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리(Lars T. Lih)
번역: 두견
[라스 리(Lars T. Lih)는 러시아어 원자료와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에 입각한 러시아 혁명과 ‘레닌주의’에 대한 혁신적 재해석으로 주목받아 왔고, 수많은 책과 논문을 쓴 역사학자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러시아에서 빵과 권위: 1914~1921>(1990), <레닌 재발견: 맥락에서 본 ‘ 무엇을 할 것인가’>(2006) 등이 있다. 이 글에서 라스 리는 또다시 기존의 정설적 해석에 비판적 의문을 제기하면서 레닌과 볼셰비키가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보인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를 탐구한다. 글이 길어서 두 번에 나누어 싣고 이번 글은 두 번째이다.]
'농촌 빈민에게'(1903)라는 글에서 레닌은 농민에 대한 그의 접근을 다소 접근하기 쉬운 방법으로 깔끔하게 요약한다. 이것의 첫 부분에서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정치적 자유를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나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정치적 자유의 필요성에 대해 매우 열정적이고 책상을 두드리는 것 같은 이 책을 보기를 당신에게 권한다. 이 책의 청중은 필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나로드’(민중)에 속하는 농민 등으로서, 아직 사회민주주의와 그들의 메시지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동자가 스스로를 해방시키지 않으면 누구도 그 노동자를 가난에서 해방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온 나라의 노동자들, 즉 러시아 전체가 하나의 연합, 하나의 정당으로 단결해야 한다. 그러나 독재적인 경찰 정권이 모든 모임, 모든 노동자의 신문, 노동자의 대표 선출 등을 금지한다면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가 없다. 단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조합을 결성할 권리가 있어야 하고, 결합할 자유가 있어야 하며, 정치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
이어서 그는 사회민주주의의 국제적 차원과 러시아인들이 어떻게 그 일부가 되기를 원하는지를 강조하는데, 이것이 그들이 차르를 타도해야 하는 이유다. 그는 말한다. “만국의 노동자들은 단결하라! - 지난 50년 동안 이 단어들은 전 세계를 돌며 수만,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의 모임에서 반복되었고, 모든 언어로 된 수백만 개의 사회민주주의 팸플릿과 신문에서 읽을 수 있다."
게다가, 그는 독일에 대해 사례를 들면서(물론 그는 항상 그렇게 한다) 어떻게 독일에서의 정치적 자유가 SPD가 진정한 힘이 되고 시골 노동자 및 가난한 사람들과 강한 연계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했는지를 강조한다. 나는 이 인용문도 특히 좋아한다.
"물론 관료들은 민중의 가난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는 모든 책과 발언을 억압한다. 현재의 팸플릿 역시 사민당이 비밀리에 인쇄하여 비밀리에 배포해야 한다. 이 팸플릿을 소지한 채 발견된 사람은 누구나 법원과 교도소를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들은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점점 더 많이 인쇄하고,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진실된 책을 읽게 한다. 그리고 어떤 감옥도, 어떤 박해도 인민의 자유를 위한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이것은 당시 레닌과 그의 접근법을 요약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독일 모델을 모방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를 가진 러시아 대중들이 실제로 독일인들보다 훨씬 더 빠르고 성공적으로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민중이 정치적 자유를 쟁취했을 때, 사회주의의 근원인 노동계급을 통합하는 작업은 훨씬 빨리 진전될 것이다. 독일 노동자들 사이에서 발전하고 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말이다."
나는 여기서 요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1914년까지 레닌이 이러한 기본적 요점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그리고 다른 볼셰비키들 역시. 만약 당신이 이 시기에 '올해의 정치적 자유인' 상을 주고 싶다면, 그것은 분명히 레닌에게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1905년을 실패한 혁명으로 보고 있으며, 물론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정부를 비판하고 합법적인 정당에서 일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그 10년간에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를 낳았다.
노동자들이 정치적 자유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10년 넘게 이 투쟁의 필요성을 설득해온 활동가들이 주변에 없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레닌은 만약 그가, 나머지 러시아 민중들을 이끌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어낼 당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차르를 타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이것은 분명히 일어난다고 보았다.
변절자 레닌
그것은 레닌의 한쪽 면이다. 우리는 이제 레닌의 반대쪽 면으로 뛰어들 것이다. 내가 '변절자 레닌'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당신은 그가 나중에 하는 말이 그 자신의 원칙에 대한 일종의 배신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이것은 적어도 논쟁적인 사안이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혁명 이후의 그의 진술을 보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혁명 이후 정치적 자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 자신은 정치적 자유가 봉쇄된 것을 객관적 근거들로 설명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이때 진행된 세 가지 과정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첫 번째는 부르주아 정당들과 언론의 폐쇄였다 - 그 일은 즉시 일어났다.
