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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긴축과 권위주의에 맞서 일어난 세계적 반란 물결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11. 11.


댄 라 보츠(Dan La Botz)

번역: 두견

 


[근래에 전세계적으로 긴축과 불평등, 권위주의와 억압적 권력에 맞서는 반란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 글은 그런 세계적 반란 물결의 배경과 성격을 분석하면서 좌파의 관점과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논의하고 있다. 이 글의 필자인 댄 라 보츠는 미국의 브루클린에 활동 기반을 둔 교사, 작가, 활동가로서 좌파 매체인 뉴폴리틱스’(New Politics)의 공동편집자이다분량과 역량상 이 글의 일부는 생략해서 번역했다.] 

 

출처:

https://newpol.org/the-world-up-in-arms-against-austerity-and-authoritarianism/?fbclid=IwAR3QZaaUygvneDN0CU1wbQFvcYjcollUie-p75ZIekGLZGHDCrtxAbZ9cRM

 



 

이 순간 세계의 많은 지역은 자본주의의 치료책을 찾는 실험실이고, 그 실험을 하는 사회 과학자들은 거리에 서 있다. 전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대륙에서, 그리고 십여 개 이상의 국가에서 사람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섰다. 지난 6개월 동안 프랑스, 카탈루냐, 푸에르토리코, 홍콩, 레바논, 칠레, 에콰도르, 온두라스, 아이티, 이라크, 수단, 알제리에서 반란이 있었다. 이러한 반란들은 일반적으로 대중적이면서 좌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은 분노했고, 전투적이었고, 저항적이었다.

 

일반적인 특징은 이러한 것들이 하층 중간계급, 노동계급, 빈민들의 반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움직임이 정치 체제의 둑을 도처에서 흘러넘치게 하고 있다. 항의의 물결이 국가의 토대를 타격했다. 거리 곳곳의 투사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어떤 시스템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정부가 이러한 움직임을 분쇄하려 하자, 사람들은 거리를 포기하는 것을 거부하며 맞서 싸운다. 이 반란들 뒤에 무엇이 있고, 무엇이 그들을 일으켰으며,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들 나라들의 정치 상황은 엄청나게 다양하며 폭발을 일으킨 사건들도 상당히 달랐다: 선거를 없애버린 불쾌한 새로운 법률부터, 견디기가 힘들어진 수십 년 된 독재정권에서부터 대중교통 요금의 인상까지. 레바논에서 그것은 왓츠앱(Whatsapp) 전화 통화에 대한 세금 부과였다. 에콰도르에서는 휘발유 가격의 인상을 낳은 정부의 결정이 문제였다.

 

칠레에서는 지하철 요금이 인상되었다. 온두라스에서는 대통령이 마약 카르텔을 이끄는 그의 형을 도운 것이 발견되었다.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부패하고 여성혐오적인 대통령이 문제였다. 홍콩에서는 지역 자치를 침해한 법률의 선포가 있었다. 스페인의 카탈루냐에서는, 카탈루냐 민족주의 시위자들에게 긴 형량이 선고된 것이 문제였다. 이라크에서 사람들은 실업, 부패, 무응답의 정부에 맞서고 있다.

 

알제리와 수단에서는 오랜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이 있다. 니카라과에서는 사회보장 연금 개악. 아이티에서도 부패하고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모든 곳에서 서로 다른 방아쇠가 있었다. 그러나 모든 곳에서 중요한 문제는 존엄과 존중을 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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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불황의 여파로 우리가 2011년 스페인의 광잠 점거 운동, 미국의 월가 점거 운동,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아랍의 봄'과 더불어 반란이 억압과 번갈아 일어나는 새로운 정치적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경제 위기는 또한 이탈리아 북부동맹부터 독일을 위한 대안’(AfD)까지, 영국의 보리스 존슨부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까지, 새로운 우파 민족주의 정당과 정치적 인격의 득세를 낳았다. 비록 북아메리카(캐나다, 미국, 멕시코)가 급진화의 전염병에서 실질적으로 면역이 되어 있지만, 위기의 여파는 여전히 거의 모든 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최근의 모든 격변에서, 우리는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들이 과거에 그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던 노조나 정치정당들같은 사회적 조직들과 기관들 밖에서 혹은 심지어 그것에 대항하여 일어나고 행동을 취하는 것을 본다. 많은 경우에 그렇듯이, 좌파 정당들과 노조 관료들이 이러한 운동을 통제하려고 시도했을 때, 노동자들은 스스로 그러한 기관들을 우회하거나 혹은 그들이 행동하도록 강제하고, 현재의 지도자들을 밀어내며 조직의 정책을 바꾸려고 노력해왔다. 일하는 사람들 그들 자신의 정당들이 없다면 종종 명확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었지만, 그들의 전투적 행동과 슬로건은 그들이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들의 요구가 충족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회를 요구한다는 것을 꽤 명백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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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에 나선 사람들과 함께 하자

