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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대한민국, '브레이크 없는' 사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11. 11.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요즘, 전세계가 새로운 대공황과 신냉전의 암울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솔직히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최선'을 바라지는 않지만, 제발 '극악'이라도 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입니다. 신냉전이 열전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대공황이 전체적인 시스템 파탄과 파쇼화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입니다. 상황이 점점 경향적으로 나빠져 가는 가운데, '극악'을 그래도 막을 수 있는 사회적 장치, 즉 사회의 '브레이크'에 대해 자주 고민하게 됩니다.

 

개인의 '브레이크'란 무엇인가요? 결국 ''의 언행을 통제하는 전뇌피질의 기능 같은 것입니다. 사회적 '초아' (super-ego)의 명령 같은 것이죠. 아무리 짜증이 나고 신경질 나도 사회적 '초아', 즉 규범 의식이 발동돼 그래도 '예의'를 지키도록 자신에게 강제하는 것, 아니면 아무리 피곤해도 잔무를 처리하고서 휴식을 취하게끔 하는 당위, 의무 의식, 이런 게 인간의 '브레이크'입니다. '브레이크'가 안되는 인간이면, 어떤 경우에는 - 사회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 강제적으로 입원 치료를 받을 때도 있고 그렇죠.

 

사회적 '브레이크'라면 일차적으로 정치 권력이든 경제 권력이든 '권력'을 억제하는 장치들입니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김정은, 습근평, 푸틴 식의 지도자 1인 본위의 '수령제'를 엄청나게 선망하지만, 공명 선거나 의회주의 규칙, 사법부의 상대적 독립 등이 남아 있는 한 미국마저 '수령제'로 나아가기가 힘들 것입니다. , 만약 트럼프주의로 기울여진 공화당이 의회와 대통령직을 장기적으로 점할 경우에는... 우리가 여태까지 알던 미국과 훨씬 다른 모습의 미국이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로마 공화국이 로마 제국으로 바뀌었듯이요.

 

한국의 경우에는, 민주화 투쟁의 역사가 길기도 하고 아직 최근의 역사이기도 해서,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나름의 '브레이크' 장치는 설치돼 있습니다. 가령 만의 하나에 박근혜의 적폐 정권이 정말로 위수령 내지 계엄령을 발동해서 명실상부한 '파쇼화'를 시도했다고 한 번 가상해 봅시다. 일단 1980년대의 경험을 아직도 머리 속에 간직하고 있는 야당과 NGO 중진 관계자들은 지하의 저항 네트워크를 바로 구축했을 것입니다.

 

또 인터넷이 있기에 대대적인 집회 등을 조직하기가 쉬운 것이고, 중국식 인터넷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당장에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파시즘 통치 체제가 공고화되기도 전에 전국이 통제 불능의 데모 행렬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그런 저항의 잠재적 가능성이야말로 사실 한국 사회의 정치적인 '안전핀' 같은 거죠.

 

그런데 한국 정치는 민주화 과정을 거쳤지만, 사회나 경제 영역에서는 민주화가 이루어진 적은 없습니다. 특히 경제 권력의 경우에는, 사실 '브레이크'가 없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한국의 일상에서 뺄 수 없는 부분 중의 하나가 된 '택배'를 보시지요. 올해 들어 택배 기사 13명이나 과로사 당했습니다.

 

과로사를 예방하자면 사실 간단합니다. 기사의 노동 시간과 처리 물량을 세밀히 규제해야 되고, 근로 감독관들과 노조가 이 규제의 철저한 실행을 감시해야 합니다. 이런 규제 실시와 감시 체제야말로 경제계에서의 '브레이크'. 그런데 기사들이 연달아 사망을 해도 택배 업체들이 그냥 시체를 밟아 계속 '정상 영업'을 합니다. 사람을 죽이면서도 정상 영업할 수 있는 건 '브레이크 있는 사회'가 아니잖아요?

 

문제는 규제를 제정, 실시해야 하는 당국만은 아닙니다. 문제는, 사회 전체의 - 교육과 언론이 지배하는 - '의식'의 상태입니다. 이건희가 최근에 죽었을 때에 거의 모두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반도체 신화'이었지, 이 반도제 '신화'를 만드느라고 산재 사망을 당한 118명의 피해 노동자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118명은 국내에 한해서 말하는 것이지, 삼성 재벌이 해외 공장에서 산재로 죽인 노동자의 숫자를 우린 추산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악의 살인, 세습 독재 기업을 자기 '가산'처럼 좌우했던 사람이 '거인'으로 호명되고, '천재 1명이 10만 명을 먹여살린다'와 같은, 어이없는, 다수를 모욕하는 엘리트주의적 발언들은 만인의 '상식'으로 통하는 것은 대한민국입니다. '2등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정도면 살인적 과잉 경쟁을 부추기는 반사회적인 망언으로 규정해야 하는데, 이런 말들은 무슨 '수령님의 교시'처럼 인구에 회자되는 현실을 보면... '브레이크 없는 사회'라는 생각밖에 안들죠.

 

거대 기업이란 밀림의 야수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먼저 나서서 예컨대 노동자의 안전에는 한 푼 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야수들을 순치시키자면, 채찍이 필요하고 몽둥이가 필요합니다. 일단 정치인들은 대기업과 ''을 세우고 적어도 '거리'를 두어야 그 순치의 과정, '브레이크 있는 사회' 건설의 과정이 시작될 것입니다. 지금은... 여야 막론하여 삼성 제국에 아부하지 않는 정객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삼성에 더 이상 굴종하지 말라고 그들의 지지자들이 그들에게 요구해야 하는데, 그 지지자, 즉 대중의 상당부분은 아직도 '삼성 신화'의 감몽에서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악순환,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 막고 있는 악순환입니다


(기사 등록 20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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