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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조국 사태", 민심이 분노한 이유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8. 29.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저는 "조국 사태"를 지켜보면서 제 자신에게 계속해서 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실 사소하다라고도 할 수 있는 "불공정성", 왜 하필이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렇게까지 아프게 다가왔을까요? 사실 이미 완숙한 자본주의 사회가 다 된 대한민국에서는 고학력자/'명문대' 출신 신분의 세습 정도는, 그나마 비교적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상속"이라는 자본주의의 절대적 원칙이 작용돼 훨씬 더 큰 것들이 세습됩니다.

 

삼성의 매출은 한국 GDP23% 정도 차지하는데, 웬만한 작은 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더 덩치가 큰 삼성을 인제 3대 왕자가 세습한 것에는 우리가 왜 이렇게 당연시하고 반발도 하지 않고 있을까요? 북한의 권력 세습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지만, 전부 다 세습독재인 한국의 10대 기업들은 경제적으로 북한보다 덩치가 더 큰 것입니다. 역시 남불나로, 남의 세습을 비난해도 한국 사회의 '대잇기' 원칙을 그냥 나 몰라라 하는 게 아닙니까? 기업뿐입니까? 교회 담임목사직도 세습되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굳이 편법을 쓰지 않는다 해도, 큰 폭에서는 한국의 "인서울" 대학의 교수층은 대체로 "대를 이어" 재생산되는 것입니다. 신임 전임 교원들 중에서는 교수 자녀들이 제일 많고 이외에는 법조인, 의사 등의 자녀들이 흔히 보입니다.... 그러니 특정 고딩이 학술논문의 제1저자가 되든 말든, 유급하고 나서 장학금을 받든 말든 큰 폭에서는 어차피 그 고딩의 삶의 궤도는 부모의 궤도를 대략 따를 것입니다. 그런데다 민심이 왜 이렇게 격하게 반응했을까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대학, 너마저도?"와 같은 정서인 듯합니다. 사실, 재산 불평등 정도는 한국 사회는 이미... 그저 체념한 것 같습니다. 조국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반열에 들어 있는 다른 사람들도 포함해서, 한국 사회의 최상위 1%는 평균 6,5개의 주택을 보유합니다. 1개 가구당 말이죠.

 

그런데 또 반면에 48%의 가구는 집 한 채 없어 월세, 전세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다주택자와 무주택자로 나누어진 사회, 다들 상식적으로 아는 현실입니다. 상위 10%가 전체 부동산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사실 등을 알긴 알아도 한국 사회는 ""의 영역인 재산, 소득에 있어서의 엄청난 불평등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저항을 단념한 듯합니다. 그런데 대학은 ""의 영역입니다. 대학 자체도 국고 보조금을 받고 있고 각종의 학술지 등도 학진 등의 보조금을 받아 발간됩니다.

 

그러니까 본인도 그 자녀들도 아무리 천부적 천재라 해도 진입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그 악명 높은 "교수 사회"가 그 ""의 영역을 가지고 사유화한 데에 대해서는 과연 어느 정도 억울하게 생각할까요? 물론 지금 집회해서 "조유라"라고 막 소리 지르는 고대생, 서울대생 중에서도 과연 이와 같은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 특권적 궤도에 진입한 사람들이 몇명이나 될까 싶긴 합니다. 대학이란 ""의 영역은, 이미 거의 사립대 지배왕조와 관리자, 전임 교수 카스트에 의해서 다 사유화된 상태죠.

 

그리고 또 하나는, 대통령/정부 등이 "국민 감정"을 푸는 하나의 ""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화돼서 밑으로부터의 비판을 허용하는 것은 사실 국가/정보 외에는 있기나 하나요? 삼성의 피고용자들이 이씨왕조를 비판하는 거나, 조국 전 교수나 그 동료들에게 달려 있는 대학원생들이 그 위대하신 "스승님"들을 비판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대한민국은 여전히 크고 작은 독재들의 집합인데, 그나마 1987년 이후로는 "국가"에 대해서 할 말 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강남족의 지배에 대해 억울함을 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어차피 삼성 등에 비해 국가가 훨씬 약체인 만큼 국가/국가 수반에 대한 비판은 '체제' 그 자체를 그다지 흔들지도 않기에 이와 같은 "감정 분출"들이 정기적으로 일어나고 대체로 체제에 의해 관용되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문제는 법무부 장관직을 어느 '개혁 지향적인' 강남 귀족이 차지할 것인가는 아닙니다. 물론 개혁 지향적 귀족이 극우적 귀족보다 차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장관의 이름이라기보다는 "개혁"을 명분으로 삼는 이번 정부는 "" 영역의 사유화 등 이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차후 어떻게 다룰 것인가입니다.

 

정부와 이런저런 인연으로 엮여 있는 교수 카르텔이 앞으로도 자녀들을 학술 논문 저자로 둔갑시켜 "명문대" 학력을 대물림하게 만들고, 이 모습이 다시 다수의 눈에 들어가면 이 정부를 떠나지 않을 민심은 과연 있을까요? "귀족의 발호"를 수수방관하는 정부, ""의 영역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정부는, 다수의 입장에서는 무능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사회 귀족들의 신분 세습 도구가 다 된 "명문대"의 특권적 위치가 지속되는 이상, "조국 사태"를 발생케 한 근본적 원인을 제거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 대학들의 평준화가 너무나 시급한 시점입니다...  



(기사 등록 2019.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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