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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전쟁: 자본주의 사회의 원동력?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11. 22.

전쟁: 자본주의, 의회주의, 그리고 복지 사회의 원동력?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한국에서 그다지 관심을 끌지 않았지만, 최근에 구소련 지대는 또 한 바탕의 전쟁을 겪었습니다. 26년 전에 아르메니아계 민병대에 카라바흐(아르차흐) 지역을 빼앗긴 아제르바이잔은, 이제 터키의 원조를 받아 설욕전을 벌여 거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상당 부분 '실지 회복'에 성공한 셈이죠. 세계가 보는 앞에서, 세계적 판데믹 속에서 이루어진 이 전쟁은, 몇 가지 함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아제르바이잔 군을 재무장시킨 터키는, 이제 확실히 이스라엘이나 사우디를 제치고 일종의 지역적 강자로 부상하는 것 같긴 합니다.

 

형식적으로는 아직 미국의 지역적 '후국'이지만 실상 거의 독자적인 나와바리를 확보한, 자율성이 비교적 높은 포식자가 된 것이죠. 그리고 터키의 '신분 상승' 이외에는 이 전쟁이 보여준 부분은 바로 '전쟁의 정상성'이기도 합니다. 21세기 초반, 홀로코스트를 겪고 인터넷으로 다 연결된 하나의 '마을'이 된 세계지만, 여전히 한 국가의 영토 보유 여부나 국제적 위상을 결정짓는 것은 딱 하나, 바로 그 국가의 '살인력', 즉 군사력입니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바뀐 게 하나도 없다는 거죠.

 

생각해보면... 전쟁은 애당초부터 지금까지 인류로서 식량 확보나 번식, 질병 치료만큼이나 핵심적으로 중요한 요소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미권이 세계에서 군림을 하고, 유라시아의 판도를 중국이나 인도, 러시아, 터키, 이란 등 약 5 군데의 강국이 주무르는 현국을 만들어 낸 것은 궁극적으로 '무기의 진화' 논리이었습니다. 애당초에 유라시아의 패권 세력은 그 내부 지역의 유목민이었습니다. 갑옷을 입고 군마를 달리고 활을 쏘는 유목민 기마 갑병 위력 앞에서는 금나라나 송나라, 코레즘 한국 같은 중세 대국들도 다 속수무책이었습니다.

 

13세기에 원제국을 유라시아를 하나로 묶어 그 수도 카라코룸에서 고려 사신들과 러시아 사신들이 만나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판을 만든 거죠. 이 판을 깨뜨린 것은 바로 '화기'이었습니다. 화승총(火繩銃)의 살인력에는 그 어떤 기마 갑병도 버틸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 천하 무비의 군인인 몽골인들은 18세기에 들어 청나라라는 '화약의 제국' 판도 내에서 얌전한 지방민이 되고, 시베리아와 연해주는 또 하나의 '화약 제국', 즉 러시아의 차지가 됐습니다. 나머지 3 군데의 아시아 '화약 제국'인 무갈 제국과 이란, 터키는 남-서 아시아와 중동, 북아프리카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결국 이 '아시아의 5' 역시 구미권의 보다 진화된 야전포와 함포, 그리고 기선의 위력 앞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갈 제국은 이미 18세기말에 맨 먼저 무너지고, 로마노프 제국과 청, 오스만 터키는 1911~18년 사이에 거의 동시에 망국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그들이 추격형 근대화를 필요로 했는데, 러시아와 중국의 경우엔 그럴 기회를 제공한 것은 바로 (우리가 '사회주의'로 잘못 이해해온) -국가 시스템이죠. 지금의 러시아나 중국 (그리고 북한) 등이 구미권 세력의 핵심인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미사일이라는 '보험'을 일단 얻은 걸로 봐서는, 그 추격형 근대화가 나름 주효했다고 볼 수도 있죠.

 

사실 애당초에는 구미권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별 인연이 없었습니다. 의회 시스템이라 해도 투표권은 부유층의 특권이었습니다. 1780, 영국이 무갈 제국을 쓰러뜨려 인도를 식민화했을 때에 영국에서 투표권 보유자는 상위 3% 정도이었습니다. 그러면 19세기 말에 이르러 프랑스나 독일처럼 철저한 징병제를 운영하는 대륙 대국들이 모든 남성들에게 투표권을 준 이유는? 바로 징병제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조치이기도 했습니다. 총을 가진 남자가 투표를 하는 '시민'이 돼야 그 총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부터 적어지는 거죠.

 

총을 가지지 않은 여자는? 프랑스에선 1946년이 돼야 드디어 투표권을 얻었죠. 평시 징병제가 없어 가난한 남자들이 투표권도 없었던 영국은, 1차 세계대전 때에 전시 징병을 실시해야 결국 1918년에 '모든' 남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해야 했습니다. 투표권뿐만 아니라 '복지'라는 것도 애당초에 비스마르크 시대의 독일에서처럼 사회주의자들의 인기를 떨어뜨리려는 방책이 아니었다면 '총동원 전쟁'의 한 가지 결과이었습니다. 상이병을 위한 연금, 전몰 군인 유족 연금, 상이군인을 위한 무상 치료 등은 바로 '복지 국가'의 원시적 형태이었습니다.

 

, 굳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대한민국에서도 공무원 연금제(1960) 이어 맨 먼저 생긴 건 국가보훈 헤택제도(1962)와 군인연금(1963)이었습니다. 사학연금(1975) 같은 건 훨씬 뒤의 일이지요. 전쟁 (warfare)과 복지 (welfare)는 그야말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사실 유럽의 총자본이 복지 삭감이나 상당수 노동자들의 워킹푸어 전락을 최근 수십년간 방치해온 이유 중의 하나는, 더 이상 대규모의 징병제 군대를 써먹을 일도 없고, 많은 나라들이 아예 모병제로 전환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평민이 더이상 '총알받이' 역할을 해주어야 할 일이 없는 이상 국가/자본이 그를 '챙겨줄' 이유도 그만큼 없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이 슬픈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우리가 제발 착각하지 말자는 의미에서입니다. 역사가 종말을 맞은 일이 없으며, 전쟁을 그 기반으로 하는 계급 사회나 자본주의의 기본 속성이 바뀐 일도 없고 바뀔 일도 없습니다. 여전히 국제적 국가들 사이의 서열은 결국 군사력 위계고, 여전히 한 나라에서의 제반 사회 관계들은 그 무력 운영의 방식과 직결돼 있습니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거의 모든 (직장 등) 조직들의 기본 모델은 징병제 군대이며, 여전히 미국 사회의 속성을 그대로 이야기해주는 것은 모병제 미명하에 실시되는 사실상의 경제적 징병제, 즉 빈민들이 군문에 몸을 팔아야 '출세' 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대규모 전쟁의 위험 역시 여전히 아주 높은 편이죠. 이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야 평화를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하지 않는가, 싶어서 이렇게 적어 본 것입니다.  


(기사 등록 202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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