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일본정부의 경제보복과 반아베 투쟁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폐기해 버린 미국, 미국의 만류도 거스른 아베의 계속되는 한국 공격, 중러의 합동 군사훈련과 동해 침입, F-35 도입 등 전력증강을 추진하는 남한, 미사일 시험을 지속하는 북한... 동아시아의 긴장과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크게 세가지 특징이 있는데 먼저 ‘인도태평양전략’을 중심으로 미국의 중국 봉쇄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럼에도 미국의 힘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란 압박 동맹구축은 미국 뜻대로 안되고 있고 아베마저 아직 불참하고 있다. 한국 우파의 일부도 트럼프에 대한 불만 속에 자체 핵무장 주장을 키우고 있다. 결국 복잡한 지정학적 계산 속에 갈등이 커지고 있는데 아베의 강수는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것 같다.
갈수록 위험한 길로 치닫는 아베와 일본 지배세력의 행태는 전형적인 가해자 중심적 관점이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자꾸 가해자라는거냐? 한참 지난 과거 일을 언제까지 반복해서 사과하라는 것이냐? 반성과 사과 요구 자체가 우리를 모독하고 신뢰를 깨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근 담화에서 ‘인류보편의 가치를 거스르며 가해자가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타당하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 동안 동아시아에서만 수천만 명을 학살하고 수십만 명을 성노예와 강제노동으로 착취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아베 세력은 이런 과거를 부정하고, 반성을 거부하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와 군국주의 부활의 길로 가려 한다. 일본에서 ‘바퀴벌레같은 조선인을 죽이자, 강간하자’고 외치는 재특회가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진보세력의 위기, 분열, 약화가 있었다. 천황제, 한미일 동맹, 식민지배 책임에서 어설픈 타협과 화해를 말하던 ‘리버럴’은 아베를 막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국내 좌파 일부마저 ‘과거는 지난 일이고 오늘이 중요하다’라거나 ‘외교의 사법화가 문제’라거나 ‘한국정부의 무능’을 우선 지적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위험한 미래를 위해 잘못된 과거를 부정하는 세력 때문에 과거와 현재, 미래는 연결될 수밖에 없다.
‘종족적 민족주의는 전체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일본 리버럴, 한국 우파, 한국 일부 좌파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이러니다. 여기서 빠진 건 구체적 맥락이다. ‘친일과 토착왜구가 아니라, 친북과 토착빨갱이부터 물리치자’(김문수)는 목소리가 주류였던 사회에서 두 가지를 동등하게 보긴 어렵다.
지금의 대중적 반일감정 속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종족적’ 요소보다 ‘정치적’ 요소다. 일제시대에 ‘민족적 공산주의’가 그토록 강했던 이유도, 한국어도 못하는 재일조선인 2, 3세들 속에서 민족의식이 나타나는 것도 현실의 억압과 차별 때문이지 그 역이 아니다. 따라서 우선 주되게 비판할 것은 천황제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군국주의적 민족주의다.
억압과 차별의 피해자들이 항상 상대방이 수용할만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감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하고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왜 불매운동이 촉발됐는지, 어떤 다른 방법이 있는지가 빠진 여러 비판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불매를 넘어 ‘일본을 이기자’(극일)면서 정부와 언론 등에서 제기되는 방향들은 대부분 문제가 많다. 얼마전 담화에서 문재인은 “기업의 어려움과 함께한다는 비상한 각오”를 말했는데, 조선일보도 ‘기업이 최대 피해자’라면서 온갖 친기업 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진짜 일제 식민지배 피해자들에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말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 ‘누구와’ 함께 ‘어떻게’ 아베를 이길 것인가다. 전시 성노예,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함께 65년 협정 파기와 일본의 철저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는 아베를 이기려면 우리부터 ‘전쟁하지 않는 나라’로 가야 한다. 군축을 하고 군사협정을 파기하고 파병과 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한다. 베트남 전쟁책임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노예적 착취를 사과하고 반성해서 아베를 압박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요구와 운동을 발전시킨다면, 그것은 일본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의 발전에도 도움과 자극이 될 것이다.
지금 가장 불안한 것은 혐오와 차별의 표적이 되기 쉬운 재일조선인들일 것이다. 따라서 일본 좌파와 노동운동의 대응이 중요하다. 그들이 일본 ‘리버럴’의 절충적 양비론을 넘어서 일본 군국주의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아베에 맞서는 강력한 운동을 건설해낸다면, 한국에서 아베와 일본인들을 한통속으로 보는 과도한 민족주의적 편향은 힘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평범한 일본 민중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동지’라는 백마디 말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국제주의적 반아베 투쟁의 건설에 도움을 줄 것이다.
● 반아베 투쟁은 모두 잘못된 민족주의적 방향인가?
