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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치참여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10. 9.

박철균


 

1.

어린이 및 청소년이 동요를 개사해서 부르게 하는 운동 방식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 촛불시위란 말이 나온 기원인 효순이, 미선이 시위때도 촛불 소년인가 해서 초등학교 1학년인가 하는 분이 윤민석이 만든 "부시를 쓰러뜨린 과자"라는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가사가 재미는 있는데 저 소년이 부르기엔 적당하지 않은 느낌, 저걸 부를 때 관련된 사람들이 저 소년과 제대로 소통은 했는지 찜찜한 느낌을 그 당시에도 가졌던 기억이 난다.

 

2.

아마 그런 느낌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고, 특히나 이런 식의 운동방식을 많이 취하는 "특정 스텐스"에 대한 거부가 더해져서 심한 반발이 나오는 거라 생각한다. 물론, 나 역시 그 "특정 스텐스"가 하는 이야기들 중엔 동의가 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저 사람들은 ㅉㅉㅉ" 식의 이야기를 함께 하고 싶지는 않다. 이 이야기는 이 이야기, 저 이야기는 저 이야기대로 평가하고 토론하고 이야기되어야지, 그걸로 전체적인 낙인을 찍는 것은 모두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3.

그런데, 이런 식으로 어린이 및 청소년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는 방식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정치적 행동인지는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뭔가, 어린이 및 청소년이 저런 노래를 부르면서 이 운동에 "순수한" 어린이와 청소년의 마음이 담겼다는 메세지를 남기고 싶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닥 순수해 보이지 않다. 이는 개사한 내용이나 선정한 노래들부터 일단 어른의 느낌이 팍팍 들기 때문이다. 이 논란 이전의 2달 전 8.15 때도 이런 식으로 어린이 및 청소년 여럿이 개사한 노래로 합창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어린이 및 청소년은 거의 접하지 못했을 "날아라 슈퍼보드" 개사라서 뜨악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비판을 엄청 받은 걸 감안한 건지 이번에 나온 메들리는 그나마 어린이 및 청소년도 공유할 만한 동요를 개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역시나 가사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혹여나 누군가 노렸음직한 어린이 및 청소년의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저 어린이 및 청소년은 능동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노래만 부르고 끝나는 존재처럼 보여진다그리고 가사에 나와 있는 것처럼 "토착왜구" 운운하는 것은 분명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는 혐오성 짙은 단어다. 여기서 이 방식은 실패한 것이다. 특히나 어린이 및 청소년을 그런 방식으로만 운동에 함께 하게 한다면 더더욱이 실패한 것이다. 으레 이것에 대한 반응으로 "미래가 밝다." , "미래의 꿈나무", "앞으로가 전망이 좋아졌다" 식의 반응인데 그럼 지금은 어린이 및 청소년에겐 아직 멀었고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어린이 및 청소년보다 우월한 것인가? 여기서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한다는 개념은 무너진다. 운동이 말하는 방식부터 고저차가 있다면 그건 실패한 운동이다. 

 

4.

또 하나 고민되는 지점은 이런 방식에 대한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들 중에 "어떻게 아이들에게 이런 걸 동원시키냐?" "아이들을 어떻게 이런 걸로 이용하냐?" 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 방식이 좋지 않은 운동 방식이고 이런 운동 방식을 계획하고 저 어린이 및 청소년과 소통했을 관련된 분들이 좀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저 어린이 및 청소년들이 소위 어른들이 시켜서, 즉 자기 의사와는 다르게 억지로 저렇게 노래 부르고 환호성 질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에 있어 소통은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마치 어린이 및 청소년들은 소위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마냥 수동적인 존재로 비춰 질 수 있는 주장 역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활동을 하면서 이렇게 사회적 약자의 시위에 낙인을 찍는 주장들을 너무 많이 봤다. 맘상모 투쟁에 함께 한 장애인 당사자를 일컬어 "불쌍한 장애인을 이용해서 시위에 동원했다." 같은 거 말이다. 이런 관점이 당연히 말이 안 되는 건 장애인 당사자가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도 모르게 장애인을 자기보다 낮은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을 스스로 얘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를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자칫 어린이 및 청소년 역시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수동적인 존재인 것처럼 얘기하지 않도록 고민했으면 좋겠다.

 

5.

그렇다면 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치참여는 어떤 방식으로 발화되어야 할까? 나는 최근 화제가 된 그렌타 툰베리를 생각해 본다. 그녀는 UN 석상에서 노래를 부르는 대신, 또박또박 연설로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후변화에 대해 무책임한 각 국가 대표들에게 일갈했다. 그리고 그녀의 발언은 그녀가 청소년인지 아닌지, 자폐성 장애인지 아닌지를 넘어 온 세계 사람들에게 울림과 행동을 만드는데 발화점이 되었다.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는 청소년 단체와 활동가들이 있다. 그런 곳과 운동은 접점을 만들고 그 청소년 단체와 활동가들이 어려움 없이 함께 활동하고 다양한 활동을 만들 수 있도록 소통하고 연대해야 하지 않을까. 거기서 단지 석연찮은 노래만 부르는 어린이 및 청소년을 넘어 보다 더 미래지향적인 어린이 및 청소년의 적극적인 활동 및 정치참여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기사 등록 2019.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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