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이번에는 홍콩이었다. 2008년 미국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의 여파는 이후 ‘아랍의 봄’, 미국의 ‘점거하라’ 운동, 유럽의 총파업과 광장점거 운동으로 번져나간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홍콩에서 ‘우산혁명’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우산이 저항의 상징이 될 줄은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투쟁으로 홍콩의 금융중심지는 마비됐다. 주요은행들이 모두 영업을 포기해야 했다. 놀랍게도 이 운동의 주요 리더중 하나는 조슈아 웡이라는 17세 학생이었다. 그는 “초등학생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책임감’으로 싸우고 있다고 했다.
출발점은 지난달 말 중국 전인대에서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껍데기로 만든 것에 있다. 9월 22일에 대학생들의 동맹휴업이 시작됐고, 9월 26일 경찰의 폭력진압이 오히려 분노를 폭발시켰다. 수십만 명이 참가한 시위와 도심 점거가 벌어졌고, 독립노조인 홍콩노조연합HKCTU이 9월 29일 하루 연대 파업도 벌였다.
이런 폭발은 홍콩 사회 밑바닥에 불쏘시개가 많았기 때문이다. 홍콩의 지니계수(사회불평등 지수)는 무려 0.54인데, 이는 폭동이 나도 놀랍지 않은 수준이다. 홍콩의 주택가격은 4년 새 120% 가까이 올랐다.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격차가 2001년에 27배에서 2011년에 46배로 확대돼 왔다.
홍콩 50대 부자들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국민소득의 60%에 달할 정도였다. 그래서 얼마 전, 홍콩을 넘어 아시아 최대부자라는 청쿵그룹 회장 리카싱이 ‘불평등 심화와 사회적 신뢰 붕괴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리카싱은 이번에 ‘우산 혁명’이 벌어지자 바로 중국 지배자들과 만나서 대책을 논의했다.
홍콩의 사회적 불평등은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더 심해졌다. 중국이야말로 극단적 불평등으로 유명한 나라이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의 혼동과 달리 1997년에 홍콩은 ‘사회주의’로 편입된 게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손 놓고 있고, 혁명은커녕 투쟁도 없는 데 조약이 바뀐다고 사회주의가 된다는 논리 자체가 틀렸다.
이것은 사회주의를 노동계급 스스로의 자기해방 투쟁이 아니라 국가 통제 경제와 동일시하는 전형적 잘못이다. 등샤오핑은 이런 전형적 논리에 따라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을 남겼다. 즉, ‘국가통제를 이용해서든 자유시장을 이용해서든 성공적 자본축적만 이루면 된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일국양제’의 진정한 의미도 잘 봐야 한다. 경쟁과 착취를 동력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중국 특색의 신자유주의’와 홍콩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는 같다. 마우쩌둥 때부터도 중국은 사회주의가 아니었고, 등샤오핑은 1989년 천안문 학살에서 그 본질을 보여 줬다.
자유를 요구하는 민중을 학살하고 민주적 기본권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어떻게 사회주의일 수 있겠는가. 중국은 국가관료가 집합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다. 그리고 이런 중국 공산당 독재의 국가자본주의가 홍콩의 시장 자본주의와 결합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단계 때문에 ‘일국양제’가 제기된 것이다.
일국양제?
홍콩영화의 거장인 두기봉 감독의 영화 <흑사회> 1,2편은 이에 대한 풍자로도 읽혀진다. 1편에서 중국공안은 홍콩마피아의 두목 선출제를 인정하면서 간접적 통제를 시작한다. 2편마지막에서는 아예 선출제를 없애려 한다.(이 영화의 영어제목은 선거 Election이다.)
재미있게도 이 영화에서 중국 공안은 마피아 두목이 “애국자”인지 아닌지를 평가한다. 이번에 중국당국도 홍콩 행전장관 가짜 직선제를 추진하면서 “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의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는 애국인사”를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강력한 저항을 촉발시켰고, 처음에 중국 지배자들은 매우 당황했다. ‘천안문’이 재연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홍콩의 중국하수인 5인방이 500여명의 사망자를 예상하며 무력진압계획을 짰는데, 일단 시진핑이 스톱시켰다는 보도였다.
전열을 정비한 중국 지배자들은 크게 3가지 카드를 이용했다. 먼저 대화를 제안해서 운동 지도부 내의 온건파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파란 리본’을 단 친중 시위대와 깡패들을 이용해서 저항세력을 공격했다. 또 시위대를 ‘서방의 지원과 조종을 받는 무리’로 매도해서 정당성을 약화시키려 했다. 이를 통해서 시간을 끌면서 저항의 열기와 규모가 줄어들면 다시 전면공격과 보복을 감행할 계산일 것이다.
현재 이런 교활한 공격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범민주파 시민연합체인 ‘사랑과 평화로 센트럴을 점거하라’(Occupy Central: OC) 지도부가 회유와 탄압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친서방 성향의 자유주의 야당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것은 청년학생과 노동자 들의 열기를 가라앉히는 효과를 냈을 것이다.
사실 이번에 ‘민주화 시위를 지지한다’는 서방의 위선은 역겨웠다. 영국 식민지배하에서 홍콩은 가짜 직선제마저 없었고, 언제나 영국 여왕이 총독을 임명했다. 민주노조를 허용하지 않고 농민공 초착취를 보장하는 중국 공산당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서방다국적 기업들이다. 중국 지배자들은 이 운동을 ‘서방의 색깔 혁명’이라고 매도하며, 친서방 야당과 시민단체 지도자들의 정치적 약점을 이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운동이 설사 더 나가지 못하더라도, 그 파장은 남을 것이다. 이 운동은 중국 반환 이후에도 계속됐던 홍콩 민중 투쟁의 최근 국면이었다. 홍콩 민중은 2003년 강력한 시위를 통해서 ‘홍콩판 국가보안법’을 막아낸 바 있고, 2012년에도 ‘애국교육’ 과목을 필수 교과목으로 지정하려는 시도를 저지한 바 있다.
이번에 시진핑은 이 운동이 성장해서 신장위구르와 티베트의 해방 운동을 고무할까봐, 무엇보다 중국 본토 노동자들의 반정부 투쟁을 고무할까봐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언제나 “하나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게”(마우쩌둥)되는 법이니 말이다. 홍콩을 통해서 중국으로 자본과 금융만이 아니라 투쟁과 저항정신도 유입될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 운동은 2008년 세계자본주의 위기가 낳은 국제적 파장의 일부였다. 이번에 홍콩의 거리에서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 한국인의 반독재 투쟁을 보고 배웠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홍콩 민중의 용기와 경험에서 배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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