두 번째는 사회주의적 반대파에 대한 억압이라는 더 즉자적이고, 더 예기치 못했고, 더 임의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몇 년 동안 계속되었고, 마르토프(Martov) 등 사회주의적 비평가들은 내전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전국 소비에트 대회에 나가서 비판을 하고 있었다. 세 번째 과정은 당내 민주주의에 관한 것으로, 그것은 가장 기대되지 않았던 것이고, 가장 장기화되고 볼셰비키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우리가 몇 년 안에 정치적 자유에 대한 19세기 개념과 같은 어떤 것에도 찬성하는 주장을 러시아에서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내가 말했듯이 내전, 침공, 경제 위기 등의 객관적 이유들은 어떤 정치적 자유도 번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실제로 동유럽을 가로질러 민주주의가 번창하고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민주주의는 모두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여기서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다. 볼셰비키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이유를 생각해냈으나 교조적인 것이었다. 나는, 아직까지는 철저히 검토되지 않았던 그들이 말한 몇 가지 사항들에 관해서만 겉으로 긁어볼 것이다. 우리가 보게 되겠지만, 그들이 말한 것 중 일부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그 중 일부는 분명히 도전하고 싶은 것이다.
1918년에 니콜라이 부하린의 주목할 만한 인용구로 시작하자. 사람들은 볼셰비키에 도전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볼셰비키들이 언론 등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권력을 잡고 있었고, 볼셰비키들은 좀 위선적이지 않는가? 부하린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당시 노동계급은 아직 부르주아지의 요새를 습격할 만큼 힘이 없었다. 준비를 하고, 힘을 모으고, 대중을 계몽하고, 조직화할 시간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그것은 자본가 계급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그들 자신의 언론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자본가와 그들의 정부에게 가서 '자본가들이여. 신문을 폐간하고, 우리 노동자들을 위해 신문을 발간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비웃을 것이다; 자본가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칼로 자신의 손을 베어버리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한 요구는 그들의 자리가 폭풍에 휩쓸릴 때에만 이루어진다. 이전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노동계급(그리고 우리 당)이 '(부르주아 언론을 포함한 모든) 언론 자유 만세'라고 말한 이유다!”
그가 여기서 기본적으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평생 거짓말쟁이로 살아온 걸 알면서 어떻게 너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나를 믿을 수 있겠니"라는 내가 아는 노래의 가사가 생각난다. 그것은 대단한 노래다!
할 드레이퍼(Hal Draper)도 이에 대해 지적했다. "부하린은 이 운동이 과거에는 거짓말을 했으며 지금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물론 그런 터무니없는 음모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 부하린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 자신의 180도 입장 전환을 은폐하기 위해서. 이 헛소리를 인쇄한 운동은 과거만큼이나 미래를 위해서도 신빙성이 떨어졌다.”
물론, 나는 부하린이 여기서 부정직하다는 드레이퍼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무언가가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사람들이 언론의 자유를 원했던 이유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캠페인과 파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에게 정치적 자유가 필요한 이유라면, 당신이 책임자가 되면 더 이상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아마도 당신은 부르주아지와 경쟁을 원하지 않을지 모른다! 마치 누군가가 당신에게 많은 돈과 경찰력을 가지고 와서 당신에게 나가서 일련의 캠페인을 벌이라고 재촉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그것을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이 인용문은 나중에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는 우리 자신과 너희를 위해서도 정치적 자유를 원한다!'고 말하려는 시도를 약화시킨다. 그는 미리 모든 사람들에게 '공산당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내 생각에 부하린은 곧 이것이 좋은 말이 아니라고 깨닫고 그렇게 말하기를 그만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가 여전히 그것을 믿었다고 생각한다.
코민테른 대회 중 하나에서, 레닌의 가장 가까운 동료 중 한 명인 그레고리 지노비예프(Grigory Zinoviev)가 이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말했다. "부르주아지들이 권력을 쥐고, 언론과 교육, 의회와 예술을 지배하는 한, 노동계급의 상당 부분이 부르주아지와 그 대리인들의 선전에 의해 타락하여 부르주아 진영으로 내몰릴 것이다." 이것은 모두 꽤 합리적이다. "하지만 노동계급을 위한 언론의 자유가 있는 순간, 학교와 언론을 장악하는 순간, 우리가 과반수를 차지할 때까지 대규모의 노동계급 집단이 우리에게 넘어올 날이 (서서히) 올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은 꽤 낙관적인 전망이고, 지노비예프는 확실히 소수자인 당의 전위에 의한 통치는 일시적일 것이며, 선거 운동과 교육을 통해 점차 다수파가 되고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서 보이는 것은 내가 '국가 독점적 운동주의'(state monopoly campaignism)라고 부르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SPD가 실행하던 종류의 캠페인을 방해없이 실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여기서 볼셰비키들은 모든 규제가 풀린다면 SPD가 할만할 것을 시행했다.
