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즈John Rees (영국의 사회주의자이며 반전 운동가)
역자의 말 - 미국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 또는 ISIS)를 제거한다며 이라크를 넘어서 시리아까지 공습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이런 사태의 배경을 분석하는 글을 번역했다. 이 글은 아직 공습이 시작되기 전인 6월 중순, 영국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작성되었다. 이런 문제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의 설명을 [ ] 기호 안에 덧붙였다. 설명이 길어질 경우에는 가독성을 위해 각주의 형태로 역주를 달았다.
내가 이렇게 긴 글을 번역하는 것이 처음이라 오역이나 어색한 표현이 있을 수 있을 지 모르니 독자들의 지적을 바란다.
원본 출처:
[ 원본 기사 편집자의 말]
서방의 개입은 100년 넘게 중동 지역에 저주가 되어 왔다. 이라크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더 많은 개입이 아니라 이 재앙적인 간섭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라고 존 리즈는 말한다. (2014년 6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펜타곤[미국 국방부]은 유사시 이라크의 알카에다-연계 무장세력에 대한 공습(air skrikes)이라는 옵션을 미국 대통령 오바마에게 제공하기 위해 항공모함 ‘조지 H.W. 부시’를 페르시아 만 1으로 이동시켰다고 한다.
이라크의 현재 위기는 2003년의 전쟁과 그 이후의 점령의 직접적인 결과일 뿐만 아니라 시리아에 대한 서방(the West)의 외교 정책과 중동에 대한 오랜 [제국주의적] 개입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가장 가까운 근래의 원인부터 살펴보면서 따져보도록 하자.
시리아 역풍(blowback)
시리아 혁명이 2011년 3월 군사화되자마자 미국과 그 동맹들은 반反 아사드 세력 중 친서방적인 진영을 무장시키고 지원하는 방법들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군사 개입[의 가능성]도— 적어도 폭격이라는 방식은 — 2013년 8월 영국 의회의 표결 2이 있기 전까지는 배제되지 않았다.
서방 정책의 가장 일관된 요소는 ‘자유 시리아군’(FSA)에 대한 지원이었다. 무기 지원에 중화기重火器 3가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그 지원은 외교적이고 전략적이며 재정적이고 군사적인 것이었다. 결정적이지는 않은(non-lethal) 이 군사적 지원의 완전한 한계는 지난 해 말 이슬람주의 그룹들에 대한 FSA의 연이은 군사적 패배에 따라 미국과 영국이 지원을 중단하면서 분명히 드러났다.
FSA와 그 정치적 대변자들은 미국과 그 동맹들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얻고자 하는 희망에서 간절하게, 반복적으로 친미적 성명을 발표하면서,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 개최된 시리아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
FSA의 이런 전략의 문제는 그것이 시리아 내에서 그들의 입지를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FSA 지도자들이 때때로 미국 정부와의 사이에서보다 시리아인들과의 사이에서의 입지가 좁다는 사실은 그들의 신뢰성을 약화시켰다. 그들이 그렇게 소심하게 친서방적이라는 것은 더 나아가, 많은 아랍 국가들처럼 인구 다수가 역사적으로 광범한 반식민주의 정서(실제로 이는 아사드 정권의 이데올로기적 자산 중 하나였다)를 가진 시리아에서의 지지를 깎아 내렸다.
서방에 의해 시리아 내의 ‘용인할 수 있고’ ‘온건한’ 세력으로 추켜진 직접적인 결과는 FSA가 공동화(hollowing out)되는 것이었고, 그것은 나중에 ‘이라크-레반트 이슬람 국가’(ISIS)를 포함한 다양한 이슬람주의 그룹들으로 채워지게 되는 공백을 만들어 냈다.
이 세력들은 시리아 혁명 초기에는 규모가 작았으나, 서방의 지원을 받는 FSA의 실패에 비례하여 점차 성장했다.
