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세상읽기 -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며/ 이석기/한명숙/금태섭

전지윤 

출처 -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며 트랜스포비아에 반대한다

 

3월 6일에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추모행동에 함께하며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한바퀴 돌면서 수잔 스트라이커의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읽었다. 이어서 시청 광장에 갔더니 광장을 한바퀴 둘러싸고도 남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최근에 이어진 비극적 소식들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 비극과 죽음에 대해서 기억하고 추모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넷플릭스 다큐 <디스클로져>는 꼭 추천할 만 하다.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에서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를 트랜스젠더 당사자인 배우, 작가, 예술가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이 다큐는 오늘날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과 혐오가 어떤 것인지 아주 잘 보여 준다.

 

다양한 성소수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을 재미있게 봤고, 특히 극 중에서 소피아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더욱 볼 필요가 있다. 왜냐면 소피아 역을 맡았던 실제 트랜스젠더인 레번 콕스가 이 다큐의 해설자로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의 역사>의 저자인 수잔 스트라이커도 출연해서 중요한 지점들을 짚어 준다.

 

다큐는 그동안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트랜스젠더를 얼마나 편견과 혐오에 가득찬 시선으로 왜곡해서 다루어 왔는지 깨닫게 해 준다. 우리가 좋은 영화나 재미있는 영화로 기억하고 있던 많은 영화들이 사실은 심각한 문제들을 담고 있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트랜스젠더를 웃기는 변태, 싸이코 연쇄살인마, 힘없는 희생자, 사회질서의 적이고 위협이라는 식으로 묘사한 영화나 드라마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이런 영화나 드라마를 같이 보다가 남들이 모두 웃거나, 역겨움의 반응을 나타낼 때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얼마나 소외감과 고립감을 느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넓은 극장 안에서 모두가 웃는 장면에서 자신만 참혹한 심정이라면 그것은 어떨까.

 

<크라잉게임>, <에이스벤츄라>같은 영화들이 얼마나 형편없이 한심한 영화였는지, 반면 만화 <벅스 버니>가 어떻게 어릴 적의 릴리 워쇼스키(<매트릭스>감독)에게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자긍심을 안겨줬는지도 알게 된다. 문제는 젠더이분법적인 사회질서에 있지 트랜스젠더에게 있지 않다.

 

“오늘날 우리 문화는 살 가치가 있는 몸 유형의 넓은 범주를 둘, 오직 둘뿐인 젠더(그 중에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더 큰 사회적 통제에 종속되고, 둘 다 성기의 섹스에 따른다)로 축소하려 한다... 이런 지배양식에 순응하지 않는 삶은 대개 인간쓰레기로 취급된다.”(수잔 스트라이커 <트랜스젠더의 역사>)

 

따라서 트랜스여성이 여성성을 부각하면서 여성 억압을 강화한다는 일부 ‘여성주의자’들의 비판은 틀렸고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만약 그런 젠더수행성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결과이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일뿐이고, 원인은 젠더이분법을 강제하는 사회에 있다.

 

레번 콕스는 자신이 트랜지션과 성기수술을 했는지를 그만 묻고, 자신이 어떤 폭력과 차별을 겪고 있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한다. 정말 그래야 한다. 이렇게 삶에 집중할 때 그 어느 때보다 트랜스젠더가 스스로 용기있게 가시화에 나서고 있는데 어느 때보다 죽음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 모순된 현실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트랜스젠더의 용기와 투쟁이 세상을 바꿔 온 것도 분명하다. 위키리크스에 미제국주의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문서들을 넘겨줘서 이라크 철군에 결정적 기여를 한 브라이언 매닝 일병도 트랜스젠더였고 지금은 첼시 매닝이 됐다.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난 변희수 하사도 그런 용기있는 군인이었다.