1918년 헌법은 정치적 자유에 대해 뭐라고 했는가? 그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의 객관적 가능성이 사라질 때까지" 정치적 권리에 대한 일시적인 제한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것은 다소 장기적인 관점에서 틀 지워져 있다. 헌법은 또한 " 부르주아 권리와 자유를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뿌리 깊은 사상"에 대항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의 일시적 성격이 강조되었지만, 그 임시 기간이 실제로 꽤 긴 것으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 다시 부하린이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Yevgeni Preobrazhensky)와 함께 쓴 강령적 해설인 <공산주의의 ABC>(1920)이 있다: "부르주아지는 많은 신문을 가지고 있고 그 핵심 내용으로 매일 노동자들을 마음껏 속일 수 있다. 반면에 노동자들은 그들의 법적 권리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그들 자신의 언론이 없다." 그리고 나서 말한다 "본질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은 전혀 자유가 아니다." 이것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것이 이렇게 쓸모없다면 볼셰비키들은 왜 오랜 시간 동안 정치적 자유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싸웠을까?
특히 부하린이 이러한 관점에 기여한 것 중 하나는 혁명 그 자체가 사회 전체에 걸쳐서, 상대적 안정에 앞서서 붕괴의 시기인, 거대한 위기를 수반한다는 개념이었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할 수 있고, 이 갈등과 파탄의 기간 동안 당신은 단순한 정치적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이 때문에 좌파가 이런 문제를 이야기할 때 특정 사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종종 그들은 1921년 제10차 당대회에서 분파 금지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 때 레닌은 당이 특히 노동조합 문제를 둘러싸고 자신과 불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로 패닉에 빠졌다.
그것은 확실히 역사적인 렌드마크이지만, 나는 당신이 그것에 너무 많은 설명적 무게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는 엄청난 위기가 진행 중이고, 이 조치는 당 내에서 민주주의에 관한 것일 뿐이었다. 내가 볼 때는 당신은 당의 밖에서 정치적 자유가 없다면 당 내에서도 민주주의를 가질 수 없다. 당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작동할 수가 없다.
분파금지 결의안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그것을 과대평가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만약 당신이 그 결의안들을 실제로 읽는다면, 그들은 그럴듯한 주장을 한다. 그들은 우리가 포위당해 온갖 문제에 직면해 있고, 우리의 사회주의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당에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가 유일한 정당인만큼 그들은 또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우리는 단순히 이것을 실수라고 치부할 수 없다. 볼셰비키들이 직면해야만 했던 심각한 문제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거나 충분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보지만, 부르주아 사회의 정치적 자유를 위한 투쟁을 돌아보고 있을 때 그들은 그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그 후 사회주의 사회에서 그들은 그것을 그저 감당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래는 어떨까? 그럴 여유가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아니라 특별한 역할이나 필요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정치적 자유를 언급하는 곳을 찾아보면, 실제로 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는 레닌이 공공건물은 가난뱅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데, 이 인용구는 다음과 같다. “코뮌은 의견과 토론의 자유가 속임수로 전락하지 않도록, 부르주아 사회 제도의 매수되고 부패한 의회주의를 대신한다.” 레닌에게서 정치적 자유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이것은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이 속일 자유 등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라고 말할 때이다.
나는 볼셰비키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전망의 분명한 변화를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이러한 비일관성이 그 프로젝트 전체에 어쩌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소비에트(우리 모두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곳)뿐만 아니라, 부하린이 말한 것을 통해서 공산당이 위선적이라고 인식된 서구 국가들에서도 말이다. 즉,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한 정치적 자유를 원하지만, 그것을 얻자마자 다른 사람들을 위한 정치적 자유는 중단시킬 것이다.
볼셰비키들은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가 바람직하지 않다고는 결코 주장하지 않았다 - 그것들은 확실히 1936년의 스탈린 헌법에도 있었다. 그것들은 물론 그때는 아무 의미도 없었지만, 거기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가치가 있었고, 항상 레닌의 글과 접속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부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양한 반대 운동이나 개혁 운동에서 부활했다. 따라서 그 그림은 꽤 암울하지만, 볼셰비키들이 정치적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거나 부르주아적 가치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은 그와 가깝게 주장했지만 실제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고,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기사 등록 202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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