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우리가 늘 잘 쓰는 개념 중의 하나는 '국가 폭력'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만약 초기 국가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하자면, '국가 폭력'이라는 표현은 동어 반복이 됩니다. 애당초에 갓 생긴 국가의 주된 기능이란, 그 지도자를 '하늘의 자손' 등으로 신격화시키고 커다란 신전을 짓는 이외에는 바로 대외적인 '폭력'이었습니다. 중국 국가 의례의 기원이라면 은나라 때에 사방 정벌해서 얻은 '오랑캐' 포로들을 갖다가 황실의 조상들에게 인신 제사지냈던 것입니다. 주나라 초기에는 잠잠해졌다가, 철제 무기와 기마병이 도입된 전국 시대의 말기에 가서는 국가 폭력은 아예 그때까지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수위까지 갔습니다.
기원전 262~260년의 장평 대전에서 진나라의 백기 장군이 조나라의 항복한 패단병 약 45만 명을 생매장해서 죽였다는 이야기는 대사공 사마천의 과장이라 치더라도 조나라를 망국시키는 과정에서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대량 살육이 자행됐다는 것은 사실로 인정됩니다. 규모야 당연히 다르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대가야 등도 약 4세기부터 668년까지 약 300년 동안 거의 쉴 사이 없이 전쟁한 것입니다. 전쟁으로 잉여가치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노비가 될 포로들이 얻어지고, 국가 관료제가 공고화되고 전공을 세운 평민들에게까지 출세의 기회가 부여되니 사실 전쟁은 초기 국가의 '생명'이었죠. 전쟁과 전쟁을 수반하는 대량 살육을 떠나서 '국가'의 기원을 이해할 수가 없죠.
대체로 통일되고 관료제가 어느 정도 발달된 영토 국가가 '제도화'의 단계에 오르면 무분별하고 지속적인 약탈전들은 비교적 더 드문 전략전, 전술전으로 바뀌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국가의 폭력성이 제도화됨에 따라서 그 규모도 어느 정도 축소되죠. 단, 어떤 이질적인 세력을 만나 그 세력을 '위협'으로 인식할 때에 잘 정돈된 관료 국가도 돌연히 엄청난 야수성을 보일 수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청나라 건륭제의 토벌군이 1755~6년에 금일의 신강에서 준갈(准噶尔) 한국의 아무르사나 반란군에 대해 소탕을 했을 때에 준갈 민족의 전체 인구의 약 80% (50만 명 이상)가 천연두로 죽거나 청나라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한 걸로 이해됩니다.
몽골계인 준갈 민족은, 만주족이나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다 학살해도 별 문제가 안되는 '금수만도 못하는, 교화 밖의 오랑캐'이었던 거죠. '왕화', '교화'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순조와 그 후의 조선의 왕들이 천주교도('사학쟁이')를 보는 시각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원군 때의 박해로 1만~1만3천 명 정도로 죽임을 당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 법과 제도가 비교적 잘 돌아갔던, 즉 국가의 극단적 폭력성이 그다지 보이지 않았던 조선으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질적인 집단'애 대해서는 청이나 조선 같이 그 당시로서 거의 모범적인 관료 국가들도 참, 가차없이 대했죠.
이미 거의 '과거'가 된 국가의 극단적인 폭력성을 다시 일깨워준 것은 제1,2차 대전의 살육들과 특히 혁명을 따르는 지배층의 교체 과정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컨대 1945년 이후의 동아시아 대륙 (중국, 한반도, 월남 등)은 10~15년 동안 다시 한 번 '초기 국가 시대'로 돌아간 셈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중화인민공화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대한민국도 월남민주공화국도 전부 다 1946~1949년 사이에 건국된 '신생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건국 초기에는 이 4개의 국가에서는 대대적인 '인신 제사'가 진행됐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같으면 미국의 도움으로 간신히 권력과 재산을 유지할 수 있었던 과거 식민지 시대 엘리트들은, 실질적인 도전자뿐만 아니라 모든 잠재적인 도전자까지 모조리 죽이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보도연맹 학살과 제주4,3 때의 학살로 죽임 당한 사람들, 이외 6.25 과정과 그 전후 '빨치산' 토벌 때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총계산하면 20만 명 가까이, 그 당시 총인구의 약 1% 정도 될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중화인민공화국에서 1949~1950년 토지 개혁 때에 과거 지배층의 '지역적인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지주층을 대대적으로 살육했습니다.