 

다큐의 마지막 부분에서 트랜스젠더인 자녀를 사랑, 존경, 경이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부모의 대화가 나온다. 한 부모는 ‘내 아이는 유니콘같다’고 말한다! 또 우리는 근래에 트랜스젠더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더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게 됐다. 다큐는 ‘더 나은 사회가 되려면 더 나은 사회를 봐야 한다’며 이런 긍정적 묘사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지적한다. 스크린에서의 긍정적 묘사를 넘어서 실제 정책, 제도, 체제가 바뀌고 그래서 삶이 바뀌어야 한다. 물론 한국사회는 그조차도 멀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승리호>같은 영화에서 트랜스젠더가 주요 배역으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아직 조연이거나 시스젠더인 배우가 대신 연기한 것이다.

 

더 많은 트랜스젠더 주인공들이 나와야하고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연출하고 연기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부터 당장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트랜스젠더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가득차서 차별과 혐오를 자행하는 사람들은 그만 입을 닫고, 스스로부터 돌아봐야 한다. 무지는 죄가 아니지만, 성찰을 거부하는 것은 폭력이다.

 

“누군가는 트랜스가 이상한 변태라고 말할 수 있다. 몰라서,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아서, 트랜스와 관련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위치여서, 다른 많은 이유로 이상한 말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상처를 주는 말이라는 식의 비판에 직면하고 나서다. 자신의 발언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고 자신의 무지를 반성하고 새롭게 배우겠다는 태도를 취한다면 이것은 새로운 대화의 계기가 되고 더 친해지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한 것 없다고, 적반하장 식으로 상대방을 비난할 때 그 발언은 정말로 혐오 폭력, 혐오 발화가 되고 심각한 사건이 된다.“(루인)

 

#힘을_보태어_이_변화에 #변희수_하사를_기억합니다

 

● 이석기 의원을 지금 당장 석방하라!

 

죽음도 삶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일부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도저히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들이 존재한다. 지금 미얀마에서 전해져오는 민주주의를 바라는 사람들이 쿠데타 군부의 총칼에 짓밟혀 가는 죽음이 그렇다. 자유를 향한 타는 목마름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기에 더구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삶의 의지를 강제로 빼앗긴 사람들의 죽음도 그렇다. 벽장에서 나와서 용기있게 침묵을 깨며 성소수자로서, 트랜스젠더로서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던 분들이 갑자기 죽음을 선택했다면, 누군가가 그 희망을 무참히 꺾어버렸다는 이야기다. 기대가 헛된 것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이 세상 자체가 거대한 벽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절망감은 견디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이가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픈 마음이 몸을 갉아먹고, 결국 다시 눈을 마주치며 안아보지도 못하고 죽음으로 향하는 것은 누구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이석기 의원의 누님인 이경진 선생님이 이제 암세포가 온 몸으로 번져 얼마 남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석기 의원 석방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뀐지 오래지만, 어제 청와대 앞 1인시위에 함께하면서 이경진 선생님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통한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곳곳에서 번져가고 있다.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더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책임을 묻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감옥에서_8년째 #이석기에게_자유를 #지금바로_

 

● 영화 <저스트 머시>와 한명숙 조작 사건의 진실

 

세상은 넓고 볼 영화는 너무 많은데 사실 시간낭비인 영화도 꽤 있다. 극장의 문제는 영화를 보다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 초반이나 중간에 나오기 어렵다는 점이다. 극장에 잘 안 가게 되는 것은 그 때문도 있다. 물론 집에서 영화를 보다가도 끊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 봐야 알 수 있다는 생각에.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고, 끝까지 보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좋은 영화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지난 몇달 동안 주말과 연휴에 본 영화들이 대부분 아주 좋았던 것은 그래서 행운이었다. 그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먼저 철균 동지의 추천으로 본 <소울>이 있었다. 삶의 목적을 찾기보다 매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메시지는 스스로 인생관을 돌아보게 하고, 이미 물 속에 있으면서 바다를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재징’의 의미도 재미있었고, 중간에 조지 오웰을 인용한 대사도 너무 좋았다. “국가 후원 교육은 쓰레기 물통에서 막대를 덜컹거리는 것이다. 지배계급의 교과과정은 반대를 억누르는 것이고, 그것이 교과서의 가장 오래된 속임수이다.” 영화에 흐르는 재즈들도 좋았고 특히 마지막 노래가 좋았다. 아래 사진처럼, 영화 초반에 ‘태어나기 전 세계’에서 스쳐지나는 장면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고도 참 웃겼다.

