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그레타 툰베리와 기후 재앙에 맞선 저항
지금 기후위기에 맞선 인류적 저항의 선두에 서 있는 건 그레타 툰베리다. 우울증, 과잉충동장애 등을 앓았고 자폐증 진단까지 받았다는 툰베리가 투쟁의 리더라는 건 정말 벅찬 일이다.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반박하는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레타가 반복해서 말하는 내용은 명확하다. 우리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받아들여야 하고, 이제는 행동할 때라는 것이다. 그레타의 명확하고 주옥같은 말은 너무 많다.
“원칙대로 하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변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 원칙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안 듣기로 하셨습니다. 좋습니다. 우리는 결국 아이들일 뿐이니까요. 그렇지만 과학자들의 말은 들으셔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요구하는 전부입니다. 과학의 말을 들으세요.”
“‘불을 꺼야해요.’ 라고 말했는데, 이성적인 반응은 불을 쳐다보고 끄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불을 한번 보고, 저한테 이러는 거죠. ‘너 입고 있는 옷이 뭐 그러니?’”
“은행을 구하기 위한 돈이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그 돈으로 세계를 구할 수도 있잖아요.” “힘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돈이 없지 않아요. 그리고 오염시킨 사람들이 돈을 내야해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정치적인 의지라구요.”
“저는 여러분이 패닉에 빠지길 바랍니다. 제가 매일 매일 느끼는 공포를 함께 느끼길 바랍니다... 집에 불이 난 것처럼 행동하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진짜로 불이 났으니까요.”
‘왜 존재하지도 않을 미래를 위해서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해야 하냐’면서 시작된 그레타의 금요 결석 파업은 이제 전세계적 청소년 공동행동으로, 나아가 국제 기후 파업으로 발전했고 노동자들도 파업으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말했듯 우리는 지구를 불러다가 앞에 앉혀놓고, ‘우리가 너무 심했던 것을 사과할테니 북극을 다시 얼려주세요. 오염에 책임있는 사람들의 집과 지역만 물에 잠기게 해 주세요’하고 부탁할 수가 없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트럼프같은 사람들도 설득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는 트럼프라도 절벽에서 떨어지면 중력의 법칙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정도의 강력하고 거대한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운동으로 역사에서 1930년대 대공황과 91년의 소련 동유럽의 몰락과 같은 예외적 시기에만 있었다는 탄소배출 감소를 이뤄야 한다. 노예제 폐지나 2차대전 때 전시경제로의 전환같은 급격한 전환을 이뤄야 한다. 그것도 과거와 달리, 대량실업이나 대량살육, 무고한 사람들의 피와 희생없이 말이다.
지난 두 세기가 넘는 자본주의와 탄소경제의 상호의존적 발전 때문에, 이제 우리가 탄소경제에서 벗어난다는 것과 자본주의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구분하기 어렵게 됐다.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그런 방향으로 향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 홍콩 민중 투쟁의 성과와 전망
홍콩 민중의 물러서지 않는 끈질긴 투쟁과 엄청난 용기가 중국정부와 캐리 람이 송환법 철회를 선언하며 반보 물러서게 만들었다. 저들은 강경하고 폭력적인 가면 뒤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계엄령 소문까지 나오면서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고 1천여 명을 체포한데 이어 실탄 경고사격까지 했던 게 바로 직전 상황이다. 최근 폭로된 비밀회동 내용을 보면 캐리 람은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이 모든 책임은 중국 정부에 있다는 게 명백했다.(비밀회동의 유출 자체가 저들의 내부분열을 드러냈다.)