변혁을 지향하는 좌파로서 나도 민족적 자부심보다는 되려 민족을 부정하는 데 자부심을 느껴왔다. 이주, 난민 문제나 베트남전 한국 책임 등의 문제는 더 그렇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에 문정부가 화학물질 규제완화, 특별연장근로 등의 대책을 내놓고, 경쟁하는 한일 기업, 국가중 어느 편이냐 프레임을 강제하는 것은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가 한국에 있는 평범한 일본인이나 결혼이주민 등을 위축시키거나 국내 계급투쟁을 가로막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보복과 평화위협의 아베정부를 규탄하는 것 자체가 ‘배외주의’나, ‘애국주의 광풍’이라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아베는 지금,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권을 인정한 한국사법부 판결이 ‘한일관계 신뢰를 깨버렸다’며 보복하고, 또 남북화해 흐름에 어깃장을 놓으며 군국주의 부활로 가고 있다.
여기엔 ‘위안부’나 강제징용 등의 과거사는 65년 한일협정을 통해 다 해결됐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식민지배에 대한 성찰 거부가 우경화의 배경인 것이다. 일본만 아니라 역대 한국 정부 또한 이에 공범이었다는 게 중요하다. ‘과거는 묻고 미래로 나가자’가 친일에서 친미로 변신하며 한미일 동맹 속에 형성된 한국 지배계급의 핵심 특징이다.
‘위안부’, 강제징용 노동자의 피해와 고통은 동맹의 걸림돌일 뿐이었다. 오죽하면 박근혜 정부 때, 사법부와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몰래 일본쪽과 접촉해 재판을 연기하며 판결을 뒤엎으려 했겠는가. 재판이 미뤄진 6년동안 많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사망했다. 죽기를 기다린 셈이다.
지금도 자한당과 조선일보 등의 입장은 아주 노골적이다. 그러면서 ‘21세기에 무슨 철지난 반일감정과 민족주의며, 애국이니 매국이니 의병과 죽창가가 왜 나오냐’며 자신들이 민족주의에서 벗어난 이성적이고 합리적 세력인체 한다.
언뜻보면 문정부와 민주당은 다른 듯 하지만 글쎄다. 한미일 동맹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점은 비슷하다. 한일군사협정 폐기는 물론이고, 과거청산이 빠진 ‘65년 체제’는 건들 생각이 없어 보인다. 강제징용도 일본 정부의 분명한 책임과 배상 요구는 않고 있다. 대중적 반감을 어느 정도 이용하고 올라타면서도 부담스러워 하는 게 느껴진다. 미국이 '화해'를 강요하면 수용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중동 파병 요구도)
중요한 것은 끔찍한 착취를 당했고 70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싸워 온 강제징용 피해자(중심주의) 관점에서 이걸 보는 것이다. 그나마 한국사법부가 민사 청구권을 인정해 준 상황에서,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는 아베를 향해 분노 규탄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아베의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에 분노해 정의를 요구하는 정서는, 삼성의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한국국가와 기업들이 베트남이나 동남아에서 저지른 잘못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또 아베의 과거 부정과 우경화에 제대로 맞서지 않고 타협하려는 한국 정부와 주류세력에 대한 충성과 복종보다 분노와 투쟁으로도 나갈 여지가 있다.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다시 커지고 있는 전쟁의 먹구름에 맞서는 국제 연대로도 나갈 수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지난 세월 동안 전쟁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국제적 연대를 발전시켜 왔듯이 말이다.
만약 우리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좌파라면 아베의 경제보복과 평화위협을 규탄하고 반대했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유용하다. 만약 베트남 좌파가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이나 배상을 거부하고 군사력만 증강하는 한국정부를 규탄하고 나섰다면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말이다.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주장도 사실, 단지 그것이 허구라는 데 강조점이 있는 건 아니었다. 왜 어떤 맥락에서 그런 상상을 하게됐는가를 설명하려던 시도였고, 그 맥락과 방향에 따라서 달리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걸 잘 보여줬던 볼셰비키도 단지 모든 민족적 요구와 권리를 기각하진 않았다.(그것이 볼셰비키의 공이기보다, 당시 피억압 소수민족과 혁명가들의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연구도 요즘 나오고 있다.)
물론 아무리 자생적이라도 불매운동은 여러면에서 과하거나 뒤틀릴 수 있고, 아베에 대한 분노는 일본인들 모두에 대한 잘못된 반감으로 나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전범기업 불매운동으로 제한하자거나, 이 분노를 수요집회 동참으로 확대하자거나, 한일군사협정 폐기와 65년 체제의 재정립을 제시하는 등의 대안적 전술과 요구를 발전시켜야지, 아베 규탄 운동과 요구 모두를 민족주의라고 냉소할 일은 아닐 것이다.
● 푸에르토리코 민중의 역사적 전진
푸에르토리코 주지사 리카르도 로세요가 ‘채팅 게이트’ 발생 이후 보름만에 결국 지난주 퇴진했다. 혐오 발언이 한 정치인을 쫓겨나게 만든 것이다. 푸에르토리코 주민 6명중에 1명이 거리로 나오는 역사상 최대규모의 시위가 계속 벌어졌다고 한다.
