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오바마가 9월 10일 ‘이슬람국가(IS)에 전면전을 선포하며 격퇴 전략을 발표’했다. ‘9.11 테러’ 바로 전날이라는 상징성도 노렸을 것이다. 오바마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10개국의 반IS 군사연합전선도 구축하려 한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에도 도움을 청할 거라고 한다. 9월 11일에는 IS를 제거하기 위해 시리아도 공습하겠다는 ‘초강수’까지 제시했다.
알 카에다도 선을 그을 정도로 잔인무도한 IS를 우려하던 일부 사람들은 여기서 미국을 편들자고 한다. 오바마는 조지 부시와 다르다는 것이다. 부시는 ‘대량살상 무기’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공하기 위해 열심이었지만, 지금 오바마는 중동에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으려 애쓰다가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끌려오는 것이라는 논리다.
소수 민족과 크리스찬 등을 무참히 학살하는 저 잔학한 집단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반제국주의에 대한 관점이 부족한 진보진영의 일부와 자유주의 언론들이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첫째, IS라는 괴물을 만든 건 바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친미왕정이다. 미국 언론 <타임>도 IS의 지도자 알 바그다디에 대해서 “그의 극단주의적 이데올로기는 미국 점령의 도가니 속에서 형성됐고 정제됐다”고 지적한다. 카타르 고위 당국자도 “IS는 사우디의 프로젝트였다”고 실토했다.
둘째, 미국의 진짜 목적은 IS의 제거보다는 석유와 패권에 있다. 미국 언론은 IS가 잔인하고, 여성 억압적이고, 민주주의를 무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동에서 누구 못지 않게 잔인하고, 여성 억압적이고,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것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친미왕정이다. 그런데 이들은 미국 편이기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셋째, 미국이 주도하는 공습과 군사적 공격의 결과는 이슬람극단주의의 약화가 아니라 강화일 것이고, 아랍 민중의 고통 해결이 아니라 심화일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알 카에다의 제거가 아니라, 더 진화되고 과격한 버전의 알 카에다를 만들어 낸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지금 IS 장악 지역의 주민들은 적어도 ‘미군 점령과 말리키 때보다는 살기가 좋다’고 한다. 이라크 민중이 노예 근성이 있는 바보여서 그런 게 아니다. 미국과 하수인들이 낳은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미군 점령과 말리키 치하에서 이라크의 실업률은 60%에 달했고, 식수와 전기 공급 등은 엉망이었고, 치안은 극도로 불안정했다.
이 틈을 IS가 파고든 것이다. 지금 IS는 가장 기본적 복지와 치안 등을 제공하고 있다. 21세기 재난 자본주의가 가한 끔직한 고통이 ‘7세기 선지자의 말씀과 종교적 교리로 돌아가자’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 것이다. 또 제국주의가 멋대로 그어놓은 국경선을 무시하고 아랍 지역을 포괄하는 신정국가를 만들자는 주장도 나오게 한 것이다.
문명과 야만의 대립?
이것은 문명과 야만의 대립이 아니다. 영화 <알제리 전투>를 보면 프랑스 언론과 기자들이 ‘바구니 폭탄으로 사지가 찢겨 죽은 민간인’을 들먹이며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을 비난한다. 알제리 여성이 그런 폭탄이 숨긴 바구니를 들고 프랑스인들이 한가롭게 차를 마시는 곳 등에서 자폭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에 알제리민족해방전선 활동가가 반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네이팜탄으로 민간 마을을 공격해 수천 명을 죽인 건 더 비겁한 짓이 아닌가요? 우리에게 전투기를 주면 바구니를 드리죠.” 칼로 참수하는 IS보다, 드론으로 학살하는 오바마가 더 ‘문명적’이라고 볼 이유는 하나도 없다. 차이가 있다면 드론으로 학살하는 게 더 많은 사람들을 더 산산조각내며 죽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미국은 ‘후세인의 독재와 학정’을 핑계로 이라크를 지옥으로 만들다가 커다란 실패를 겪었다. 그후 미국은 곳곳에서 망신을 당하고 힘이 빠져 왔다. 얼마 전 미국의 사냥개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폭격하다가 국제적 고립만 낳은 것이 최신 사례다. 아랍 혁명이라는 매우 중대한 위협도 맛봤다. 경제 위기로 군자금도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은 시리아 공습을 추진하다가 망신을 당한 바 있다. 당시 시리아 공습안은 영국 하원에서 보기좋게 부결당했다. 오바마는 영국이 빠진 상태에서 홀로 시리아를 공습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이 상황에서 미국 의회에 공습 승인을 요청한 것도 부결이 뻔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바마는 스스로 요청을 철회하며 위기를 모면했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은 ‘IS의 위협’이라는 새로운 핑계를 찾았다. 지금 오바마는 자신에게, 의회에 물어볼 필요도 없이 IS 제거를 위해 시리아를 공습할 권한이 있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국제적 공조도 구축되기 시작하고 있다. 얼마전 나토 정상회의는 ‘러시아의 위협’을 빌미로 4천명 규모의 신속대응군 창설에도 합의했다.
이 모든 것이 IS의 위협으로부터 지구의 안전과 평화를 걱정하는 제국주의를 보여 주는가? 현실은 헐리우드 영화와 다르다. 이라크 침공했던 11년 전과 달라진 점은 미국이라는 늑대가 상처입고 약해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늑대는 조지 부시라는 험상궂은 표정을 숨기고 오바마라는 위선적인 표정의 가면을 뒤집어썼다. 이것은 변화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늑대가 양이 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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