하지만 홍콩 민중은 ‘차이나치와 시틀러’라고 시진핑의 파시즘적 폭력통치를 비난하며 굴복하지 않았다. 투쟁은 양적 확장에서 질적 발전으로 나가고 있었다. 대규모 시위를 넘어 도로봉쇄와 공항점거로 나아가더니, 이제는 총파업, 동맹휴업, 불매운동 등 ‘전민 3파 투쟁’을 선언했다.(아직 진정한 실질적 총파업까지는 아니라고 하지만)
거리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세워지고 청년학생들이 전투에 나서는 장면은 68혁명을 떠올리게 했고, 물대포와 사진채증과 폭력연행은 2008년 촛불과 이명박을 떠올리게 하며, 중국 본토에서 고립돼 군대 투입을 걱정하는 홍콩 민중의 심정은 광주도 생각하게 했다.
물론 송환법 철회에는 꼼수도 보인다. 운동의 온건파와 급진파들 사이에 틈을 만들어 결국 급진파를 고립시키고 탄압하려는 노림수말이다. 이 정도면 이제 그만할만하다라고 온건파를 다독이고, 이렇게 양보했는데도 계속 폭력시위를 한다며 강경파를 비난하고 진압할 핑계가 될 수 있다.
이미 다국적자본과 대자본들부터 시진핑이 휘두르는 몽둥이 아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송환법 등 국가통제 강화가 자유로운 투자와 경영을 막을까봐 은근히 시위대를 편들던 입장에서 돌아선 것이다. 직원들의 시위 참가를 허용하던 기업들도 이제는 해고로 답하고 있다. 청년시위가 노조파업으로 발전하는 흐름도 이들을 돌아서게 했다.
이걸 봐도 홍콩투쟁이 미국, 영국 등의 후원과 사주를 받고 있다는 일부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콩이 금융, 투기, 다국적 자본의 천국이 된 것은 중국과 서방 자본, 국가가 협력한 결과였다. 미국과 영국 정부의 중국 정부 비판에는 진정성도 없다.
트럼프는 송환법에 대해 뭐라하기 전에 위키리크스 어산지 강제송환 시도부터 중단해야 한다. 전체유권자의 0.3%에 불과한 보수당원들(대다수가 백인남성)의 투표로 영국 총리가 돼 세습여왕의 윤허로 의회를 정지시킨 보리슨 존슨이 홍콩의 민주주의를 논한다고? 이런 세력은 절대 홍콩민중 수백만 명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 능력도 없고, 다만 홍콩투쟁을 중국과의 경쟁에서 쓰고버릴 압박카드로만 본다.
따라서 조슈아 웡 등이 미국관료와 접촉한 것은 불필요했다. 중국 공산당 관료들은 내심 반겼을 것이다. 트럼프의 허풍과 이런 장면들을 이용해서 본토 중국인들의 중화민족주의를 자극하고 홍콩 민중과 본토 민중을 갈라치는데 유용할테니 말이다. 폭력 탄압을 통해 소수의 물리적 투쟁을 유발한 것도 청년학생들의 투쟁이 부모세대, 노동자, 하위공무원, 변호사, 의료인, 중고생들의 동참으로 확대되던 흐름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이제 홍콩 투쟁에 더욱 필요해진 것은 중국의 투쟁하는 노동자와 청년학생들의 지지와 연대다. 이것이야말로 홍콩 투쟁 승리를 위한 열쇠이자, 중국 당국이 결사 막으려는 핵심일 것이다. 본토 민중 속에서 이런 메아리가 나타난다면 성룡 등 중화권 유명스타들도 지금처럼 함부로 시진핑에 충성을 맹세하진 못할 것이다.
그런 흐름을 돕고 응원하기 위해서도 홍콩 투쟁에 대한 국제적 연대가 중요하다. 그런 연대가 부족하기에 홍콩투쟁 일부에서 서방의 개입이라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생겼던 것이다. 따라서 홍콩 투쟁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국제적 연대에 찬물을 끼얹는 일부의 목소리들에는 동의할 수 없다.
