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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대한민국, 섹스의 실종?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9. 17.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저는 직업적으로 좀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지역학의 한 종류인 한국학을 가르쳐야 하니까 일단 강의 때에는 모종의 "한국적 특수성"들을 강조해야 하는데, 사실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의 생활이란 한국이고 어디고 다 엇비슷하지 않습니까? 인간 생활의 기초는 '의식주'인데, '' 차원에서야 어떤 지역적 특수성 찾기란 이미 불가능에 가깝죠. ''은요? 여전히 예컨대 대부분의 산업화된 고소득 사회에 비해서 한국인들은 건강에 좋은 과일들을 덜 먹습니다. 1년에 1인당 과일 섭취량은 한국은 66킬러, 노르웨이는 140킬러, 캐나다 같은 나라는 135킬러 정도 됩니다.

 

과일, 육류, 유제품 등의 섭취량은 경향적으로 오르고 있지만, 또 국내적으로 소득계층에 따라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문제가 좀 큽니다. 저도 한국에서 한 때에 반지하 방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 그 동네에서는 과일 섭취는 많이 위축돼 있었죠. ""는요? 일단 우리 대한민국은 주택 소유율이 세계적으로 많이 낮은 편입니다. 제일 높은 데는 바로 공산당 통치 시절에 인민들에게 주택들을 무상 분배했던 사회들이죠. 그러니까 루마니아의 주택 소유율은 96%, 세계 최고입니다. 러시아는 84%, 노르웨이는 82%인데, 한국은 53% 정도로, 일본 (61%)보다 더 낮은 수준입니다. 한국인 가구의 47%가 셋집 살이를 한다는 이야기죠.

 

한국에서 "사회주의"가 나쁜 말처럼 인식돼 있지만, 사회주의야말로 셋집살이 하는 사람들에게 월세, 전세 부담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는 것은 엄연히 사실입니다. 북조선 관련 통계는 안 나와 있어서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짐작컨대 루마니아 정도로 셋집살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택 분배 정책의 효과죠. 좌우간, 특징들이야 당연 있지만, 그래도 크게 봐서는 한국인의 의식주는 '특수'보다 '보편'에 더 가깝습니다. 과일을 덜 먹는 나라 (우크라이나 - 1인당 1년간 61킬러)나 주택 소유율이 좀 낮은 나라 (덴마크, 62%)들은, 한국 말고도 다 있죠.

 

그런데 굳이 제 학생 대부분의 출신지인 ()유럽과 비교하자면, 한국인의 "평균적" 삶에 있어서는 한 가지 매우 확실한 "특수"는 있습니다. 섹스를 안 해도 너무 안하는 거죠. 사실 "안 한다"라는 말은 좀 어폐가 있습니다. 성생활이 생물들의 본능인 이상 그걸 '안 한다'는 것은 보통 상황 상 '못 한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제 반지하 방 시절의 이웃들이 과일을 '안 먹는' 것이 아니고 '못 먹었'듯이요. 무슨 상황 말씀이냐고요? 일단 성생활 시작의 평균적인 연령대는, 한국에서 대단히 늦은 편입니다.

 

병영사회의 원형에 더 가까웠던 1980년대에는 남성은 22, 여성은 25세이었다면 지금은 남성은 20, 여성은 21세 정도입니다. 그나마 여태까지 한국 청년들을 꽉 잡고 있었던 '군기'가 조금 풀리기 시작한 셈이죠. 그런데 그럼에도 통계적으로는 한국인들이 예컨대 북구인에 비해 훨씬 늦게 성생활을 시작합니다. 노르웨이에서는 성생활 시작의 평균적 연령대는 17세인데, 그건 서구에서 '보통' 정도죠. 제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학생들 중에서는 절반 정도는 이미 성경험이 있습니다.