 

넷플릭스에서 본 <뉴스 오브 더 월드>도 참 좋았다. 백인, 멕시칸, 흑인, 인디언들이 대립하던 19세기말 미국 남부가 배경이다. 끔찍한 학살 속에서 살아난 독일-인디언 혼혈 여자아이(조하나)와 남북전쟁 참전군인으로서 죄의식을 가진 백인남자(키드 대령)가 주인공이다. 영화는 두 사람의 로드무비이면서 치유, 속죄, 화해를 보여준다.

 

제목에서처럼 세상의 진실에 대한 뉴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준다. 뉴스를 읽어주는 것만으로 폭군에 맞선 반란을 촉발하게 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요즘처럼 언론과 뉴스에 대한 환멸과 회의가 깊어지던 상황에서 더 그랬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모래 폭풍 속에서 애타게 조하나를 찾는 키드 대령의 모습이 너무 먹먹하고 가장 인상적이었다.

 

KKK단원에서 흑인공동체의 친구로 거듭난 백인남성의 실화에 바탕한 <버든>도 나쁘지 않았다. 변변한 소득도 직업도 학벌도 없는 가난한 백인남성들이 어떻게 흑인에 대한 편견을 발전시켜 나가는지, 그런 혐오감정이 지나가던 흑인 소녀에게 오줌을 갈기며 낄낄거리는 막장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도 보여 준다. 하지만 결국 혐오는 사랑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도 가장 감동적이었고 강력 추천하고 싶은 영화는 무엇보다 <저스트 머시>이다. 특히 권력을 이용해 억울한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국가기관들에 분노하고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배경은 80년대 후반의 미국이고 주인공은 억울하게 백인소녀 살해범이 된 흑인 사형수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몇십 년 전 과거와 미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지난해 미국을 흔든 ‘흑인생명은 소중하다’ 운동과 트럼프가 퇴임 직전에 단행한 수십명 사형 집행, 이 나라에서도 벌어져 온 여러 가지 사건과 재판을 통해 알 수 있다.

 

영화는 여론재판, 마녀사냥, 사건과 증거 조작을 통해서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 생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검찰(과 경찰), 법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기의자에 앉아서 사형당할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면서 억울함과 부당함에 대한 분노를 몇 배로 끌어올린다. 아무런 물증도 없고, 오히려 반대되는 증거만 있지만 검찰(경찰)은 증언만으로 범인을 만들어낸다.

 

더구나 그 증인도 검찰(경찰)에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협박과 압박을 받아서 거짓 진술을 한 것이다. 나중에 용기를 낸 증인이 그것을 번복하지만, 법원은 그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의 인간적 결함과 잘못이 여론재판에 이용된다. 여기까지만 봐도 오늘날 한국사회의 여러 사건과 재판이 떠오를 것이다.

 

이처럼 국가기관과 언론, 여론, 온 사회가 다 주인공을 죄인으로 몰아가니 나중에는 본인도 스스로의 무고함과 진실을 믿지 못할 지경이 돼 버린다. 다만 끝까지 그를 믿고 지지해준 가족들과 흑인공동체의 이웃들이 있었다. 인권변호사가 그들을 도와 힘겹게 진실을 밝혀가고, 주인공은 이들 덕분에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는 믿음을 회복해 간다.