특히 몇 차례의 집중집회와 총파업, 고속도로 봉쇄 시위가 있었고 가장 가난한 지역의 노동자들 3천여명이 오토바이 시위로 힘을 보탰다고 한다. 푸에르토리코의 거의 모든 노조, 여성, 인권, 시민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퇴진을 요구했고, 결국에는 주요 정당과 심지어 트럼프까지 등을 돌렸다.
로세요가 동료, 측근들과 함께 채팅방에서 여성혐오, 동성애혐오 발언과 막말들을 한 것이 드러난 게 직접적 계기가 됐지만, 더 나아가 그동안 그와 정부가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적 민영화와 긴축 정책들이 그 배경이 됐을 것이다. 더불어 2017년에 수천 명이 사망한 허리케인 마리아에 대해 제대로 대처, 복구, 피해자 지원을 하지 못한 것도 분노를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결국 신자유주의 정책, 기후변화와 그것이 낳은 재앙에 대한 무능한 대처가 대중적 분노와 불만을 투쟁으로 폭발시켜 소수자 차별과 혐오에 기반한 정치인과 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번 투쟁과 성과가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를 거쳐 지금은 미국의 자치령이라는 또다른 종속적 조건에 놓여있는 푸에르토리코에서 미국으로 편입이냐 독립이냐는 오랜 논쟁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다.(미국 좌파는 전통적으로 푸에르토리코의 독립과 자결권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이 투쟁과 승리는 지금 바로 옆에서 트럼프에 맞서고 있는 미국인들, 삼합회까지 동원한 캐림 람 정권의 폭력적 탄압에 맞서 투쟁 중인 홍콩 민중들, 툭하면 소수자 혐오와 차별 발언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에 속을 끓여온 모든 사람들에게 반갑고 힘이 되는 소식이다.
● 수단 민중 투쟁과 한발 물러서 반격을 노리는 군부
지난 몇 달간 수단 민중 투쟁은 아랍의 ‘겨울’이 다시 ‘봄’으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참가자의 70%가 여성이었다는 이 투쟁에서 차 위에 올라가서 계속 ‘혁명’을 외치던 여성의 모습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 광장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사람들의 모습도. 하지만 수단판 박정희(알 바시르)의 퇴진 이후에 수단판 전두환과 신군부가 등장해 수단판 5.18학살(하르툼 학살)을 저질렀다.
이에 맞선 수단 민중의 투쟁은 계속돼 왔다. 결국 지난달 수단 군부가 한발 물러서면서 아프리카연합의 중재안을 수용했다. 군부와 민간이 절반 정도씩 차지하는 공동주권위원회를 구성해서 앞으로 3년간 공동으로 번갈아서 수단을 통치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체포 구속된 시위대에 대한 석방도 시작됐다고 한다.
이것은 물론 수단 민중의 시민불복종과 파업 투쟁이 낳은 성과다. 수단 민중은 군부의 반혁명 시도에 맞서서 포기하지 않고 투쟁해 왔다. 6월 30일에는 ‘100만 대행진’ 투쟁을 벌였고, 7월 중순에도 대규모 시위와 파업을 선포한 상태였다. 이런 투쟁이 예고된 상황에서 군부가 한발 물러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중재안은 수단 민중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많다. 지난 두 달간에만 벌써 120여명을 학살한 군부가 권력을 공동으로 나눠가진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학살자는 물러나고 처벌받아야지 통치할 자리에 앉아있어선 안 된다. 이런 합의는 수단판 6.29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공동정부에 자리를 유지한다면 우리도 안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근래 수단 민중의 3대 요구도 ‘학살책임자 처벌/ 군부 퇴진/ 민간평의회 구성’이었다. 아래로부터 민중의 힘이 커지면 지배계급과 권력자들은 항상 뒤로 물러서면서도, 다시 반격할 틈을 노리고 꼼수의 기회를 엿본다. 동시에 민중운동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키려 한다.
최근 송환법안을 유보시킨 홍콩과 중국 지배계급이 입법회 점거를 반격의 고리로 삼아서 대대적 탄압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일부 운동 지도부에게 대화를 제안한 것도 비슷한 시도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입법회 점거가 적절한 전술이었는지, 경찰의 유도에 말려든 것인지 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수단에서도 홍콩에서도 이런 적들의 꼼수와 탄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많은 고민과 논의가 있을 것이다. 떨쳐 일어선 민중이 연대와 투쟁의 힘을 유지하면서 이 고비를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지지와 연대가 중요할 것이다.
우리가 5.18을 기억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듯이, 수단에서 벌어진 학살도 기억하고 군부의 퇴진과 처벌을 지지해야 한다. 2년전 촛불에서 우리가 패배했다면, 지금 수단 민중의 처지가 바로 우리의 처지가 됐을지도 모른다.
수단에서 반혁명이 성공한다면 자한당과 태극기부대가 자신감을 얻겠지만, 수단 민중이 진정한 민주주의로 계속 전진해나간다면, 우리도 그것에 자신감을 얻어서 촛불이 제기한 미완의 과제를 향해 더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기사 등록 20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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