 

반란 그 자체에 대한 우리의 논의로 돌아가면,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동조하거나 동참하면, 이것들은 대중적인 저항, 즉 인구 전체의 저항이 된다. 결과적으로 비록 노동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앞으로 밀고 나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의 계급적 성격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요구는 때때로 명확하지 않고 발전되지 않았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요구는 은행과 기업이 지배하는 자유주의 국가와 의회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과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목소리와 투표권을 갖는 일종의 노동계급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 사이의 내재적인 모순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도 모른다. 대격변은 정확히 그 안에 이런 많은 사회적 집단과 폭넓게 갈라지는 생각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논란과 논쟁으로 번져나간다. 그리고 그것은 필요한 것이고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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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반란들 중 많은 수가 대중적이고, 좌파정당에 의해 주도되지 않으며,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끌리지 않으며, 모순되는 많은 흐름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 등 여러 곳에서 좌파 단체들 사이에서 실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혼란은 그들이 거의 50년 동안 그런 대규모 대중운동을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홍콩 시위대 한 명이 '트럼프는 우리를 해방시켜라'는 팻말을 들고 다니거나 소수의 니카라과인들이 워싱턴으로 가서 공화당 의원들과 대화를 나눌 때, 다른 나라의 좌파들은 대중운동과 그것의 복잡성과 모순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반란에 대한 지지를 포기할 수도 있다. 심지어 몇 달 동안 대부분의 좌파들이 '노란 조끼' 운동을 파시스트라고 규정했던 프랑스에서처럼,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그 나라에서도 좌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반대로 대규모의 대중적 반란은 정치적 탐색을 하면서 그들의 프로그램과 리더들을 찾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 반란이 정치적이 되면, 낡은 질서에 대한 투쟁과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운동 내부의 서로 다른 경향 사이의 경쟁 속에서 그 리더와 정당, 프로그램이 시험될 것임을 역사를 통해서 보았다. 운동은 아마도 서로 다르거나 경합하는 입장 속에서 그들의 견해를 결정하기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시간으로 도달하기 위해서, 그들은 우리의 연대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우리는 비록 그것들은 단지 그것일 뿐이고 아직 확실한 정치적 대안은 아닌 몇 가지 추세를 볼 수 있다. 독재정권을 구석으로 몰려는 홍콩같은 곳이나, 낡은 독재의 질서와 그것을 타도하려는 운동이 떠오른 알제리나 수단에서, 최초의 요구는 의회 민주주의와 시민권에 대한 것으로, 이는 독재정권에 맞서는 커다란 발전을 상징한다. 푸에르토리코나 온두라스처럼 정부가 민주주의 규범을 배반하고 있다고 국민들이 생각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의회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또한 경제적, 사회적 요구들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역사는 보여 준다. 그들은 투쟁하는 동안에 구정당들뿐만 아니라 어쩌면 심지어 구헌법과 의회에 대한 대안으로 새로운 제도들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프랑스와 칠레와 같은 다른 곳에서는 처음부터 경제적 이슈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완전히 얽혀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알제리와 수단, 그리고 어쩌면 칠레를 제외하고는 이 나라들 중 거의 어느 나라도 혁명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이들 중 어느 경우도 혁명적인 정당을 떠오르게 만드는 사회적 반란으로 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세계의 많은 부분이 자본주의의 치료법을 찾는 실험실이고, 그 실험을 수행하는 '사회과학자'들이 거리에 나서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비록 무비판적일 수는 없지만, 이러한 모든 투쟁은 많은 경우에 무조건적으로 우리의 지지를 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지지하지만, 또한 그들이 아직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정치적 도구들을 생산하지 못했다는 것을 이해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경제 정의를 위해 전세계적으로 아래로부터 동시에 일어나는 거대한 운동을 목격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운동과 함께 해야 한다.

 


(기사 등록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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