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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한반도에 호랑이가 다시 산다면? - 종복원과 동물복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9. 15.

최태규



[네이버 포스트 최태규의 동심보감에 실렸던 글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필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https://www.facebook.com/projectmoonbear


 

20204월에도 어느 일간지에는 표범의 발자국이 아닐까 하는 사진이 실렸다. 경북 봉화나 강원도 태백 등의 첩첩산중에서 표범이나 호랑이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는 잊을만할 때마다 언론에 보도된다. 정말 범이 있나보다 싶게 찍힌 사진들이 꽤 있지만 실제로 그 동물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은 제시된 적이 없다. 그 중 다수는 민망할 정도로 명확한 큰 개나 멧돼지의 발자국이었다. 이목을 끌고 싶어하는 심리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아직 한반도 산야에 범이 살고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붙들고 있는 것 같다.

 

세계의 종 복원

 

한반도는 인구 밀도가 높아져서 이제는 대형 고양잇과 동물이 인간과의 충돌 없이 살만한 공간이 없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파를 위해 멧돼지의 이동경로를 울타리로 막듯이 수백킬로미터의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두는 방법은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그게 또 무슨 의미인가 싶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에 강원도 면적만큼의 땅을 보호구역으로 정하고 호랑이와 표범을 복원한 결과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30마리만 남았던 표범은 90여마리로, 40마리였던 호랑이는 540여마리로 크게 늘었다. 해당지역 학자들의 국제협력연구와 세계의 동물원이 보전프로그램에 참여한 결과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복원은 말할 것도 없이 유명해졌고, 포르투갈의 붉은 사슴, 영국의 비버, 유럽의 들소 등 성공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종이 인간의 행위 때문에 사라졌을 때, 종 복원은 생태계 유지에 필요한 일일 수 있다.

 

지리산의 반달가슴곰

 

한국에서의 반달가슴곰(아시안흑곰) 복원 사례도 성공에 가깝다. 목표로 했던 2020년의 50마리는 2년이나 당겨서 달성했고 지금은 60마리 이상으로 증식했다. 오히려 지리산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곰들을 감당하지 못해 억지로 지리산에 되옮겨놨다가 다시 수도산으로 떠나는 곰이 버스에 치어 수술을 받기도 했다.

 

곰이 지리산에만 머물리 만무한데, 당국은 안이했던 것 같다. 수도산에서 잡은 곰을 어디에 다시 풀지 고민하는 와중에 어떤 동물보호단체는 곰을 석방하라며 피켓팅을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곰은 다시 수도산으로 보내졌고 다른 곰들보다 더 넓은 범위를 돌아다니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방사된 곰이 많아지고 서식영역이 넓어지면서 모든 곰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있다. 온전한 야생곰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얼핏 아름다운 소식이지만, 복원사업에 동원된 모든 곰들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사되는 곰이 많아지면 자연 적응에 실패하거나 사고로 죽은 곰들도 늘어난다. 오히려 죽어버리면 낫다. 사람에게 습관적으로 접근하거나 유전적 다양성을 떨어뜨리는 곰은 다시 붙들려 사육시설에 살게 된다. 어쩌면 영원히 갇혀 지내야할지도 모르는 곰들이 방사되는 곰의 수에 비례해서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반면, 반달가슴곰을 복원하는 국립공원생물종보전원에는 점점 늘어나는 곰들을 모두 수용할만큼 자원이 충분하지 않다. 회수해서 사육하는 곰들은 뉴스에도 나지 않으니 그들을 위해서 예산을 충분히 쓰는 것 같지는 않다.

 

반달가슴곰 복원에서의 동물복지

 

다섯 마리의 곰이 방사에 실패해 야생에서 회수되었다고 치자. 이 다섯 마리의 곰은 다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럼 어떤 환경에서 살게 될까?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곰들은 다섯 마리가 함께 방사장을 사용하고 실내공간도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방사장 하나로 여러 마리가 필요한 공간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야생의 반달가슴곰은 짝짓기철과 새끼를 기를 때를 제외하면 단독 생활한다.

