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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나는 입 다물고 쫓겨날 생각이 없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7. 20.

나는 입 다물고 쫓겨날 생각이 없다

- '반유대주의'라는 논리로 반제 반전 입장을 공격하는 궤변

 

윤미래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 민중에 연대하는 급진좌파들이 반유대주의라는 빌미로 공격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 소속 무슬림 하원의원이나 영국의 제레미 코빈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현상은 독일에서도 이미 심각했는데, 이런 공격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윤미래 동지가 현지에서 보내온 소식이다.]





 

지난 주말부터 나를 아주, 아주, 아주 화나고 슬프게 만들었던 일로 저녁에 오랜만에 학생회에 다녀왔다.

 

1년 정도 같이 학생회 활동을 했던 사민당 계열의 백인 남학생 하나가 학생회실 벽에 이런 걸 써놨다.

 

"알라 알라 알라 알라 이란을 폭격하라"

"MLPD를 사냥하라" "SDS를 금지하라"(반제 반전 노선의 학생단체들. 제가 있는 좌파당 학위의 약칭이 SDS입니다.)

"히잡 대신 노브라"

"모하메드=최고의 이름"

 

오늘 학생회 회의에서 오간 이야기는, 전부 다 적을 수는 없지만, 하이라이트만 정리하면 대충 이랬다.

 

친구: 그러니까 지금 침략 전쟁으로 민주화를 하자고?

 

남학생: 나치를 전쟁으로 격퇴한 것과 같지. 네 말대로면 그것도 반인도적이겠네~ 나치 독일인들이 불쌍하니까 말야~

 

친구: 극단주의 좌우합작은 딴 데 가서 해, 이 파시스트야.

 

남학생: 극단주의 좌우합작 하는 건 너지 나치가 독일만 말하는 게 아니거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같은 애들한테도 통용되는 거라고. 그런 것들은 전쟁으로 개입해야지. 알라 알라 알라가 화가 난다니, 그런 이슬람 근본주의자는 그냥 놔두면 안되지 않겠어?

 

친구: 우리는 어떤 종류의 극단주의도 지지하지 않아. 하마스도 지지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주권이나 유대 민족의 자결권도 반대하지 않아. 하지만 팔레스타인 민중의 민주적 자결권에 대한 요구는 모두 지지해.

 

: 너는 도대체 나치가 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데? 나치즘의 핵심은 네가 어떤 나라, 어떤 민족, 어떤 문화에 속해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사람을 살상할 권리가 있다는 믿음이야. 네가 저 벽에 쓴 게 정확히 그거고!

 

남학생: 서구 문명의 본질이 그거지! 이성의 개념을 정립했고 그건 전 세계에 퍼뜨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 이게 정말 이 문제에 대한 학생회의 의견인가요? 입장을 듣고 싶은데요.

 

일동: (침묵)

 

남학생: 이런 걸 논쟁해서 무슨 의미가 있어? 나도 마음 같아서는 너 같은 반유대주의자는 여기서 추방하고 싶어. 근데 학생회라는 제도 안에서 일하는 거니까 접어둔 거라고.

 

사회자: 지금 반유대주의적인 발언은 누구도 안 한 것 같은데.

 

남학생: 쟤는 BDS를 지지하잖아!

 

: BDS는 점령 정책에 항의하는 비폭력, 평화적인 운동이고, 나는 '유대인을 죽이자' 같은 발언을 벽에 쓴 적이 없어. 넌 썼지.

 

남학생: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을 어떻게 사람이랑 분리해서 봐? 나도 그럼 요구할래, 쟤 쫒아내라고.

 

: 저 말대로 학생회가 그 요구를 다뤄주면 좋겠는데요. 판단을 내려 주시죠?

 

일동: (침묵)

 

친구: BDS의 모델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드에 대한 저항이고, 전세계적으로도 많은 명사들을 포함해서 광범위하게 지지받고 있어. 팔레스타인의 학살에 항의하는...

 

남학생: 주둥이 닥쳐! '학살' 따위의 말을 여기서 지껄여도 되는 겁니까?

 

참관하던 타과생: 주둥이 닥치라는 말도 여기서 하면 안 되는 말인 것 같은데.

 

일동: (침묵)

 

인종주의 연구하시는 교수님께 메일을 쓰고 수업에서 토론을 했다. 좌파 운동에서 이런 식으로 유색인이나 반전평화 활동가들을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어 인터넷에 신상을 올리고 전국 연락망에 공유하고 협박전화를 걸어대는 통에 유색인 학생들, 특히 이슬람 학생들이 갈수록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걸 무서워하고 있다고 한다. 아닌게아니라 나부터가 방학 때는 학교에 되도록 안 가고, 가더라도 최대한 일찍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 지지난해에 팔레스타인 침략에 항의하는 선전전에 사민당 학생위를 위시한 백인 남학생들이 난입해서 집기를 때려부순 적이 있고 (사민당 학생위원회는 이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이 선전전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냄으로써 용의 눈에 점을 찍었다.) 그 이후로 독일 사회의 분위기는 훨씬 더 험악해지면 험악해졌지 결코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한국에서 활동할 때도 이 정도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적이 없고, 세상이 좀 빙글빙글 도는 기분인데, 나는 이런 식으로 나를 쫓아내도록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연대'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된 이상은 더더욱이나. '낙후된' 문명에서 '비이성적'인 성별로, '병신'으로 태어나서 '우중'에 의탁하는 '반사회적인' 존재인 채로 그래도 지금, 여기에 발 붙이고 살아야겠다는 게 내 정치였다. 나는 살아야겠으니 입 다물고 있지는 못하겠다. 너희가 "문명화의 사명"을 진척시키려면 날 여기서 치워야만 할 것이다.


(기사 등록 2019.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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