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박노자] 자본의 기본적 논리: 자기 파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이 세상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전 형태의 '돈'이 처음 나타난 것은 기원전 약 6-5세기, 중국과 리디아 (오늘날 터키)라는 두 군데의 생산력이 발달된 지역에서이었습니다. 아마도 '부자'라는 신분의 출현도 대체로 같은 시기로 봐야 할 것입니다. 초기 국가들 같은 경우에는 '부'는 '관직' 내지 지배 왕족과의 혈연 관계 등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시장 시스템이 어느 정도 발달됨에 따라 '권력'과 '부'는 상대적으로 이원화됩니다.

 

권력이 아닌, 또 다른 통로로 치부하여, 차후에 역으로 권력에 근접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되죠. 예컨대 위나라의 부유한 상인이었다가 뇌물 공여 등으로 진나라 지배 왕족에 접근해서 결국 진나라의 상국 (재상)이 되어 진시황제의 아버지이었을 가능성이 큰 여불위 (呂不韋)는 바로 그런 케이스입니다. 그 만큼 전국 시대의 중국에서 시장 시스템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반증이 되는 거죠.

 

부자들이야 이미 2천5백년 전에도 있었지만, 그들과 금일의 자본가 사이에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경쟁적으로 확대 재생산을 도모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즉, 그들에게는 '무한 축적'이라는 목표는 굳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치부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속한 사회의 유형에 따라 각각 달랐죠. 예를 들어서 아테네 같은 경우에는 '존경 받는 부자'란 철학자나 웅변가들을 가까이 하고, 필요할 때에 도시의 금고에 기부 (liturgy)를 하여 그 명성으로 선거직 하나를 얻는 것은 '부자로 사는 법'이었습니다.

 

'무한 증식'보다는 '적당한 부'는 더 환영 받았습니다. 중국이나 조선 같은 관료 국가의 경우에는, 부자 가문이라 하더라도 언젠가 관료 한 사람을 배출하는 것은 가장 큰 희망이었죠. 하급 관료라면 치부하기에도 역으로 더 쉬웠습니다. 구한말-일제 시대의 경제계 거물이었던 백완혁 (白完爀, 1856-1938)같은 사람은, 바로 무관으로 벼슬했다가 대자본가가 되는, 그런 경우에 속합니다.

 

참, <조선일보>의 초대 사장이었던 조진태 (趙鎭泰, 1853-1933)도 그런 경우죠. 무관이었다가 황실과의 관계를 이용해 부자가 되고, 나중에 총독부와 결탁해 중추원 참의까지 지낸 사람입니다. 이런 인간들에게는 사실 '부' 자체보다 '중추원 참의'와 같은 '벼슬'은 더 중요했을 것입니다. 좌우간, '돈' 자체가 목표 되는 것보다는, '명예'나 '권력' 등이 더 중요시되었던 것은 주식 자본주의 체제가 완성되기 전까지 더 전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세계체제 핵심부에서 1970년대쯤에 전형화된 '대기업' 모델은, 더 이상 한 명의 자본가가 운영하는 건 아닙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회사는 대주주들이 임명하는 전문 경영인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명예'나 '권력', 내지 사회적 '존경'에 대한 자본가 개인으로서의 욕망은 더 이상 기업 운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됐습니다.

 

전문 경영인이 원하는 건 딱 하나, 즉 단기 수익과 배당금의 증액입니다. 그래야 유능하다고 인정 받아 대주주들에게 잘리지 않죠. 경쟁에서 치여 동종 업계의 다른 업체에 밀리는 모습이 보이면 바로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이 빠져 나가고, 그걸로 경영인의 임기도 끝이 납니다. 그러면 이런 경쟁에서 가장 잘 살아남을 회사는 어떤 곳일까요?

 

이런 환경에서 가장 잘 살아남을 업체라면 되도록 공장 부지 임대료와 국가에의 세금, 그리고 노동자 임금을 적게 주어야 합니다. 공장에서의 생산을, 되도록이면 '인력이 싼 나라'로 외주화해서 공장 운영과 같은 '귀찮은 일'을 하지 않고 수익만 챙기는 회사, '절세 전략'으로 내부 거래 등을 통해서 저세율 국가에 본부를 두어 세금을 덜 내는 다국적 기업, 그리고 되도록이면 외주업체 비정규직이나 '긱' 노동자, '자영업자'로 등록돼 노동자성을 부정 당하는 '싼' 노동자들을 쓰는 회사는 이 게임에서 이깁니다.

 

예컨대 애플사를 보시죠. 그 회사의 유럽 본부는 저세율로 '유명한' 아일랜드에 있는데, 애플이 오랫동안 실질적인 0,005%의 세율을 누렸던 것입니다. 유럽 연합 당국이 최근 이와 같은 세율의 적용을 '불법'이라 판단했지만, 여태까지는 법원은 애플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애플사의 아이폰들은 대부분은 중국, 일부는 태국이나 체코 등 상대적 저임금 국가에서 생산되며, 그 생산 노동자는 다 현지 도급 업체의 직원으로 돼 있습니다.

 

중국에서 아이폰을 조립하는 노동자의 시급은 한국돈 3천원 정도, 미국 제조업의 평균 시급보다는 딱 5배 싼 것입니다. 애플이나 아마존, 페이스북 등은 미국 안에서도 가능만 하면 외주 업체 노동자나 비정규직을 씁니다. 페북에서 포스트의 내용을 확인하고 부적절 포스팅들을 제거시키는 '검열관'마저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이텍 회사'들이 그 주가를 올려 주식시장에서 돈을 모으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본의 확대재생산이 유일무이한 목표로 남아 있는 시스템에서는, 노동의 생물학적인 재생산이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비정규직, 불안 노동자, 저임금 노동자로 밀리는 사람들은 물론, 가면 갈수록 더 치열해지는 격무에 매일 과로만 느끼는, 그나마 중산층으로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도 생물학적 '재상산'의 열의를 상실합니다. 아이를 낳아 키울 여력도 점차 없어지고요. 한국 자본주의의 중심지인 서울의 출산율이 지금 0,64가 된 것은 과연 우연일까요?

 

사실, 그 숫자도 기적에 가까운 것이죠. 서울에서 자본이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그 작업의 속도 속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영웅들입니다. 그러나 그 영웅들의 숫자는 경향적으로 떨어져 나가죠. 아이도 낳아 키울 여력이 없어지지만, 애플이나 아마존, 내지 삼성을 뒷받침할 만한 대량 '소비'를 할 여력도, 점차 그 신분이 불안해지는 노동자들이 조금씩 상실합니다.

 

제조업에서 물건이 안팔리고 수익성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투자자들에게 알려지면? 언젠가 주가가 폭락할 것이고, 돈은 '안정 자산'인 부동산이나 국가 채권 등으로 몰릴 것입니다. 부동산 가격은 더 천정부지로 솟아 올랐다가... 우리가 1990년대 초기의 일본이나 2008년의 스페인에서 봤듯이, 그것도 '폭망'할 수 있는 겁니다.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가치가 이처럼 '자본'의 형테로 물화되고 결국 각종의 투기 과정에서 부풀려졌다가 소멸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치의 파괴 없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더 이상 작동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과 착취와 잉여가치의 수취, 투기, 그리고 '폭망'의 과정에서는 노동자나 환경이 입는 손실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이 정도로 비합리적이고 파괴적인 시스템이 21세기에도 계속 지구를 지배한다면 과연 지구의 앞날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기사 등록 202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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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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