당의 방침대로는 마을마다 적어도 한 두 명의 지주를 인민재판해서 죽임으로써 혁명과 인민 권력에 대한 대중적 충성을 다져야 했던 것이고, 죽은 지주, 즉 지역의 유력자를 대신해서 당세포 위원장 등 지역 간부가 그 빈 자리를 차지해 지방 권력자가 될 수 있었던 거죠. 그렇게 해서 (중국 공산당이 그 당시에 모스크바에 보낸 통보에 의하면) 약 80만 명 '반동 지주'들이 도륙되었는데, 이건 총인구 (5억6천만명)의 약 0,14%에 해당됩니다. 물론 토지개혁과 동시, 그리고 그 후에 진행한 또 다른 '반동' 처리 ('반동 회당' 등 비밀 결사, 신흥 종교 등에 대한 처리 등)와 합산하면 총인구의 약 0,2%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날 동아시아 역사의 출발점은 바로 1948년부터 몇년 간, 세계적인 냉전 초기의 상황에서 모든 동아시아 대륙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던 대형 학살들입니다. 이 학살들의 장기적인 효과는... 실로 엄청 컸죠. 전국 시대 살육들이 진, 한나라의 통일 제국의 기반이 됐듯이, 이 학살의 경험은 어떤 면에서는 지금도 동아시아를 지배합니다. 일단 학살을 집행한 권력 집단들은 장기적 통치의 기반을 닦았다고 봐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그 뒤로는 민주화, 즉 통치 '방식'을 둘러싼 대중적 투쟁은 벌어질 수 있었지만, 재벌 등 부유층의 '재산'을 현실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그 어떤 대중적 운동도 벌어진 것도 없으며 앞으로 벌어질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건국 초기 학살들 속에서 사라진 지역 좌파의 민초 차원의 '뿌리'들은, 영영 '부활'되지 못한 것이고 지금도 지역, 지방으로 가면 일부 공업 도시 이외에는 좌파 정치의 '기반'은 아주 허약하거나 없습니다. 반면,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우에는 당-국가의 '권력'은 다져져 그 어떤 외부적 도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습니다. 도전자의 '씨'가 마른 것이죠.
문화혁명 등 당-국가 메커니즘 '안에서'는 각종의 내분은 일어날 수 있었지만, 당-국가 권력에 대한 외부적 도전으로서는 1989년 천안문 사태는 유일하고 그것도 매우 빨리 진압됐습니다. 당-국가는 제국의 변방 (신강, 향항 등)에서 종종 도전을 받지만, 현실적으로 도전할 수 있었던 과거 재산가 계층이 몰살된 뒤로는 '안에서'는 심각한 도전은 없습니다. 농노대중들은 국지적인 '항의'를 사안별로 할 수 있지만, 그건 그때그때 회유와 양보, 일부분 개혁과 '주모자' 처벌 등으로 마무리돼 체제 자체를 위협하지 않습니다.
국가 폭력의 분출은 보수적 국가 (대한민국) 재산가들의 재산 소유 보장, 그리고 혁명 국가들의 권력 기반 안정화를 가져다준 셈입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는 '급진성' 자체에 대한 공포를 심고 개개인이 사회에 도전하는 것보다 학습 '노력'을 통해서 사회에 순응하면서 '출세'를 도모하는 인생코스의 모델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가오는 새로운 대공황, 기후 위기와 세계적 '성장'의 위기는 과연 건국 초기 학살들이 심어준 그 공포를 극복하여 다수가 다시 급진화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 것일까요? 국가 폭력의 효과는 오래 가긴 하지만, 영구적인 건 절대 아닙니다....
(기사 등록 20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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