이들 이슬람주의 그룹들은 사우디 아라비아—중동에서 친서방 정책을 떠받치는 기둥의 한 축인—의 지원을 받았고 지금도 지원받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석유로 벌어들인 자금이 풍부하며, 특히 영국의 주요 무기 제조업체 BAE Systems와의 계속된 거래로 4, 지극히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로 사우디 정권은 미국의 신보수파보다도 호전적인, 반쯤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수립해 왔다. 특히 그들은 2011년 [이집트의] 무바라크 하야 이래로 아랍 세계에서 반혁명의 조직적 중심이 되었다. 그들은 바레인 혁명을 분쇄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고, 리비아에서는 카다피를 몰락시킨 리비아 무장세력에 대한 무기 지원에서 서방을 도왔다. 그들은 이란과 지역 패권을 둔 경쟁 관계로 얽혀 있다.
시리아(이란의 동맹인)에 효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한 서방의 무능함에 실망한 나머지, 사우디 정권은 서방이 자신들의 고객(clients)에게 제공해 온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이슬람주의 그룹들에 무기를 지원했다. 서방 측에서는 이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아사드의 패배를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들이 공식적으로 사우디를 비난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ISIS와 여타 집단들에 제공된 사우디의 무기는 아사드를 물리치기엔 충분치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은 ISIS를 성장시켰고, 시리아의 위기가 이라크의 위기와 상호작용 할 조건을 현실로 만들어 냈다.
이라크 역풍
이라크 전쟁과 점령의 재앙이 현재 위기를 만들어낸 수많은 방식이 존재하지만 여기서 나는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자 한다.
첫째, 침략 이후에 이라크 국가 기구를 해체하고자 한 결정은 종파적 선상에서의 이라크 사회의 분열을 촉진했다. 이는 오늘날의 여러 논평자들의 주장처럼 이라크의 수니파와 시아 파 사이에 ‘오랜 반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는 전쟁 이전의 이라크에서 그들은 바로 옆집에서 살았고, 함께 일했으며, 서로 결혼도 했다.
그러나 옛 국가가 사라진 가운데 새로운 제국주의 점령 정부는 새로운 지배 방식을 찾아야 했다. 그들이 택한 방법은 제국주의 그 자체만큼이나 낡은 것, ‘분열 지배’였다.
미국의 첫 이라크 최고행정관 폴 브레머는 이 정책을 아주 명확히 했다. 그는 사담 후세인과 그의 지지자들이 히틀러의 나찌와 같다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서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상군 부대들은 이것이 공식 정책임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5
점령 이후의 종국적인 결과는, 친-이란 외교 정책—놀라울 것도 없는—을 추구하는 누리 알 말리키의 종파적 시아파 정부였다. 이는 이라크 전쟁 실패로 인한 의도하지 않았던—미국에게는—중대한 결과들 중 하나였다. 이것은 이란을 예전보다 더 강력한 지역적 강국의 지위에 올려 놓았다.
이라크에서 그 효과는 수니파를 국가 기구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지금의 위기 이전인 올해 초에 있었던 최근의 이라크 선거는 높은 수준의 폭력으로 점철되었으며 수니파의 안바르 주에서는 투표조차 실행되지 못했다.
이곳[안바르 주]은 바로 시리아와 국경을 맞닿은 지역으로, ISIS가 최근에 달성한 진격의 거점이다. 6
이것이 핵심 포인트이다. 전투로 단련된 ISIS 전사들은 최근의 진격의 최선봉일 수 있지만, 바그다드 정권에 대항하는 수니파 봉기의 지지가 없었다면 수백 명 규모의 전사들로서는 이를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서방의 실패가 합쳐져 이제 이라크 국가기구를 붕괴 지경으로 처하게 만든 방식이다.
쿠르드 지역 ― 이라크 침략 과정에서 쿠르드족의 묵인을 얻기 위한 점령 거래의 일부로 자치권을 보장받은 ― 은 필연적으로 독립 국가를 선포했고, 항상 그들의 땅이라고 여겨왔던 원유가 풍부한 키르쿠크를 점유했다. 시아파가 다수인 남부 지역은 이란의 지원을 받아 무장했고 수니파의 봉기는 전혀 끝나지 않았다.
사이크스-피코 역풍
3번째 종류의 역풍은 장기간의 역사 속에서 존재한다. 이것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의 중동에 대한 제국주의적 분할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토만 제국은 전쟁에 의해 파괴되었고 아랍 지역 영토는 주요 열강들,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분할되었다.