 

이 곰들은 동물원의 곰들과는 달리 본능에 따라 단독 생활하는 법만 배웠다. 동물원에서처럼 하나의 방사장에 다섯 마리의 곰을 한 번에 풀었다가는 서로 죽일 때까지 싸우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그럴 공산이 매우 크다. 이들을 함께 살게 하려면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물복지는 아직 복원기관의 관심사가 아닌 걸로 보인다. 회수된 곰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웅담채취용 사육곰 농장만큼 좁은 철창에서 보내고 있다.

 

또 하나, 동물원이나 생츄어리에서 기르는 곰은 관리자(사육사)에게 익숙해져야 삶의 질이 높아진다. 사람을 만나도 공포에 떨지 않아야 하고 먹이를 주면 기쁘게 받아먹어야 일상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복원대상이 되는 곰들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훈련을 강도높게 사실상 학대에 가깝게 받는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람에게 거리를 두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좋아하거나 사람에게서 먹이를 구하는 곰은 즉시 야생에서 회수되어 사육시설에 갇히게 된다. 사육시설에서는 반드시 피해야만 했던 인간이라는 존재가 바로 앞까지 다가와 먹이를 주고 청소를 하게 된다. 다른 야생동물에 비해 사람과 쉽게 가까워지는 특성 탓에 결과적으로는 인위적 사육 방식에 적응을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더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복원에 쓰이는 동물들이 유전적 가치가 있다면 안락사도 당할 기회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야생에서 살아갈 수 없고 사육상태에서도 적응이 어려워 고통스러운 삶을 지속해야하는 경우에도 개체의 유전적인 가치가 높다면 그 동물은 군집 혹은 종 전체의 유전적 건강을 위해 인공수정 등에 사용되어야 한다. 종의 성공적 복원이라는 목적은 개체의 복지가 담보되지 않아도 따로 성취될 수 있기 때문에, 동물복지가 성공적인 실험의 과학적 전제인 실험동물의 처우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

 

우리는 종복원을 위한 철학적 준비가 됐는가

 

강원도 인제군에서는 2002년 대륙사슴을 방생하기로 했다가 토종아종이 맞는지 확신이 없어 연기한 적이 있다. 다행이다. 확신이 없으면 하지 않는 것이 좋은 대안인 경우는 많다. 사슴을 복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여기는 심지어 2018년에도 대륙사슴 뼈의 효능에 대해 대한 연구가 나오는 나라다. 신약개발 연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멸종위기 1급으로 정해놓은 종의 뼈가 생쥐의 피부염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구한다는 것은 생태윤리 혹은 동물윤리가 자연과학분야에 충분히 정착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중국의 대규모 호랑이 농장을 비웃을 계제가 못된다.

 

동물복지는 어디까지 미뤄둘 수 있는가

 

워낙 극단적 사례가 이어지는 걸 목격하고 언급하다보니, 마치 동물복지와 복원의 가치가 부딪치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너무 전형적인 사례라 공격하는 것처럼 들렸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주문하고 싶은 것은 사업의 포기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윤리다.

 

스웨덴 농업과학대학의 툴린과 뢸린스버그는 야생동물 재도입과 재야생화의 윤리적 고찰(Ethical Considerations for Wildlife Reintroductions and Rewilding. 2020)에서 10가지의 윤리적 요소를 제안하는데 그 중 다섯 번째가 동물복지다. 복원되는 동물 개체가 통증, 좌절, 해침으로 인해 복지의 저하를 겪게 될 위험성에 대해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종의 복원을 위해 갇혀 사는 반달가슴곰 한 마리 한 마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야생에서 먹었던 다채로운 먹이와 사계절 달라지는 공기의 냄새와 온갖 짐승의 발자국을 분석하던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날카로운 감각은 몸속 깊이 박혀서 더 이상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분리해낼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철창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대의를 내세우든 동물을 이용하는 일에서 동물복지는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

 

(기사 등록 20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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