고 경쟁 군벌들을 후원하는 강대국들이 낳은 비극이다. 강대국의 후원을 받아 학살을 자행해 온 부패한 독재 정부를 아프리카인들이 ‘불신’하는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런 정부들은 IMF와 손잡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며 공공 지출을 제한했다. 이 속에서 상하수도 방역과 공중보건 체계가 제대로 자리잡을 수 없었다.
불신
결국,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손잡고 아프리카에 만들어낸 환경이 에볼라 바이러스가 번식할 좋은 토양이 된 것이다. 서방 언론이 퍼뜨린 오해와 달리 원래 에볼라 바이러스의 최초 발생지는 아프리카가 아니라 독일이었다는데 말이다.(‘에볼라 바이러스 재앙, 알려지지 않은 진실’, <프레시안>)
1960년대에 발생한 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은 지난 40년 동안 만들어지지 않았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가난한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백신 개발에 별 흥미가 없었다. 그래봤자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흥미를 보여 온 것은 아프리카인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적인 임상실험이었다. <콘스탄트 가드너>같은 영화를 보면 살인도 불사하며 수백만 명을 마루타삼는 (영국 정부와 유착한) 다국적 제약회사가 나온다.
미국방부는 제3세계에서 임상실험하며 개발한 생화학 무기를 독재정부에 제공하거나, 쿠바 봉쇄 때 사용한 바 있다. 이런 일을 겪어 온 아프리카인들 속에서 외부 의료진에 대한 불신이나, ‘에볼라는 미국이 만든 생물무기’라는 음모론이 번지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지금 미국은 라이베리아에 미군 4천 명을 파병했고, 프랑스와 영국도 과거 식민지였던 기니와 시에라리온에 군대를 파병했다. 전염병을 막는 데 왜 군인과 무기가 필요하단 말인가? 무슨 일만 생기면 군대를 보내서 그 지역의 패권을 다지려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현재 ‘지맵’이라는 충분히 검증 안된 백신이 나오면서, 그 바이오 회사의 주가가 폭등하고 특허 등록 얘기가 나오는 것도 찜찜한 일이다. 세월호 재앙을 또 다른 돈벌이 기회로 삼았던 언딘이 떠오른다.
지금 이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군대도 국경도 아니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공중보건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윤 논리가 아닌 안전과 생명을 위한 예방적 의료시스템이 필요하다. 의료 민영화와 영리화가 아니라 국가가 보장하는 공공의료가 필요하다.
에이즈 공포가 한참 번져나가던 1990년대에 당시 에이즈 감염자 수가 세계 최대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복제약을 대량 생산해서 무상공급했다. 이것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특허와 이윤 논리를 거스른 것이었지만 가장 효과적인 대응이었다.
세월호도, 에볼라도 돈에 눈 먼 자본과 그들만의 국가가 만든 비극이고, 이들에 대한 ‘불신’은 너무나 정당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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