전쟁 중에 이루어진 프랑스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주-피코 François Georges-Picot 와 영국의 마크 사이크스Sir Mark Sykes 사이의 비밀 합의(러시아 혁명 이후 볼세비키가 비밀 조약을 공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는, 더 큰 시리아 국가를 창설하겠다던 T. E. 로렌스 7의 약속을 어기고, 팔레스타인의 통치권을 영국에 시리아에 대한 통치권을 프랑스에 부여했다.
놀랄 것도 없이, 이 합의에 따른 국경선은 지역의 종교적, 부족적, 혈연적 혹은 역사적 현실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미국의 거물급 국제정책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ebigniew Brzezinski에서부터 레바논의 드루즈족 지도자 왈리드 줌블라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지적한 것처럼, 이 합의[에 따른 국경선-역주]는 지금 해체되는 중이다.
개입에 대한 새로운 요청
그리고 이 위기가 심화되면서 개입에 대한 새로운 요청이 있을 것이다. 어떤 낡아빠진 블레어 지지자(Blairites)들은 이미 그러한 요구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영국 정부 모두 지상군 투입은 배제하고 있지만, 오바마는 여전히 공습을 고려하고 있다. 그리고 공습을 위한 군사 장비들은 현재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배치되고 있다. [오바마 등은] 이에 대한 정당화 논리로, ‘우리가 맞서야 하는 상황이 매우 나쁘다’고 말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망설일] 시간이 없다’, ‘적이 문 앞에 다가와 있다’, 등등... 개입은 차악次惡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도 그랬듯이, 여기서도 개입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짓이 될 것이다.
폭격은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서방에 대한 증오심을 악화시켜 더 많은 테러리스트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은 수니파 반군들로 하여금 현재 일시적인 동맹 관계일 뿐인 ISIS 전사들과 더욱 밀착하게 것이다. 그것은 이란을 강화할 것이고 향후 우리[영국] 정부는 우리가 이들 위협에 맞서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이란과 사우디 아라비아 사이의 지역내 영향력을 둘러싼 쟁투를 악화시킬 것이다.
이 중 어떤 것도 이라크 민중을 도울 수 없다. 이 중 어떤 것도 평화를 한발자국도 당겨 올 수 없다.
사이크스-피코 합의로부터 현재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서방의 개입은 중동에는 저주였다. 현명함의 출발점은 이 재앙적인 간섭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번역: 조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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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 근래 한국에서는 주로 ‘걸프’라 부르는, 아라비아 반도와 이란 사이의 만灣. 원래 ‘페르시아 만’(the Persian Gulf)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 아라비아가 이란을 뜻하는 ‘페르시아’ 만이라는 이름에 불만을 표하면서부터(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권에서는 ‘아라비아 만’이라고 부른다), 미국 정부는 ‘걸프(the Gulf)'라는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본문으로]
- [역주]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이 제출한 ‘시리아 군사제재 동의안’이 반대 285표 대 찬성 272표로 부결되었다. [본문으로]
- [역주]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박격포, 로켓추진 유탄 발사기(RPG) 등 강한 화력을 지닌 보병 무기. 특히 FSA는 아사드 군대의 항공 전력에 대항하기 위해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의 지원을 간절히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문으로]
- [역주]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장 많은 무기를 제공하는 국가는 단연 미국이지만(보잉, 레이시온, 록히드 마틴 등), 필자는 영국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영국 무기업체를 강조한 것 같다. [본문으로]
- [역주] 육군, 해병대 등 지상군 부대들이 이 정책에 따른 잔학 행위를 충실히 수행했다는 의미로 생각됨. [본문으로]
- [역주] 이 글이 쓰일 때 쯤 ISIS는 안바르 주의 라마디와 팔루자에 이어 니네바 주의 모술까지 장악했다. [본문으로]
- [역주]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잘 알려진 인물. 영국군의 정보장교로, 오토만 제국에 대항한 아랍 혁명에서 큰 활약을 하여 아랍인들 사이에서 명망을 얻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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