‘흉악범죄자의 국외도피를 막고 처벌하기 위해 송환법은 필요했고, 외세와 연결돼 법과 질서를 위협하는 불법 폭력 시위를 막기 위한 과정에서 실탄 발포는 불가피했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지배계급이 추진하는 정책이나 법안의 그럴듯한 명분과 실제 목적은 다르고, 민중의 주체적 저항은 외부의 조종 때문이 아니며, 그것을 탄압하는 법과 질서가 오히려 폭력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주장해 온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옹호한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지도부가 없는 운동’이 특징인 상황에서 웡 등의 미국 접촉을 외세 의존의 증거로 보는 것도 안타깝다. 80년대 전두환에 쫓겨난 김대중과 민주당이 미국가서 도움을 요청한 것을 보고 한국 민주화 운동은 미국의 사주를 받고있다고 했다면 받아들였겠는가.
그런 모순과 혼란이 ‘미국에 맞서기 위해 중국과 손잡아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아베에 맞서기 위해 삼성에 힘을 실어주고 일본 민중과 등져야 하는 게 아니듯, 트럼프에 맞서기 위해 시진핑을 편들고 홍콩 민중에 등을 돌릴 이유는 없다. ‘홍콩은 중국이다’는 틀렸고 ‘홍콩의 투쟁은 바로 우리의 투쟁이다’가 맞다.
올해는 천안문 항쟁 30주년이다. 중국에서 천안문의 정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집회를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진행해온 홍콩에서 지금 투쟁이 전진하고 있다. 4년전의 우산혁명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더 긴 투쟁을 위한 경험과 교훈의 축적 과정이기도 하다. 만약 이번에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다음번에 그 목소리와 불씨는 홍콩과 중국 본토 모두에서 더 크고 더 걷잡을 수 없는 방식으로 폭발할 것이다.
● 영국 노동당, 브렉시트, 계급투쟁
다가올 총선에서 노동당이 집권하면 수용 가능할만한 유럽연합(EU) 탈퇴와 잔류 방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제레미 코빈이 최근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 그나마 전술적으로 유연하면서 정치적으로 현명한 입장이라고 본다.
코빈은 계속해서 공공서비스 부문의 (재)국유화, 복지 확대, 시장에 대한 개입과 국가 주도의 일자리 마련, 사적 소유권에 대한 도전을 담은 좌파적 정책도 제시해 왔다. 기후변화 문제에서도 적극적이어서 최근 영국노총(TUC)의 정기대대에 가서 ‘기후 문제는 계급 문제’라고 강조하며 투쟁을 호소했고, 영국노총은 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9.20 학생파업과 연대하는 전국적 행동도 결정했다.
반면, 최근 보수당 보리스 존슨의 ‘브렉시트 쿠데타’는 여러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극히 위험한 우익 선동가 존슨은 최근 여왕의 승인을 얻어 의회를 정지시키려고 했다. 그 틈에 노딜 하드 브렉시트를 어물쩍 통과시키고, 그것이 낳은 혼란과 분열 속에 자신을 2016년 국민투표에 나타난 국민염원을 실현시킨 지도자로 내세우려는 구상이었을 것이다.
인종주의적 편가르기를 하며 조기총선을 해서 권력을 강화한 다음 반동적 정책들로 돌진할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존슨의 반민주적 도발은 강력한 저항을 낳았고, 되려 보수당이 분열하면서 의회에서 초당적 노딜 브렉시트 저지 법안이 발의됐다. 코빈은 조기 총선에서 보리스 존슨과 대결하는 것도 피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지난 수년 동안 비주류 소수파에서 시작해, 보수당과 거대언론만이 아니라 노동당의 주류와 원내 의원들, 그림자내각에서도 공격과 배척을 당하면서 꿋꿋하게 바닥을 다지고 좌파적 정책과 대중운동 속에서 길을 찾으려한 코빈의 노력이 무의미하진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인종주의적 극우파가 불붙인 브렉시트 찬반이라는 잘못된 구도는 코빈에게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서 코빈은 인종주의적 유럽연합 탈퇴 선동에 동조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신자유주의적 유럽연합에 잔류하자고만 주장할 수도 없었다.