 

제이미 폭스가 억울한 사형수 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캡틴 마블>의 히어로 브리 라슨도 변호사를 돕는 시민운동가로 나온다. 마지막에 이 모든 게 실화였다는 것과 실제 인물들의 이후 사연, 비슷한 일을 겪은 사형수들이 죽거나 수십 년만에 석방된 사연들을 보다보면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법정에서 변호사가 진실을 밝혀나가고 정의를 호소하는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결정적 증인이 증언을 번복하던 장면이다. 그는 사회가 멸시하던 또 다른 범죄자이고, 검찰(경찰)에 협박받아 거짓 증언을 했었다. 그러나 양심을 견디지 못하고 진실을 말한다. 그가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을지, 그럼에도 얼마나 용기를 냈을지 모두 느껴지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면 한명숙 사건의 증인 한만호 씨가 떠오른다. 검찰의 협박으로 거짓증언을 했던 그도 나중에 용기를 내서 증언을 번복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의 보복으로 그는 또 감옥에 가고, 나중에 감옥에서 나와 괴로워하며 외로이 죽었다. “세상의 후미진 곳에서 나를 아직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의 눈물에 왼종일 날이 궂고 바람은 헝클어진 산발로 울고, 그래서 내 마음이 춥다.”

 

그러나 그의 용기가 헛되지는 않았는지, 근래 한은상같은 분들의 또 다른 증언 번복들이 이어지고 있고 <뉴스타파>, <피디수첩>, <시사직격>, 신장식 변호사, 한동수 감찰부장, 임은정 검사같은 이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도 진실을 덮기 위해서 공모했던 검사들, 판사들, 언론들, 그리고 윤석열 사단이 반성은커녕 아무리 방해하고 있어도, 결국 이들이 진실을 밝혀낼 것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 금태섭의 ‘소신’은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그가 누구이든, 어떤 잘못과 결함이 있든, 누군가의 정체성을 낙인화하고, 존재 자체를 혐오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이 낙인이 찍혀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단 한순간도 존엄성을 느끼며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날이 확인돼왔듯이 그 고통은 살아가려는 의지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특히 소수자 집단에게) 낙인을 찍고, 혐오를 부추겨서 지지를 모으려는 정치세력들이 있다. 특히 그런 발화들은 지지를 얻어서 권력에 다가가기 위한 기회인 선거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번 재보선을 앞두고도 그런 모습이 또 반복되고 있다.

 

아무래도 혐오정치를 주요 기반으로 한 우파정당인 국힘당과 그 주변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오세훈은 ‘조선족 때문에 지난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식으로 발언했고, 국힘당과 손잡은 안철수는 퀴어퍼레이드를 거부할 권리를 이야기했다. 안철수가 그런 발언을 하자 국힘당의 후보들인 나경원, 조은희, 이언주, 오신환 등은 기다렸다는 듯이 앞 다퉈 퀴어퍼레이드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런 발언과 호응은 놀랍거나 실망스럽지는 않다. 오래 전부터 난민혐오, 혐중 선동에도 앞장섰던 정치인들이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장 앞에서 가로막고 있고 전광훈이나 태극기 부대와도 연결된 정치세력이니 말이다. 정말 실망스러운 것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이 세력들과 손잡고 선거에서 승리하고 정치를 하겠다는 금태섭 후보의 태도다.

 

금후보가 검찰 출신인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검찰 출신이라고 반드시 검찰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것은 아닐 수 있으니 말이다. 검사 시절에 그가 쓴 ‘묵비’에 대한 글은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했다. 금후보가 대단한 부자이고 자식에게 부를 물려준 것도 결정적 문제는 아니라고 봤다. 누구든 도덕적으로 완벽할 순 없고 계급적 출신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또 공수처와 검찰개혁에 대한 금후보의 입장에 전혀 동의하진 않지만 민주당이 그를 징계한 것은 문제라고 봤다. '민주집중제'에 회의감을 느껴온 처지로서, 민주적 토론을 통해 결정된 문제라도 비판할 자유, 행동통일을 거부할 자유는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징계와 일부 검찰개혁 지지자들의 과도한 비난, 댓글, 문자 때문에 마음이 상한 금후보가 민주당을 탈당한 것도 이유는 알 것 같았다. 탈당을 전후해서 조중동과 인터뷰하며 검찰개혁 지지자들을 폄하하고 비난한 것은 과해 보였지만, 상처받은 것의 반작용이라고 이해해보려 했다.