 

한국 고딩들의 신체 구조 내지 성적 충동의 빈도는 과연 그리 다를까요? 특별히 다를 리가 없죠. 그냥 학교의 규율주의 ('이성 교제'를 규제하는 구식 학칙 등)가 아직 남아 있는데다가 입시 스트레스가 하도 심해 성 충동이 일어나도 자위로 끝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성충동의 억압은 자연스럽고 한 개인의 성장에 도움 되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해서 신체의 자연스러운 욕구들을 늘 억제할 줄 아는 "유순하고 성실한 노동자"가 만들어지는 셈이죠.

 

그런데 지옥 같은 학교 시절의 성 충동 자제로 한국인의 "섹스 트러블"이 끝나지 않습니다. 대학 시절의 로맨스 낭만이 옛이야기 된지도 오래됐고, "연애, 결혼, 출산" 포기가 각종의 "몇 포 세대" 같은 유행어에 들어가는 것도 인제 정해진 등식입니다. 실은 대학생이 이미 없어진 거죠. 신자유주의 모범국가의 대학생은 기본적으로 취준생, 취업준비생입니다. 늦어도 대학 2학년부터 본격 취업 준비가 가동되는데, 로맨스 꽃을 피울 여유가 있겠어요? 제 학생들 중에서는 이미 대학 시절에 동거생활에 들어가 첫째를 낳고, 학교 부속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놓고 제 수업에 들어가는 친구들도 좀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인데, 한국에서는 다른 행성 이야기처럼 들리죠.

 

그런데 대학이라는 간판을 잘 못 건 취업학원을 졸업해도 "섹스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회사는 한국인의 삶을 전적으로 식민화하는 것이고, 집에 파김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예사입니다. 그나마 당장 쓰러지지 않고 씻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보고 잘 힘이라도 남으면 천만다행이죠. 그런 삶에 있어서는 섹스란 '사치'로 느껴집니다. 부부라 해도요. 한국 부부의 36%가 섹스리스입니다. 일본 (47%)보다야 아직까지 (!) 그나마 좀 나은 수치지만, 가면 갈수록 섹스리스 부부의 수가 늘어나니 일본을 따라잡는 날도 머지 않아 오겠죠? 부부 아니더라도 섹스를 할 에너지가 남지 않는 게 마찬가지입니다.

 

전체 성인 남녀의 38%나 섹스리스니까요. 섹스를 한다 해도, 또 차라리 하지 말아야 할 방법으로 하는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한국인 남성의 절반 정도가 성구매 유경험자들인데, 이건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최악"에 가깝습니다. 여성을 재화로 보는 마초주의가 아직 강한데다가 연애 등의 "절차"를 다 생략하고 싶은, 늘 만성적인 피로 이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기업 국가" 시민들의 사정인가요? 좌우간, 일본 다음으로 섹스리스 부부가 많은 대한민국은, 성매매로 치면 세계6위의 엄청난 "시장"입니다. 성생활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건 과연 정상적이고 바람직한가요?

 

인간을 생활적으로, 생물학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의식주와 잠, 그리고 섹스입니다. 각 사회의 성 풍속도는 이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성격'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한국 사회에 있어서의 ''을 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해서 뭐라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을 어린 시절부터 매우 억압적인 방식으로 고강도 장시간 학습 노동에 적응시켜 '유순한 노동자'로 만드는 사회고, 그 인생 주기 동안 자본에 종속돼 있지 않은 개인의 시간을 많이 주지 않는 사회라는 걸 알 수 있죠.

 

섹스를 제대로 즐기자면 '여유'를 가져야 하는데, 모든 것이 인간이 아닌 기업 위주로 짜여져 있는 사회에서는 기업의 임금노예에겐 뭔 '여유'가 있겠어요? 경제력에 의거한 유사 강간이라고 할 성구매를 할 금전적 여유는 있을 수도 있지만, 정상적인 연애, 정상적인 성생활을 유지할 만한 여유를 결단코 주지 않으려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불이 되고 5만불이 돼도 과연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세계 최악에 가까운 자살율을 언제 벗어날 날이라도 오겠어요?

  


 (기사 등록 2019.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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