유럽연합은 신자유주의 기구이고 이것은 지배계급간 다툼일 뿐이니, 우리는 신경끄자는 식으로 주변화를 자초하는 것도 답은 아니었다. 이 속에서 여러 우여곡절과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래도 고군분투 속에 적절한 길을 찾아나가는 것 같다.
인종주의 우파의 브렉시트 시도에는 분명히 반대하면서, 다시 민중에게 결정권을 묻는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아직 완전히 이 블랙홀에서 빠져나온 것은 아니고 존슨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구체적 투표 전술 문제도 결국 다시 골 아프게 제기될 것이라 본다. 그래도 코빈의 뚝심을 응원하고 싶다.
이 나라에는 보리스 존슨처럼 위험한 세력도 있고, 존슨같은 자들이 힘을 얻도록 틈을 제공하는 노동당 주류같은 세력도 있다. 한국판 존슨들은 이번에 조국 대전으로 결집했었고, 문정부의 한계와 약점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줬다. 문제는 그 속에 회피하지 않고 뛰어들면서도 뚝심있게 프레임을 전환시켜 나가는 코빈같은 세력이나 대안이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 미국에서 일상이자 문화가 돼버린 대량 총기난사
대량 총기난사 사건은 이미 미국에서 일상이자 문화가 돼버렸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고 매번 충격일 수밖에 없다. 지난 8월초에는 특히 하루만에 텍사스주 국경 도시 엘패소와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연달아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져 30여명이 사망했다.
엘패소에서 사망한 사람의 대다수는 히스패닉이었고, 데이턴에서 사망한 사람의 다수는 흑인이었다. 즉 인종주의가 만들어낸 혐오범죄였다. 실제로 엘패소 사건의 테러범은 “이 공격은 히스패닉의 텍사스 침공에 대한 대응”이라고 학살을 정당화했다.
트럼프도 헛소리 몇 가지를 덧붙였다. 이 참극이 "심각하게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의 "정신질환“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사람들을 모두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도 했다. 체제의 희생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을 부추기면서, 학살의 진정한 원인과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제공하고, 사형제까지 옹호했다는 점에서 복합적이고 교차적인 헛소리였다.
트럼프는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에도 책임을 떠넘겼는데, 사실 미국 펜타곤과 군대야말로 신병 모집과 훈련에 비디오게임을 이용하기로 유명한 집단이다, 그런 게임에서 악당은 항상 수염을 기른 유색인과 무슬림이다.
무엇보다 트럼프는 이 참극 직후에 이민법 개악을 주장하면서 ‘과도한 이민’이 원인을 제공한양 냄새를 피웠는데, 이야말로 가장 극악한 방식의 적반하장이다. 이런 식으로 트럼프가 부추긴 반이민과 인종주의야말로 테러범들이 방아쇠를 당기게 한 진정한 배후였다. 그러니 앨패소의 많은 시민과 활동가들이 ‘당신이 퍼트린 증오가 내 이웃을 죽였다’며 트럼프의 방문을 반대한 것이다. 미국의 경찰과 국경순찰대는 지금도 가난한 흑인과 히스패닉 이민자들을 사살해 죽이는 주요 집단이다,
<타임>지는 올해 총기참사를 겪은 미국 도시 253개로 이번 표지를 만들었다. 이제 아직 반년이 좀 지났을 뿐인데도 이 정도다. 대통령이 ‘이민자들은 너희 나라로 가라’고 선동하고, 대대적 이민자 단속 추방이 계속되고, 절망에 빠진 백인 남성들은 소수자 혐오로 결집하고, 그중에 극단적 일부는 행동에 나서고... 이것이 등장하고 있는 미국식 파시즘의 일그러진 맨얼굴이라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기사 등록 2019.9.23)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 010 - 8230 - 3097 / http://www.anotherworld.kr/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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