 

무엇보다 그는 민주당에 있을 때 퀴어퍼레이드에 공개적으로 참가하고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중도적 자유주의 정치인으로서 그에게 기대할 수 없는 일이고, 따라서 크게 실망할 것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탈당한 그가 국힘당에 가서 강연을 하는 것 까지도 그러려니 했지만, 이제 선거에서 아예 손잡고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니 놀랍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중도 자유주의 정치인인 그에게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급진민주주의를 기준으로 정치적 동맹을 선택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는 없다.

 

온건한 자유주의, 민주주의, 반부패, 반차별 정도가 그 기준일 것이다. 그런데 국힘당이 그 기준에 단 하나라도 부합하는가?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더니 그것에 가장 대척점에 있는 정치세력과 손을 잡는 게 말이 되는가? 그의 ‘소신’은 무엇이었던 것인가?

 

스스로 궁색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금후보는 ‘소통이 안되고 불공정한 문정부에 맞서서 범야권이 손을 잡았다. 국힘당이 변했고 나와 공통점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소통’과 ‘공정’이 기준이라는 말인데, 과연 국힘당이 ‘소통’을 잘하는 ‘공정’한 정치세력이라는 말인가?

 

더구나 국힘당, 국민당과 손잡은 이후에 금후보가 여러 문제에서 드러낸 입장들도 갈수록 이상해지고 있다. 자유주의자답게 문정부가 시장에 타협해서 망친 부동산을 시장주의적 접근으로 풀겠다는 것은 계급적 한계로 보고 넘어간다고 치자.

 

그토록 이견의 포용과 표현의 자유를 말하던 사람이 입장이 다르다고 방송프로(뉴스공장) 폐지를 주장하고, 반민주적인 사법농단 책임 법관에 대한 탄핵도 반대하고 있다. 공수처가 아니라 수사-기소 분리가 중요하다더니 막상 수사-기소 분리가 본격화되자 말바꾸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원전 종북몰이까지 편드는 것을 보면, 도대체 이 나라에는 매카시즘에서 벗어난 자유(민주)주의자들이 이토록 없는가 다시 한탄할 수밖에 없다.

 

국힘당과 힘을 합치며 ‘범야권’이라고 퉁치는 것도 어처구니없다. 같은 야당이라도 여당을 어느 쪽에서 비판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은 완전히 달라지기에 그런 식으로 묶을 수는 없다. 결국 그가 민주당보다 오른쪽에서 그 당을 비판해 왔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이처럼 스스로 ‘중도’, 심지어 ‘진보’로 포장해 민주당을 비판해 오다가 반동적 우파와 손잡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경원, 박형준을 응원하고 극우유튜브에까지 출연하는 진중권 씨가 대표적이다.

 

국힘당을 반대하고 민주당을 비판하며 새로운 좌파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진보좌파 후보나 정치세력은 이들과 명백히 달라야 한다. 적어도 국힘당과 손잡거나, 안철수나 금태섭에게 협력을 제안하거나, 조중동과 인터뷰하고 종편에 출연해서 민주당에 대한 오른쪽의 비판과 공격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여줘서는 결코 안 된다.

 

비록 아직 민주당에 머물러 있지만, 미국에서 양당체제를 넘어선 제3의 좌파적 대안의 희망인 오카시오 코르테즈는 최근, ‘게임스탑’ 사태에 포퓰리즘적 선동을 하며 공동대응을 제안한 공화당 테드 크루즈에게 이렇게 답했다. ‘이 문제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다면 기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를 제거하고 싶어해 온 당신들은 그냥 가만 있어라. 돕고 싶다면 스스로 물러나면 된다.’

 

(기사 등록 20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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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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